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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3 - 'Shut Up and Dance(닥치고 춤 춰라)'

Lesley 2018. 2. 28. 00:01

 

  지난 설연휴 동안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 의 시즌3을 감상했다. 

  몇 년 전에 블랙미러의 시즌1과 시즌2의 일부 에피소드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 블랙 미러(BLACK MIRROR) - 독특한 영국 SF 드라마(http://blog.daum.net/jha7791/15791367) 

  지금보다 엄청나게 발달한 먼 미래를 다룬 보통의 SF물과는 달리, 블랙미러는 짧으면 10여 년, 길어봐야 수십 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 속 상황은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드라마에 나오는 과학기술은 인류가 머나먼 안드로메다 은하계까지 진출했다든지 고도화 된 인공지능이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게 되었다든지 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미 등장한 기술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나오고, 역시 이미 나타난 과학기술의 폐해(특히 인터넷 등 미디어 분야의 폐해)가 보다 심각해진 상태로 나온다.  마치 '우리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조만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블랙 미러 시즌3에 나오는 'Shut Up and Dance(닥치고 춤 춰라)' 를 소개하겠다.

  이 에피소드는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개인정보를 유출해서 협박하고 이용하는 문제만 건드리는 게 아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로 인한 위험성에 둔해져서, 자신의 사생활을 너무나 쉽게 누군가에게 알려주는(그것이 본인이 의도했던 바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문제도 다루고 있다. 

 

 

  ※ 경고 :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래의 글을 읽지 마시오~~!

 

 

 

TV, 컴퓨터, 스마트폰의 화면을 상징하는

 블랙 미러(검은 거울).

 

 

 

  한 여자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나온다.

  겁먹고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동차 바퀴 윗부분에 무언가를 숨긴다. (나중에야 나오지만 숨긴 물건의 정체는 차키임.)

 

  장면이 바뀌어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케니' 가  등장한다.

  케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인데 학교는 안 다니는 것 같다.  몸집이 왜소한 편이고 성격도 소심해서 함께 근무하는 덩치 큰 남직원들에게 놀림과 무시를 당하곤 한다.

  하지만 손님으로 온 유치원에 다닐 만한 여자애가 물건을 놓고 갈 뻔하자 매우 친절한 태도로 물건을 챙겨주는 것으로 봐도 그렇고, 상급자로 보이는 여직원이 케니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그렇고,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케니는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다.

  발단은, 케니의 여동생이 제멋대로 오빠 노트북에 무료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다가 노트북이 이상해진 일이다.  케니는 악성코드를 제거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제일 먼저 뜨는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제일 위에 뜨는 프로그램을 클릭할 때 뭔가 일이 생기겠구나 싶었음. -.-;;)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악성코드 제거용이 아니라 해킹용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케니는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면서 자위를 하고, 그 모습은 노트북 웹캠을 통해 해커에게 전송된다.  해커는 앞으로 휴대폰을 통해 명령을 내리겠다면서, 그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자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케니는 공포에 질려서 그 명령에 따르기로 한다.

 

  해커가 준 첫 번째 미션(?)은 어떤 장소로 가는 일이다.

  도착 시간까지 촉박하게 정해놓고 그 시간 안에 도착 못 하면 동영상을 인터넷에 풀겠다고 협박한다.  케니는 죽을 힘을 다 해 자전거를 달려 겨우 시간 안에 도착한다.

  곧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나타나서 바로 그 해커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그 남자도 케니처럼 약점을 잡혀서 해커가 시키는대로 하고 있다.  그 남자는 케니에게 케이크 상자 하나를 넘겨주고 자기 일은 끝났다며 허겁지겁 떠난다.

 

  두 번째 미션은 그 케이크 상자를 어떤 호텔 방에 배달하는 일이다.

  케니가 해커가 알려준 방을 두드리자, 방 안에 있는 남자는 케이크를 주문한 적이 없다며 짜증을 낸다.  하지만 케니가 해커의 지시대로 "민디가 보냈어요." 라고 말하자, 남자는 기겁하는 태도로 나와서 케니를 방 안으로 들인다.  남자는 무척 당황스러워 하는 태도로 정확히 누가 케이크를 보낸 건지, 민디와 어떤 관계인지, 케니를 추궁한다.  케니는 케니대로 일련의 일로 제정신이 아니라 흥분해서 횡설수설한다. 

  곧 남자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오는데, 문자를 확인한 남자는 경악한다.  이제 이 남자도 해커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케니는 이제 자기 일은 끝난 건가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해커의 지시로 호텔에서 만난 남자, 즉 '헥터' 와 새로운 미션에 나서게 된다.  두 사람은 해커가 지정해 준 다른 장소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  이 때 두 사람이 이용할 자동차도 해커가 지정해주는데, 이 에피소드 첫 장면에서 어떤 여자가 끌고와서 지하주차장에 두었던 바로 그 자동차이다. 

