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57

박지원(朴趾源)의 원조대경(元朝對鏡)

열하일기로 유명한 조선 시대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의 원조대경(元朝對鏡)을 소개하려 한다. 원조대경은 '설날 아침에 거울을 본다' 는 뜻이다. 이 시에서 설날이란 우리 전통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집은 특이하게 신정을 쇠니 이 블로그에는 신정을 기념하여 올리기로 했다. 元朝對鏡 (원조대경) 설날 아침 거울을 보며 - 朴趾源(박지원) - 忽然添得數莖鬚 (홀연첨득수경수) 홀연히 몇 가닥 수염이 늘었건만 全不可長六尺軀 (전불가장육척구) 육척 키는 더는 자라지 않네. 鏡裏容顔隨歲異 (경리용안수세이) 거울 속 얼굴은 세월 따라 달라지나 稚心猶自去年吾 (치심유자거년오) 유치한 마음은 작년의 나와 같구나. 박지원은 우리가 '조선시대 선비'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장난꾸러기였..

이규보(李奎報) 시문(22) - 치통(齒痛)

오래간만에 이규보의 시를 한 수 올린다. 푹푹 찌는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시(폭염이 지겹다는 내용)가 있지 않을까 찾아 봤지만, 그런 시는 예전에 올려서 밑천(!)이 떨어졌다. 다른 것은 없을까 하고 뒤지던 중에 치통 관련한 시를 발견했다. (오, 이것도 딱이네~~!) 작년 여름과 올해 봄을 치통으로 고생하며 보냈다. 치과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치과 치료라는 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드릴 비슷한 기구로 치아를 갈 때 나는 소리와 느낌(공포의 그 느낌...!)도 싫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팔다리에 힘을 주게 되니, 치과 문을 나설 때면 이만 아픈 게 아니라 몸살이라도 앓은 듯 온몸이 피곤하다. 무엇보다 이번 치통은 이전에 겪었던 것들보다 훨씬 심해서, 처음에는 이만 아프다가 머리까지..

장유(張維)의 송장생희직하제후귀해서부가(送張生希稷下第後歸海西婦家)

지난 주에 수능 시험이 있었다. 원래는 11월에 치렀던 시험인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통에 12월로 연기된 것이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온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올해 대학입학시험을 아예 시행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어쨌거나 우리는 시행은 했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외국보다 낫다는 정도일 뿐, 우리 상황도 여러가지로 어수선했다. 일단, 학교 수업이 파행으로 운영되어 고3 학생들이 수업도 제대로 못 받고 시험을 봤다. 그래서 '올해 고3은 저주받은 세대다, 너무 안 됐다.' 라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시험 전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시험 난이도에 관한 논란이야..

이규보(李奎報) 시문(21) - 동백화(冬栢花)

오늘 소개할 '이규보(李奎報)' 의 시는 겨울꽃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동백을 소재로 하는 '동백화(冬栢花)' 다. 매해 첫 번째 날을 이규보의 시로 시작하는 내 블로그의 전통(?)이 슬슬 끝나갈 조짐이 보인다. 이 시가 이 블로그에 올리는 21번째 이규보의 시이다 보니 밑천(!)이 떨어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새해 첫날에는 그 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새해 또는 겨울을 소재로 하는 시)를 올려야 적당할 듯한데, 이규보 시 중에서도 그런 시는 이미 다 찾은 것 같다. 어쩌면 내년 첫날에는 이규보가 아닌 다른 시인의 시를 소개하는 포스트가 올라오거나, 아예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포스트가 올라올 지도 모르겠다. 冬栢花 (동백화) - 李奎報 (이규보) - 桃李雖夭夭 (도리수요요) 복사꽃과 오얏꽃은 비록 어여쁘나..

이규보(李奎報) 시문(20) - 일일불음희작(一日不飮戱作)

오래간만에 이규보의 시를 소개하려 한다. 오늘 소개할 시의 제목은 一日不飮戱作(일일불음희작)이다. 제목을 풀이하면 '하루 술을 마시지 않고 희롱삼아 짓다' 가 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이규보란 사람이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이규보의 아내는 그런 남편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을지 알 수가 있다. 일단, 시의 제목에 나오는 '하루 술을 마시지 않고' 란 부분에서부터 이규보의 애주가 기질이 팍팍 드러난다. 아마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술을 마신 김에 흥취가 올라 시를 지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술고래(!) 이규보는 평소에 술을 물 마시듯 하던 사람이라, 오히려 모처럼 술을 안 마신 날이 특별한 날로 생각될 지경이어서 바로 그 날 이 시를 지었다. 一日不飮戱作(일일불음희작) 하루 술을 마시지 않고 희롱..

