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참 잘했어요' 스티커 / 포켓몬 빵

Lesley 2022. 5. 28. 00:01

  '참 잘했어요' 스티커

 

  초등학교 1학년 때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모았더랬다.

  먼저 모든 학생이 커다란 포도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받았다.  숙제, 청소, 심부름 등 무언가를 잘 끝낼 때마다 담임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라고 인쇄된 스티커를 한 장씩 나눠줬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 가서 포도의 알갱이 안에 그 스티커를 붙였다.

  포도 알갱이 전체에 스티커를 붙이는데 성공한 아이는 몇 명 없었다.  오래 전 일이라 잘 생각나지 않지만, 포도 알갱이에 스티커를 전부 붙이면 상장이나 선물(아마 공책 같은 학용품이었겠지...)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괜찮은 '당근' 이었던 것 같다.

  코찔찔이 1학년 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선생님 의도대로 움직이거나 말을 잘 들을 리 없고, 체벌이 허용되는 시절이라지만 매번 아이들을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별 것 아닌 것에 목숨(!) 거는 나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얘들아, 말 잘 들으면 이거 하나씩 나눠 줄게.' 하고 회유책(!)을 쓴 것이다.

 

  그런데 조카 녀석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쓰고 있다.

  예전 같은 포도 그림은 아니지만 하여튼 종이에 일정 개수의 스티커를 채우면 선물(슬라임 등 어린이 장난감)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요즘도 이런 방법을 쓰네.' 라고 생각하며 신기해 하기만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변화가 있는 법...!  알고 보니 요즘은 스티커를 진화(!)된 방식으로 쓰고 있다.

 

  조카네 반에 말썽꾸러기가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두 번씩 반드시 선생님한테 혼난다는데, 혼나거나 말거나 매일 같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유치원 입장에서는 꽤나 골치아픈 일이다.  야단을 쳐봤자 아무 소용없는데, 괴롭힘 당한 아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 아이들의 학부모로부터 항의는 들어올 테고...

  어느 날 조카에게 "00는 아직도 매일 혼나?" 라고 물었더니, 이제는 말썽을 안 부려서 혼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격이라는 게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갑자기 개과천선(!) 했을 리 없으니, 놀라서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만...  전에는 그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선생님이 말로 야단을 쳤는데, 이제는 줬던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빼앗는다고 한다...!  그 반 최고의 말썽꾸러기도 스티커를 빼앗기는 것은 싫어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웃겨서 빵 터졌는데...

  한 번 줬던 걸 빼앗는 게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그 또래 아이들에게는 정말 효과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그깟 스티커가 뭐라고 한 장씩 받아다가 포도 알갱이를 채우면서 뿌듯해 했다.  그 소중한(!) 스티커를 빼앗기는 것은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남북통일 문제나 기후변화 문제 만큼이나 심각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하는 장난꾸러기라도 이미 받은 스티커를 지키기 위해 행동을 자제하는 수 밖에...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체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유치원 선생님들도 고심하며 그 방법을 생각해 냈을 테고 다행히도 그 방법이 잘 통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앞으로 어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

  

 

 

  포켓몬 빵

 

  언젠가부터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포켓몬 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정판 상품이나 사치품을 사려고 하는 '오픈 런('좀비 런'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 처럼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특이한 행동' 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픈 런보다는 오히려 예전의 '허니버터칩 대란(!)' 과 비슷한 모양새로 흘러가는 것 같다.

 

  차라리 오픈 런은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라도 있다.

  많은 이들이 오픈 런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고 나도 그런 느낌을 떨쳐낼 수 없지만...  오픈 런을 감행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리셀러 또는 리셀러에게 고용된 알바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인데, 그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허니버터칩 대란이나 요즘의 포켓몬 빵 열풍은 이해하기 힘들다.

  일단, 기존의 과자와 다른 맛이라고 소문난 신제품을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나, 어려서 즐겼던 만화영화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띠부띠부씰이라고 하던가...)를 얻기 위해 그 스티커가 들어간 빵을 사고 싶은 마음까지는 알겠다.  다만, 굳이 온 동네 편의점을 순례하거나 한밤중 또는 새벽에 편의점을 급습(!)하면서까지, 혹은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까지, 그것을 얻어야만 하는 걸까... 

  만일 '그 과자가 내 입맛에 딱이다' 라든지 '나는 포켓몬이 너무 좋다' 라든지 하여 덕질(!) 차원에서 나선 것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  남들 눈에는 어이없어 보이더라도 본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면 기를 쓰고 구하는 것도 말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허니버터칩도 그렇고 포켓몬 빵도 그렇고, 사람들이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덤벼드는 것 같다.

 

  우리 동네도 포켓몬 열풍을 피하지 못 했다.

  지역 카페에 가끔씩 '00가 아직 문도 안 열었는데 입구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줄을 섰네요.  낚시 의자 가져와서 앉아 있는 사람도 있어요.  오늘 무슨 일 있나요?' 같은 글이 올라온다.  줄서서 기다리는 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소문난 맛집 가는 것도 꺼리는 나로서는 신세계를 보는 기분이다.

  그런가 하면 가끔 들리는 편의점의 유리문에는 '포켓몬 빵 공급이 충분해질 때까지 포켓몬 빵 안 팝니다' 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계속 와서 없는 포켓몬 빵을 찾으니, 점주와 알바가 입장이 곤란해서 붙였나 보다.

 

  흐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건가...

  나도 한때는 세상을 지배(?)했던 X세대인데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서 이해 못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