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은하철도 999 실사 라이브 드라마

Lesley 2018. 9. 3. 00:01


  지난 달에 추억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의 실사(!) 드라마를 봤다.

  지금도 서울 용산에서 하고 있는 '은하철도999 갤럭시 오디세이 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 를 관람하러 갔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은하철도 999 실사 드라마를 제작해서 방영했다는 것이다.  ☞ 은하철도999 갤럭시 오디세이 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http://blog.daum.net/jha7791/15791506) 

  은하철도 999의 팬으로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반가움이 아니라 '이게 웬 날벼락이냐!' 였다.  멀쩡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나 드라마로 변신(?)했다가 망가지는 꼴을 몇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나마나 꽝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을 떨쳐낼 수 없어서 보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 은하철도 999의 실사 드라마, 의외로 괜찮았다...!!!



오프닝에 나오는 999호는 당연히 CG로... ^^



  이 포스트 제목에 쓴 것처럼 이 드라마는 일반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라이브, 즉 생방송 드라마다...!

  스포츠 중계도 아니고 무슨 드라마가 생방송으로 방영되느냐고 뜨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를 보고나면,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방영하는 게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기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은하철도 999는 보통의 SF물과는 다르다.

  인간이 몸을 기계로 바꾸어 영생을 누린다는 먼 미래에나 가능할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하는 에니메이션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커먼 석탄 연기를 뿜어내는 기차가 우주를 달려가고 우주의 여러 별에서 라면이나 일본식 온천 여관이 출몰(?)하는 등 20세기 중.후반의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즉, 작품 전체에서 20세기 중반 지구의 냄새가 풍겨난다.  보기에 따라서는 SF물이 아니라 좀 특수한 성격의 드라마(시간적.장소적 배경이 미래와 우주인 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차라리 보통의 SF물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작업이라면, CG 및 각종 특수효과의 수준만 뒷받침 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은하철도 999의 애매한 장르적 성격에서 나오는 아스라한 분위기는, 돈을 잔뜩 쏟아부어 최첨단 CG와 특수효과를 동원한다고 한들 살려내기 힘들다.  오히려 은하철도 999 팬들에게 욕만 잔뜩 먹고 폭망(!)할 가능성만 높다.


  그런데 라이브 방송으로 드라마를 내보냈기 때문에, 연극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연극적인 느낌'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드라마화하면서 생길 수 있는 어지간한 약점이 덮어졌다.  이 드라마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조차 '아, 이 드라마 괜찮네.'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될 정도로 말이다.



연극 무대 느낌의 999호 내부 세트장.



  드라마가 연극 비슷하게 만들어지면서 얻게 되는 첫 번째 이점은 장소 문제 해결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한 작품을 많은 장면으로 토막내어 장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촬영하고, 그 촬영분을 나중에 이리저리 이어붙여 만들어 낸다.  따라서 장소 및 시간의 제약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연극은 배우들이 관객을 앞에서 실시간으로 공연하는 것이라 당연히 장소 및 시간의 제약이 크다.  연극의 관객들도 그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연극 무대가 영화나 드라마보다 다채롭지 못 하고 디테일을 살리지 못해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이 드라마 제작진은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드라마를 연극처럼 실시간으로 방영하면서, 원작(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1기)에 등장하는 어지간한 장소를 과감하게 쳐내고 999호 내부, 술집, 시간성 등 세 곳만 살렸다.  그 세 곳마저 대강의 분위기만 나타내면 되지 정밀하게 보이려 애쓸 필요가 없다.  원래 연극 무대는 대략적인 분위기만 살리면 되니까. 


  두 번째 이점은 위에서 말한 은하철도 999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리기 쉽다는 것이다.

  원래 연극이라는 게 드라마나 영화보다 아날로그적일 수 밖에 없다.  관객의 눈앞에서 공연하는 것이라서 각종 장치나 효과 등을 쓰는 데 제한이 많고, 그런 것들보다는 배우의 비중이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그런 연극적인 성격이 SF물답지 않은 은하철도 999의 아날로그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세 번째 이점은 액션 장면이 어설퍼도 쉽게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메텔의 액션 장면이 두 차례 나온다.  하나는 메텔이 테츠로(철이)에게 시비를 걸며 기차표를 빼앗은 기계인간들을 제압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메텔과 에메랄다스가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야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한 수준의 액션 장면을 표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보통의 드라마였더라도 무술에 능숙한 대역 배우를 쓰고 적당히 편집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방송 드라마에서는 메텔 역을 맡은 배우에게 모든 걸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시나... 메텔의 액션은 매우 어색해 보였다. ^^;;  하지만 그 어색한 액션 장면조차 연극 특유의 다소 과장된 몸짓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흠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간성에서 기계백작과 대치하는 장면.

(이 드라마의 CG 중 99% 이상이

드라마 오프닝과 시간성 장면에 집중되어 있음.)



  나는 즐겁고 편하게 감상했지만, 배우나 제작진은 보통의 드라마를 만들 때에 비해 훨씬 고생할 수 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약 90분짜리 전체 방영시간중 후반부 30분 정도가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와 출연진들의 인터뷰로 되어 있다.  그 인터뷰 중에 제작진이 몇 번이나 연습하고 고심하여 합을 맞췄음을 드러내는 말이 나온다.


  실시간으로 나가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NG가 허용되지 않는다.

  일단, 배우들부터 연극 공연하는 심정으로 극 전체의 대사와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야 한다.  그리고 제작진도 어떤 장면에서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를 어떤 식으로 조절할 것인지 또는 조명과 음향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

  더구나 드라마를 방영해가면서 그 위에 CG를 입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를 보면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1, 2 초가 지난 뒤에야 총구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는 걸 볼 수 있다.  당장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동영상 위에 CG를 입히려니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 수 밖에 없다. 



