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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포비아 -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소름끼치게 그려낸 영화

Lesley 2017. 9. 8. 00:01

 

 

 

 

  ※ 경고 : 이 영화의 반전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최근에 '소셜포비아' 라는 영화를 봤다.

  2014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인데 당시에는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인터넷의 폐해(무분별한 SNS 사용, 익명에 기댄 악플, 개인정보 유출, 마녀사냥 등)에 관한 글을 보던 중에 소셜포비아에 관해 알게 되었다.

  저예산영화지만 적절한 복선과 반전으로 완성도가 높고 주제의식도 뚜렷하다.  그리고 영화적인 과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실에서 정말로 벌어질 법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는 인터넷 사용의 여러 폐해가 복합적으로 나오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다 보니 스토리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지만, 그 폐해를 개별적으로 보자면 우리 일상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어느 날 그 폐해 중 두세 가지가 우연한 일로 혹은 누군가의 고의로 합쳐지게 된다면, 정말로 영화 속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사건의 시작 - 악플러 레나를 찾아서

 

  '지웅(변요한)''용민(이주승)' 은 노량진 학원가에서 살며 경찰시험을 준비하다가 친구가 된 사이다.

  그 중에서도 지웅은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 없이 생활할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용민과 다른 사람들이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떠들어 대는 것을 보게 된다.  스마트폰이 없는 지웅이 무슨 일이냐고 궁금해 하는데...

 

  알고 보니 '레나' 라는 ID를 쓰는 트위터 사용자가 인터넷상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어떤 군인이 탈영해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레나가 트위터에 그 군인에 대한 악플을 남긴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그것도 군내 가혹행위로 죽었을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비속어 섞어가며 악담을 했으니, 누가 봐도 심한 짓이다.  그러니 분노한 네티즌들이 레나의 트위터에 비난의 글을 단다.  하지만 레나는 자제하기는 커녕 점점 더 심한 악플을 달며 모든 이를 적으로 만든다.

  더구나 악플 중에는 모든 남자를 싸잡아 멸시하고 비난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즉, 레나라는 사람은 남성혐오 성향을 가진 여성 네티즌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남성 네티즌들이 특히 분노하게 되고 급기야 몇몇 네티즌이 소위 신상털기(!)에 나선다.  그래서 레나의 실명이 '민하영' 이라는 사실과 민하영의 연락처 및 주소 등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퍼진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질 경우 겁을 먹고, 진심이든 아니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며 사태를 무마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민하영은 작정하고 일을 크게 만들려는 것처럼 더욱 뻔뻔스럽게 나오며 네티즌들을 자극한다.


  그러자 '양게' 라는 인터넷 1인 방송인(즉,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BJ라고 하는 사람)이 이른바 현피(!)에 나서기로 한다.

  양게는 함께 현피 뜨러 갈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지웅은 별 관심 없지만 용민에게 이끌려 얼떨결에 가게 된다.  마침 그 날 경찰시험 1차에 합격한 걸 알았기 때문에, 들뜬 마음에 작은 일탈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양게, 지웅, 용민을 포함해서 젊은 남자 10명 정도로 이루어진 현피팀은, 양게의 노트북 웹캠으로 현피 상황을 인터넷에 생중계하면서 민하영의 집으로 간다.  현피팀이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민하영은 여전히 트위터에 어디 올테면 와봐라 식의 글을 올리며, 현피팀이나 현피 방송을 보는 네티즌들을 약올린다.  현피팀은 반은 못된 여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반은 신나는 모험이라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민하영 집으로 들어서는데... 

 

  민하영의 집에서 상상도 못 한 사태에 맞닥뜨리게 된다.
  현피팀이 본 것은 뻔뻔스럽고 독기 오른 민하영의 모습이 아니다.  목을 매고 죽은 민하영의 모습이다...!!!

 

 


  ◎ 민하영의 죽음 - 자살인가, 타살인가?

 

  현피팀 모두가 너무 놀라 얼어붙은 채 베란다 천장에 매달린 시신을 쳐다보기만 한다.

