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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 - 뒷심이 부족해서 아쉬운 명품 드라마

Lesley 2019. 2. 17. 00:01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반까지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SKY 캐슬' 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비록 이 드라마를 안 봤더라도 제목만은 들어봤을 것이다.  제목조차 못 들어봤다면 이북에서 내려온 간첩일 가능성 90%...! (아니, 어쩌면 간첩도 이 드라마만큼은 열심히 챙겨봤을 지도... ^^;;)

 

 

 

 

 

  원래 SKY 캐슬 리뷰를 두세 편은 쓸 생각이었지만 한 편으로 끝내기로 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이 드라마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종영한 후에 이 드라마를 낱낱이 해부(!)한 리뷰를 써보겠노라 별렀는데...

  대망의 마지막 회에서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고 나니 그만 의욕 지수가 쑥 내려가버렸다. (마지막 회 대본을 그렇게 쓴 작가님이 너무 밉소, 어흐흑... ㅠ.ㅠ)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한동안 빠져살던 드라마라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처음 계획보다 대폭 줄여서라도 써보려고 한다.

 

 

 

 

  SKY 캐슬 - 중의적인 제목

 

  관련 기사를 보니, 원래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프린세스 메이커' 로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0-;;)

  아마 등장인물 중 가장 비중이 높고, 과열된 입시열기와 비뚤어진 자녀 교육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서진을 빗댄 제목이었던 듯하다.  한서진은 딸 예서를 의대에 보내는 것에 자기 인생을 통째로 걸다시피 하고 동분서주하는데, 그런 한서진이야말로 현대판 공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프린세스 메이커' 란 제목에 담긴 심오한(?) 뜻과는 달리, 듣는 순간 유치하다는 느낌부터 팍팍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에는 작가의 의견이었는지 PD의 의견이었는지 'SKY 캐슬' 이란 제목으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제목을  'SKY 캐슬' 이라고 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 가 되었다.


  일단, SKY 캐슬은 드라마 속 주요인물들이 거주하는 고급 맨션 단지의 이름이다.

  SKY 캐슬(SKY Castle)은 말 그대로 '하늘의 성' 이다.  수십억 원이나 한다는 이 맨션은 주남대학교(이 드라마 속 가상의 대학교)의 정교수용 사택인데, 교육 환경이 최고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하지만 남들이 땅에서 살 때 자기들만 하늘에서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려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그 좁은 문 말고 주남대학교의 정교수가 되는 좁은 문 말이다.  다만, '주남대학교 정교수' 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고소득 전문직' 의 상징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에게로 가는 좁은 문보다 주남대학교 정교수로 대표되는 고소득 전문직이 되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게 더 힘들다.  전자를 통과하는 것도 분명히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본인의 마음 하나만 다스리면 된다.  하지만 후자를 통과하려면 본인의 의지 뿐아니라 집안의 재력, 인맥, 사내 정치상황 등 많은 것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전자를 통과하는 게 낙타가 바늘귀 지나가는 수준이라면, 후자를 통과하는 일은 코끼리가 나노(!) 단위의 구멍을 지나가는 수준이다.

 

  또한, SKY 캐슬은 우리나라 최고의 학벌로 이루어진 집단을 비유하는 말도 된다.

  언제부턴가 SKY란 단어가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의 영문 머릿글자를 모아 만든 은어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 속 SKY 캐슬 주민들이 자기 자식을 못 보내서 안달인 서울대 의대란, 결국 우리 현실 속 SKY 대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SKY 캐슬에 입주하기 위한 조건인 주남대학교 정교수 자리가, 사실은 교수란 지위 그 자체가 아니라 고소득 전문직의 상징인 것처럼 말이다.

  자손들에게 평생 먹을 것을 물려줄 수 있는 상류층이라면 굳이 학벌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그저 체면치레할 수준의 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고소득 전문직인 사람들은 서민층보다 자식을 부유하게 키울 수 있을 뿐, 상류층처럼 자식에게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남겨줄 수는 없다.  그래서 최소한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수준만큼은 자식들도 누릴 수 있도록,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아둥바둥하게 된다.