마츠모토 레이지와 출연진의 인터뷰.

(기계백작 역을 맡은 배우가 재미있음. ^^)



  끝의 인터뷰 부분을 빼면 실제 드라마는 약 60분짜리이다.

  이 60분 동안 '은하철도 999 극장판 1기' 줄거리를 기본으로 해서 각색한 내용이 펼쳐진다.  시간 관계상 줄거리를 과감하게 생략해서 우주해적 안타레스와 만나는 장면, 역시 우주해적인 에메랄다스를 만나는 장면, 에메랄다스의 연인인 토치로를 만나는 장면, 기계백작에게 복수하는 장면만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엑기스만 제대로 뽑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각 장면에서 적절하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드라마의 배경음악은 은하철도 999 극장판 1기 및 2기의 OST를 그대로 썼다.  극장판에서의 장면과 전혀 다른 장면에서 극장판의 음악을 가져다 썼는데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만일 극장판 1기와 2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 드라마를 본다면,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들을 애초에 이 드라마를 위해 만든 음악으로 착각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깔끔한 마지막 장면.



  이 드라마는 감동적이며 깔끔한 결말로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 1기를 베이스로 한 작품이지만 줄거리를 많이 생략하고 각색한 탓에, 결말 장면이 극장판 1기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비록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지만 이쪽도 그 나름대로의 여운을 남긴다.

  메텔은 테츠로와 이별하는 걸 아쉬워 하면서도, 테츠로가 위험천만한 우주 여행을 중단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하지만 테츠로는 여행의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메텔과 계속 여행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메텔 곁에 남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떠나가는 999호 안에서 토치로가 남긴 워크맨(20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바로 그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창문 밖 우주를 바라본다. (이 때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은하철도 999 극장판 1기의 엔딩곡임.)




  뱀발


  1. 이 드라마의 방영 소식을 알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봤더니, 역시 사람이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인 듯했다.


  우리나라 쪽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기대에 찬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우려가 넘치는 것들만 있었다.

  일단, 추억 속 명작을 괜히 드라마화 해서 팬들의 어린 시절 로망을 망가뜨리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또한, 테츠로(철이) 역을 맡은 배우는 제법 어울리는 편이지만, 메텔 역은 정말 아니라는 반응이 많았다.  누가 봐도 동양인이 분명한 일본 여배우가 노란 가발 뒤집어쓰고 검은 코트 입는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속 메텔로 보일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딴지일보 총수로 잘 알려진 김어준이 철이의 성인 모습으로 딱이라는 댓글 때문에 빵 터졌다는... ^^)


  2. 의외로 메텔 역을 맡은 여배우가 메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속 메텔과 닮은 구석이 없어서 왜 저 배우를 캐스팅했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 (물론 그런 배우가 현실에 있을 리 없겠지만... ^^;;)

  그런데 메텔 역을 맡은 배우의 표정 및 눈빛 연기가 섬세해서 좋았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속 메텔과 외모가 전혀 다르지만, 드라마를 보기 전에 예상했던 수준의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좋은 연기력으로도 도무지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드라마 속 메텔의 전신샷이 나올 때마다 애니메이션 속 메텔의 비현실적인 기럭지(!) 및 비율(!)과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3. 999호의 차장 역을 맡은 배우가 너무 날씬하다...!


  차장은 오동통한 펭귄 몸매가 매력이고 특징이다.

  그런데 중간 몸매의 배우가 차장 유니폼을 입고 왔다갔다 하니 어색해 보였다.  애니메이션 속 차장 몸매를 가진 배우가 드물지 않을 텐데  왜 굳이 평범한 몸집의 배우에게 이 역을 맡겼을까?  차장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말투를 이 배우가 가장 잘 표현했던 걸까? ^^


  

차장 양반, 다이어트를 열심히 했는지

애니메이션 시절보다 날씬해지셨구려.. ^^



은하철도 999(TV판) 1 - 은하철도 999 훑어보기 / TV판과 극장판 비교(http://blog.daum.net/jha7791/15791406)

은하철도 999(TV판) 2 - 철이(호시노 테츠로) 上(http://blog.daum.net/jha7791/15791394)

은하철도 999(TV판) 3 - 철이(호시노 테츠로) 下(http://blog.daum.net/jha7791/15791411)

은하철도 999(TV판) 4 - 메텔 上(http://blog.daum.net/jha7791/15791396)
은하철도 999(TV판) 5 - 메텔 下(http://blog.daum.net/jha7791/15791412)

은하철도 999(TV판) 6 - 차장(http://blog.daum.net/jha7791/15791393)

캡틴 하록(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 Harlock : Space Pirate) / 은하철도 999(銀河鐵道999)(http://blog.daum.net/jha7791/15791042)
마츠모토 레이지 은하철도999展 - 발표 40주년 기념 전시회(http://blog.daum.net/jha7791/15791386)
은하철도 999 TV판 엔딩곡 青い地球(푸른 지구)(http://blog.daum.net/jha7791/15791395)

하카세 타로 - '기적 ~하카세 타로가 마츠모토 레이지를 만나다~' / '유전의 왕비.마지막 황제'(http://blog.daum.net/jha7791/15791445)

롯데리아 은하철도 999 피규어 뒤늦게 득템...!(http://blog.daum.net/jha7791/15791466)

코스모 워리어 제로(Cosmo Warrior Zero) 오프닝곡 - 時代(http://blog.daum.net/jha7791/15791473)
은하철도999 갤럭시 오디세이 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http://blog.daum.net/jha7791/1579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