  그 와중에 지웅이 제일 먼저 정신차리고 용민에게 119에 전화하라고 말한다. (지웅은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중이라 전화를 할 수 없음.)  그러자 다른 사람들처럼 넋나간 표정으로 있던 용민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기는 하는데, 지웅이 시키는대로 119에 전화를 하는 게 아니라 트위터에 접속해서 급하게 무언가를 한다. 

 

  지웅 : (기가 막혀서 용민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으며) "뭐 해?" 
  용민 : (그런 지웅을 답답해하며 짜증내는) "아, 지워야 한다고, 아까 쓴 거...!"   
  다른 현피팀 사람들 : (용민의 말을 듣고 미처 생각 못 했던 것을 깨달은 표정으로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 정신없이 화면을 두드림.)
  지웅 : (그런 사람들을 아연한 표정으로 돌아봄.)

 

  정말 어처구니 없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애초에 현피팀이 민하영의 집을 찾아간 대의명분(?)이 '민하영이 자살한 군인을 악플로 모욕하고 조롱했다.' 는 것이다.  민하영이 죽은 군인에게 악플을 단 것은 사람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남자 여러 명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함부로 찾아가 위협하는 게 불법행위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접어두고, 적어도 네티즌 사이에서는 공감과 지지를 얻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민하영이 그러했듯이, 현피팀도 죽은 사람을 두고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다.  구급대나 경찰에 연락할 생각은 안 하고, 민하영의 자살에 대해 자신들이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까봐 그 동안 민하영의 트위터에 퍼부었던 악플을 지우느라 정신 없다.

 

  엎친 데 덮친다고 여기에서 일이 더 꼬인다.

  다들 뜻밖의 상황에 놀라서 미처 생각 못 했는데, 양게의 노트북 웹캠을 통해 민하영의 시신과 현피팀의 일거수 일투족이 생생히 방송되고 있었다...!  방송을 본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자, 현피팀은 기겁하며 너도 나도 도망친다.

  그러나 현피팀의 얼굴이 전부 인터넷 방송으로 나갔으니 뛰어봤자 벼룩이다.  모두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악플러를 처단하러 갔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악플로 다른 사람을 자살로 몰아넣은 꼴이 되었으니, 현피팀 모두 미칠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난처한 처지가 된 사람은 지웅이다.  어렵게 경찰시험 1차에 합격했는데, 시험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이번 일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지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웅은 별 생각없이 친구 용민이 이끄는대로 현피팀에 끼였던 것 뿐인데, 그 일로 앞길이 막히게 생겼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데 현피팀 내에서 민하영이 정말 자살한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처음에 그 의문을 제기한 현피팀 멤버는 두 가지 근거를 댄다.  일단 유서가 없다.  그리고 현피팀이 민하영 집에 들이닥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하영은 겁을 먹기는 커녕 오히려 현피팀을 도발하는 글을 연달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살을 하다니 이상하지 않나?

  그러자 용민도 현피 동영상을 살펴보다가 세탁기 소리가 녹음된 것을 발견하고, 민하영이 누군가에게 타살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는다.  자살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한다는 건 부자연스러우니까.

 

  원래 민하영을 처단하겠다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던 현피팀이, 우습게도 이제는 민하영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고 나선다.

  민하영의 집으로 다시 찾아가, 이미 깨끗이 정리된 집에서 뭔가 단서를 찾겠다고 애쓴다.  유독 이 일에 매달리는 용민은 인터넷에서 민하영 타살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라는 카페까지 만든다.  순식간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할 정도로, 민하영 타살설은 네티즌 사이에서 흥행(?)한다.

 

  현피팀이 경찰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면서 살인범을 잡겠다고 나선 것은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다.

  민하영이 죽은 후 현피팀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퍼져서 현피팀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 이 되어 버렸다.  지웅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웅이 다니는 경찰학원 사물함에 살인자라고 욕하는 종이가 붙는가 하면, 공부하느라 전원을 끄고 침대 밑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을 켜보니 비난의 문자가 200개도 넘게 들어와 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아마 다른 현피팀 멤버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하영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현피팀은 민하영을 자살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민하영을 죽인 건 살인범의 짓일 뿐, 현피팀의 악플이나 현피가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용민은 한 술 더 뜬다.