 

 

 

  이명주 - 절정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엄마, 비극의 시작

 

  이명주(김정난)는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시청자들의 체감 비중은 굉장히 높은 인물이다.

  이 드라마 속 이야기가 이명주의 자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주요인물 중 출연 비중이 가장 낮은 이명주를 가장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출연 비중이 낮은 이유는, 이명주가 1회에서 자살해 버려서 그 후로는 회상 장면으로만 간간히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체감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이명주가 자살하게 된 원인 및 과정에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주남대학병원 의사의 아내인 이명주는 외동아들 영재를 철저히 관리해서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명주와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이웃 한서진은 영재를 합격시킨 비결을 얻어낼 목적으로, 영재의 의대 합격 축하 파티를 열어준다.  이명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마치 세상 전부를 다 가진 것처럼 당당하고 행복해 보인다.  다른 스카이 캐슬 주민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 속에서, 남편과 아들을 양옆에 거느리고(!) 자랑스러움과 행복에 겨운 웃음을 지으며 파티장에 입장한다.

  파티의 명목상 주인공은 합격 당사자인 영재지만, 누가 봐도 실제 주인공은 온갖 정성 기울여서 마침내 아들을 의대에 합격시킨 엄마 이명주다.  이명주는 잘 생기고 착하고 이제 의대 합격의 거사(!)까지 치룬 아들과 정답고도 열렬하게 포옹한다.  남편에게도 아들을 의대에 보내느라 고생했다는 치하의 말과 함께, 유럽 일주 크루즈 티켓 및 플레티넘 카드를 선물받는다.  파티 참석자 모두의 눈에 이명주 가족은 부부 사이로 보나, 부모 자식 사이로 보나,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이명주 가족은 완벽하기는커녕 썩어문드러진 상태였다.

  남들이 보기에, 이명주 남편은 그냥 의사도 아니고 차기 병원장이 될 것이 확실시 될 정도로 잘 나가며 처자식을 아끼는 사람이다.  즉, 능력도 있고 성격도 좋은 완벽한 가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수시로 바람을 피우고 처자식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나쁜 가장이었다. (심지어 반항하는 아들에게 사냥총을 겨누기까지 했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명주 남편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맞고 살았다고 한다.  즉, 이명주 남편은 가정폭력이 대물림 되기 쉽다는 끔찍한 사실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명주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체면과 자존심에 매달려 이웃들에게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던 듯하다.  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도 남편의 외도와 폭력에 시달리는 입장이면서, 아들을 의대에 합격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남편과 함께 아들을 억압한다. (남편처럼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학대 또한 일종의 폭력이니...)

 

  결국 이명주 가족은 절정의 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대학 입학 전에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던 아들이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려서 겨우 찾아냈다.  그런데 그 아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부모자식 간의 인연을 끊자는 것이다.  또한 아들이 부모 보라며 일부러 집에 남겨놓았던 태블릿PC 속 일기에는, 아들이 오랜 세월 부모에게 얼마나 이를 갈며 살았는지 생생히 나와 있다.

  이명주는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그렇지, 어찌되었거나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고 자기 인생의 전부로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전부로 생각해서 이 비극이 생겼지만...)  그런 소중한 아들에게 "당신의 아들로 사는 건 지옥이었으니까." 라는 말을 듣자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카이 캐슬 엄마들의 모범이며 워너비였던 이명주가, 과거에 남편이 아들에게 겨누었던 사냥총으로 목숨을 끊게 된다.  

 

 

 

  한서진 - 과도한 교육열의 정점에 선 엄마

 

  한서진(염정아) 가족은, 사교육과 학벌주의로 뒤범벅된 현실을 풍자하는 이 드라마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한서진은 머리 좋고 승부욕과 성취욕까지 남다른 큰딸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키려 애쓰고 있다.

