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장유(張維)의 송장생희직하제후귀해서부가(送張生希稷下第後歸海西婦家)

Lesley 2020. 12. 9. 00:01

  지난 주에 수능 시험이 있었다.

  원래는 11월에 치렀던 시험인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통에 12월로 연기된 것이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온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올해 대학입학시험을 아예 시행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어쨌거나 우리는 시행은 했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외국보다 낫다는 정도일 뿐, 우리 상황도 여러가지로 어수선했다. 

  일단, 학교 수업이 파행으로 운영되어 고3 학생들이 수업도 제대로 못 받고 시험을 봤다.  그래서 '올해 고3은 저주받은 세대다, 너무 안 됐다.' 라며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시험 전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시험 난이도에 관한 논란이야 매년 되풀이 되는 기본사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수험생과 시험 감독관이 확진 판정을 받는가 하면, 어떤 시험장에서는 종료시간 벨이 2, 3분 일찍 울려서 수험생들이 멘붕(!)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 수능에서도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누구는 평소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기뻐할 테고, 또 다른 누구는 예상보다 나쁜 성적에 실망할 것이다.  아니, 수능 뿐 아니라 원래 모든 종류의 시험이 그렇다.  하다못해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이나 운전면허 시험도 붙으면 기쁘고 떨어지면 기분 나쁜 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수능을 기념(?)하는 뜻에서 시험과 관련한 한시를 소개하려 한다.

  조선시대 시험의 끝판왕(!) 격인 과거에 관한 작품이다.  지은이는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의 장인인 장유(張維)인데, 과거에 낙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장희직이란 사람을 배웅하며 지은 작품이다. 

 

 


送張生希稷下第後歸海西婦家(송장생희직하제후귀해서부가)
선비 장희직이 과거에 떨어져 해서(황해도)의 처가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 張維(장유) -


獨携書笈別親闈(독휴서급별친위)
책 상자만 들고 양친 계신 집 떠났건만

 

久客偏憐眊矂歸(구객편련모조귀)
오랜 객지 생활에 실망하여 돌아가네.

 

攀桂可堪今日恨(반계가감금일한)

(나중에) 과거에 급제한들 오늘의 한을 감당할 수 있을까.
※ 攀桂(반계) - '계수나무를 꺾다' 는 뜻인데 과거 합격을 비유함.
중국에서 과거 합격을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꺾다' 는 攀桂蟾宮(반계섬궁)' 으로 표현한 것에서 나온 말임.

 

敦瓜嬴得隔年違(돈과영득격년위)
고향의 박 익은 것을 못 본 지 1년 넘었네.

 

愁邊海月團團影(수변해월단단영)
시름 끝에 바다에 비친 달 그림자 둥글기만 하고

 

望裏江雲片片飛(망리강운편편비)
강물 위로 뜬 구름 조각을 바라보네. 

 

却想秋閨粧淚盡(각상추규장누진)
그래도 규방(아내)의 눈물조차 말랐을 생각하면

 

何心更斷錦文機(하심갱단금문기)
어찌 다시 아내에게 그립다는 서신을 쓰게 하겠는가.
※ 錦文(금문) - 금자서(錦字書)와 같은 뜻으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편지를 말함.

 

 

  장유에게 장희직은 각별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장유가 장희직에 대해 남긴 시가 몇 편 더 있다.  그러니 그냥 그런 지인이 아니라 친분이 두터웠던 벗이 아닐까 싶다. (혹은 성씨가 같은 것으로 보아 친척 사이인지도...)  그런 이가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려니, 장유도 무척이나 안타까워서 시까지 남긴 모양이다.

 

  장희직은 과거를 준비하려고 홀로 서울에 올라왔던 듯하다.

  고향의 박을 1년 이상 못 보았다니, 최소한 1년은 부모님과 부인을 못 만난 채 공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낙방하자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 제목에 본가가 아닌 처가로 돌아간다고 나온 것으로 보아, 이 시절이 조선 중기라서 처가살이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장희직이 어찌나 낙담했는지, 장유는 훗날 과거에 급제하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 떨어진 한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읊고 있다.  마음이 울적하니, 평소라면 아름답게 볼 수도 있었던 바다에 비친 달 그림자나 강물 위 구름 조각조차 허망해 보이기만 한다.

  어쩌면 장희직은 지금껏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다음 기회를 노리며 서울에 더 머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편과 떨어져 있던 아내의 마음을 생각하면, 아내를 계속 외롭게 둘 수 없어서 결국 돌아간다.

 

  흐음... 예나 지금이나 시험은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무서운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