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시와 그 시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낭만적이다.
이야기 제목은 紅葉傳情(홍엽전정)인데 '단풍잎이 사랑을 전하다' 라는 뜻이다. 지난 달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그 전시회의 마지막 전시물이 한시가 적힌 접시였는데, 그 한시가 바로 홍엽전정에 나오는 시다.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http://blog.daum.net/jha7791/15791319) 전시회에서는 이 시에 관하여 중국의 궁녀가 외로운 궁생활을 읊은 시라고만 설명해놓았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중국 사이트를 검색해서 정리해봤다.
홍엽전정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전기(괴담, 설화 종류의 이야기를 모은 책)인 '유홍기(流紅記)' 에 실린 사랑 이야기다.
당나라 시대에 우우(于祐)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우우가 궁궐 후원 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궁궐 후원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에 단풍잎 하나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단풍잎을 건져서 살펴보니 뜻밖에도 시가 한 수 씌여 있었다.
流水何太急 (유수하태급)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 급한가
深宮盡日閑 (심궁진일한)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할 뿐인데.
慇懃謝紅葉 (은근사홍엽)
은근히 단풍잎에 (내 마음을 실어달라고) 부탁하니
好去到人間(호거도인간)
인간 세상으로 쉬이 흘러가기를.
시의 내용은 궁생활의 외로움을 읊은 것이다.
그저 적막하고 무료하기만 한 궁생활에 대해 토로하면서 자신은 궁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단풍잎에게 자기 마음이나마 궁 밖으로 실어나가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런데 궁 밖을 '인간 세상' 이라고 표현한다. 뒤집어 말하면, 궁 안의 삶은 도저히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적막하고 슬프다는 뜻이다.
우우도 시를 읽고서 이 시를 쓴 사람이 틀림없이 궁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 궁녀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그저 외로움이 짙게 배어나온 시를 지은 궁녀를 생각하다가 상사병(!)까지 났다. 그래서 자신도 단풍잎을 따서 그 위에 먼저번 시에 대한 답시 형식으로 두 구절을 적었다. 그 다음에 그 단풍잎을 궁궐 후원으로 들어가는 시냇물의 상류에 띄어 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會聞葉上題紅怨 (회문엽상제홍원)
일찍이 듣기를, 나뭇잎에 불타는 정념을 짓는다 했는데
葉上題詩寄何誰 (엽상제시기하수)
나뭇잎에 시를 지어 누구에게 부칠까.
그런데 새 황제가 즉위하자 궁녀 숫자를 줄이겠다며 일부 궁녀들을 출궁시켰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당나라판 구조조정? ^^;;)
그 때 궁녀 한씨도 출궁했다가 어찌어찌하여 우우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씨 부인이 남편의 물건이 담긴 상자 속에서 시가 적힌 단풍잎을 발견했다. 그걸 보고 깜짝 놀라서 어찌된 일인지 남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그 단풍잎에 시를 써서 시냇물에 흘려보낸 사람이 바로 한씨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나중에 그 시냇물에서 다른 사람이 쓴 시가 적힌 단풍잎을 발견했다고 했다. 물론 그 단풍잎은 우우가 답시를 적어 궁궐 안으로 들여보낸 단풍잎이었다.
두 사람은 단풍잎이 자신들을 이어주었다고 신기하게 여겼고, 또 누군지도 모르면서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방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에 감격했다. 그리고 평생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이 신기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단풍잎이 사랑을 전하다' 는 뜻의 紅葉傳情(홍엽전정) 말고도 여러 버전(?)의 제목이 생겼다. 먼저, 단풍잎이 우우와 한씨를 이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한 셈이라 '홍엽은 좋은 중매쟁이' 란 뜻의 紅葉良媒(홍엽양매)라고도 한다. 그리고, '단풍잎에 시를 짓다' 라는 뜻으로 홍엽제시(紅葉題詩)라고도 한다.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번 가을에 우우나 한씨 부인처럼 해보시라...
다음 달 중순이 되면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이 들 것이다. 눈에 띄는 단풍잎 중에서 제일 예쁜 것으로 골라 그 위에 시를 적어 시냇물에 떠내려보며, 정말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나뭇잎 위에 쓴 글씨가 지워지지 않도록, 유성펜으로 쓰거나 아니면 아예 나뭇잎에 비닐코팅을 한 후 시냇물에 떠내려보내야 한다. 한씨 부인과 우우는 틀림없이 먹물로 나뭇잎에 시를 써서 시냇물에 떠내려보냈을텐데, 글씨가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상대방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 사연이라 가능한 것이고 현실은 다르다. (원래 현실과 꿈은 다릅니다요~~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http://blog.daum.net/jha7791/1579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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