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도 푹푹 찐다.
이상고온이 시작되었던 6월에 이미 '이번 여름도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무더위가 닥치니 진작 예상했던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무더위가 괴롭지 않게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ㅠ.ㅠ
이규보의 시 중에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시가 한 편 있어서 소개하려 한다.
'견디기 힘든 더위' 라는 뜻의 고열(苦熱)이다. '고통스러울 고(苦)' 자가 들어간 열기(熱)라니, 요즘 기승을 부리는 찜통 더위에 딱 맞는 표현이다.
이규보가 살았던 고려시대의 여름은 지금보다는 덜 더웠을 것 같지만 대신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만큼이나 여름이 되면 더위에 진저리치며 고생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21세기인 지금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더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이규보의 시를 소개해 보겠다.
苦熱 (고열)
견디기 힘든 더위
李奎報 (이규보)
酷熱甚於火 (혹열심어화)
혹독한 더위는 불보다 심해서
千爐扇炭紅 (천로선탄홍)
천개의 화로로 석탄을 붉게 달구는 것 같네.
馮夷應暍死 (풍이응갈사)
풍이도 더위 먹어 죽을 지경이니
※ 馮夷 (풍이) : 물의 신, 강의 신.
燒及水精宮 (소급수정궁)
(더위가) 수정궁에까지 미치는구나.
※ 水精宮 (수정궁) : 물 속에 있다는 궁전.
臥欲起奮飛 (와욕기분비)
누우면 벌떡 일어나고 싶고
起思還裸臥 (기사환나와)
일어나면 다시 벌거벗고 눕고 싶다네.
誰憐甑底蒸 (수련증저증)
누가 시루 밑에서 찌는 나를 불쌍히 여겨
移向水中坐 (이향수중좌)
물 속에 앉을 수 있도록 (나를) 옮겨주려나.
이 시는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편에서는 끔찍한 더위를 묘사하고 있다.
더위가 어찌나 혹독한 지 마치 천 개나 되는 화로에 담긴 석탄들이 붉게 이글거리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물의 신이라 물 속에서 사는 풍이조차 더위 먹어 죽을 판국이고, 역시 물 속에 있는 수정궁에까지 더위가 미칠 지경이다.
물론 한시에 종종 나오는 과장된 표현이다. 하지만 이 시를 서늘한 계절이 아닌 푹푹 찌는 계절에 읽고 있기 때문인지, 별로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너무 실감이 난다.
두 번째 편에는 첫 번째 편에서 묘사한 찜통 더위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 된 이규보 자신의 상황이 나온다.
이규보는 너무 더워서 몸을 바로 하고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어 방바닥에 되는 대로 누웠을 것이다. 하지만 눕고나면 곧 벌떡 일어나고 싶어진다. 아마도 누운 자리가 체온으로 뜨끈해져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일어나 앉으면 다시 옷을 벗어부치고 눕고 싶어진다. (열대야가 기승떠는 요즘, 밤마다 이규보 같이 일어났다 누웠다 하며 잠 설치는 사람들이 참 많을 듯...)
마치 시루 속 떡이나 만두처럼 푹푹 익혀지는 기분이니, 누군가가 그런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서 물 속에 앉을 수 있게 옮겨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자기 발로 스스로 시원한 물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남이 자신을 물 속으로 옮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시쳇말로 귀차니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귀차니스트, 그 이름은 바로 이... 규... 보...!) 하지만 이규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람이 더위에 지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귀찮은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번쩍 들어다가 시원한 물 속으로 옮겨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 뱀발 - 더위, 너 빨리 우리나라에서 떠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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