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팟캐스트(6) -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Lesley 2022. 7. 2. 13:00

 

  몇 주 전부터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란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팟캐스트 전용 프로그램은 아니고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데, 내가 팟캐스트로 듣고 있는 것 뿐이다.  연식(?)이 좀 된 프로그램이라 이제와서 처음부터 듣는 것은 곤란하고 올해 부분을 쭉 듣고서 다른 해 부분은 골라가며 듣고 있다. (사실 올해도 이미 절반 넘게 지나가버려서 올해 것을 처음부터 듣는 것도 빠듯했다는...)

 

  이 프로그램은 경제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

  일단은 그날 그날의 경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제목에 이미 경제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까.

  하지만 부수적으로 갖가지 이야깃기리를 전해주기도 한다.  가령 세계사 속 유명한 사건 밑에 깔려있는 경제적 상황 같은 것 말이다.  듣다 보면 인류사에 굵직하게 등장하는 사건들은 전쟁이고 혁명이고 결국은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란 것이 등장하기 전부터 우리 인간은 돈이라면 환장했다...! ^^;;  또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석유값과 밀값에 얽힌 복잡다난한 국제정세가 몇 회에 걸쳐 나온다. (단, 시리즈로 쭉 나오는 것은 아니고 산발적(?)으로 가끔씩 나옴.)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안타깝게도 국제사회는 원칙과 인권과 민주주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자국(특히 강대국)의 이익 위주로 굴러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짤막하게 언급하자면...

 

 

  1. 에어컨은 원래 인쇄공장용으로 발명되었고 영화 산업 발전에도 공헌했다.

 

  이제는 에어컨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에어컨은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뜻밖에도 에어컨을 처음 발명할 때의 목적은 사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인쇄공장의 습기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철에 인쇄공장의 종이가 습기를 머금어 제대로 인쇄가 되지 않자 습기를 제거할 기계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고, 그래서 나온 게 에어컨이었다. 

  그런데 에어컨 발명자가 유지보수를 위해 인쇄공장을 드나들다가, 공장 직원들이 에어컨 앞에 모여 점심을 먹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물론 에어컨 근처가 시원하기 때문에 더위를 식히며 식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모인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서 에어컨은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는 용도로 방향을 틀어 발전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에어컨이 영화 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여름철이 영화관의 가장 큰 대목이라 그 해 가장 흥행성 높은 영화(보통은 블록버스터)를 여름에 개봉한다.  하지만 에어컨이 막 발명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여름철은 영화관의 비수기였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에 문을 꼭꼭 닫은 영화관 안에 앉아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우나 체험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에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오히려 더운 날씨에 시원함을 맛보며 재미있는 영화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에어컨 덕분에 관객이 대폭 늘어나면서, 영화관의 발전은 물론이고 영화 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2. 대만의 반도체

 

  대만은 반도체 산업이 매우 발달하여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대만의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그 의미가 좀 다르다.  경제 뿐 아니라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상품이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반도체가 안보와 관련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함의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가 여러 나라에 반도체를 수출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대만은 미국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보자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넣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미국 경제가 안 좋아져서 미국 기업의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경우,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막막한 입장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대만이 미국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안보 때문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최첨단 산업에서 선두를 달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 미국 업체들이 대만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으니, 만일 대만 반도체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는 한꺼번에 멈추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공급선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도체 회사마다 규격과 사양이 제각각이라, 한국 반도체를 공급받으려면 미국 업체들이 설비를 전부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대만은 항상 중국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지난 몇 년 그 위협의 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일대일로 싸울 경우 대만이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대만 입장에서는 중국을 제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라는 게 냉정하기 때문에 막상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이 대만을 도와준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대만은 미국 경제를 대만 반도체에 묶어두기로 한 것이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은 자기네 경제를 위해서라도 개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 머리 좋네...!)  

 

 

  3. 직물업체가 부동산업체로 변신하게 된 이유

 

  가난했던 1950~1960년대 우리나라 산업은 경공업 위주였다.

  당시 경공업의 대표 주자가 직물업체였다.  일제 강점기 때 설립된 경방(경성방직)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대그룹으로 성장한 삼성이나 SK도 설립 초기에는 직물 생산이 주력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우리나라 산업이 중공업 및 최첨단산업 중심으로 바뀌고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직물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대규모 직물업체들이 손쉽게 부동산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고 많은 것 중 어째서 부동산이냐 하면...  직물업체는 직원들이 쭉 늘어서서 각각의 공정을 담당해야 하는 특성상 공장을 길게 지어야 했다.  즉, 직물업체 공장을 지으려면 다른 분야 공장보다 넓은 땅이 필요했다.  지금보다 부동산 가격이 저렴했던 시절에 직물업체들은 본의 아니게 대규모 토지를 선점하게 된 셈이다.

  훗날 직물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직물공장이 있던 땅은 노른자위 땅이 되었다.  경방 같은 경우는 공장터에 백화점을 세워 운영했고, 그것은 지금의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이어지게 되었다.