 

  졸지에 운명 공동체로 묶인 두 사람은 자동차 안에서 각자의 사정을 털어놓게 된다.

  헥터는 가정이 있는 몸이지만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민디라는 매춘부와 알게 되었고, 서로 음란한 사진을 주고 받은 후 이야기가 잘 되어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온다는 민디는 안 오고 난데없이 케니가 등장하더니, 결국에는 해커에게 걸려든 것이다...!  해커는 헥터와 민디가 주고받은 음란한 사진 및 채팅 메시지를 수중에 넣고 자기 말에 따르지 않으면 그것들을 인터넷에 풀겠다고 협박했다. (민디라는 여자는 실제인물이 아니라 헥터에게서 정보를 빼내려고 해커가 만들어 낸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임.)  그것들이 유포되면 헥터는 아내에게 이혼당하는 건 물론이고 사랑하는 딸의 양육권도 아내에게 빼앗길 게 뻔하다.  그래서 전전긍긍하며 해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끝낸 헥터가 케니는 어쩌다가 해커에게 걸려든 것인지 묻는다.  케니는 차마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 하고 애매하게 이야기한다.  헥터는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고서 어이없어 한다.  자위는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행동인데 겨우 자위 동영상을 찍혔다고 해커의 손에 놀아나느냐는 식이다.

 

  몇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또 새로운 미션이 떨어진다.

  둘 중 한 사람은 은행에 들어가 돈을 훔치고, 또 한 사람은 자동차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은행을 턴 사람이 나오면 태우고 도망치라는 것이다.  즉, 두 사람 보고 은행 강도에 나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헥터는 냉큼 훨씬 덜 위험한 역할(즉, 자동차 안에서 대기하는 역할)을 차지하고 케니에게 은행에 들어가라고 강요한다.  차마 못 하겠다며 우는 케니를 다그치면서 하는 말 만큼은 명언이다.  개인정보라는 게 한 번 인터넷에 유출되면 돌이킬 수 없음을 생생히 묘사하는 말이다. "(동영상이 유출되면) 너희 엄마가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인스타 뭐라고 하는 빌어먹을 것을 보며 참 좋아하겠구나.  그리고 엄마 친구들도 그래.  모두 네가 그 짓 하는 꼴을 보겠지.  (중략)  겨우 몇 주로 끝날 일이 아니야.  몇 년이고 떠들어댈 거라고.  네 사진이 집시의 저주마냥 구글에 떠있겠지.  인터넷에 한 번 뜨면 지울 방법이 아예 없단 말이다.  낙인처럼 네 이름에 따라붙겠지.  나라면 그렇게 될 바에 차라리 목을 메고 죽겠다."

 

  이 때 케니가 보이는 행동이 묘하다.

  헥터는 케니가 자위 동영상 찍힌 일로 협박받고 있음을 알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헥터가 보기에, 가정이 박살나게 생긴 자기 사정에 비하면 자위 동영상 찍힌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니가 해커에게 쩔쩔매는 게 이상하고 어이없다.  물론 케니는 헥터와 달리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이라서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못 한다고 본다면, 케니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 강도에 나서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물론 이 세상 누구라도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폭로된다면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특히 케니처럼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면 수치심이 몇 배나 커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케니가 해커의 명령을 따른 것은 말이 된다.  하지만 은행 강도는 케이크 상자 배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범죄다, 그것도 중범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범죄자가 되어 인생 망치느니 차라리 창피당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케니는 해커가 시키는대로 은행 강도로 나선다.  스스로도 겁에 질린 나머지 권총을 잡은 손을 덜덜 떨고 바지에 소변을 줄줄 흘리면서까지 말이다.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이 장면은 결말을 위한 복선이다.

 

  어쨌거나 은행을 터는 데 성공한 케니와 헥터는 해커의 다음 명령에 따라 한적한 교외의 언덕으로 간다.

  그 곳에서 헥터는 은행을 터는 데 쓴 자동차를 없애라는 마지막 임무를 받고 해커의 수중에서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케니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있다.  케니는 해커가 시킨대로 훔친 돈이 그득하게 담긴 가방을 메고 언덕을 올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 깊이 들어가보니 어떤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해커를 만나게 되었나 보다 했는데, 그 남자 역시 약점을 잡혀 해커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다. (도대체 해커에게 걸려든 사람이 몇 명이냐...)  그 남자의 말인즉슨, 그 남자와 케니가 싸움을 벌여서 승자가 은행에서 훔친 돈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해커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며,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려고 공중에 드론까지 띄우게 한다.