  한서진 모녀가 보여주는 '공부 잘 해서 의대에 입학하고 의사가 되면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상관없다' 는 식의 태도는, 현실 속 성적지상주의와 학벌주의가 극단적인 모습으로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한서진이 예서의 의대 합격에 목을 매는 데에는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말하자면, 바로 위에서 먼저 소개한 이명주와 같은 교육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명주는 드라마 초반에 파멸했고 한서진은 파멸로 걸어들어가는 중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고등학교 동창인 이수임에게 쏘아붙인 말 속에는 한수임의 신념(?)이 잘 드러난다.  "남편이 아무리 잘 나가도, 네가 아무리 성공해도, 자식이 실패하면 그건 쪽박인생이야."  사실,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경향은 상당수 부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서진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무척 심하다.  '개천에서 난 용' 이었던 한서진의 열등감과 신분상승 욕구 때문이다.

 

  명문가 딸로 알려진 한서진의 본모습은 '가난한 선지장삿집 딸 곽미향' 이다.

  과거의 한서진, 아니 곽미향은 자기 딸 예서만큼이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예서와는 비교가 안 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집안은 가난한데, 아버지는 가족에게 주먹이나 휘두르며 딸이 알바로 번 돈조차 빼앗아 술 사는데 썼던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딸의 책을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의사 집안의 아들로 역시 의사인 강준상(정준호)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곽미향에서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서진으로 포장했다.  그 거짓말 때문에 거의 20년 동안 남편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는 건 물론이고, 시어머니인 윤 여사(정애리)에게도 단단히 찍혀 제대로 된 며느리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딸 예서를 의대에 보내는 일은, 딸을 위한 길일 뿐 아니라 오점투성이인 자기 인생을 완벽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처럼 공부 열심히 하는 딸에게 자기 부모와는 다르게 온갖 뒷바라지 다 해줘서, 어린 시절의 욕구불만을 보상받고 싶다.  자신의 부모가 조금만 신경 써줬더라면, 그 머리와 그 의지로 자신도 의사나 교수가 되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항상 자신을 멸시하는 시어머니의 높은 콧대도 꺾어버리고 싶다.  시어머니는 한서진만큼이나 교육열이 대단해서, 과외가 금지되었던 1980년대에도 은밀히 아들에게 사교육을 시켜 마침내 학력고사 전국수석 출신 의사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 손녀가 의대에 가서 '3대째 의사 가문' 을 이루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자신이 시어머니의 그 소원을 실현시킨다면, 자신을 조선시대 노비 보듯하는 시어머니도 더는 자신을 무시하지 못 할 게 아닌가?

 

  조금만 더 애쓰면 딸을 의대에 보낸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수임이 SKY 캐슬로 이사를 온다.

  한서진은 자신을 알아 본 이수임에게 시치미를 딱 떼고 곽미향이 아닌 한서진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수임의 등장으로 정체가 드러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다.  "그래, 넌 한서진이야, 한서진.  내장, 선지, 잡뼈 따위를 팔던 주정뱅이 딸 곽미향이 아니라 한서진이라고!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 와이프, 전교 1등 딸을 둔 엄마, 세상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할 한서진이라고!" 

 

  그러나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들인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어차피 명문 고등학교에 수석입학 할 정도로 머리 좋고 열심히 노력하는 딸이니,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서울대 의대에 무사히 합격했을 지도 모른다.  혹은 꼭 서울대 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대든 의대든 최소한 둘 중 하나에는 갔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로 가는 좀 더 확실한 티켓을 구하겠다며 수십 억짜리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에게 딸을 맡겼다가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인간이 이성의 동물이니 만물의 영장이니 해도 욕심 앞에서는 그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법이다.  한서진 스스로도 김주영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분명히 눈치챘고, 또 김주영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딸의 의대 합격에 눈이 어두워져 김주영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곽미향, 너 네 새끼 서울의대 포기 못 하잖아.  내가 합격시켜 줄 테니까, 얌전히... 조용히... 가만히 있어.  죽은 듯이." 라는 김주영의 조롱과 협박을 들으면서도 꼼짝 못 하게 된 것이다.

