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문해율 / 디지털 문맹

Lesley 2022. 8. 24. 00:01

 

  우리나라는 문맹률은 세계 최하 수준인데 실질 문맹률은 꽤 높다고 한다.

  세종대왕 덕분에 우리말을 표현하는데 안성맞춤인 한글이 생겼고, 배우기 쉬운 한글과 미친 듯한 교육열 덕분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전 세계 으뜸이다.  그러나 문맹률 앞에 '실질' 이라는 말을 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통계로는 우리나라 성인의 실질 문맹률이 22%라고 한다.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 정도는 한글로 된 글을 읽을 줄은 아는데, 그 글의 의미나 목적을 제대로 파악 못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대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은 단어로 이루어진 긴 글을 볼 일은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책)  대신 카톡이나 SNS의 짧은 글(짧기만 할 뿐 아니라 각종 줄임말까지...!)을 읽고 쓰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장을 읽을 줄 알기는 하는데, 어휘력이 부족하고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도 낮아서 글의 내용이나 뜻을 이해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심심한 사과

 

  어제였나 그제였나, 여러 언론사가 '문해율' 과 '디지털 문맹' 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한 카페에서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열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기자, 카페의 SNS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라고 썼다.  문제는... 일부 네티즌이 사과문 속 '심심한' 이란 단어를 '재미없다, 무료하다' 라는 뜻의 '심심한' 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네티즌들은, 카페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말장난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고 생각하며 분노했다.

  물론 '심심한 사과' 가 무슨 뜻인지 아는 다수의 사람들은 황당할 수 밖에...  이러다가 '사과드린다' 를 '사과(apple)를 준다' 는 말로 아는 사람도 나오겠다느니, '무료하다' 는 말을 '공짜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겠다느니, 관련 기사에 온갖 댓글이 붙었다. 

 

  이 일이 기사화 된 것은 하루 이틀 전이었지만, 그 전부터 SNS나 여러 게시판에서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대통령과 교육부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양쪽이 같은 날 '디지털 문해 교육을 강화하자' 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즉, 이 일이 큰 화제가 되어 높으신 양반들 귀에도 들어갔고, 그들이 보기에도 뭔가 대책을 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다.

 

 

 

  사흘은 4일?  금일은 금요일?

   

  비슷한 기사를 몇 년 전에도 본 기억이 난다. 

  기성 세대에게는 너무 쉬운 말인 '사흘' 을 3일이 아닌 4일로 이해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2)가 들어간 '이틀' 이 2일인 것처럼, 사(4)가 들어간 '사흘' 은 4일이라는 신박한(!) 논리를 세웠다고 하니, 참...

  정부에서 어떤 날을 임시 공휴일로 삼아 원래 이틀이었던 연휴가 사흘로 늘어났는데, 관련 기사에 엉뚱한 댓글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달력을 봐도 시청에 전화해 물어 봐도 분명히 3일 쉰다는데 왜 기사에 사흘 쉰다고 썼느냐, 요즘은 개나 소나 기자 한다' 면서 애꿎은 기자의 무식함(!)을 탓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늘이란 뜻의 '금일' 을 금요일로 착각한 대학생 이야기도 있다.

  교수가 '과제물을 금일까지만 받겠다' 고 했는데, 한 학생이 금요일까지 받는다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교수가 받아주지 않자 항의했다는 내용이다. (중고생도 아니고 대학생이라는 게 더 충격임.)  카톡 등에서 금요일을 '금욜' 로 줄여쓰는 것에 영향을 받은 건지 어떤 건지... 

  

 

 

  득남과 깜냥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스토리 말고도, 개인적으로도 듣거나 본 경우도 있다.

 

  먼저 '아들을 얻다(낳다)' 라는 '득남' 에 얽힌 스토리.

  친척 언니가 교사인데, 동료 교사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이 '000 선생님 아들 낳으셨어요, 딸 낳으셨어요?' 라고 물었다고 한다.  언니가 득남하셨다고 대답했더니 알아듣는 학생 반, 못 알아듣는 학생 반이었다고 한다.  못 알아들은 학생들은 '이 선생님이 왜 딴소리 하고 그러시나' 라는 표정으로 '아들이냐고요, 딸이냐고요?' 라고 다시 묻더란다. 

  언니는 '예전 애들은 만화책이나 하이틴 로맨스라도 읽었는데, 요즘 애들은 게임만 하느라 글로 된 것을 아예 안 봐서 아무 것도 모른다' 며 한탄했다. 

 

  몇 년 전에 재미있게 챙겨보던 웹툰이 있다.

  그런데 어휘력 딸리는 일부 독자 때문에 작가의 마음 고생이 심했다.  웹툰에 재주나 능력을 뜻하는 '깜냥' 이란 말이 나오자, 왜 비속어를 쓰냐며 따진 이들이 있다.  깜냥 입장에서는 대성통곡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건전하기 짝이 없는 말이건만 비속어 취급을 받았으니...

  요즘 많이 쓰는 말은 아니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모르는 단어라고 해서 비속어로 속단하는 게 말이 되나? (자신의 국어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듯...)  처음 보는 단어라 미심쩍다면 일단 찾아본 후에 따지든지 말든지 하는 게 맞다.  예전처럼 두꺼운 국어사전을 뒤적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다음 사전이든 네이버 사전이든 잠깐 검색하면 될 일이다.

 

  어휘력과 별도로 그 웹툰의 일부 독자는 '선택적 문맹증' 같은 것도 있는 듯했다.  

  그 웹툰은 시대극 장르인데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가상의 국가이니 그 국가의 인명, 지명, 관직명은 물론이고 신분 제도나 궁궐 여인들의 체계까지 전부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예 매 회차마다 앞머리에 '실제 역사와는 상관없는 가상의 이야기다' 라는 식의 공고를 내걸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고증 부분을 따지고 드는 독자가 끊이지 않았다.  당나라 시대에 어째서 청나라 시대 옷이 나오느냐는 둥, 조선에서는 본부인과  첩을 저런 명칭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둥, 관직 이름이 이상하다는 둥. (글쎄, 청나라도 당나라도 조선도 아니라고...!  실제 역사와 아무 상관 없다니까...!)

  한글로 된 웹툰을 읽는 걸 보면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닐텐데, 어째서 모든 회차 앞머리에 나오는 공고는 읽지 못 하는 건지...  웹툰 본문 읽을 때는 해독이 되고, 공고 읽을 때는 해독이 안 되는, 선택적 문맹증 같은 건지 뭔지...

 

 

 

  과연?

 

  대통령까지 나서서 디지털 문해 교육을 강화할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휘력이나 문해력을 높인다는 게 몇 달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보 전달 수단이 텍스트물에서 영상물로 바뀌어버린 곳이라서 말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