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상은(李商隱)의 매미(蟬)

Lesley 2019. 8. 10. 00:01


  전에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상은의 시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1(http://blog.daum.net/jha7791/15790913),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2(http://blog.daum.net/jha7791/15791257)  오래간만에 또 다시 이상은의 시를 소개하려 한다.  일부러 이상은의 시를 찾아 올리는 게 아니라, 얼마 전에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던 중에 매미 이야기가 나와서 매미와 관련된 시를 찾다보니 그리 되었다.


  친구 왈, 가뜩이나 더운 요즘에 매미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아침이나 낮에 울어대는 소리만으로도 시끄러운데, 매미가 아예 미쳤는지(!) 한밤중에도 울어대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의 푸념에 그 동안 생각 못 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여기로 이사온 후로 매미 소리를 못 듣고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여름마다 매미 소리가 귀를 울렸다.  특히 새벽부터 내 방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달라붙어 울어대면 그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시끄러워서 새벽잠을 설치는 건 둘째치고 골이 울려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로 이사하고 세 번째 여름을 맞았는데, 그 동안 매미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여러가지로 성가시고 짜증스러운 여름에 매미 소리라도 없는 게 어디인가 싶으면서도, 의식하지 못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매미 소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 모기와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인 매미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아예 제목이 '매미' 인 이상은의 시를 소개하겠다.




蟬(선)

매미


                       - 李商隱(이상은) -




本以高難飽(본이고난포)
본시 고결하여 배부르기 어려운데


徒勞恨費聲(도노한비성)
보람 없이 소리만 한스럽게 허비하네.


五更疏欲斷(오경소욕단)
오경에야 소리 잦아들며 끊어지려는데


一樹碧無情(일수벽무정)

한 그루 나무의 푸르름이 무정하구나.


薄宦梗猶泛(박환경유범)
미관말직으로 나뭇가지처럼 떠돌아서

薄宦(박환) - 봉급이 낮거나 지위가 낮은 관리.


故園蕪已平(고원무이평)

고향 전원은 거칠어져 이미 평평해졌다.


煩君最相警(번군최상경)

시끄러운 네가 가장 잘 타일러서


我亦擧家淸(아역거가청)
나 역시 온 집안이 청빈하구나.



  이 시에서 이상은은 자신과 매미를 동일시하고 있다.

  즉, 한때는 글재주 대단하다고 이름을 떨쳤지만 별 볼 일 없는 관직만 전전하며 살게된 자신의 신세를, 여름 한철에만 요란하게 울며 기세를 떨치다가 얼마 못 가 사라지는 매미의 처지에 빗대고 있다.

  이상은이 살던 시절의 당나라 조정은 정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이상은은 한 정파의 유력인사의 눈에 들어 발탁되었다가, 그 반대파 사람의 사위가 되어 출세한 일로 양쪽 정파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뒤를 봐주던 장인이 사망하자 몰락하여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이 배신했던 은인 편에 다시 빌붙는 행태를 보여서, 다시 한 번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상은은 시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상황을 '본래 고결하여 배부르기 어려운 매미' 에 비유했다.

  자신이 미관말직이나 전전하며 힘들게 살게 된 것을 자신의 잘못된 처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더러운 세상과 불화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자신이 배신했던 이를 구차하게 다시 찾아가 관직을 부탁하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지 '보람 없이 소리만 한스럽게 허비한다' 고 묘사했다.


  매미 소리가 오경에야 잦아들며 끊어지려 하는데 한 그루 나무의 푸르름이 무정하다는 건, 이상은이 말년에 느낀 자괴감이 아니었을까?

  오경은 새벽 3~5시를 말하는 옛날 시간 단위인데, 밤의 마지막 단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이 당파 저 당파를 오갔던 이상은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 관직 청탁을 포기하면서, 자신과 다르게 푸르름을 지키던 선비들을 보며 복잡한 심사를 느꼈던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관직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미관말직으로 떠돌다 보니, 어느덧 고향도 옛날 같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고향 전원이 거칠어져 평평해졌다는 것은, 당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자신이 여러 해 고향에 못 가는 사이에 고향이 쇠락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혹은 고향 자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고향 사람들도 이상은을 지조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으로 보며 백안시해서 옛날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부분은 시쳇말로 정신승리(!)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상은이 어렵게 산 것은 결코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해서가 아니다.  스스로는 부와 명예가 따르는 높은 관직을 간절히 원했지만, 박쥐 행태를 보이다가 이 당파와 저 당파 모두에게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나처럼 고결하게 청빈한 삶을 살아라' 는 타이름이라 말하며, 자신이 그 타이름에 따라 청빈하게 살게 되었노라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매미란 시만 보며서 추측해 보면, 이상은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인과응보로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옳은 길을 가기 힘든 법이고, 특히나 지식인은 다른 사람보다 처신이 더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빼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줏대 없이 살았던 한 문인의 인생과 변명이 담긴 시는 읽으면서도 씁쓸하고, 다 읽고나서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1(http://blog.daum.net/jha7791/15790913)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2(http://blog.daum.net/jha7791/1579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