  민하영 타살설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웅에게, 살인범을 잡기만 하면 경찰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특채로 경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지웅 입장에서는 어렵게 공부해서 겨우 1차 관문 뚫은 게 물거품이 되게 생겼으니, 긴가민가 하면서도 살인범 잡기에 참여하게 된다. 

 

 

 

   민하영의 또 다른 모습 1 - 키보드 워리어 '베카'

 

  현피팀은 민하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알고 보니 민하영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싸움꾼, 즉 '키보드 워리어' 였다.  과거에 스타크래프트 관련 카페에서 '베카' 라는 닉네임을 쓰며 활동하던 유명인이었다.  말빨이 보통이 아닌데다가 성격까지 집요해서 여러 네티즌에게 싸움을 걸어 상대방을 짓밟았다.

  문제는, 단순히 인터넷상에서 댓글이나 채팅으로만 싸워서 이긴 게 아니라,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털어 약점을 잡아 인터넷에 퍼뜨리는 방법으로 이겼다는 점이다.  즉, 상대방이 인터넷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도무지 얼굴 들고 살 수 없게끔 철저히 무너뜨렸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현피팀이야 민하영이 타살되었다고 음모론을 펼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민하영의 사인은 악플과 신상정보 유출로 인한 자살이다.  그런데 그 민하영도 과거에 악플과 신상정보 유출로 타인을 공격하고 괴롭혔다.  민하영 때문에 인터넷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만신창이가 되었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민하영의 죽음은 인과응보인 셈이다.

 

  현피팀은 민하영에게 망신당했던 사람들 중 '장세민' 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실 장세민도 떳떳한 입장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알게된 여자를 꾀어내어 강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민하영이 그 사실을 알아내어 장세민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퍼뜨렸다.  당연히 장세민은 개망신을 당했고, 결국에는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애걸복걸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올리고 항복해야 했다.

  그 장세민이 민하영의 빈소에 가서 민하영의 죽음을 비꼬는 듯한 행동을 하는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그렇게 할 정도면 악감정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현피 동영상을 살펴보니, 현피팀이 민하영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있었을 때 장세민의 자동차도 그 자리에 있었다.  현피팀은 그 장면을 근거로, 장세민이 원한을 풀려고 자신들보다 먼저 민하영의 집에 들어가 민하영을 죽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피팀과 만난 장세민은 무척이나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다.

  장세민은 민하영이 현피팀에게 철저히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 곳에 갔던 것 뿐이다.  그 증거로, 자신이 민하영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동차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간 채 다른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던 동영상(자동차의 블랙박스 동영상인 듯.)을 보여준다. 

 

 

 

  ◎ 반전 1 - 민하영은 죽은 군인에게 악플을 달지 않았다! 

 

  장세민은 한 발 더 나아가 현피팀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악플, 즉 자살한 군인을 조롱하고 남자 전체를 무시하는 내용의 그 악플은 민하영이 쓴 것이 아니었다...!  '도더리' 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민하영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해서 민하영인 척 악플을 쏟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도더리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도더리도 장세민처럼 민하영의 신상털기에 걸려 나락까지 떨어졌던 사람이다.  도더리는 민하영이 베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스타크래프트 카페의 운영자였다.  그런데 카페 회원들에게 자신은 서울대 학생이고 형은 미국의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갔다고 허풍을 쳤다.  민하영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채고 도더리의 신상정보를 털어 퍼뜨렸다.

  민하영의 폭로 때문에 도더리는 운영자로 활동할 정도로 무척 공을 들였던 카페에서 탈퇴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더리의 거짓말이 인터넷에 다 퍼져 도더리가 다니던 대학에까지 소문이 나서(다른 거짓말도 아니고 대학에 대한 거짓말이었으니...) 결국 자퇴했다고 한다.