  은행 강도라는 엄청난 짓까지 겨우 끝냈건만 이제 또 다시 목숨을 건 결투라니...  절망에 빠진 케니가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케니에게 동정어린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케니 : (울먹이며) "나는 그저 사진 몇 장 본 것 뿐이에요.  그게 전부에요.  그냥 사진 좀 본 것 뿐인데..."

  남자 : (어떤 상황인지 안다는 표정으로)  "그래, 그래, 나도 사진 좀 본 것 뿐이야." 

  케니 : (절망한 나머지 말도 못 하고 머리를 흔들며 우는)

  남자 : "그 애들 몇 살이었지?  사진 속 애들 말이야."

  케니 :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강하게 부정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남자 : "얼마나 어렸어?" 

  케니 : (뭐라고 말할 듯이 입을 열지만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못하고 다시 우는)

  남자 : "그래, 나도 그래."

 

  다른 시청자는 이 장면에서 모든 걸 알았다고 하는데 이 몸은 전혀 몰랐다. -.-;;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소아성애자 남자가 케니도 자기와 똑같은 부류인 줄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케니는 하루종일 협박받으며 은행을 터는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이상한 인간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에 거부감과 수치심을 느껴서, 자신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나 하며 우는 줄로만 알았다.

 

  극한 상황에 몰린 케니는 은행 강도짓을 할 때 썼던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권총에는 총알이 없다.  자살에도 실패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케니에게 남자가 달려들고, 이내 두 사람은 흙바닥을 구르며 격렬하게 싸운다.  그리고 해커는 드론을 통해 싸움을 구경한다.

 

  장면이 바뀌어, 어둑어둑한 밤에 헥터가 집으로 돌아온다.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어린 딸을 보는 헥터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한 번의 일탈로 가정을 깨뜨릴 뻔한 것에 대한 후회, 귀엽고 소중한 딸을 잃을 뻔 했다가 겨우 그 일을 피했다는 안도감 등등.  

  그런데 해커에게서 문자가 온다.  확인해 보니 비웃음을 짓는 얼굴 모양의 이모티콘만 있다.  헥터는 자신을 부려먹은 해커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조롱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한숨을 내쉬며 부부 침실 문을 여는데...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던 아내가 분노의 눈빛으로 헥터를 돌아본다.  결국 해커는 헥터와 민디 사이에 오간 음란한 사진과 채팅 내용을 유출한 것이다...!  그 일을 막으려고 조바심 내며 동분서주했던 헥터는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잠깐 나온 후 다시는 등장하지 않아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잊고 있었던 의문의 여자...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키를 바퀴 쪽에 숨겼던 그 여자는 알고보니 잘 나가는 회사의 CEO였다.  여자가 회사에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자 알림 소리가 울린다.  휴대폰을 보니 역시 비웃음의 얼굴 이모티콘이 떠있다.  그리고 카메라가 비쳐주는 모니터에는 이 CEO가 이메일에 충격적인 인종차별적 내용을 썼다는 기사가 떠있다.

  사실 이 여자의 경우는 좀 뜬금없다.  해커에게 협박받은 다른 이들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혹은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다가 약점을 잡혔다.  그런데 이 여자만 난데없이 인종차별 문제로 협박당했다.

 

  또한 케니에게 케이크 상자를 전해주었던 오토바이를 탄 남자도 비웃음의 얼굴 이모티콘을 받는다.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당신이 정말 그런 인간이야?  더럽고 역겨운 변태야?" 라고 흥분해서 따진다.  남자의 부모(혹은 장인, 장모)로 보이는 사람들도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 남자의 가정도 헥터의 가정처럼 곧 깨질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케니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다리를 절며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불편한 몸을 느리게 움직여 겨우 전화를 받았더니 흥분해서 울부짖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짓을 한 거니, 케니!  사람들이 그러는데 애들이라며?  애들을 보며 그런 짓을 하다니...  린지(케니의 여동생)도 봤어.  네 동영상이 떠돌아다닌다고!   린지 친구들도 다 봤어!  애들이라니, 케니!  제발 아니라고 말 좀 해 봐!"  눈물을 흘리며 듣던 케니가 차마 더는 못 듣고 전화를 끊는다.  그 때 문자 알림 소리가 들린다.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받은 비웃음의 이모티콘이 보인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케니의 얼굴에 불빛들이 쏟아진다.  어느새 경찰자가 몇 대나 케니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은행 강도를 체포하러 온 경찰들이다. 

