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이규보의 시는 '쥐를 풀어주다' 라는 뜻의 放鼠(방서)라는 시다.
이 시의 주제는,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대자연 앞에서는 한 마리 쥐와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자연을 예찬하는 내용이며 인간의 교만함을 경계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시가 좀 다르게 읽힌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인 시로 보인다. 그래서 이 시를 먼저 읽고서 이 시에 대한 해석을 읽었을 때 '응? 이게 뭐지?' 하는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정도다.
일단, 시 내용부터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放鼠 (방서)
쥐를 풀어주다.
- 李奎報(이규보) -
人盜天生物 (인도천생물)
사람은 하늘이 낸 물건을 훔치고
爾盜人所盜 (이도인소도)
너(쥐)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치는구나.
均爲口腹謀 (균위구복모)
(사람도 쥐도) 고르게 먹고 살겠다고 저질렀으니
如何於汝討 (여하어여토)
어찌 너만 꾸짖겠느냐.
나에게는 이 시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라는 속담의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거액의 뇌물 받아챙기는 높은 사람은 감히 건드리지 못 하고 푼돈이나 훔치는 사람은 처벌하는 현실, 즉 작은 도둑에게는 '놈' 자 붙이고 큰 도둑에게는 '님' 자 붙이는 상황을 비꼬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이 시의 화자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쥐로 상징되는 좀도둑을 범죄자라고 무조건 비난하지 않고, 쥐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풀어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권력자도 서민도 모두 사이좋게(?) 범죄 저지르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뜻은 아니지만... -.-;;)
어쨌거나 이 시에서 앞의 두 구절은 '사람(권력자)은 하늘이 낸 물건을 훔치고(하늘처럼 대단한 재벌의 돈을 협박해서 뇌물로 받아내고) 너(좀도둑으로 대표되는 생계형 범죄자)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치는구나.' 로 읽힌다. 그리고 뒤의 두 구절은 '권력 가진 나나 권력 없는 너나 모두 고르게 먹고 살겠다고(부의 재분배? -.-;;) 훔쳤으니 어떻게 너만 꾸짖겠느냐.' 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하도 엉망이다 보니 이제는 시도 순수하게 보이지가 않는다.
나도 한 때는 순수했던 영혼이었는데(과연? ^^;;) 작년부터 국가급 수준의 막장드라마를 계속 봤더니 심사가 단단히 꼬였나 보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읊은 시를 액면 그대로 읽으며 감동할 수 있는, 사필귀정의 시대가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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