 

 

 

 

 

 

 

  진진희 - 가장 현실적이고 유쾌한 엄마 

 

  남편에게 찐찐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진진희(오나라)요즘 인터넷에서 갓물주(!)라고 불리우는 강남 건물주의 딸이다.

  SKY 캐슬의 엄마들 중 가장 발랄하지만, 동시에 가장 교양 없고 가장 철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위의 한서진은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 자식의 명문대 입학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주는데, 진진희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수준으로 보여준다.

 

  일단, 스스로도 성적이 안 좋았으면서도 외동아들인 수한에게는 공부 잘 하라고 잔소리 해댄다.

  이 얼마나 현실적인 학부모의 모습이란 말인가...! (자기도 공부 못 했으면서 자식만 들들 볶는 부모님들, 제발 반성 좀 하세요...! -.-;;)  자신이 아끼는 고급 접시들을 아들이 실수로 부숴버렸을 때 "야! 60점짜리가 이 비싼 걸 깨?  공부도 못 하는 게 어디 하는 짓마다 이 모양이야!" 라는 폭언을 퍼부어서, 아들을 가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식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적이나 공부를 들먹이는 것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또한,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피 못 잡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즉, 너도 나도 대입에 목숨 거는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밤늦도록 공부하느라 잠도 못 자는 아들을 안쓰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현실이란 게 어디 몇몇 개인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것이던가?  자식을 산 속에서 도인으로 키울 게 아닌 다음에야 그런 현실에 어느 정도 맞추어 살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복잡한 심사를 아들에게 털어놓는 진진희의 모습은, 그 순간 만큼은 철부지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우리 수한이가 아빠처럼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우리 아들이 이렇게 고생하는거 보면 그냥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바뀌어.  사실 엄마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  "이게 맞나 싶은데도 답이 없잖아.  (나는) 우주 엄마처럼 줏대도 없고, 예서 엄마처럼 확신도 없고.  아들, 엄마가 미안해."

 

 

 

  노승혜 - 유순함 속에 강단을 숨긴 엄마

 

  노승혜(윤세아)는 겉모습만 보면 가장 순종적인 아내다.

  이 드라마에 비중있게 등장하는 5명의 아내들 중 유일하게 남편에게 항상 존댓말을 한다. (다른 아내들은 남편과 서로 반말을 하거나 존댓말과 반말을 적당히 섞어 씀.)  그리고 권위적인 남편이 아내 탓이 아닌 일로 아내를 탓하면, 억울하고 불만스럽다는 태도를 보이기는 해도 결국 남편에게 숙이고 들어가 남편의 뜻대로 움직인다.

  노승혜의 이런 성격은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낸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남긴 편지를 보면, 결혼을 권위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탓에 남편 될 사람의 인생관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노승혜의 남편은 스스로에 대한 과신과 아집으로 뭉친 인물이다.

  그래서 시대의 변화라든지 개개인의 능력 및 성격 차이 같은 것은 생각 못 한다.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 하나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며 자식들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친다. (무서운 김주영조차 노승혜 남편에게 "교육을 하신 게 아니라 사육을 하셨군요."  라고 빈정댔을 정도임. ^^;;)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도 '내가 이 집안 가장이다' 는 사실 하나를 내세우며 무조건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한다. 

