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배틀스타 갤럭티카(Battlestar Galactica)

Lesley 2017. 10. 14. 00:01

 

 

 

 

 

 

 

  이번 포스트에서 소개할 작품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했던 미드 '배틀스타 갤럭티카(Battlestar Galactica)' 다.

  종영하고 10년이 되어가는 드라마에 대해 뒷북(!) 감상문을 쓰게 된 계기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는 원래 추석 연휴 후에 개봉하기로 되어 있다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휴 중에 유료(!) 시사회라는 명목으로 상영했다.  이 영화는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지능 및 감정을 가진 인공체들이 창조주인 인간에게 대항한다' 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소재를 다루었던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떠올라서 오래간만에 다시 봤다. (시간 관계상 다 보지는 못 하고 일부만 골라서 봤지만...)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주요 등장인물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인물들과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음.

 

 

 

  ◎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특징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다른 SF물과는 다른 무척 독특한 작품이다.

 

  첫째, 아주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보통의 SF물은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 미래라는 게 수십 년 후든 수백 년 후든 간에, 그리고 그 미래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상황이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시대적 배경은 거꾸로 과거,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5만년(!) 전이나 되는 아득한 과거다.  그 먼 옛날에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12개의 행성에서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와서 원시 상태였던 지구의 원주민들과 공존하게 되었고, 이 외계종족과 지구의 원주민 사이의 혼혈 후손이 바로 지금 지구에 사는 우리라는 설정이다.

 

  둘째, 기본적인 장르는 SF물이지만 정치물이나 사회물로 볼 요소도 충분하다.

  대부분의 SF물은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쪽에만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지능을 가진 기계들의 반란이라는 과학기술의 위험성 말고도 다양한 면을 다룬다.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군대를 최우선시 하려는 함장과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려는 대통령, 인류가 멸종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 속에서도 노선 차이를 극복 못 하고 아군 지휘부끼리 암살하려는 음모와 부정선거 및 쿠데타 기도,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다가 정치적.외교적인 이유로 희생당하는 군인, 적군에게 협력한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법과 정의와 복수 사이의 미묘한 문제, 출신지역이나 직업에 따른 차별 문제, 인간 세계의 멸망으로 생활수준이 저하되자 생존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생겨나는 조직폭력배나 매춘부 등등.  시간적 배경이 아주 먼 옛날이고 공간적 배경이 우주 한복판일 뿐, 현재의 지구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이 이 드라마 안에 다 들어가 있다.

 

  셋째, 인공지능과 핵무기를 소재로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멸망의 길로 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이 드라마 속 인간들은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사일런이라는 로보트를 발명했지만, 사일런이 지능을 갖게 되면서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터전은 사일런의 핵공격으로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똑같은 비극이 장소와 시대를 불문하고 되풀이 된다.  드라마 속 인류의 조상들이 원래 살았던 행성을 버리고 12 콜로니(드라마 속 인물들이 살던 세계)로 이주했던 이유도, 인간과 인공지능을 가진 로보트 사이에 핵전쟁이 벌어져 고향별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후손인 드라마 속 인물들도 같은 일을 겪는다.  그리고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지구(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아님.)를 찾아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더니, 지구에서도 이미 같은 일이 일어나 방사능 오염으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상태였다.  다시 어찌어찌 하여 지금의 지구에 도착해서 지구 원주민들과 공존하게 되는데,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는 현재의 지구 모습이 나오면서 또 다시 인공지능을 가진 로보트와 핵전쟁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 12 콜로니의 건설 / 사일런 전쟁

 

  이 드라마 속 인류는 '12 콜로니' 라는 하는, 우리의 태양계 비슷한 12개의 행성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 살고 있다.

  신화와 역사가 뒤범벅된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12 콜로니의 조상들은 처음부터 12 콜로니에서 살았던 게 아니라 아주 먼 우주의 어떤 별에서 이주한 12개의 부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고향별을 떠나 오래 여행한 끝에 12개 행성에 각각 정착해서 12 콜로니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12개 행성끼리 전쟁을 벌이다가, 마침내 12개 행성이 통합되어 대통령제의 연방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고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로 '사일런' 이라는 로보트를 만들어 냈다.  사일런 덕분에 인간은 힘들고 위험한 육체노동에서 해방되어 편히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사일런이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

  처음에 사일런은  단순한 기계였을 뿐인데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더 정교해지더니 마침내 인간처럼 지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간에게 도구로 이용되는 상황에 불만을 품게 되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무서움.)  이 전쟁은 10년 넘게 지속되었고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던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갑자기 전쟁이 끝났다.  전쟁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던 사일런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전을 선언한 것이다.  인류는 어째서 사일런이 갑자기 전쟁을 멈춘 것인지 알지 못 했지만, 어찌되었거나 끔찍한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드라마는 사일런 전쟁이 끝나고 40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12 콜로니는 전후복구를 거쳐 다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전쟁으로 줄어들었던 인구도 500억명으로 늘어났다. (500억명이라면 어마어마하게 생각되지만, 우리 지구의 인구가 70억명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12개 행성의 인구가 500억명인 것은 특별히 많다고 할 수 없음.)