이규보(李奎報) 시문(19) - 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

올해로 7년째 새해 첫 번째 날에 이규보의 시를 올리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새해맞이용으로 올릴 만한 시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어쩌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무언가가 이규보의 시를 대신할 지도 모른다. 가급적 이 전통 아닌 전통을 이어가도록, 내년부터는 이규보의 시 중에 새해 첫날과 어울릴 만한 적당한 시가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야겠다. 오늘 올릴 시는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라는 작품이다. 시 속의 계절로 보아도, 내용으로 보아도, 새해맞이용으로 적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규보가 한겨울에 눈을 헤치고 친구를 찾아갔으나 공교롭게도 친구가 집에 없어서 만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시인답게 운치 있는 방법으로 남겼다는 내용이다.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

이규보(李奎報) 시문(18) - 사인혜선(謝人惠扇)

오래간만에 이규보의 시를 한 수 올린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름철이 되면 푹푹 찌는 더위를 기념(?)하는 뜻으로 여름 더위와 관련된 시를 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고른 '사인혜선(謝人惠扇, 부채를 선물한 이에게 고마워하다)' 은 부채를 선물해 준 누군가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에서 지은 작품이다. 다만, 부채를 주고받았다는 점과 서늘한 가을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보아 이 시 속의 계절이 여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여름은 악명(!) 높은 1994년 여름을 넘어설 수준으로 대단한 여름이다. 이 여름이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아, 고려 시대 에어컨(...은 너무 심했나? 그렇다면 그냥 선풍기 정도로... ^^;;)이라 할 수 있는 부채에 관련된 이 시를 포스팅하겠다. 謝人..

이규보(李奎報) 시문(17) - 신축정단(辛丑正旦)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언젠가부터 세월 가는 게 빠르다는 어른들 말씀을 실감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냥 빠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빛의 속도인 것 같다. 2017년이라는 연도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못 했는데 벌써 2018년이 되어 버리다니... 아마 이번 2018년도 순식간에 지나가겠지... 이제는 새해가 기쁜 게 아니라 또 한 살 더 먹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마음은 아직도 파릇파릇한 10대이건만 몸은 이미... ㅠ.ㅠ 고려시대 사람인 이규보 아저씨도 새해가 마냥 기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봤자 나이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속세의 일에는 초탈한 것처럼 굴던 고려시대의 호방한 시인도, 설날을 맞아 한 살 더 늙게된 것이 좋긴 ..

이규보(李奎報) 시문(16) - 고열(苦熱)

작년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도 푹푹 찐다. 이상고온이 시작되었던 6월에 이미 '이번 여름도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무더위가 닥치니 진작 예상했던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무더위가 괴롭지 않게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ㅠ.ㅠ 이규보의 시 중에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시가 한 편 있어서 소개하려 한다. '견디기 힘든 더위' 라는 뜻의 고열(苦熱)이다. '고통스러울 고(苦)' 자가 들어간 열기(熱)라니, 요즘 기승을 부리는 찜통 더위에 딱 맞는 표현이다. 이규보가 살았던 고려시대의 여름은 지금보다는 덜 더웠을 것 같지만 대신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만큼이나 여름이 되면 더위에 진저리치며 고생했을 것이다. 고려..

이규보(李奎報) 시문(15) - 방서(放鼠)

오늘 소개할 이규보의 시는 '쥐를 풀어주다' 라는 뜻의 放鼠(방서)라는 시다. 이 시의 주제는,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대자연 앞에서는 한 마리 쥐와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자연을 예찬하는 내용이며 인간의 교만함을 경계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시가 좀 다르게 읽힌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인 시로 보인다. 그래서 이 시를 먼저 읽고서 이 시에 대한 해석을 읽었을 때 '응? 이게 뭐지?' 하는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정도다. 일단, 시 내용부터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放鼠 (방서) 쥐를 풀어주다. - 李奎報(이규보) - 人盜天生物 (인도천생물) 사람은 하늘이 낸 물건을 훔치고 爾盜人所盜 (이도인소도) 너(쥐)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치는구나. 均爲口腹謀..

이규보(李奎報) 시문(14) - 동일여승음희증(冬日與僧飮戲贈)

새해 첫날에는 블로그에게 떡국 대신 이규보의 시를 먹여주는 게 전통(?)으로 굳어지려나 보다. 이번에도 이규보의 시로 새해의 문을 열어보려 한다. 이번에 소개하 시는 冬日與僧飮戲贈(동일여승음희증)인데, 풀이하면 '겨울날 승려와 술을 마시며 장난삼아 지어주다.'라는 뜻이다. 제목에서부터 장난기가 뚝뚝 흘러넘친다. 원래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승려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으로 모자라(틀림없이 이규보가 술 마시자고 꾀었을 듯... ^^), 그 승려를 놀리는 의미의 시까지 지었으니... 이규보 이 아저씨 정말 짓궂다. 冬日與僧飮戲贈 (동일여승음희증) 겨울날 승려와 술을 마시며 장난삼아 지어주다. - 李奎報(이규보) - 酒能防凜冽 (주능방늠열) 술은 능히 추위를 막아주니 俗諺號冬冠 (속언호동관) 속담에 이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