  결국, 노승혜는 권위적인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다가 권위적인 남편 그늘 밑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자기 집안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나긋나긋하고 순종적인 것만 같았던 노승혜의 마음 속에 개혁(?)의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쌍둥이 아들이 남편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에 힘들어 하는 걸 안타까워 하면서도, 아무 것도 못 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이수임과 친해지면서 뭔가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집안의 스터디룸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딸이 하버드 대학에 다닌다던 말이 거짓이라는 게 드러난 일로 본격적으로 남편에게 맞선다.  즉, 분노한 남편이 딸에게 손찌검을 하자, 그 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비명을 지르더니 "내 딸, 손대지 마!" 하고 외친다.  드라마 속에서 처음으로 남편에게 도끼눈(!)을 뜨며 반말을 한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위의 진진희가 대놓고 코믹한 캐릭터라면 노승혜는 은근히 코믹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노승혜가 쌍둥이 아들을 위해 공포(!)의 스터디룸을 없애버렸을 때 화가 난 남편은, 노승혜에게 1주일 단위로 가계부를 써서 자신에게 보여 검사를 받고 생활비를 타가라고 한다. (일종의 경제보복? ^^;;)  그러자 노승혜는 남편의 저녁밥으로 컵라면(!)만 달랑 내놓는 것으로 맞선다.  다음 날 저녁에 남편이 또 컵라면이냐고 빈정거리듯 묻자, 마치 이번에는 저녁 메뉴에 신경 좀 썼다는 식으로 말한다.  "오늘은, 매운 맛이에요."  그리고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바로 '징라면 매운맛(진라면이 아니고 정말로 징라면이라고 나옴. ^^)' 이다. 

  글로 써놓으니 그다지 웃기지 않지만, 이 장면을 직접 본 사람들은 배꼽 잡고 웃었다.  부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노승혜 특유의 우아한 말투에 안 어울리게 갑자기 등장한 컵라면 모습에 빵 터지게 된다.

 

 

 

  이수임 - 가장 이상적인, 그러나 비현실적인 엄마

 

  이수임(이태란) 가족은 이명주의 자살로 이명주 남편이 스카이 캐슬을 뜬 후 그 집에 새로 이사왔다.

  한서진과 이명주가 이 드라마가 비판하는 막장(!)스러운 현실을 극단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라면, 이수임은 이 드라마가 바라는 정상적(!)이고 따뜻한 미래를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식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이웃들에게  "이거, 정말 애들이 원하는 거 맞아요?"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남의 자식이야 어찌되거나 말거나 내 자식만 명문대 입학하면 장땡(!)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이웃들에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라고 안타깝게 말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수임은 매우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바람직하고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인 캐릭터라서, 혼자서만 이 드라마 속에서 붕 뜨는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에서 한서진과 김주영 같은 인물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가 필요한 건 알겠다.  하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정의롭기만 해서 도무지 이 세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 깊고 깊은 산속에서 이슬만 먹으며 도 닦다가 내려온 인물 같다. -.-;;

  다른 캐릭터는 그 행동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적어도 우리 주변에서도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며 무릎을 치게 되거나, 혹은 저 상황에서라면 저렇게 행동할만 하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수임을 보면 분명히 옳은 말을 하고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는 있는데,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거나 '아니, 저게 웬 오지랖이야!' 하는 생각만 든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마지막 회에서, 이수임 캐릭터의 비현실성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수임의 아들 우주가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된 후, 한서진은 진범을 알면서도 자기 딸 예서의 의대 진학에 차질이 생길까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수임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우주가 풀려난 뒤, 아주 간단히 한서진을 용서하고 같이 커피까지 마시며 하하호호 웃는다. -.-;;  그런가 하면 우주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웠던 김주영이 수감되자, 김주영과 김주영 딸이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도 모자라, 하루 빨리 출소해서 딸과 함께 살라고 덕담까지 해준다. -0-;; 

  이쯤 되면, 이수임이 어디가 좀 모자라거나 '착한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라도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면 언젠가 한서진이 '네가 우주의 교육에 열성적이지 않은 것은 우주의 친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는 식으로 빈정거렸던 것처럼, 우주가 이수임의 친아들이 아니라 무심하게 구는 건지도 모른다. -.-;;

 

 

  억지로 이수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자면...