 

  하지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

  사일런 전쟁이 끝날 때 인류와 사일런은 정전조약을 맺었다.  정전조약에 따르면, 인류의 영역과 사일런의 영역 중간지점에 우주 정거장을 만들어 1년에 한 번씩 양쪽의 대표자가 거기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시 전쟁이 나지 않도록 일종의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인간 측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사일런은 정전조약을 따르지 않았다.  12 콜로니 측에서는 매년 정해진 날짜에 우주 정거장으로 대표자를 파견했지만, 사일런 측에서는 단 한 번도 대표자를 파견하지 않았다.  40년 동안이나 사일런의 그림자도 못 보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사일런이 어디론가 떠나버렸겠거니 하면서 그 존재나 위험성을 잊게 되었다.

 

 

 

  ◎ 다시 시작된 전쟁 / 12 콜로니의 멸망

 

  그런데 사일런이 40년만에 갑자기 나타나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이번에 인간들이 겪은 피해는 40년 전 사일런 전쟁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치명적이다.  사일런 전쟁 때에는 인류가 고전하기는 했어도 10년 넘게 버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쟁이 시작되고 몇 분 만에(몇 시간도 아니고 겨우 몇 분만에...!) 12 콜로니의 군대 대부분이 괴멸하고 만다.

  12 콜로니의 대통령은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뜻을 사일런 측에 전한다.  어차피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더는 대항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목숨이라도 살리고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일런은 인류의 멸종만을 바라는 것처럼, 무조건 항복 선언을 완전히 무시한 채 계속해서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다.  12 콜로니 여기저기에 핵폭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조차 점령군인 사일런에게 학살당하거나 끔찍한 생체실험 대상으로 이용된다.

 

  12 콜로니가 반격 한 번 못 하고 어처구니 없이 멸망한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사일런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12 콜로니 국방부는 새로운 방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12 콜로니 군대는 옛날 사일런 전쟁 때 사일런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이버 공격을 퍼붓는 것 때문에 고전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 뛰어난 과학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군대의 주력인 '배틀스타(수천 명의 군인과 수십 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대형 우주전함)' 를 네트워크 없이 운용했다. (그 밖에도 유선 전화를 쓰고 종이서류로 보고를 하고 결제를 하는 등 최첨단 기술을 가급적 안 씀.)

  하지만 오랫동안 사일런을 못 보게 되자 일반인은 물론이고 국방부조차 경계심이 무뎌졌다.  그래서 편리함과 효율성을 위해, 배틀스타를 포함한 군대 전체의 시스템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방어 시스템 설계를 맡은 사람이 '가이우스 발타' 라는 천재 과학자다.

  그런데 어떤 방위산업체의 로비스트 정도 되는 여자가 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발타에게 접근한다.  발타는 능력은 대단하지만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성격이다.  그래서 아무 거리낌 없이 이 여자를 가까이 하게 된다.  더구나 이 여자는 머리까지 비상해서 방어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즉, 발타는 사기업의 로비스트가 국방부 방어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음...! -0-;;)  근사한 여자와 마음껏 즐기면서 어려운 방어 시스템 설계 작업에 도움까지 받으니, 발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상황이다.

 

 

 

가이우스 발타와 팜므파탈 느낌의 로비스트.

(그런데 정말 팜므파탈이었음.

발타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문제는, 이 여자가 단순한 로비스트가 아니라 사일런이라는 사실이다...!!!

  사일런 전쟁 때만 해도 사일런이 인간처럼 지능을 갖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 겉모습은 분명히 기계였다.  그런데 우주 어디론가 사라졌던 40년의 세월 동안 기술을 엄청나게 발전시켜서, 이제는 외모만 봐서는 도저히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아진 것이다...!  (다만, 모든 사일런이 인간형인 것은 아니고 일부 지도자급 사일런만 인간형임.)

