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권필(權韠)의 궁류시(宮柳詩)

Lesley 2018. 11. 23. 00:01


  지난 번에 조선 중기의 문인 권필이 지은 무제시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 때 권필이란 인물이 필화로 죽었다고,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했다.  권필(權韠)의 무제시(無題詩)(http://blog.daum.net/jha7791/15791523)  오늘은 바로 그 필화의 원인이 된 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문제의 시는 궁류시(宮柳詩)라고 한다.

  직역하면 '궁궐에 있는 버드나무를 읊은 시' 라는 뜻인데, 정말로 궁궐 안 버드나무를 주인공(?)으로 한 시는 아니다.  당시 국왕 광해군의 처남이며 큰 권력을 휘두르던 유희분을 비판하는 시이다.  즉, 유희분의 성씨가 柳(버드나무 류)라서 유희분을 궁궐 안 버드나무에 비유하여 비판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임숙영이란 선비가 과거에 응시해서 파란을 일으킨 일이었다.

  임숙영은 주어진 문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답안지에 적어 제출했는데, 당시의 정치 난맥상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시험 감독관이 임숙영의 의견에 공감했던 모양인지, 아니면 조정을 비판하는 용기와 패기에 감탄했던 모양인지, 어쨌거나 임숙영을 합격시켰다.  하지만 국왕인 광해군이 임숙영의 답안지를 보고 분노하여 합격자 명단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이항복 및 삼사 관원들의 끈질긴 주장으로, 몇 달 후 다시 합격시켰다.


  권필은 임숙영 사건 후에 궁류시를 지었다.

  하지만 권필은 임숙영보다 훨씬 운이 나빴다.  임숙영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고도 결국 과거에 합격했지만, 권필은 궁류시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광해군은 임숙영의 일로 심기가 뒤틀린 상태였다.  그런데 권필이 자신의 처남이자 측근인 유희분을 비판하는 시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권필을 잡아들여 친국을 했다.  그 후 권필은 귀양을 떠나던 중에 누군가가 준 술을 마시고 절명하고 말았다.  혹독한 고문으로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폭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宮柳詩(궁류시)

궁궐 버드나무에 관한 시

                

                                 - 權韠(권필) - 



 宮柳靑靑鶯亂飛

(궁류청청앵난비)
궁궐 버드나무 푸르고 꾀꼬리 어지럽게 나는데


 滿城冠盖媚春暉

(만성관개미춘휘)
온 성안 관 쓴 사람들은 봄빛에 아첨하네.


※ 冠盖(관개) - 관(벼슬하는 사람이 머리에 쓰는 관)을 쓴 사람.  즉, 조정 신하들을 뜻함.


 朝家共賀昇平樂

(조가공하승평락)
조정 모두 태평성대의 즐거움 축하하는데


 誰遣危言出布衣

(수견위언출포의)
누가 위태로운 말을 포의에게 나오게 했나.


布衣(포의) - 재야의 선비.  즉, 임숙영을 의미함.


 


  시의 전반부는 유희분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궁궐의 버드나무가 푸르다는 것으로, 외척인 유(柳)씨 일가의 권세와 부귀영화가 대단하다는 점을 비유한다.  그런 버드나무 주위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꾀꼬리는, 떡고물을 바라며 유씨 일가 주변에 모여든 무리를 뜻한다.  또한 온 성안의 관 쓴 사람들이 봄빛에 아첨을 한다는 표현으로,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는 관료들이 유씨 및 그 추종자들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상황을 묘사한다.


  시의 후반부는 임숙영에 대한 감탄 및 임숙영이 입바른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조정 신하들 모두 어지러운 현실을 외면한 채 태평성대라고 떠들어대는데, 임숙영이라는 올곧은 선비가 등장해서 나라가 위태롭다고 쓴소리를 한다.  모두가 권세가들의 눈치만 보는데 옳은 말을 한 임숙영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면서, 동시에 재야의 선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지경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유씨 일가 및 조정 신하들을 비판한 것이다.



  권필의 시는 광해군의 약점을 제대로 찔러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기에 광해군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위험하다.  지금도 독재국가에서는 야당 인사들이나 언론인들이 권력자를 비판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있다.  민주화가 정착되었다는 국가에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불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그 비판이 대다수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비판자가 겪을 위험이 커진다.  차라리 그 비판이 사람에 따라 동조하기도 하고 동조하지 않기도 하는 정도라면, 비판을 당한 권력자에게 보복 당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그런 비판은 권력자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권력자 입장에서도 '불평 많은 자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적당히 아량(?)을 베풀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비판이라면 그 반향이 크기 때문에, 권력자 쪽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광해군이 권필이 지은 시 한 편에 그토록 분노한 이유는, 광해군이 권필의 시가 많은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권필이 고문으로 엉망이 된 몸으로 폭음을 하고 사망한 것도,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시 하나 지었다고 중벌을 받아야 하는 시대에 대한 절망 때문에 한 자살 비슷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권필(權韠)의 무제시(無題詩)(http://blog.daum.net/jha7791/1579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