 

  용민이 장세민의 말에 노골적으로 불신감을 드러내자 장세민은 증거를 내놓는다.

  도더리는 민하영의 트위터 계정으로 쓴 악플에 세로드립(여러 문장의 첫글자를 세로로 붙여서 읽으면, 표면적인 뜻과 전혀 다른 숨겨진 뜻이 나오는 언어유희)으로 자기 닉네임을 써놓았다.  악플들의 첫글자를 이어서 세로로 붙여 읽으면 "민하영 관광ㅋ 나 도더리다" 가 된다.

 

 

 

도더리가 민하영 명의로 쓴 악플.

세로드립으로 읽으면

"민하영 관광ㅋ 나 도더리다" 가 나옴.

 

 

  남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고 그 명의로 글을 남기는 건 분명히 범죄행위다.

  만일 민하영이 자살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나중에라도 붙잡혀 처벌 받을 수 있는 짓이다.  그런데도 도더리가 자기 정체를 알리는 단서를 일부러 남겨놓은 것을 보면, 민하영에게 얼마나 큰 악의와 복수심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도더리의 의도는, 민하영 이름으로 심한 악플을 계속 올려 사람들이 민하영을 물어뜯게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다.  만신창이가 된 민하영이 뒤늦게 세로드립을 발견해서, 예전에 자기에게 당한 도더리의 복수인 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현피팀이 민하영의 죽음에 대해 지니고 있던 최소한의 면죄부조차 사라진다.

  현피팀이 자기네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민하영이 자살한 군인에게 지독한 악플을 달았고 우리는 그런 민하영을 응징하려 했다' 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악플들은 민하영이 쓴 것이 아니라 도더리가 민하영인 척하고 벌인 짓이었다.  민하영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현피팀은 민하영에게 악플을 잔뜩 퍼붓고 현피 뜨러 간다고 협박하고 마침내 정말로 민하영 집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그러니 현피팀은 이제 꼼짝없이 무고한 민하영을 자살로 몰아넣은 못된 인간들로 찍히게 생겼다.

 

 

 

  민하영의 또 다른 모습 2 - 에고는 강하지만 그걸 지탱할 알맹이가 없던 대학생

 

  이런 상황에서 민하영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지웅과 용민은 어찌어찌하여 민하영이 다녔던 대학교에 가서, 민하영과 같은 수업을 들었던(아마도 같은 과 동기생인 듯.) 여학생과 만나게 된다.  그 여학생은 지웅과 용민에게 민하영이 정말로 악플러였냐고 묻더니, 한숨을 내쉬며 민하영이 현실에서도 인터넷에서처럼 남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민하영은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는지, 합평수업(서로의 글에 대해 모두 함께 비평을 하는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민하영의 지나친 태도가 문제를 일으켰다.  다른 사람이 써온 글에 단순히 비평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고 수업 참가자 모두가 불편해 할 정도로 함부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남들 앞에 글을 내놓지 않았다.

  보다 못 한 교수가 나섰다.  "너 계속 이렇게 나가면 내 수업 F야.  너는 남의 글은 잘 까면서 왜 네 것은 안 써와?  네 걸 써.  너 평론할 거 아니지?  남의 것은 보면서 자기 것은 안 내는 건 좀 비겁한 거 아닌가?  욕을 먹어.  왜 욕을 안 먹으려고 해."  다른 학생들의 글에는 신랄한 비평을 퍼붓던 민하영이, 교수의 말에는 약점을 찔린 듯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교수가 일방적으로 민하영의 노트에 써진 글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려 하자, 민하영은 무례하리만큼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민하영을 괘씸하게 생각한 교수는 자격 있는 사람(즉, 자기 글을 내놓고 당당히 남의 비평을 받는 사람)만이 수업에 참가할 수 있다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민하영이 글을 내놓을 때까지 민하영을 투명인간 취급하게 했다.