 

  발타가 '넘버 6(로비스트로 위장한 사일런)' 에게 푹 빠져 희희낙락한 결과,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넘버 6는 발타와 사귀면서 12 콜로니의 주요 군사정보를 빼낸 것은 물론이고, 발타가 새로 개발한 방어 시스템에 백도어 프로그램까지 설치한다.  사일런은 다시 전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 백도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12 콜로니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한다.  원래는 독립되어 있던 각 배틀스타 시스템이 새로운 방어 시스템에 따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라, 순식간에 배틀스타들의 시스템이 마비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배틀스타가 반격은 고사하고 후퇴조차 하지 못 한 채, 전쟁이 시작되고 몇 분 만에 전멸해버린 것이다.

  방위산업의 주요 관계자가 방위산업체의 로비에 흔들리면, 최악의 경우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툭하면 무기수입 등 방위산업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우리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함. -.-;;)

 

 

 

  ◎ 극소수의 생존자 / 정처 없는 유랑의 시작 

    

  12 콜로니가 멸망한 와중에 일부 사람들이 기적처럼 살아남는다.

 

  생존자의 중심은 드라마의 제목에 나오는 배틀스타 '갤럭티카 호' 와 그 승무원들이다.

  정말 공교롭게도 12 콜로니가 멸망하던 날이 오래되어 낡은 갤럭티카 호의 퇴역일이었다.  동시에 갤럭티카 호의 함장 '윌리엄 아다마' 의 전역일이기도 했다.  아다마는 젊은 시절에 사일런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네트워크 중심의 새로운 방어 시스템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퇴역하는 갤럭티카에도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어차피 자신은 곧 전역하니 자신이 전역한 후에나 설치하라면서 명령을 무시했다.

  아다마의 작은 반항(?) 덕분에 갤럭티카 호의 주요 시스템은 마비되지 않았고, 다른 배틀스타들이 사일런에게 산산조각 나는 동안 대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좋게도 갤럭티카 호 근처에 있던 몇몇 민간 우주선도, 갤럭티카 호의 보호와 인도로 함께 대피했다.

 

  갤럭티카 호의 군인과 민간 우주선의 민간인을 전부 합쳐봐야 5만 명을 밑돈다.

  12개의 행성에도 사일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거나 숨은 생존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훗날 그 중 일부는 갤럭티카 호에서 파견한 구조대에게 구출되지만 나머지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  점령군인 사일런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거나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또한 사일런에게 잡히지 않더라도, 행성이 핵폭탄 때문에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람이 생존하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결국, 500억 명이나 되었던 12 콜로니의 인구 중 생존자는 갤럭티카 호 및 민간 우주선에 탑승한 약 5만 명이 전부인 셈이다.  즉, 생존율이 0.001% 정도 밖에 안 된다. (다만, 나중에 '페가수스 호' 라는 또 다른 배틀스타도 무사하다는 게 밝혀져서 생존자 숫자가 다소 늘어남.  하지만 이 포스트에서 그 이야기는 생략하겠음.)

 

  한편, 원래 교육부 장관이었던 '로라 로슬린' 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2 콜로니 정부에는 약 50명의 장관이 있었다.  그런데  12 콜로니가 사일런의 핵공격으로 멸망할 때 대통령과 부통령은 물론이고, 로슬린을 제외한 장관들 모두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대통령의 유고 시 대통령직 계승순위 43위 밖에 안 되는 하위급(?) 장관인 로슬린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이다. (만일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때 북한의 음모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직 계승순위가 한참 아래인 장관이 별안간 대통령이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부 요인 중 로슬린만 살아남은 이유는, 사일런의 공격이 있던 때에 로슬린이 12 콜로니의 수도인 파프리카에 있지 않고 갤럭티카 호에 있었기 때문이다.  갤럭티카 호는 퇴역 후 학생들을 위한 역사 박물관으로 이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교육부 장관 로슬린이 갤럭티카 호의 퇴역식에 참석한 것이다.  갤럭티카 호 퇴역식 참석은 교육부 장관이 수행하는 수많은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 일로 목숨을 건지고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을 이끌 대통령이 되었으니 행운인지 불행인지... 

 

 

 

마지막 인류를 이끄는 두 지도자.

윌리엄 아다마 함장과 로라 로슬린 대통령.

