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선거 공보물 알바

Lesley 2022. 6. 5. 00:01

  얼마 전 있었던 지방선거 때 선거 공보물 알바를 한 후기를 올려보려 한다.

  대학 때 참관인 알바를 하고 두 번째로 한 선거 관련 알바다. ☞ 첫 투표 첫 참관인 / 블로그 알바 문자 https://blog.daum.net/jha7791/15791667

 

  대학 때는 같은 과 선배 소개로 했는데 이번에는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서 해보겠느냐고 했다.

  선거 알바라는 게 원래 알음알음 모집하는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나는 왜 이런 게 궁금할까...)  이런 종류의 알바는 관공서에서 자기네 홈페이지나 알바 관련 사이트에 공고를 내는 일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선거라는 일의 민감성과, 오기로 했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안 나타나는 일을 막기 위해, 직원의 지인들을 모아 하는 것 같다. (오기로 한 사람이 안 나타나거나 와서 뭔가 사고를 친다면, 그 사람을 소개한 직원이 깨지겠지... ^^;;) 

 

  사전투표가 있기 전 토요일 오전에 주민센터로 갔다.

  내가 심한 방향치라 헤매다가 지각할까봐 일찍 출발했더니 집합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도 벌써 사람이 많이 와서 대기하고 있어서 놀랐다.  

 

  널찍한 공간 두 곳에 각각 수십 명씩 들어앉아 작업을 했다.

  먼저 10명 넘게 한 조가 되어 기다란 탁자에 쭉 늘어앉는다.  맨 끝에 앉은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공보물 서너 장을 순서대로 쌓아 옆사람에게 넘겨주면, 그 옆사람이 그 위에 자기가 맡은 공보물 몇 장을 더 얹어 다시 옆사람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릴레이식으로 옆으로 넘어가면서 두껍게 쌓인 공보물을 마지막 사람이 봉투 안에 넣으면 끝이다.

  얼핏 생각하면 시간이 문제일 뿐 일 자체는 쉽고 순조로울 것 같다.  각 당의 후보들을 소개하는 공보물(홍보물)를 차곡차곡 쌓아 봉투 속에 넣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반복 작업이라도 여러 사람이 같이 하려면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    

  사람마다 작업 속도가 다르다 보니 가끔씩 작업이 막히곤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젊은이들은 손이 빠르고 어르신들은 손이 느리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공보물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데, 어르신들은 빠른 속도로 넘어오는 공보물을 소화하지 못 해서 공보물더미에 파묻혀 허덕이셨다.

  또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라면 후보 숫자가 적어서 공보물도 얼마 안 되겠지만,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였다.  도지사,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감 후보가 각 당별로 나오니 공보물이 많고, 거기에 공보물 크기까지 제각각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면서 공보물 중 빠지는 것도 생기고, 중간에 일손이 느린 사람에게 걸려 잔뜩 쌓이다가 섞여서 중복되는 것도 생긴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처음에는 우리와 같이 공보물 취합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중간에 빠지거나 이중으로 들어간 공보물 걸러내는 일을 따로 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2시가 되기 전에 일이 끝났다.

  원칙으로는 저녁 6시까지 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센터 상황에 따라 끝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6시 전에 끝났다고 해서 일당을 덜 주는 것도 아니고, 6시 넘겨서 끝났다고 일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사람들끼리 최대한 손발 잘 맞춰서 작업 속도 높여서 일찍 끝낼수록 좋다.  소개해 준 친구 말로는 다른 주민센터에서는 저녁 7시까지 일했다는데, 우리는 2시 전에 끝내서 다행이다.

  주민센터에서 빵과 음료수를 간식으로 준비했는데, 모두들 간식 먹을 시간에 작업을 더 해서 빨리 끝내자는데 동의했기 때문에 집에 갈 때 받았다. (주민센터 직원이 "여러분, 간식은 집에 가서 먹고 얼른 일 끝내는 게 좋죠?" 하자, 사람들이 우렁차게 "네~~~!!" 했다는... ^^)

  

  원래는 이 일을 끝낸 후에 근처의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그 말을 듣고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힘들어.  끝나면 피곤해서 못 갈 걸." 이라고 했다.  '에이, 종이 좀 쌓는 일 했다고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말이 맞았다.

  겨우 반나절짜리 일이지만 같은 동작을 수백 번 반복했더니 목과 어깨가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고, 작업장이 넓다고는 해도 수십 명이 들어앉아 있었던 탓에 산소부족(?)인지 머리도 멍해졌다.  게다가 주민센터 밖으로 나갔더니 그 날따라 햇볕은 어찌나 따갑던지 시내를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났다.  결국... 집으로 직행했다... ^^;;

 

 

  ※ 선거 공보물 알바 팁

 

  '라텍스 장갑' 을 여벌로 한두 켤레 가져가면 좋다.

 

  공보물이라는 게 빳빳한 종이라 손을 베기 쉬워서, 주민센터 측에서 라텍스 장갑을 나눠주기는 한다.

  하지만 한 켤레씩만 주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벗어놓았던 장갑을 다시 끼려면 곤란해진다.  장갑이 땀에 절어 있어 찝찝한 건 둘째치고, 장갑이 손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또 억지로 끼려고 하면 얇아서 쉽게 찢어진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에 장갑을 계속 끼고 있을 수도 없다.

  손에 땀이 차서 잠시라도 손에 공기가 통하도록 장갑을 벗고 싶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장갑의 열 손가락 부분이 공보물에서 묻어나온 여러 색깔 잉크 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연한 색깔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화장실에서 옷을 내리거나 올리다가 이염이 될 수 있고, 주민센터에서 허기 면하라고 나눠준 작은 초콜릿을 먹다가 잉크까지 같이 먹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