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고려가요(3) - 만전춘(滿殿春) : 남녀상열지사의 최고봉

Lesley 2017. 8. 27. 00:01


  전에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남녀관계를 소재로 하는 고려가요 두 편('쌍화점' 과 '서경별곡')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에 소개할 고려가요도 만만치 않는 수위를 자랑하는 '만전춘' 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만전춘이야말로 남녀상열지사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쌍화점이나 서경별곡도 수위가 상당히 높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만전춘은 요즘으로 치면 베드씬(!)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을 '실시간(?) + 노골적' 으로 읊고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이 정도의 노래를 가수가 TV에 나와 부른다면 점잖은 사람들이 혀를 차거나 분개할 것이다.. 




 만전춘(滿殿春)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뎜
어름 우희 댓님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
정둔 오ᄂᆞᆳ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님과 내가 얼어 죽을 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 망정
정 나눈 오늘 밤 더디게 새소서, 더디게 새소서.



耿耿孤枕上에 어느 ᄌᆞ미 오리오
西窓을 여러ᄒᆞ니
桃花ᅵ 發ᄒᆞ두다
도화ᄂᆞᆫ 시름업서 笑春風ᄒᆞᄂᆞ다 笑春風ᄒᆞᄂᆞ다


뒤척뒤척거리는 외로운 침상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열어젖히니
복숭아꽃 피어나도다
복숭아꽃은 근심이 없이 봄바람에 웃는구나, 봄바람에 웃는구나.



넉시라도 님을 ᄒᆞᆫᄃᆡᆧ
녀닛 景 너기더니
넉시라도 님을 ᄒᆞᆫᄃᆡᆧ
녀닛 景 너기더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 그리더니
우기시던 이 누구였습니까, 누구였습니까



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
여흘란 어듸 두고
소해 자라 올다
소곳 얼면
여흘도 됴ᄒᆞ니 여흘도 됴ᄒᆞ니


오리야 오리야
어린(연약한) 비오리야
여울일랑 어디 두고
못에 자러 오느냐
못이 얼면 여울도 좋거니, 여울도 좋거니



南山애 자리 보아 玉山을 벼여 누여
錦繡山 니블 안해 麝香 각시를 안나 누어
南山애 자리 보아 玉山을 벼여 누여
錦繡山 니블 안해 麝香 각시를 안나 누어
藥든 가ᄉᆞᆷ을 맛초ᄋᆞᆸ사이다 맛초ᄋᆞᆸ사이다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안고 누워
약 든 가슴을 맞추옵시다 맞추옵시다



오소 니하 遠代平生애 여힐ᄉᆞᆯ 모ᄅᆞᄋᆞᆸ새


아! 님이여 평생토록 헤어질 줄 모르고 지냅시다




  도입부인 1연부터 심상치 않다.

  만전춘의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별의 애환을 읊은 옛날 시가를 보면 보통은 남자가 떠나는 쪽이고 여자는 버림받는 쪽이다.  그러니 여기에서도 화자는 여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쨌거나 화자는 1연에서 정인과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는 중이다. (즉, someting이 ing 상태입니다... ^^;;)  두 사람 사이가 어찌나 뜨거운지 가뜩이나 차가운 얼음 위에 더욱 차갑게 대나무 자리를 깔아놓고 함께 누워서, 춥다고 쩔쩔매기는커녕 그저 그 밤이 천천히 새기만을 바라고 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불타는 밤이 오래오래 가기를...!)


  2연에서는 정인이 어디론가 떠나 화자가 외로워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화자는 정인과 떨어진 외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뒤척이다가 창문을 여는데, 밖에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난 게 눈에 들어온다.  자신은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고 있는데, 복숭아꽃은 눈치없게도(!) 봄바람에 웃는 것처럼 만발해 있으니 더욱 속이 상한다.


  3연을 보면 아무래도 화자의 정인이 잠시 떠난 게 아니라 영원히 떠나간 듯하다.

  예전에 정인은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넋이나마 함께 하자고 박박 우겼다고(!) 한다.  한창 좋을 때야 무슨 말을 못 하겠나...  그대가 원한다면 하늘의 별도 따주고 달도 따주겠소 어쩌구 저쩌구 하며 온갖 미사여구 늘어놓았겠지...  하지만 달콤한 말을 하던 정인은 이제 떠나버렸고 화자만 홀로 남아 '우기시던 이 누구였습니까' 라며 원망을 토로한다.


  4연을 보면 이들이 헤어지게 된 이유가 정인에게 새로운 사랑이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

  화자는 떠나간 정인을 연못(화자네 집에 있는 연못인 듯...)에 날아와서 자는 오리에 빗대어 원망한다.  이 부분에서 '여울일랑 어디 두고  못에 자러 오느냐' 며 대놓고 '자다' 는 표현을 쓰는데, 원래도 수위 높은 고려가요 중에서도 꽤나 노골적이다.  화자는 오리 보고 원래 잠자리로 삼았던 여울은 어떻게 하고 연못에 와서 자느냐고 타박한다.  즉, 전에는 화자 곁에서 잠을 자던 정인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곁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인에 대한 미련은 끊어내지 못 한다.  '못이 얼면 여울도 좋거니' 라고 하면서, 정인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옛날 사랑인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유혹(!)한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가버린 정인이니, 어지간한 이 같으면 미련은 남더라도 자존심 때문에라도 돌아오란 소리를 못 할 것 같은데...  그런데도 화자는 돌아오기만 하면 다 용서한다,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식으로 애를 태우고 있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5연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하다.

  앞의 내용을 보면 정인이 화자를 떠난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어째서 다시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 같은 내용이 나오는 걸까?  아마도 실제상황이 아닌 화자의 '희망사항' 을 노래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향 각시' 라는 게 옛날 사람들이 이성을 유혹하는 데 유용(?)하게 쓴, 요즘으로 치면 향수격인 사향을 몸에 지닌 여자를 말하는 것 같다.  즉, 이미 떠난 정인이 다시 돌아와 사향 주머니를 찬 자신(즉, 정인에게 최대한 잘 보이려고 곱게 단장한 자신)을 안고 예전처럼 한 이불 속에 눕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줄에 나오는 '약 든 가슴을 맞추옵시다' 라는 구절도 참 노골적이다.  사향 주머니가 들어있거나 사향 냄새가 밴 가슴을 서로 맞추려면 두 사람이 옷을 벗어야 한다...! (고려판 19금 스토리...!)


  각 연이 끝난 후 '아! 님이여 평생토록 헤어질 줄 모르고 지냅시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

  각 연처럼 여러 줄로 되어 있지 않고 달랑 한 줄만 나오는데, 아마 여운을 남기려고 그런 모양이다.  5연과 이어서 읽어보면 이미 정인이 돌아와 다시 자신들의 사랑이 불타올라 평생 동안 헤어지지 말자는 소망을 노래한 것 같다.



  결론 - 고려가요는 역시 화끈하다...!



고려가요(1) - 쌍화점(雙花店)(http://blog.daum.net/jha7791/15790787)
고려가요(2) - 서경별곡(西京別曲) : 고려시대 집착 강한 여인의 노래(http://blog.daum.net/jha7791/15791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