 

 

  유랑 생활 초기에 아다마 함장과 로슬린 대통령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아다마가 보기에 로슬린은 사태파악을 전혀 못 하는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인류의 99% 이상이 죽어버렸고 극소수의 생존자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사일런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국이다.  그런데 로슬린이 민주주의니 헌법이니 하는 걸 내세우며 설교하는 걸 들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아다마 뿐 아니라 상당수 군인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군사업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에 불만을 갖거나 걱정한다. (오죽하면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인데 학교 선생이나 하던 여자에게 명령을 받아야 하나?" 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임.)

  반대로 로슬린이 보기에는 아다마로 대표되는 군부의 행보가 위험하다.  초비상사태라서 불가피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게 군대와 전투 위주로만 행해지면서 생존자들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을 정복하는 건 무력으로 할 수 있지만 세상을 다스리는 건 무력으로 할 수 없다.  인간은 먹고 자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사일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갤럭티카 호의 주요 승무원들이 사일런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연달아 밝혀진다...!!!

  당연히 그들은 모두 인간형 사일런이다.  겉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장기나 혈액까지도 인간과 흡사해서 그 동안 인간 행세를 하는 게 가능했다.  그들 중 일부는 작정하고 인간들 사이에 스파이로 잠입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자신들이 사일런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지냈다.

  후자의 경우는 거짓 기억이 이식된 채로 인간 세상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일런에게 적의를 품고 싸웠다.  이런 사일런의 경우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후 정체성 혼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등을 겪게 된다. 

 

  갤럭티카 호의 전투기 조종사인 '샤론 발레리(한국팬들 사이에서는 한국계 배우인 그레이스 박이 맡은 역으로 유명함.)' 중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샤론은 평소에는 인간으로 행동하다가, 특정 신호에 의해 사일런으로서의 인격으로 각성해서 갤럭티카 호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공작활동을 수행한다.  공작활동이 끝나면 다시 인간으로서의 인격으로 돌아가는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을 못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으로서의 인격은 자신 말고도 또 다른 인격이 있음을 눈치채고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또한 사일런으로서의 인격은 오랜 인간 생활로 갤럭티카 호의 전우들에게 정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과 회의감을 품게 된다.

  결국에는 만인 앞에서 충격적이고 기묘한 방식으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샤론이 위험한 임무를 완수하고 갤럭티카 호로 귀환하자, 동료들이 모여들어 박수치며 축하해주고 아다마 함장도 기뻐하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순간 샤론이 사일런의 인격으로 변하면서 바로 앞에 선 아다마의 가슴에 총을 쏜다.  그리고 스스로가 방금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 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체포된다. 

 

 

 

샤론 발레리.

알고 보니 인간형 사일런 넘버 8...!

 

 

  그리고 인간형 사일런도 기계형 사일런처럼 같은 모델이 여러 명 존재한다.

  동일한 모델이라도 겉모습만 쌍둥이처럼 같을 뿐 성격은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기억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서로의 기억을 다운로드해서 공유하기도 한다.  

  인간형 사일런은 모델별로 숫자가 붙는데, 예를 들자면 샤론 발레리는 그 중 '넘버 8' 에 속한다.  그리고 또 다른 넘버 8은 인간 남자를 유혹해 인간과 사일런 사이에 아이를 낳는 게 가능한 지 알아보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그 넘버 8이 인간 남자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어 아예 인간 쪽으로 돌아서게 된다.  정작 사일런으로 완전히 각성한 후에도 인간으로 남고 싶어하던 샤론은 몇몇 사건으로 인간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절망하여, 다른 사일런들과 함께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넘버 8과 더불어 가장 유명하고 많이 등장한 인간형 사일런이 '넘버 6' 이다.  앞부분에서 설명했던, 방위산업체의 로비스트로 위장해서 가이우스 발터를 유혹해 12 콜로니의 방어 시스템을 무너뜨린 여자가 넘버 6 중의 한 명이다.  이 넘버 6 말고도 다른 여러 넘버 6이 번갈아가며 등장해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또한 놀랍게도 사일런은, 중저가기종(!)인 기계형이든 고가기종(!)인 인간형이든 모두 부활할 수 있다.

  사일런 측에는 '부활선' 이라는 특수함선이 있다.  사일런이 죽을 때 부활선에서 일정 거리 내에 있기만 하면, 사일런의 육체는 죽어도 인격과 기억은 부활선으로 다운로드(!) 되어 원래 모습과 똑같은 새로운 육체에 이식되어 부활한다.  아다마 함장의 암살 미수범으로 체포된 샤론이 분노한 동료(물론 사일런 동료 말고 갤럭티카 호의 인간 동료)에게 살해당했을 때도, 근처에 부활선이 있었기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

 

  부활선 덕분에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도 사일런은 이상하리만큼 '생식' 에 집착한다.