  이런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고방식을 지닌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현실이 개판(!)이라는 뜻도 된다. -.-;;  언젠가는 이수임 같은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만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 ㅠ.ㅠ

 

 

 

 

  김주영 - 학벌사회가 낳은 무서운 괴물

 

  일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은 대입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매년 오직 2명의 학생만 관리해서 반드시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킨다는 김주영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인지는 다음의 대사로 전부 설명된다.  "제 아무리 잘났다고 떠드는 것들도 다 우리 밑에 있어.  자식을 우리한테 맡기면, 그들의 영혼도 우리 손아귀에 있거든.  그들을 웃게 할 수도, 울게 할 수도, 심지어 지옥 불에 처넣을 수도 있지.  제 자식을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고픈 부모들의 욕망이 있는 한, 입시 결과만 좋으면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  우리야말로 무한 경쟁 시대에 저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우상이니까."

  분명히 소름끼치는 말이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내뱉었기에 끔찍하게 들릴 뿐이지, 적당한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에둘러서 말한다면 제법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주영은 최우등의 성적으로 최고의 대학을 나온 인재였지만, 인생이 성적대로 풀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은 알지 못 했다.

  서울대 수학과에서 수석을 했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고 그만큼 노력도 했다.  그런데 대학 시절 자신보다 성적이 떨어졌던 동기생이 막상 졸업한 후에는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문 그 자체에 몰두한 게 아니라 성적에만 집착했던 김주영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주영의 사고방식으로는, 학교에서 성적이 더 우수했던 사람이 사회에서도 더 인정받고 출세하며 사는 게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딸이 천재라는 게 드러나자, 동기생에 대한 비틀린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딸을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시켜서 겨우 9살에 미국 명문대에 입학시킨다.  딸의 지능이 매우 높은 건 사실이지만 결국 아이라서, 성인인 대학생들과 경쟁하는 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공황장애까지 앓게 된다.  그런데도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계속 딸을 몰아붙친다.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한서진이나 이명주처럼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안 보고 자신의 인생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 줄 도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딸을 망가뜨리는 비극을 초래했고,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수시전형을 통해 서울대 의대를 가려는 학생들을 위한 입시 코디네이터가 된다.

  서울대학교에 갔을 정도로 좋은 머리,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에 익숙한 성향, 어린 딸을 대학에 입학시킨 경험에서 비롯된 스파르타식 교육 노하우 등이 있으니 최적의 직업을 택한 셈이다.  문제는,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단순히 돈벌이 때문에 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김주영은 '내 가정만 망할 수 없다, 너희 가정도 같이 망해봐라' 식의 억하심정으로 명문대 입학을 위한 사교육계에 뛰어들었다.

 

  이명주의 아들 영재가 부모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의욕을 잃고 공부를 안 할 때, 김주영은 옛날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공교롭게도 어렸을 적에 '전설의 고향' 에서 봤던 이야기이다. (다만, 전설의 고향에서는 3형제가 아니라 3남매가 나왔다는 점만 다를 뿐...)  그 때 어린 마음에도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보다 더 섬찟하다고 생각했는데, 김주영이란 저승사자 같은 캐릭터 입에서 이 이야기를 새삼 다시 듣자 정말 소름끼쳤다.

  "그럼 선생님이 재밌는 얘기 좀 해줄까?  옛날에 어떤 부부한테 아들 셋이 있었거든.  그 아들 셋이 다 과거에 급제해 어사화를 꽂고 금의환향했대.  부부는 너무 좋아서 동네 잔치도 벌이고 덩실덩실 춤을 췄지.  그런데 아들 셋이 말에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대.  하도 억울해서 어머니가 저승을 찾아가서 염라대왕한테 울며불며 물었대.  왜 하필 내 아들을, 그것도 셋이나 한꺼번에 데려갔느냐고.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그 어머니 앞에 지난 날을 비춰주는 거울을 비춰주더래.  이 부부가 젊어서 주막집을 운영했는데 손님이 갖고 있는 돈이 탐나서 손님들을 죽인 후에 그 집 부엌 바닥에 감쪽같이 묻은 거지.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세 남자는 다시 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 듣고 부부한테 금쪽같은 자식으로 자라난 거지.  그러다 과거까지 급제해서 부모를 너무 기쁘게 한 다음에, 그 순간에 자기들이 죽어서 복수를 한 거지.  부모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다가 부모가 가장 행복해 할 순간에 산산조각 내버린 거야.  그게 진짜 복수니까."

