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헌혈증서로 수혈용 피를 받는 게 아닙니다...!

Lesley 2022. 9. 1. 00:01

  얼마 전 한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헌혈증서(일상에서는 보통 '헌혈증' 이라고 부름)를 몇 장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같은 직장 다니는 사람의 아들이 큰 수술을 받게 되어서 직장 동료들이 도와주려고 헌혈증서를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1년에 서너 번씩 헌혈한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다 보니 가끔 이런 요청을 받는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같은 교회 사람, 이웃 등 누군가가 수술하게 되어 수혈을 받아야 한다며, 내 헌혈증서를 나눠줄 수 있느냐고 묻곤 한다.  이런 부탁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아이고~~!' 를 3번씩 외치게 된다.

 

 

 

  이런 요청에는 두 가지 오해가 깔려 있다.

  첫째, 헌혈증서를 가져가면 수혈용 피를 받을 수 있다.

  둘째, 헌혈증서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우선적으로 수혈용 피를 받을 수 있다.

  BUT...!!  둘 다 아니다...!!

 

  일단, 헌혈증서는 수혈용 피를 받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수혈 비용 중 본인 부담금을 감면받는 데 쓴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대상의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전체 수혈 비용 중 20% 가량만 본인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면받는 금액도 적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수혈받는데 든 비용이 10만원이라면 실제로 홍길동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만원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헌혈증서를 내면 그 2만원을 면제받는다.

  그러니 혈액팩 한두 개 분량을 수혈받는 보통의 환자들은 헌혈증서를 낸다고 해서 병원비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백혈병이나 혈우병처럼 장기간에 걸쳐 혈액제재를 투여받는 경우는 다르다.  이런 환자는 오랫동안 여러 번 수혈받아야 해서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에, 헌혈증서를 많이 모아 제출하면 병원비 정산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헌혈증서가 있다고 해서 다른 환자보다 먼저 수혈 받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수혈용 피가 부족하다면 의료진의 판단으로 더 위급한 환자부터 수혈받게 된다.  다른 환자들보다 상태가 양호한 환자가 헌혈증서 수십 장을 들이민다고 해서 먼저 수혈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이 세상이 무조건 원리원칙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위급한 환자 젖혀두고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부터 수혈받는 막장(!)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헌혈증서와는 아무 상관없는 상황이니 이 포스트에서 더 언급할 필요 없고...  어찌되었거나 헌혈증서는 결코 헌혈 우선권이 아니다.

 

 

  

  자, 다시 이 포스트 앞머리의 스토리로 돌아가서...

 

  친구에게 답장을 했다.

  같은 회사 사람의 아들이 곧 수술받는다면, 차라리 그 아들과 같은 혈액형인 사람들이 지정헌혈(자기 피를 특정인에게 수혈해달라고 정해놓고 하는 헌혈)에 나서야지, 헌혈증서를 왜 모으는 거냐고...  헌혈증서가 무슨 혈액 상품권(!)도 아닌데, 헌혈증서 준다고 혈액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혹시 그 아들이 백혈병 환자라 계속 수혈받아야 한다면 모를까, 당장 수술받을 사람에게는 헌혈증서 잔뜩 줘봤자 별 도움 안 된다고...

 

  친구가 다시 카톡을 보냈는데 행간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사실은 자기도 그 아들이 무슨 병인지, 수술을 받는다고는 하는데 당장 받는지 나중에 받는지 모른단다.  그냥 누가 헌혈증서 모아서 주자고 하기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답장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헌혈증서 모으기에 나선 사람의 의도가 좋다는 것은 알겠다.

  동료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하니 돕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로 총대 메고 나섰을 것이다.  전에 나에게 헌혈증서를 달라고 부탁했던 이들도 모두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착한 일이라는 것도 사정을 알아본 후에 해야 하는 법이다.  아마 그 착한 사람들은 병원 직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따로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하여 헌혈증서 모으기에 나섰을 것이다.  헌혈증서가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믿으면서...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헌혈증서를 모아 전달했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헌혈증서 모으느라 애쓴 사람들도 황당한 노릇이고 상대방도 괜히 미안하고 민망할 것이다.

 

  주위에 수술받는 사람이 있어서 돕고 싶다면 차라리 모금 운동을 하는 게 낫다.

  병원에 입원한 이상 병원비가 안 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모금 액수가 크냐 적냐와 상관없이 현금은 무조건 보탬이 된다. 

  어지간한 환자는 혈액팩 1~2개만 수혈받기 때문에, 환자 주위에 헌혈증서 갖고 있는 이에게 1~2장을 받아 병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헌혈증서 모으기 운동을 벌여 수십 장씩 모을 필요가 없다. (단, 위에 쓴 것처럼 백혈병 환자나 혈우병 환자에게는 헌혈증서를 많이 주면 도움이 됨...!)

 

 

 

  뱀발

 

  헌혈증서 관련하여 인터넷에 괴담이 돈다.

  대표적인 것이, '헌혈증서 1장으로 달랑 1,000원을 감면해준다' 고 적십자 욕을 하며 헌혈 따위 할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댓글이다.  적십자가 욕먹을 짓을 많이 한 것과는 별도로, 헌혈증서 1장 당 수혈 비용을 1,000원만 감면해 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수혈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1만원 정도에서 많게는 몇 만원을 감면받을 수 있다.  웬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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