  단순히 동족을 많이 퍼뜨리려는 목적이라면, 죽은 사일런을 부활선을 이용해서 최대한 재활용(?)하고 새로운 사일런을 대량생산(!)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일런은 인간처럼 자연생식을 하고 싶어한다.  사일런의 종교에 자손을 퍼뜨려 번성하라는 가르침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기독교의 성경 표절? ^^;;), 창조주인 인간과 완전히 동등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거나 생식에 대한 사일런의 강한 욕망 때문에 생포된 인간들은 끔찍한 생체실험을 겪게 된다.  멸망한 12 콜로니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은 사일런에게 붙잡혀 사일런의 아이를 낳기 위한 생체실험에 이용된다.  또한 전투 중 붙잡힌 군인들도 남녀 불문하고 역시 생체실험 대상이 된다.

   

  사일런에 대해서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사일런의 종교이다.

  사일런에게 종교가 있다니 무척 기묘한 일이다.  사일런에게 지능이 있어서 인간 같은 자아의식과 감정을 지녔다고는 해도, 분명히 이들은 기계이거나 혹은 기계에서 시작된 존재다.  그런데 기계가 신을 믿고 기도를 하다니...  심지어 자살을 죄악시하는 교리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도 자살을 하지 못 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사일런의 종교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들이 믿던 종교 중 하나가 어떤 사정으로 사일런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사일런의 지도층이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낸 종교인 것인지...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인간들이 다신교를 믿는데 비해 사일런들은 일신교를 믿는다는 사실이다.

  12 콜로니의 인간들이 믿는 다신교 속 신의 이름을 보면 제우스, 헤라, 아폴로, 아르테미스, 아레스 등이다.  드라마 제작진이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베껴온 듯 하다. ^^;;  물론 이 드라마 속 설정대로라면 12 콜로니의 인간들은 지금 지구인의 조상이 되니, 12 콜로니 시절의 종교가 먼 후손들에게 전해내려왔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그에 비해 사일런들은 기독교와 비슷해 보이는 일신교를 믿는다.  그래서 인간들이 믿는 여러 신을 거짓 신 또는 우상으로 치부하고,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진정한 신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사일런은 자신들이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점에 열등감을 품고, 인간과의 차별성을 위해서 혹은 인간보다 우월함을 주장하기 위해서 인간의 종교와는 다른 일신교를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 갈등 속의 협력 / 절망 속의 희망

 

  시간이 흐르면서 로슬린 대통령의 우려가 대책없는 책상물림의 아우성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생존자들 모두 '인류의 생존' 그 자체에만 신경쓰느라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일런의 추격을 피해 오랜 기간 우주를 기약도 없이 떠돌게 되면서 모두가 지쳐버린다.  그러자 군인과 민간인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같은 군인 사이에서도, 온갖 종류의 갈등이 터져나온다.

  왜 안 그렇겠는가...  삶의 터전인 12 콜로니가 멸망했으니 어쩌면 죽는 날까지 우주를 떠돌며 우주선 안에서만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리 피난 준비를 단단히 해서 우주선에 탄 것도 아니고, 각자 볼일이 있어서 우주선에 탔다가 난데없이 전쟁을 맞았으니 모든 게 부족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도 당장의 상황이 힘든 것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지만, 그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을 품게 된다.

 

  일단, 군인들이 모든 면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생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인들이 큰 불만을 갖게 된다.

  군부 입장에서 보자면야 목숨을 걸고 사일런과 싸우는 군인들이 우대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는 상황이라(후방인 12 콜로니는 멸망해 버렸고 민간인 우주선도 갤럭티카 호와 함께 움직이며 수시로 사일런의 공격을 받고 있으니...) 민간인이 군인보다 특별히 더 안전하다거나 편안하게 지낸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군인들만 특별취급 받으니 민간인들의 불만이 나날이 치솟는다.

  결국 물자부족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법행위가 싹트게 된다.  얼마 안 되는 물자를 더 차지하고자, 남자 중에서는 범죄조직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여자 중에서는 몸을 파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군부는 범죄조직과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심하지만, 결국에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불법행위를 묵인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군대 내부에서도 전투병과 비전투병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전투기 조종사는 사일런과의 전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수인데다가 전사할 경우 보충하기도 곤란하다. (갤럭티카 호의 승무원을 제외하면 군대가 전멸해버렸는데 어디에서 인원을 보충하겠는가...)  그래서 전투기 조종사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전투에서 이기고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전투 이외의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받는다. (물론 상대적으로 배려받는 것일 뿐, 어차피 전시 상황이라 전투기 조종사들도 힘들고 피곤한 나날을 보내는 중임.) 

