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얼떨결에 혈소판헌혈을 하다.

Lesley 2016. 7. 31. 00:01

 

  지난 4월과 이번 7월에 연속으로 혈소판헌혈을 했다. 

  1년에 두세 차례 헌혈을 하는데 대부분은 전혈헌혈이었다.  혈색소가 기준치에 못 미쳤던 때 딱 한 번 혈장헌혈을 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4월에 헌혈의 집 간호사의 권유로 처음 혈소판헌혈을 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혈소판헌혈이나 혈장헌혈이나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혈소판과 혈장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뜻은 아니다. (저는 중학교 나온 1人이니까요. ^^)  혈소판헌혈이나 혈장헌혈이나 성분헌혈에 속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혈소판만 추출하느냐 또는 혈장만 추출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두 헌혈을 하기 위한 조건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혈소판헌혈도 혈장헌혈처럼 전혈헌혈 하기에는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은 사람이 차선으로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혈소판헌혈은 매우 고급스러운(?) 헌혈이다.

 

  시작은 헌혈의 집 간호사의 '은밀한 유혹'(!)이었다.

  4월에 헌혈을 하러 갔더니 간호사가 "헌혈을 9번이나 하셨는데 이제는 혈소판헌혈을 해보셔도 될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직 혈색소 수치 검사도 안 했는데 왜 성분헌혈을 하라는 거지?  내 안색이 나빠 보이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뜨악해하자, 간호사는 혈소판이 백혈병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부족한 상태니 이왕이면 혈소판헌혈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호사는 내가 헌혈을 여러 번 했으니 당연히 혈소판헌혈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다만 혈소판헌혈이 전혈헌혈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혈소판헌혈을 꺼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전혈헌혈은 10~15분 걸리지만 혈소판헌혈은 45~60분 걸림.)  하지만 나는 혈소판헌혈이 혈소판만 추출하는 헌혈이라는 것 빼고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당장 혈소판이 부족하다고 하니 덜컥 동의했는데...

 

  그 다음부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BGM : 영화 '죠스' 주제곡)

  간호사가 내 양쪽 팔꿈치 안쪽의 혈관을 번갈아가며 살짝살짝 눌러보더니, 판단이 안 서는지 다른 간호사를 불러서 베인(혈관) 좀 봐달란다.  두 번째 간호사도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혈관을 눌러보더니 오른쪽 혈관이 더 탄력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아니, 웬 탄력?  전혈헌혈이나 혈장헌혈 할 때는 혈관 탄력 같은 건 따져본 적 없었는데?  

  그 다음에는 혈소판헌혈에 적합한지 검사를 해봐야겠다며 팔꿈치 안쪽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빼냈다.  전혈헌혈이나 혈장헌혈 할 때는 그저 손가락 끝에서 피를 한두 방울 내어 혈색소 수치 검사를 하던데, 이건 뭐가 이렇게 거창한가?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당황스런 기분으로 앉아있는데, 간호사는 나한테서 뽑아낸 혈액샘플을 가지고 무슨 검사를 하고 돌아와서는 이런저런 수치가 다 좋아서 혈소판헌혈해도 괜찮겠다면서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

 

  그 후에 다른 헌혈 할 때 쓰는 기계보다 훨씬 복잡하게 생긴 아미커스(AMICUS)라는 기계 옆에 나를 눕혔다. 

  그리고는 오른쪽 팔에 감긴 완장(혈압 잴 때 팔에 감는 것과 똑같이 생겼는데, 그 물건의 이름을 모르겠음. -.-;;)이 팔에 죄어들 때는 공을 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완장이 풀어질 때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완장이 풀어질 때는 혈소판을 제외한 혈액과 혈액응고방지제가 함께 팔로 돌아가면서 차가운 느낌이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추가

  완장의 이름은 커프(cuff)라고 한다.  어떤 네티즌께서 이 글을 보고 알려주셨다.

 

 

 

 

팔에 감은 검은 완장, 네 이름은 무엇이더냐?