  김주영은 이 이야기를 통해 영재의 마음에 부모에 대한 복수심을 심어줬다.  일단 부모의 뜻에 순종하며 의대에 합격해서 부모로 하여금 가장 큰 행복을 맛보게 해주라고.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그 절정의 행복을 산산조각내서 부모에게 가장 큰 불행을 선물하라고.  실제로 영재는 의대에 합격해서 부모에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해 준 뒤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인연을 끊자고 하여 부모를 절망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김주영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다만, 드라마 속 가정들이 파국을 맞거나 파국을 맞을 뻔한 게 전부 김주영 때문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다수 부모가 자식의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성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생각을 품지는 않는다.  김주영이 자녀의 명문대 합격을 보장할 수 있는 대단한 입시 코디네이터라고 하니, 일단 대부분의 부모가 혹할만 하다.  그러나 김주영이 맡았던 아이들의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든지 김주영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적이 있다든지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보통의 부모라면 두려움이나 불쾌감을 느끼며 김주영과의 인연을 끊어낼 것이다.

  하지만 한서진은 김주영이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의 의대 입학에 눈이 멀어 김주영을 끊어내지 못 했다.  그래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겨도 다 감수하겠단 뜻입니까?  영재네 같은 비극이 생겨도 받아들이시겠단 뜻입니까?  다 감수하시겠다는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님." 이라고 김주영이 물었을 때, 영악한 한서진이 바보처럼 "네" 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에게 있다.

  이 드라마에서 파멸한 가정들은 이미 그 내부에 비극이 터질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김주영은 그 가정들 내부에 이미 잔뜩 뿌려져있던 기름에 불씨 하나 떨어뜨렸을 뿐...

  김주영이란 인물이 뒤틀린 욕망과 빗나간 복수심으로 남의 가정을 깨뜨린 괴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애초에 이 괴물은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는 극단적인 부모' 앞에서만 설칠 수 있다.  곰팡이가 눅눅하고 바람 안 통하는 곳에서만 자랄 수 있는 것처럼, 김주영은 명문대 입학에 미친(!) 부모를 고객으로 맞았을 때만 그 독기를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기타

 

 

  1. PPL 및 출연진의 광고

 

  드라마가 케이블TV 방영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다 보니, 뒤로 갈수록 온갖 PPL이 달라붙는다.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던 게, 몇 년 전에 인터넷상에서 '셀프뒤주'(!) 라는 별칭으로 화제가 되었던 '스터디 큐브' 라는 책상이다.  옷장 같은 직육면체 안에 사설 독서실에서 쓰는 책상과 의자가 들어가 있는 형태의 특수한 학습용 가구이다.  전에는 '워낙 공부타령만 하는 나라라서 이런 특이한 책상도 다 나왔다' 는 식으로 화제가 되는 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최우등생인 예서가 스터디 큐브에 들어가 공부하는 모습이 여러 번 방영된 뒤로는 꽤 많이 팔리는 모양이다.

  사실, 드라마를 볼 때는 피식 웃었다.  어지간한 집의 거실 크기는 될 정도로 널찍한 방을 쓰는 예서가, 당연히 별도로 책상과 의자도 있는 애가, 굳이 그런 답답한 공간에 말 그대로 셀프뒤주 상태로 들어가 공부하고 싶을까...  하긴 드라마에서도 평범한 책상에서 집중이 안 될 때 그 안에 들어가 공부한다고 나오니, 예서처럼 성적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애라면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

 

  또한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출연진들이 줄줄이 CF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서진 역을 맡은 염정아가 학습지 광고를 찍었다.