  하지만 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군인들은 도무지 쉴 수가 없다.  전투 중에는 사일런의 공격으로 엉망이 된 함선을 수리해야 하고, 전투가 끝나면 전투에 나섰던 전투기들을 수리해야 한다.  낮으로 일하다 보니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건 물론이고, 자신들이 조종사들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3D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상황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우주를 떠돌며 전쟁을 계속하는 상황이다 보니 학교 같은 제도권 교육이 제 기능을 할 리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능력과 적성에 상관없이 부모 곁에서 부모의 일을 배우다가 그 일을 물려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가에 따라 자식들의 직업도 정해지는, 이른바 신분의 고착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아다마 함장과 로슬린 대통령이 서로를 이해하고 돕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입장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지만,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얼마 안 남은 인류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살려야 한다는 의무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차츰 상대방의 됨됨이와 능력을 인정하게 되고 협력하게 된다. (심지어 드라마 후반부에서는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함...!)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 후로도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종종 의견 대립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방에게 믿음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협력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아다마는 사일런과의 전쟁이라는 대외적인 문제를 맡고, 로슬린은 내부의 갈등을 조절하고 안정시키는 임무를 맡아, 절망에 빠진 생존자들을 희망의 길로 이끈다.

 

 

 

  ◎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문제들

 

  물론, 아다마 함장과 로슬린 대통령이 손을 잡았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외부에서는 여전히 사일런이 끈질기게 따라붙어 공격을 퍼붓는데, 내부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문제가 터져나온다.  그나마 위에서 언급한 물자보급 문제나 차별대우 문제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억지로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대든 위기의 시대든 간에 편을 가르고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지, 별의별 기막힌 일이 다 생긴다.  그야말로 인간 군상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굵직한 몇몇 사건만 언급하더라도 엄청나다.

 

  일단, 로슬린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 네거티브 선거운동과 부정행위가 판을 치게 된다.

  인류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 조만간 멸종하느냐 하는 판국에도 부정선거라니...  특히, 그 전까지는 민주주의의 수호자 같은 역할을 하던 로슬린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하직원의 개표조작을 묵인하는 행태를 보이는 게 충격적이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로슬린이 마냥 선하고 정의롭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권모술수로 쓸 줄 알고 독단적이거나 냉혹한 결정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난다.

 

  또한, 사일런과의 평화협상 혹은 항복을 주장하는 무리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분열하게 된다.

  누구는 극단적인 도덕심을 내세우며, 애초에 인간이 사일런을 노예로 부린 게 전쟁의 원인이었으니 사일런과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누구는 현실적으로 사일런을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생존을 위해 항복하자고 한다.

  그리고 오랜 방랑에 지쳐 무리해가면서 어떤 별에 정착하는데, 그만 그 별이 사일런의 공격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그 때도 한쪽에서는 사일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조직을 만들어 목숨걸고 싸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사일런에 빌붙어 동족을 배반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나중에 그 별에서 탈출한 후 사일런에게 협력했던 자들을 색출해서 처단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합법과 불법을 나누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정의를 위한 처벌이며 어디서부터가 복수를 위한 처벌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진다.     

 

  나중에는 하다하다 쿠데타(!)까지 일어난다...!

  먼저, 사일런이 인간을 전멸시키자는 강경파와 인간과 공존하자는 온건파로 나뉘어져 내분을 겪게 된다.  그러자 인간들도 생존을 위해 온건파 사일런과 협력하자는 편과, 모든 사일런은 적이니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편으로 나뉘어져 갈등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갈등을 극복 못 하고 결국에는 쿠데타라는 극단적인 사태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쿠데타에 가담한 사람이라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쿠데타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진정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가담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다마 함장과 함께 인류를 이끄는 한 축이었던 로슬린 대통령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진다.

