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의 고문(古文)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2

Lesley 2016. 11. 27. 00:01


  몇 년 전에 블로그에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의 무제(無題 : 제목 없음)시를 한 편 소개한 적이 있다.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1(http://blog.daum.net/jha7791/15790913)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소개할 시 역시 무제시다.

  이상은의 시에는 유독 무제인 시가 많은 것 같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유명한 시는 그 시를 지은 이가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더라도, 후세의 누군가가 적당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째서 이상은의 시에만 무제인 시가 많은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시의 제목 자체가 '무제' 다. -.-;;

  당나라 이래로 시인이 자신의 시에 따로 제목을 붙이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제라는 제목을 붙이는 게 유행했다고 한다.  제목이 '제목 없음' 이라니 뭔가 심오하다.


  어쨌거나, 오늘 소개할 이 무제시에는 이상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다.
  이상은이 살던 당나라 시대에는 도교가 유행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상은도 15, 16세 때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옥양산이란 도교로 유명한 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송화양(宋華陽)이란 아름답고 다정한 여도사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송화양은 원래 어떤 공주를 모시던 궁녀였다.  그런데 그 공주가 도사가 되어(아마 공주가 남편을 잃었거나 무슨 죄를 지었거나 했던 듯...) 옥양산의 도관에서 살게 되면서, 송화양도 상전을 따라와 함께 도사가 된 것이다.  도사 역시 승려처럼 이성과 결혼하거나 연애하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송화양은 그만 금기를 깨고 남몰래 이상은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송화양이 임신을 하면서 이상은은 강제로 하산하게 되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아마도 임신 사실이 발각되면서 두 사람의 연애가 들킨 듯함.)

  송화양과의 비극적인 사랑은 이상은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상은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송화양을 잊지 못 하고, 송화양과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시 몇 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시도 그런 시 중 하나다.





無題(무제)
 

                              - 李商隱(이상은) –



相見時難別亦難 (상견시난별역난)

서로 만나기 어렵더니 헤어지기 또한 어려워

 
東風無力百花殘 (동풍무력백화잔)

동풍은 힘 없건만 온갖 꽃 시들게 하네.
 

春蠶到死絲方盡 (춘잠도사사방진)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다 뽑아내고 


蠟炬成灰淚始干 (납거성회누시간)

초는 닳고서야 눈물을 처음으로 멈추는구나. 
 

曉鏡但愁雲鬢改 (효경단수운빈개)

(여자는) 새벽에 거울 들여다보며 풍성한 머리 변한 것을 걱정하고
 

夜吟應覺月光寒 (야음응각월광한)

(남자는) 밤에 읊조리다가 달빛이 차가워짐을 깨닫는다네.

 
蓬萊此去無多路 (봉래차거무다노)

봉래산을 예서 가려해도 길이 없으니 
 

靑鳥殷勤爲探看 (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살짝 날아가서 엿보아다오.

 



  이 시는 첫부분만 봐도,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남들의 눈을 피해 연애하는 사이였으니, 연애하던 때에도 마음껏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 만나는 것도 어렵더니 헤어지는 것도 힘들다며, 어렵게 키웠던 사랑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동풍에 온갖 꽃이 다 시든다는 구절로, 자신들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의지로 끝나게 되었음을 슬퍼한다. 


  그 다음에는 봄 누에와 초로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그냥 누에가 아닌 '봄철의 누에' (즉, 청춘남녀)가 죽어서야 비로소 실을 다 뽑아냈다고 하여, 두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절절히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실을 나타내는 絲(사)라는 한자는 '생각하다, 사모하다' 라는 思(사)와 발음이 같아서, 중의적인 표현이 된다. (한국식 한자음으로도 중국식 한자음으로도 다 같음.)

  초가 다 닳은 후에야 겨우 촛농이 멈춘다는 구절도, 봄 누에가 죽을 때까지 실을 뽑아낸다는 구절과 같은 뜻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가 닳을 때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린 촛농은, 사랑하던 시절에도 마음껏 만나지 못 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흘렸던 눈물을 상징한다.


  이별 후에도 세월은 무심히 흐르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 한다.

  여자는 차가운 새벽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풍성한 머리에 어느덧 흰머리가 생겼음을 보고, 정인을 만나지 못 한 채 청춘이 저물어감을 슬퍼한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를 그리워하느라 밤에도 잠 못 이루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홀로 읊조리다가, 차가워진 달빛을 보며 세월이 속절없이 지나감을 안타까워 한다.


  남자는 여자의 소식을 알지 못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 한다.

  이상은의 정인 송화양이 도사 신분이라 그런지, 시 속에서 여자가 살고 있는 곳은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자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뻔히 알고 있지만, 정작 그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도사를 임신까지 시킨 게 발각되어 쫓겨난 마당에 다시 그 곳을 찾아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설사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간다고 해도, 그 곳의 도사들이 여자를 만나게 해줄 리도 없다.

  그러니 직접 가지는 못 하고, 서왕모의 편지 심부름을 한다는 파랑새에게 부탁한다.  자기 대신 날아가서 여자의 소식을 알아봐달라고...




  ※ 뱀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임신한 송화양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 사이트를 뒤져봤는데, 송화양의 임신으로 이상은이 하산하게 되었다는 것까지만 나올 뿐이다.  그 후에 송화양이 어찌 되었는지는 안 나온다.

  송화양은 원래도 궁녀였고 이상은을 만날 때에는 여도사 신분이었으니, 남자를 만나 임신까지 한 일이 적당히 넘어갔을 리 없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나 옛날에는 남녀 사이에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은이야 옥양산에서 쫓겨나는 정도로 끝났지만, 송화양은 혹시 그 일로 목숨을 잃거나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비참한 처지(기녀 또는 걸인으로 전락했다든지, 노비 신세가 되었다든지...)로 떨어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 - 1(http://blog.daum.net/jha7791/1579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