 

  얼마 후 민하영은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민하영이 사라진 무렵 학교에는 그 교수가 다른 사람 작품을 표절했다는 대자보가 붙었다.  그런데 그 대자보라는 게 한두 장이 아니었다.  프린터로 인쇄한 것도 아니고 손으로 일일이 쓴 것인데도, 기다란 학교 담벼락을 뒤덮을 정도로 잔뜩 써서 붙였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대자보를 보면 교수가 정말로 표절을 했는지가 궁금해지는 게 아니라, 대자보에 잔뜩 실린 악감정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대자보를 써서 붙인 게 민하영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모두가 민하영의 짓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웅과 용민 모두 심각한 눈빛으로 여학생의 말을 듣는다.

  민하영이란 사람이 살아있을 적에는 만난 적이 없었는데, 그 사람이 죽고난 후에야 그 사람에 대해 하나씩 알게된 게 묘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평범한 모습이 아닌, 기묘하게 뒤틀린 모습을 알아가게 되는 것에 섬찟한 기분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여학생은 이야기를 마무리 하듯 민하영에 대한 평을 덧붙인다.  "에고는 강한데 그 에고를 지탱할 알맹이가 없는 거...  뭐, 요즘 애들 다 그래요.  다 똑같죠, 뭐."  촌철살인이다.  민하영이란 사람을 한 마디로 정리한 말이며, 동시에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플러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 반전 2 - 용민이 도더리라고? 

 

  지웅은 한밤중에야 노량진 고시원으로 돌아온다.

  뜻밖에도 고시원 앞에서 현피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이끌려 장세민을 만난 지웅은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웅과 용민이 민하영이 다녔던 학교에 다녀오는 동안, 다른 현피팀 사람들과 장세민은 도더리를 아는 사람과 만났다.  그 사람은 도더리가 운영자로 있던 스타크래프트 카페의 회원이었는데, 카페 정모에서 도더리와 민하영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현피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는 도더리가 현피팀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도더리는 바로 용민이었다...! 

 

  지웅은 충격에 휩싸여 용민이 사는 옥탑방으로 가서 추궁한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며 잡아떼던 용민이지만, 지웅이 전에 용민의 방에서 봤던 택배 상자를 들이밀자 아무 말도 못 한다.  택배 상자에는 수신인이 '하진호' 라고 되어 있다.  지웅이 택배 상자를 처음 보고 하진호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용민은 자기 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하진호는 용민의 원래 이름이었다.  민하영에게 신상정보와 거짓말이 폭로되어 현실 생활이 힘들어지자, 새로운 생활을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개명까지 했던 것이다. (거짓말을 한 용민도 잘한 것은 없지만, 그 지경으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은 민하영도 참...)

 

  지웅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어처구니가 없다.

  애초에 지웅이 민하영의 일에 얽힌 것은 용민 때문이다.  자신은 현피 같은 것에 관심 없었는데 용민이 함께 가자고 졸라서 현피팀에 끼었다.  그리고 그 일이 문제가 되어 경찰시험 1차에 합격하고도 경찰이 되는 것을 포기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악플을 단 사람이 용민이라니...  어쩌면 민하영에게 원한을 품은 용민이 민하영을 죽여놓고 자신까지 끌여들인 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웅은 분노와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한다. 

 

  지웅 : "야, 나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네가 왜 이 지랄 떠..." (감정이 격해져서 말이 잠시 끊기는)  "너 왜 이 지랄 떠는 거냐, 어?"   

  용민 : "..."

  지웅 : "야,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어?  용민아, 나 왜 거기 데리고 간 거야?  말해 봐, 나 거기 왜 데리고 간 거냐?"

  용민 : "..."

  지웅 : "너 민하영한테 왜 그런 거야?   민하영이 너 매장시켜서?   민하영이 너 신상 털어서?"