  항상 민주주의, 헌법, 인권을 내세우며 생존자들을 감싸고 단합시키려 애썼던 로슬린이 난데없이 종교에 심취한다.  환영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네 어쩌네 하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실 로슬린은 12 콜로니의 멸망이 있기 얼마 전에 의사에게서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갤럭티카 호의 퇴역식에 참석한 후 교육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갤럭티카 호 퇴역식이 있던 날 전쟁이 시작되어 얼마 안 남은 삶을 조용히 정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후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부 요인으로서, 생존자들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에만 매달려 살았다.  하지만 암 때문에 고통이 점점 심해지자 민간요법에 의존하다가 종교적인 환상을 몇 번 경험하고 광신적인 예언자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엎친 데 겹친다고 '카라 트레이스' 중위(나중에는 대위로 승진함.)까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카라 트레이스는 뛰어난 실력(그리고 어지간한 남자 대여섯 명은 간단히 이길만한 육두문자와 거친 행동... -.-;;)을 갖춘 전투기 조종사다.  그리고 몇 년 전 사망한 아다마 함장의 둘째 아들과는 연인 사이였다. (그런데 아다마 함장의 첫째 아들과는 우정과 사랑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관계라는 게 좀... -.-;;)  그래서 아다마는 카라를 유능한 부하로서도 아끼지만 동시에 친딸처럼 생각하며 각별히 대한다.

  그런 카라가 남들에게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로슬린 대통령의 상태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로슬린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일 때부터 심상치 않다 했더니만...  카라도 종교적 환상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의 뜻이 어떠니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놀랍게도 사망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오기까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중에 카라가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친한 동료였던 샤론 발레리 중위와는 다른 의미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자신이 인간인지 사일런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과, 자신이 산 사람인지 죽은 귀신인지를 혼란스러워 하는 것...  과연 어느 쪽이 더 힘들까?) 

 

 

 

카라 트레이스.

동료들에게 '스타벅' 이라는 콜사인으로 통함.

(스타벅... 우리나라에 많은 별다방... ^^)

 

 

 

  ◎ 새로운 안식처, 지구 /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되는가...

 

  사이비 종교 지도자처럼 변해가던 로슬린과 카라가, 끝에서는 인류의 구원자라는 게 밝혀진다.

  두 사람은 때때로 종교적인 환영을 보며 고대 기록에 나온 지구로 생존자들을 이끈다.  하지만 겨우 도착한 지구(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아님.)도 오래 전에 인간과 사일런과의 핵전쟁으로 멸망했음을 알고 좌절한다.  두 사람 뿐 아니라 지구에 도착하는 걸 유일한 희망으로 알고 힘든 상황을 견뎠던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여, 몇몇 사람은 자살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두 사람은 각자 고대 문서에 기록된 '인류를 새로운 땅으로 이끄는 여성 지도자' 및 '신의 사자' 역할을 맡아, 결국에는 인류의 새로운 안식처가 될 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별을 새로운 지구로 삼기로 한다. (이 별이 우리가 사는 지구, 즉 지금으로부터 15만 년 전의 지구임.)

 

  인류와 사일런(인간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온건파 사일런) 연합은 새로운 지구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먼저 고도로 발달된 과학으로 인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구까지 타고 왔던 갤럭티카 호 및 다른 여러 우주선 등 최첨단 기계를 전부 태양으로 보내 없애버린다.  그리고 함께 온 사일런 중에서 기계형 사일런에게는 따로 우주선을 내줘서 우주 어디론가로 떠나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인간형 사일런에게는 의복이나 식량 등 생존에 당장 필요한 약간의 물품만 지급한 후 지구 여러 대륙에 분산해 살게 한다.  대륙마다 여건이 많이 다를테니, 사람들을 분산 배치해야 누군가는 죽더라도 누군가는 생존하여 지구에 인류의 후손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지구로 이끈 두 사람은 지구에서 겨우 며칠 정도 밖에 살지 못 한다.

  암이 악화된 로슬린은 연인 사이가 된 아다마와 함께 소형 우주선을 타고 비행하며,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바라보다가 숨을 거둔다. (공중에서 로슬린이 내려다보는 대자연의 풍경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의 남녀 주인공이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상공에서 내려다 본 광경을 연상시킴.)

  그리고 카라 트레이스가 한 번 죽었음에도 살아났던 이유는 인류를 지구로 이끌기 위한 사명 때문이었다.  이제 그 사명이 끝났기에 마치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 후로 15만 년이 흐른 현대의 지구에,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의 화석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된다.