손에 쥔 공으로 잼잼~~ ^^

 

 

  간호사가 혈액응고방지제 때문에 입술이 떨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미커스가 계속해서 요란하게 진동하는 통에 두툼한 베개를 베고 누웠건만 머리 전체로 그 진동이 전해졌다.  그래서 간호사가 혹시 입술이 떨리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부작용으로 입술이 떨리는 건지 아미커스 진동 때문에 머리 전체가 떨리는 통에 입술도 같이 떨리는 건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갔다. ^^;;

 

  ※ 추가

  몸 밖으로 나왔던 혈액이 혈액응고방지제와 함께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갈 때 입술 떨림, 가슴 두근거림, 얼굴 혈관의 미세한 쭈뼛거림, 오한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항응고제반응이라고 한다.  혈소판헌혈을 할 때 다과를 섭취하게 하는 것도 체력저하보다는 항응고제반응을 완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역시 어떤 네티즌께서 이 글을 보고 알려주셨다. ^^

 

 

 

아미커스 모니터 아래 표시되는 초록색 그래프(?)가

혈액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알려줌.

왼쪽에 그래프가 생길 때는 피가 빠져나가는 중임.

오른쪽에 그래프가 생길 때는 피가 다시 들어오는 중임.

 

 

  혈소판헐혈을 하면 일시적이나마 신분상승(!)을 경험할 수 있다.

  헌혈하면서 먹으라며, 간식 코너에 있는 과자는 물론이고 원래 간식 코너에 내놓지 않는 포카리스웨트와 초콜릿까지 '업그레이드 세트'(!)로 가져다 줬다.  헌혈 끝낸 후에나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전혈헌혈 및 혈장헌혈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내가 과자 포장지를 뜯으려고 팔을 움직이려 하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며 간호사가 대신 과자 포장지를 뜯어주고 초콜릿 비닐껍질을 벗겨주기까지 한다.

  또 1시간 가까이 걸리는 헌혈 시간 동안 심심해하지 말라고 노트북 컴퓨터도 가져다준다.  다만 오른팔로 헌혈하는 중이라 컴퓨터 쓰기 곤란할 듯해서 사양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헌혈하는 중간에 이 간호사 저 간호사 번갈아가며 와서 몸상태가 괜찮은지 계속 물어본다.  나중에 초콜릿이 다 떨어진 것을 보고는 다시 채워주기도 했다. (리필 서비스~! ^^)

 

  정말이지 헌혈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헌혈 할 때에 비해서 몇 배는 더 친절하다.

  아니, 그냥 친절한 정도가 아니라 융숭하고 극진하기까지 하다.  평민에서 귀족으로 벼락출세 한 기분이다...! (아이, 좋아~~~ ^0^)     

 

 

 

맛있게 냠냠~~

호텔 침대 위에서 룸서비스 받는 기분이구만! ^^

 

 

  생애 첫 혈소판헌혈을 무사히 마쳤더니 사은품(?)이 막 쏟아졌다.

  원래 주는 헌혈기념품 말고도, 처음으로 혈소판헌혈하느라 수고했다며 홍보용으로 길에서 나눠주는 휴대용 화장지와 물티슈를 각각 2개씩 챙겨주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여자분들은 혈소판헌혈 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문데, 부작용도 없으니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라고 하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성분헌혈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로구나!  혈소판헌혈은 혈장헌혈과는 많이 다르구나!

 

  나중에 집에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지간하면 여자들에게 혈소판헌혈을 권하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한다.

  일단, 임신이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의 경우에는 몸에 항체가 생겨서 혈소판 추출이 곤란하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혈소판헌혈을 할 수 있는 여자 후보군이 확 줄어든다.

  게다가 우리나라 여자 상당수가 임신 출산 경험이 없더라도 지나친 다이어트 때문에 체중이나 체력에 문제가 있어서 혈소판헌혈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네, 이 몸은 다이어트 해야 함이 마땅하나 항상 입으로만 다이어트 하는 1人올시다... -.-;;) 

 

 

 

  그리고 7월에 다시 헌혈의 집에 갔다.