  용민 : "너는, 씨발, 말해도 몰라!  나는 그 일 때문에 이름까지 바꿨다고.  신상 털리고 학교도 아예 안 나갔어.  뭐 어차피 그래봤자 지잡대고 다 잊고 군대나 가자 했는데...  거기서 좆뱅이 까다가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냐?  이유를 찾게 돼,  내가 이렇게 된 이유.  그 년 때문에 까페 십창 나고 나도 병신 되고...  응, 그래, 카페 좀 살리고 말빨 좀 넣으려고 학력 좀 뻥튀기했다.  뭐 어때, 씨발, 인터넷인데.  근데 그 년이 나를 이렇게 병신 만들었다고, 어?  그 년이 잘못 한 거야."

 

  용민으로서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억눌린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지웅이 듣기에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지웅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겪고 곤란한 입장이 되었는데,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도 비치지 않고 자기 변명만 늘어놓는단 말인가...  더구나 이제는 우리 둘 뿐이니 우리끼리 민하영의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까지 한다.  결국 지웅은 용민에게서 등을 돌린다.

 

 

 

  ◎ 용민의 몰락 - 되풀이 되는 용민의 악몽 

 

  떠나가는 지웅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용민이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민진사 카페에 용민의 이야기가 이미 다 알려졌다며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현피팀의 누군가가 전화한 것이다.  용민은 다급히 카페에 접속한다.  카페에서는 벌써 다른 현피팀 사람들과 장세민이 용민의 일로 채팅을 하고 있다.

  용민은 어떻게든 일을 수습해 보려고 하지만, 용민이 도더리라는 확증을 잡은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웃음만 살 뿐이다.  현피팀 멤버들에게 도더리가 용민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까지 채팅에 참가하자, 궁지에 몰린 용민은 카페 운영자의 권한으로 그 사람을 강퇴시키고 채팅을 종료하려 한다.

 

  그 순간, 현피팀 멤버들은 그 채팅이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 되고 있다고 말하며 용민을 비웃는다...!

  아마 카페 안에서 용민의 일이 이슈가 되었다고 전화를 했던 일부터 함정이었을 것이다.  작정하고 용민을 채팅에 끌여들어, 용민이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다가 초라하게 무너지는 꼴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이 채팅은, 용민에게는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끔찍한 상황이다.

  스타크래프트 카페에서 도더리란 닉네임을 쓰며 운영자로 활동하던 때에도, 카페 회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민하영 때문에 거짓말이 폭로되어 카페를 탈퇴해야 했다.  영화에서는 카페 탈퇴 때 다른 회원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안 나온다.  하지만 용민이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민감한 '학벌' 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점, 카페가 다른 카페도 아니고 혈기왕성한 연령대의 사람이 주로 모인 게임 카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카페 회원들이 서울대 다닌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들킨 용민을 어떤 식으로 대했을 지는 뻔한 일이다.

  악몽 같은 사건 후 몇 년이 흘러 이름까지 바꾸고 살다가 새로운 카페의 운영자가 되었다. 물론, 용민이 새로 운영하게 된 카페가 민하영의 죽음에 관련된 카페라는 게 얄궂기는 하다.  어쨌든 간에 용민은 과거에 대규모 카페를 운영하며 잘 나가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특별할 게 없는 자신이 여러 사람들을 이끌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거짓말이 폭로되어 자신이 이끌던 카페의 회원들에게 비웃음과 무시를 당하며 내쳐지게 된 것이다.

 

 채팅 장면에서는 배우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직 검은 컴퓨터 화면 위에 뜨는 채팅 문구로만 표현된다.  그래서 더욱 긴박감 넘치고 소름이 끼친다. (이 장면은 직접 봐야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음.)

  다른 사람들이 용민에게 채팅 내용이 그대로 인터넷 방송으로 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실컷 비웃고 난 후, 화면에는 '채팅방이 종료되었습니다.' 라는 빨간색 문구가 뜬다.  종료된 건 채팅만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카페에서의 일이 있고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정상궤도로 돌아온 것 같던 용민의 인생도 함께 종료되었다.

 

 

 

 

  ◎ 반전 3 - 민하영은 자살한 게 맞다...! 

 

  용민은 민하영의 집에서 들고 나온 노트북을 갖고 컴퓨터 수리복구업체를 찾아간다.