  드라마는 입시에 미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출연진은 그 드라마에 출연한 덕에 학습지 광고에 출연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다만, 상황이 아이러니한 건 아이러니한 거고, 딸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워 딸의 생활 전반을 관리했던 엄마가 선전하는 학습지라 느낌이 다르기는 하다.  그 광고를 찾아서 봤는데, 그 학습지를 풀면 나도 이 나이에 서울대 의대에 떡 하니 합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광고주가 노린 게 바로 이런 것이지요... ^^;;)

 

  2. 드라마 속에 녹아든 실제 사건

 

 이 드라마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슈가 되었던 두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나는 노승혜의 딸 세리가 하버드에 입학했다고 거짓말했다가 들키는 에피소드이다.

  이 에피소드는, 미국으로 조기유학 간 우리나라 여학생이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여러 대학에 응시할 수 있으니 당연히 여러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가능하고, 옛날과 다르게 조기유학생이 많아서 미국 명문대에 한인 학생들이 합격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 그저 미국의 명문대학 두 곳에 동시에 합격했다는 정도라면 언론에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대학 모두 이 대단한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서 결국 그 학생이 두 대학에 '동시 입학' 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 언론 저 언론 할 것 없이 크게 보도했다. (사실관계 확인 제대로 안 하고 보도한 언론들도 정말 문제가 많음.)

  그러나 며칠 만에 그 여학생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학생의 거짓말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학생이 이미 자기 학교에서는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로 유명했는데도 부모는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미국 아이들도 가기 힘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우수한 자식이니, 으레 알아서 잘 하려니 믿었던 모양이다.  세리 아빠(노승혜의 남편)도 쌍둥이 아들은 공부하라고 들볶으면서, 일찍 미국으로 떠나보낸 딸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세리도 문제지만, 좋은 성적 하나만 보고 부모로서 훈육을 소홀히 하며 맹목적으로 믿었다가 빚어진 소동이니, 세리만 탓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하나는 한서진의 딸 예서가 유출된 시험지로 공부해서 전교 1등을 하는 에피소드이다.

  바로 작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수시전형 폐지 여론까지 불러일으켰던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을 각색한 듯하다.  이 사건은 아직 재판중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 등을 볼 때 쌍둥이 자매가 유출한 시험지로 각각 문과와 이과에서 전교 1등을 한 게 확실해 보인다.

  다만, 예서는 자신이 풀었던 예상문제가 학교에서 빼낸 시험문제라는 걸 몰랐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정상참작이 되어 퇴학이 아닌 자퇴로 끝나기도 했고...)  일단, 시험문제와 예상문제는 유형은 같지만 구체적인 숫자 등이 달라서, 의심하지 않고 보면 유출한 문제라는 걸 알기 힘들었다.  종이에 답만 줄줄 써놓고 달달 외웠던 숙명여고 쌍둥이와는 다르게, 예서는 최소한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기는 했다.  게다가, 김주영이 이끄는 드림팀(!)은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대단한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예서는 일류 강사들이 자기 학교의 몇 년치 기출문제를 철저히 분석해서 적중율이 매우 높은 예상문제를 만들어냈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3. 마지막 회의 장점

 

  이 포스트 첫머리에도 썼지만, SKY 캐슬을 잘 보다가 마지막 회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너무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한서진 모녀와 비정상적으로 착하기만 한 이수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  나만큼이나 이 드라마에 빠져살던 한 친구는, 마지막 회는 차근차근 보지 않고 빨리 돌려가며 봤다고 한다.  마지막 회가 끝나고 인터넷 반응을 보니, 팬들이 분노하고 흥분해서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였다. ^^;; 

 

  비록 실망스러운 마지막 회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은 있다. 

  만일 마지막 회마저 그 이전 회차처럼 완벽하고 긴박감 넘쳤더라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드라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 했을 것이다.  원래 나란 사람이 뭐 하나에 빠지면 한동안 정신 못 차리는지라... 

  하지만...!!!  마지막 회에서 김이 확 빠져버리는 통에 드라마를 재삼재사 반복하며 폐인 모드에 빠질 일은 없게 되었다.  드라마 종영하자마자 나를 현실세계로 컴백하게 만들어 준 이 드라마 작가님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건지 어떤 건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