  이사를 한 후 처음으로 하는 헌혈이라서 새로운 헌혈의 집을 개척(?)했다.  이번에도 간호사가 혈소판헌혈을 권했다.  학생들 방학기간이라서 헌혈자가 줄어들어, 전혈도 부족하지만 혈소판은 더욱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헌혈 초반에 좀 당황스러웠다. 

  지난 번처럼 아미커스 옆에 누워 헌혈을 시작했는데, 이쪽 간호사들도 친절하기는 무척 친절했지만 음료와 과자를 가져다 줄 낌새가 안 보였다. ^^;;  간호사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전날 봉사활동 하러 온 학생들이 일을 제대로 해놓지 않아서 여러가지 물품을 가져다가 정리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 안 가져다 주느냐고 말할 수도 없어서, 조용히 공을 쥐고 잼잼을 했다. (간식 못 먹는 슬픈 마음을 담아 꾹꾹 눌렀더니만, 첫 번째 혈소판헌혈 때에 비해 헌혈 시간이 10분 이상 줄었음. -.-;;)

  그러다가 뒤늦게 한 간호사가 "뭐 좀 드시며 하실래요?" 하고 물어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0^  체력을 상당히 요하는 헌혈이라는데 마땅히 영양보충 하면서 해야지요~~!   

 

 

 

이 헌혈의 집은 재정상태가 안 좋은 듯... -.-;;

그래도 간식 코너에 초코파이 대신

내가 더 좋아하는 몽쉘통통이 있으니

불평 따위 하지 말자...

 

 

  혈소판은 전혈이나 혈장 같은 다른 헌혈보다 수급량 조절이 힘들다고 한다.

  일단, 백혈병 환자 상당수가 매일 혈소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혈소판은 전혈이나 혈장과는 달리 유효기간이 겨우 며칠 밖에 안 되어, 헌혈자가 많을 때 미리 모아두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체력이 받쳐주고 시간적 여유가 되는 사람이라면, 간호사가 혈소판헌혈을 권할 때 가급적 응해주는 게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혈소판헌혈의 위한 팁...!

  첫째, 혈소판헌혈을 위한 기계가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초보자에게는 아미커스가 가장 낫다고 한다.  시간은 가장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몸에 무리가 안 간다고 한다. 

  둘째, 다른 헌혈의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나 혈소판헌혈을 하려면 고지방 고단백질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러니 헌혈의 집 가기 전에 라면, 튀김, 햄, 우유 등은 먹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시금치 뿌리 부분과 깻잎은 철분이 많아서 헌혈 전 음식으로 적합하다. (시금치 뿌리는 몰라도 깻잎을 며칠 먹으면 철분 수치가 확 오른다는 건, 내 몸으로 직접 확인했음. ^^) 

 

 

헌혈 체험기 - 헌혈 기념품, 헌혈 부작용 등등(http://blog.daum.net/jha7791/15790919)

헌혈 팔찌 / 헌혈 보틀(물병)(http://blog.daum.net/jha7791/15791245)

처음 받은 헌혈 다이어리(http://blog.daum.net/jha7791/1579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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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소판헌혈 - 아미커스(Amicus)와 MCS+(http://blog.daum.net/jha7791/15791620)

뒤늦게 받은 2019년 우수등록헌혈회원 선물(http://blog.daum.net/jha7791/15791635)

헌혈유공장 은장(blog.daum.net/jha7791/15791659)

헌혈의 집 하남센터 / 헌혈유공장 판매 및 구매 금지(https://blog.daum.net/jha7791/15791716

2022년 첫 헌혈(https://blog.daum.net/jha7791/15791743)    

헌혈증서로 수혈용 피를 받는 게 아닙니다...!(https://jha7791.tistory.com/15791759)  

헌혈의 집 판교센터 / 서울남부혈액원의 관할 범위는?(https://jha7791.tistory.com/15791760)  

헌혈증서 재발급 가능 / 헌혈의 집 짐살역(?)센터 / 철분 영양제(https://jha7791.tistory.com/1579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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