  그 업체의 주인인 '오형주' 는, 현피팀이 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민하영의 집에 다시 가서 이것저것 조사할 때 만났던 사람이다.  당시 오형주는 민하영의 집을 몰래 촬영하다가 현피팀에게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받았다.  하지만 의문점이 많은 사건을 다루는 카페의 멤버라서, 민하영이 죽은 장소의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리려 했던 것 뿐이다.

 

  그런데 용민은 민하영의 노트북을 가져와 살펴보다가 웹캠 해킹 프로그램이 깔려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오형주가 그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는 걸 알아내고 오형주를 민하영 살인범이라고 생각한다.  용민은 과거에 서울대생을 사칭한 도더리였다는 점과 민하영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했다는 점이 밝혀져서 또 다시 인생을 망치게 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민하영을 죽인 건 아니라는 사실만은,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형주는 자신을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용민을 잠시 심각하게 쳐다보더니, 이내 용민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그 동영상은 오형주가 웹캠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저장한 민하영의 모습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기 직전의 민하영이 노트북으로 양게의 현피 방송을 보던 장면이 담겨 있다.

  동영상 속 민하영의 얼굴은 엉망이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고 표정은 멍하며 눈빛은 흔들리고 있다.  자신은 자살한 군인에게 악플을 단 적이 없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으로 악플을 연달아 올리며 네티즌에게 악플 폭탄을 받았고, 자신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어 도무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제는 현피팀까지 만들어져서 곧 자기 집으로 들이닥친다고 한다.  민하영 자신도 여러 차례 신상털기로 다른 사람들을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신상이 털리는 상황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정신적으로 무너진 민하영은 노트북의 랜선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뽑아낸 랜선으로 목을 매고 죽은 것이다.

 

  민하영이 자살한 게 맞다는 오형주의 말을 들으며, 용민은 멍한 표정을 짓는다.

  한편으로는 허탈하다.  그 동안 민하영이 살해되었다고 믿고 살인범을 잡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드디어 민하영의 살인범을 밝혀내게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왔는데, 오형주는 살인범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민하영의 죽음이 경찰 발표대로 자살이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스럽다.  민하영이 악플과 현피로 자살한 게 맞다는 것은, 민하영을 사칭해 민하영이 그런 일을 당하게끔 만들었던 자신이 민하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뜻이 된다.  자신의 인생이 민하영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게 분해서 민하영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던 건데, 민하영의 인생은 자신 때문에 아예 끝장나버렸다.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더라도, 앞으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민하영 살인범으로 두고두고 비난받을 게 뻔하다.

 

 

 

  ◎ 용민의 자살 기도 - 마지막까지 잔인한 네티즌

 

  잠을 자던 지웅은 용민이 건 전화를 받는다.

  용민은 미안했다는 말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지웅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하고 서둘러 컴퓨터를 켠다.  양게의 인터넷 방송에서는 또 다른 현피팀이 결성되어 현피에 나선 게 방영중이다.  이번 현피 대상은 바로 용민이다...!

  용민은 목숨만 붙어있을 뿐이지 사회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도더리라는 단어가 오를 정도니, 앞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양게와 다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용민을 짓밟으려 한다.  이쯤 되면 부관참시나 다를 바가 없다.

 

  그 시각 용민은 자살을 기도한다...!

  자신이 민하영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벌인 일은 자신이 의도했던 수준을 넘어서 어마어마하게 커져버렸다.  예전에 도더리로 지냈던 시절에 겪은 일만으로도, 학교를 그만 두고 이름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 때의 일보다 몇 배나 심각한 일이다.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이다.

 

  용민이 목을 매고 숨을 못 쉬는 괴로움에 발버둥치고 있을 때, 양게를 비롯한 현피팀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람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행해진다.  눈앞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을 두고, 현피팀은 놀라거나 당황하기는 커녕 오히려 신이 나서 날뛰며 조롱을 퍼붓는다.  현피팀은 용민은 정말로 죽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쇼를 하는 것 뿐이라고 비웃으며, 숨이 막혀 버둥대는 용민의 모습을 그대로 인터넷 방송에 내보낸다.

