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규보(李奎報) 시문(19) - 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

Lesley 2019. 1. 1. 00:01

 

 

  올해로 7년째 새해 첫 번째 날에 이규보의 시를 올리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새해맞이용으로 올릴 만한 시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어쩌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무언가가 이규보의 시를 대신할 지도 모른다.  가급적 이 전통 아닌 전통을 이어가도록, 내년부터는 이규보의 시 중에 새해 첫날과 어울릴 만한 적당한 시가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야겠다.

 

  오늘 올릴 시는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라는 작품이다.

  시 속의 계절로 보아도, 내용으로 보아도, 새해맞이용으로 적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규보가 한겨울에 눈을 헤치고 친구를 찾아갔으나 공교롭게도 친구가 집에 없어서 만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시인답게 운치 있는 방법으로 남겼다는 내용이다.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눈 속에 친구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다.
                                   - 李奎報(이규보) -

雪色白於紙 (설색백어지)눈 빛깔이 종이보다 희어서
擧鞭書姓字 (거편서성자)채찍 들고 성과 이름을 썼네.
莫敎風掃地 (막교풍소지)바람이 땅을 쓸어내지 말고
好待主人至 (호대주인지)주인이 이를 때까지 기다리기를.

 

 

 

  이규보가 어떤 일로 친구를 찾아간 것인지는, 이 시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규보가 방문했을 때에 친구가 외출했다는 것으로 보아, 미리 약속한 방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친구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간 김에 들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재미가 없다.  그런 무미건조한 추측보다는, 시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이규보가 자기 집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자니 문득 친구가 떠올라 무작정 찾아왔다고 하는 쪽이 훨씬 낫다.

 

  헛걸음하게 된 이규보는 자신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독특한 방법으로 친구에게 알린다.

  보통은 친구네 집에 있을 다른 식구에게 '내가 왔었다고 전해주시오.' 라고 부탁할 것이다.  혹은 눈으로 온통 새하얗게 변한 길을 왔더니 시심이 동해서 친구에게 한 수 남기고 싶더라도, 종이에 써서 남겨두고 오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그... 러... 나...!  우리의 이규보 아저씨는 역시 다르다.  말을 타고 왔는지 손에 들고 있던 채찍으로 하얀 눈 위에 자기 성과 이름을 적는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한 번 휘몰아치면 이름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르는 허술한 방법이라,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영 어설픈 메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규보는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바람이 불지 말기를 소망하며 굳이 그 방법을 택한다.

  어쩌면 친구가 돌아와서 뜻밖에 이규보가 다녀갔음을 알고 기뻐할 것을 예상한 서프라이즈(!) 이벤트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오늘 못 만나면 다음에 만나면 되는 거지, 뭐 그런 것에 연연해 하고 그러나...  내가 눈 위에 쓴 이 이름도 인연이 있으면 친구가 볼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지.' 식의 쿨(!)한 마음에서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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