 

 

  4. 이중과세 금지 정책

 

  '이중과세 금지' 라고 하면, 세금을 이중으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이중과세는 세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구정과 신정을 같이 쇠지 말고 신식(!) 설날인 신정만 쇠라는 뜻이다.  지난 번에 올린 설날 변천사 관련 포스트와 관계 있는 이야기다. ☞ 설날 변천사 - 설날, 구정, 민속의 날, 다시 설날 https://jha7791.tistory.com/15791730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로도 우리 정부는 신정을 뿌리내리는데 힘썼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서양처럼 신정을 쇠는 게 국가 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구정 쇠는 것을 외국인들 보기에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0년대에는 온갖 웃지 못 할 사연이 나왔다.

  구정 쇠는 것을 막기 위해, 공무원들을 종로와 청계천 일대로 보내 구정 무렵 문닫는(즉 구정 쇠려고 휴업하려는) 상점을 적발해서 강제로 영업하게 했다.  사람들이 명절 쇠는데 필요한 떡과 고기를 구입하지 못 하도록, 구정 무렵에는 방앗간과 정육점의 영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심지어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구정 무렵 설빔을 장만해 입는 것을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웃프게도(!) 정부 시책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공직자들부터 눈치껏 구정을 쇴다.

  구정 무렵만 되면 일선 공무원들이 갑자기 본가에 일이 생겼다며 휴가를 냈다. (평소에는 없던 우환이 구정 때만 생긴다는... ^^;;)  이런저런 일로 싸우던 국회의원들도 구정 시기만 되면 사이좋게(!) 잠시 쉬자며 사라지곤 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공직자들도 '이제는 신정만이 진짜 설이다' 는 정부 주장에 전혀 공감을 못 했으니...

  결국 훗날 구정이 설날이라는 지위를 되찾게 되고, 신정은 구정보다 격이 떨어지는 '그냥 쉬는 날' 이 되었다.  

 

 

  4.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의 풍경

 

  88올림픽을 치른 이듬해인 1989년이 되어서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바꿔 말하면 1988년까지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 했다는 뜻이 된다.  그 시절에는 여권을 발급받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고 해외여행 한 번 하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만만찮았다.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다음에야 요즘처럼 그냥 놀기 위해 해외를 나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출장이나 유학처럼 '반드시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이유' 가 있어야 했다.

 

  해외여행의 절차(?)는 대충 다음과 같다.

  먼저, 해외여행의 목적에 따라 관련 정부 부처에서 심사를 받았다.  가령 외국 바이어와 수출 계약을 맺으러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면, 지금의 산업통상부에 해당하는 부처에 관련 서류를 내어 심사에 통과해야 했다.  이 단계에서 퇴짜 맞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신청서에 '왜 꼭 이 직원을 해외로 보내야만 하는가' 에 대해서 절절하게(!) 설명하며 온갖 서류를 동원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법무부의 심사를 받았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이 과정에서, 해외로 나갈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사람의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이력을 조사했다. (1980년대 신문에 났던 회사 공채 광고에 '해외여행에 결격사유 없는 자' 라는 조건이 괜히 나왔던 게 아니라는...)

  이 팟캐스트에는 안 나오던데, 해외 나가기 전에 사상교육도 받았다고 한다.  외국 나가서 나라 망신 시키지 않게 옷 깔끔히 입고 다니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아직 건재했던 공산주의 국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인사 하면 모른 척 하고, 기타 등등.

 

  그렇게 힘들게 해외여행 다녀왔다고 끝이 아니다.

  돌아와서 정부에 보고서 비슷한 것을 내야 하는데, 당시 해외여행객들에게는 이것이 꽤 골치 아팠다고 한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이다 보니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해외 상황을 파악하려 했던 것 같은데, 놀러간 것도 아니고 자기 업무 때문에 나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해외에서 보고 경험한 제도나 문물 중에 우리나라가 본받을 만한 것을 써서 내라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그나마 이쪽은 건전하기라도 하다는...)  그 나라에 우리나라 물건 중 무엇을 수출하면 좋을지도 적게 했다. (수출입과 전혀 상관없는 일로 해외 다녀온 사람 입장에서는 참 뜬금없는...)  아예 해외 교민들 동향도 보고하게 했다. (일반 국민을 스파이로 활용?)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의 해외여행에 대해 단막극이라도 하나 만들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응답하라 19XX' 류의 드라마처럼 히트치지 않으려나... 

  

  

팟캐스트(1) -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  http://blog.daum.net/jha7791/15791596 
팟캐스트(2) -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 중 '도시정치학(with 임동근)'  http://blog.daum.net/jha7791/15791600   
팟캐스트(3) - 뇌부자들(정신과 의사들의 진짜 정신과 이야기)  http://blog.daum.net/jha7791/15791634   
팟캐스트(4) - tbs 색다른 시선 中 '임동근의 숫자너머세상'  http://blog.daum.net/jha7791/15791665  
팟캐스트(5) - 미래지식을 담다, 미담  http://blog.daum.net/jha7791/15791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