 

 

 

  기타

 

  나는 아무래도 둔탱이 시청자인 모양이다. -.-;;

  다른 사람들은 소아성애자 남자가 하는 말에서 케니도 소아성애자였다는 걸 눈치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까맣게 몰랐다.  엄마가 케니에게 전화해서 울부짖으며 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케니의 정체를 알았다.

 

  케니가 소아성애자란 사실을 알고나면 드라마를 보며 가졌던 의문이 풀린다.

  헥터가 어처구니 없게 생각했던 것처럼, 평범한 자위 동영상 정도로 해커에게 그만큼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케니가 노트북으로 보았던 것이 그저 야한 사진이 아니라 '어린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사진' 이었다고 하면, 케니가 왜 그렇게 벌벌 떨며 해커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는지 이해가 간다.

  평범한 자위 동영상이 유출된다면 비록 수치스럽기는 해도 케니는 엄연히 '범죄 피해자' 의 신분이 된다.  하지만 소아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유출되면 '범죄자 + 변태' 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케니가 식당에 온 꼬마 여자 손님을 무척 친절히 대했던 장면의 의미도 뒤집어진다.

  그 장면을 처음 볼 때에는 케니가 아이들에게 무척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본 후에 그 장면을 다시 보면, 겨우 유치원 다닐 법한 소녀를 보는 케니의 '끈적한' 눈빛에 소름이 끼친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    

 

  이 에피소드를 보고나면 마지막 반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찜찜함도 느껴진다.

  해커에게 협박받은 이들이 알고보니 인격이나 성품에 큰 흠이 있고 장차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들이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해커의 행동을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훌륭한 행동' 이라고 마냥 통쾌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헥터가 만나려 했던 민디가 내 추측대로 해커가 만들어 낸 가공인물이라면, 헥터가 아내를 두고 옆길로 샜던 것은 해커의 부추김에 의한 것이다.  물론 헥터의 마음 속에 외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마음을 품었다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경찰로 치자면 일종의 함정수사를 벌인 게 아닌지...

  그리고 케니를 은행 강도로 나서게 한 것도 심했다.  물론 영국 등 서구권에서는 아동 포르노물을 보거나 소지하는 게 심각한 범죄이고, 법률 문제를 떠나서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분명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케니가 소아성애자라는 사실을 어떤 경로로든 경찰에 알리면 될 일이지, 굳이 은행 강도짓에 나서게 할 건 뭔가...

 

  '벌 받을 만한 인간들이 벌을 받았다' 라고 보기에는 뒤끝이 찜찜하다.

  물론 불쌍한 피해자로만 보였던 케니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는 반전은 최고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 에피소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첫째, 형제자매 혹은 지인의 컴퓨터에 이상한 것을 설치하지 말자.

  동생이나 룸메이트가 허락도 없이 컴퓨터를 써서 싸움낫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나마 곱게 쓰고 돌려주기나 하면 다행이다.  자기 것도 아닌 컴퓨터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깔아놓거나 설정을 바꾸어놓아서, 이미 화가 난 컴퓨터 주인을 아예 뒷목 잡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정작 남이 자기 컴퓨터 마음대로 건드리면 펄펄 뛰며 화를 낸다는... -.-;;)

  케니의 여동생이 의도한 바는 결코 아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케니의 여동생이 오빠 노트북에 이상한 프로그램을 깔아서 노트북이 망가졌던 게 모든 일의 시작이다.  어쩌면 케니는 감옥에 들어가서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고 있을 지도 모른다. -.-;;

 

 

   둘째, 아무 프로그램이나 컴퓨터에 설치하지 말자.  

  케니의 상황이야 극단적이긴 했지만, 정체불명의 무료 프로그램이란 것이 원래 위험하기는 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공짜라는 이유로 함부로 다운받아 설치했다가 컴퓨터가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라면 일단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용평을 살펴본 후에 설치하는 게 안전하다.

 

  셋째, 개인정보 유출로 누군가에게 약점을 잡히게 된 경우에는 정공법으로 해결하자.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을 보면, 소위 일진이란 것들이 다른 학생의 옷을 벗겨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은 후에 그걸 빌미삼아 돈을 뜯어내거나 성매매까지 강요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철없는 애들이 채팅앱을 쓰며 아무 생각없이 상대방이 요구하는 대로, 혹은 성인 커플끼리 장난이랍시고, 옷을 벗거나 야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주고받았다가 그 사진으로 협박당하는 경우도 있다.

  창피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하는 게 최선이다.  미성년자라면 혼날 것 두려워말고 부모님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고...  당장 겪을 수치심이 두려워 상대방의 협박에 질질 끌려다니다 보면 더 큰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  상대방 말대로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나?  애초에 그 정도의 신의(?)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남을 협박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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