  이른바 '미토콘드리아 이브' 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여성은 현재 지구인 모두의 공통 조상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여성이 바로 12 콜로니의 인간 남자와 사일런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두 종족 사이에서 자연생식으로 태어난 유일한 아이였다.  즉, 현재의 지구인은 지구의 원주민, 12 콜로니의 인류, 사일런 등 세 종족의 후손인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미래가 마냥 밝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

  미토콘드리아 이브 소식이 알려진 시기(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87년이라고...)의 지구는, 그 옛날 12 콜로니의 인간과 사일런이 처음 지구에 도착했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발달한 상태다.  당시의 지구 원주민은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르고 벌거벗은 채 창으로 사냥을 하던 원시부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12 콜로니 시절처럼 눈부신 문명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인류는 또 다시 핵무기를 개발해냈고, 조만간 인공지능을 가진 로보트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내내 등장했던 천사(?)들은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수 있지 않느냐며 희망을 내비쳤지만, 어쩌면 지구도 12 콜로니, 12 콜로니 인류의 조상이 살았던 별, 또 다른 지구처럼 핵전쟁과 인공지능 로보트로 인해 멸망할 수도 있다.

 

 

 

  ◎  기타

 

  1. 이 드라마의 영상은 어두운 편이고, 때때로 비전문가가 가정용 캠코더로 촬영한 것처럼 위아래 혹은 양옆으로 흔들린다.

  이야기가 주로 어두운 우주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는 점, 꿈도 희망도 없는 암담한 상황, 위에서 설명한 몇몇 이유 때문에 갤럭티카 호가 최첨단 우주전함치고 아날로그적이라는 사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촬영한 듯하다. (설마 제작비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이유로 형편없는 카메라나 수전증 있는 촬영기사를 쓴 건 아니겠지... -.-;;)

 

  2. 이 드라마 최후의 승자(?)는 가이우스 발타 박사인 듯하다.

  애초에 12 콜로니가 멸망한 게 발타가 사일런 스파이에게 푹 빠져서 정신줄 놓은 탓이다. (물론 발타가 상대방의 정체를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드라마에 이런 캐릭터가 나온다면 결말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 발타는 정말 억수로(!) 운이 좋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사람들처럼 사일런의 핵공격 때 죽을 운명이었지만, 발타에게 접근했던 넘버 6가 핵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자기 몸으로 발타를 감싸줘서 목숨을 건졌다.  또한 카프리카 행성(12 콜로니의 중심 행성이며 발타가 살던 곳.)에 그대로 있었으면 사일런에게 죽거나 방사능 때문에 죽었을텐데, 기사도 정신 철철 넘치는 군인이 "앞으로 인류가 험난한 일을 겪을 텐데 나보다는 당신 같은 천재 과학자가 살아남아야 도움이 된다." 며 소형 우주선 자리를 양보해서 갤럭티카 호로 가게 된다. (발타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 군인이 알았더라면, 유일한 탈출로인 소형 우주선 좌석을 양보하기는 커녕 발타에게 총을 쏘지 않았을까...)

  그 후로는 갤럭티카 호에서 부통령으로 임명되었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사일런 점령군에게 협조한 일로 매국노로 처단될 듯 하더니만 아슬아슬하게 무죄 판결을 받고서는, 무슨 사이비 종교 비슷한 걸 만들어 자신을 추종하는 미모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살기도 하는 등 나름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끝에서는 지구에 도착해서 넘버 6와 함께 평화롭게 살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아니라 , 아예 우주 전체를 구하기라도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혹은 평생 착하게만 산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복받고 사는 게 아니고, 오히려 크나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한 마디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경우인 듯하기도 하고... -.-;;

 

  3. 아다마 함장이 갤럭티카 호 퇴역식에서 했던 연설이 이 드라마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파일럿 에피소드 2편으로 이루어진 시즌0의 첫번째 회차에서, 아다마 함장은 갤럭티카 호 퇴역 기념연설을 한다.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사일런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어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아마다 함장이  연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류는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어째서 스스로의 생존을 당연시 하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아다마는 젊은 시절에 사일런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사일런에 대한 적대감이 크다.  그런 아다마가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일런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멸종되지 않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째서 우리 인간들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탐욕, 원한, 질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도 우리의 모든 죄악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일런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신의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창조했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에게 대항하자, 그것은 절대로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우리는 신의 역할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한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저지른 짓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날이 닥칠 것입니다.

 

  현실 속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관계에도 적용될만한 내용인 듯하다.

  인간이 인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지구 환경을 파괴하여, 많은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멸종해버렸다.  우리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며 지구상 모든 생물보다 최우선의 위치에 두지만, 다른 동식물 입장에서 보자면 뻔뻔스러워도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울 수가 없다.  자기들 편하자고 많은 생물을 해친 주제에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심 갖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고, 또 어떤 동식물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최고라고 정해놓은 것도 기막힌 일이다.  이런 자부심 내지 오만함도 신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