 

  누군가가 줄을 끊어서 용민은 바닥에 쓰러진다.

  충혈된 눈으로 컥컥대는 용민을 둘러싸고, 현피팀은 휴지를 던지는가 하면 발로 차는 등 용민의 인격을 무시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는 목을 맨 일로 위액까지 토하며 괴로워하는 용민의 얼굴을 강제로 들어서, 네티즌들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양게의 노트북 웹캠에 들이대기까지 한다.

  그러자 악에 받친 용민은, 줄을 끊었던 사람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무작정 휘두른다.  누군가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고, 실제로 몇 사람은 겁을 먹고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양게는 생방송을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지웅이 늦지 않게 뛰어들어와 용민의 폭주를 멈춘다.

  수많은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보고 있고, 방송 화면 아래로는 쉴 새 없이 댓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의 댓글은 거의 없다.  절대 다수가 무슨 영화나 드라마에서 엄청난 장면을 봤을 때처럼 감탄하거나 아예 신나서 날뛰는 반응을 보인다. 

         

 

 

  ◎ 그 후...

 

  영화는 노량진 학원가의 면면을 보여주는 가운데 지웅의 나레이션이 깔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 후로 도더리 현피 사건은 한동안 인터넷을 들썩였지만 인기 걸그룹의 스캔들이 터져 금세 묻혀버렸다.  용민이는 노량진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학원으로 돌아가서 2차 시험에 합격했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민하영의 타살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에필로그 성격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나레이션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하다.

  민하영과 도더리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며, 인터넷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사건이다.  그런데 연예인의 스캔들에 금세 묻혀버렸다니...  터질 때는 확 끓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확 식어버리는 간사한 민심을 알 수 있다.  아, 이 경우엔 넷(net)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민하영이 자살했다는 경찰 발표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여전히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긴 민하영이 올렸다던 악플이 알고 보니 도더리 용민의 짓이었다는 대반전이 인터넷 방송으로 생생히 퍼졌으니, 음모론이 식지 않을 법도 하다.  하지만 몇 년 전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음모론처럼 그저 의심할 건덕지(!)를 자기들끼리 만들고 또 만드는, 말하자면 의심의 자가순환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 기타

 

  1. 이 영화는 시나리오도 배우들 연기도 주제도 다 괜찮은데, 음향이 안 좋다.

  처음에는 음향 상태가 안 좋다는 생각은 못 하고 내가 알아듣지 못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소재가 SNS, 악플, 인터넷 방송, 현피 등이다 보니 대사 중에 비속어나 인터넷 은어가 많이 섞여 있다.  그래서 건전하고 모범적인(과연? ^^)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 하는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이어폰을 끼고 들어 보니 훨씬 잘 들렸다.  아무래도 저예산 영화라 음향에 신경을 쓰지 못 했던 모양이다. 

 

  2. BJ 양게가 활동하는 인터넷 매체 이름이 'afureeca tv' 로 나온다.

  실제로 존재하는 아프리카 TV(afreeca TV)를 패러디 한 게 분명하다.  알파벳 u 하나만 덧붙였을 뿐이다.

  아마 작년부터였던가, 아프리카 TV 관련해서 생긴 여러 문제가 계속해서 기사로 나오고 있다.  2014년에 개봉한 이 영화 속에서 민하영 자살의 직접적인 계기가 양게가 주도한 현피 및 현피 방송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 영화가 미래를 내다 본 영화였나 보다. 

 

  3. 몇 년 전에 인터넷을 달구다가 법정공방까지 갔던 타블로 학력 위조 음모론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민진사(민하영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라는 카페 이름만 봐도 그렇다.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 카페를 패러디 한 듯하다.

  그리고 영화 끝부분에서 "인터넷에는 아직도 민하영의 타살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지웅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타블로가 그 학교 출신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확인해줬고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타블로의 학력 위조설이 헛소문임을 분명히 했는데도, 아직도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