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아파트(1) -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아파트

Lesley 2016. 7. 4. 00:01


  뒤늦게 아파트 세계에 눈을 떴다...!

  물론 떳다방이니 복부인이니 하는 쪽으로 눈을 떴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아파트를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아파트에서 살았으면서도, 정작 그 아파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파트에 대해 알지 못 했기에 여지껏 그 흥미로움을 몰랐다.  


  그런데 지난 달에 이사를 한 후, 아파트에는 단순히 '사는 곳' 을 넘어서는 의미(!)가 담겨져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번에 올린 포스트에 슬쩍 언급한대로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아파트 브랜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사하고 어느덧 한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90)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알게된 것을 계기로, 아파트의 새로운 면모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 검색했을 뿐인데, 그러다 보니 아파트에 대한 다른 여러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가 정치나 사회 쪽으로만 파란만장한 게 아니라, 아파트 쪽으로도 제법 드라마틱(!)하다.  아파트를 그냥 주택으로만 알고 산 나 같은 순진한(?)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 브랜드 변경 사건 뿐 아니라 아파트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포스팅해보려 한다.

  마침 작년 가을에 흥미롭게 들었던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 중에 임동근 교수가 게스트로 나온 부분인 '도시정치학' 부분과 연결되는 부분도 꽤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이 팟캐스트 내용도 포스팅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반 년 넘게 뒤로 밀린 상태임.  올해 안에 꼭 포스팅해야지!)  그래서 일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내 인생에서 아파트란 것이 처음 등장했던 때부터 포스팅하려 한다. (BGM : 두두두둥~~ 개봉박두~~!!!)




  ◎ 초등학생인 나에게 아파트는 허름한 주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가 곧 아파트로 이사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때까지 단독주택에서만 살던 나로서는 큰 변화를 맞게된 것이다.  문제는... 그 변화가 좋은 변화가 아니라 나쁜 변화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때의 나에게 '아파트 = 허름한 공동주택' 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허름한' 이라는 단어에는 그저 오래되어 낡았다는 뜻 뿐 아니라, 시설이 열악하다는 뜻도 들어있다. 


  자, 그렇다면 왜 내가 아파트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갖게 되었느냐 하면...

  그 때까지 내 인생(...이라고 해봤자 겨우 만 11년짜리 인생. ^^;;)에 등장한 아파트가 그런 편견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하나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윗편에 있던 '종암아파트'.  또 다른 하나는 동생이 다니던 유치원 바로 옆에 있던 '월곡아파트'.



  먼저 종암아파트부터 이야기해보면...


  초등학생 때는 종암아파트를 그저 학교 근처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라고만 생각했을 뿐, 별 관심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파트에 대해 알아보면서 종암아파트의 역사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등하교하면서 무심코 보아 넘긴 종암아파트가,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최초로 생긴 아파트였다...! @.@ 


  1958년에 지었다는 종암아파트는 그 시절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형태의 주택이었다.

  2층짜리 주택도 드물던 시절인데, 성냥갑 쌓아놓은 것처럼 겹겹히 쌓아 높다란 탑처럼 우뚝 솟게 만들어 놓았으니 당연히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도 종암아파트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공사현장에 가서 시찰했을 정도다.  그리고 한동안 창경원(창경궁이 창경원이란 이름의 동물원으로 쓰이던 시절이었음.) 및 명동성당과 함께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왔을 때 꼭 구경해야 하는 관광명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1980년대에는 전혀 신기할 것 없는, 그저 낡은 아파트였을 뿐이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가, 종암아파트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던 듯하다.  그리고 나중에 그 쪽으로 갈 일이 있을 때 봤는데, 종암아파트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선경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다음은 월곡아파트인데...


  아파트 역사에서는 종암아파트가 더 중요하겠지만, 내 인생의 아파트라는 측면에서는 월곡아파트가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암아파트는 등하교 때 겉모습만 봤을 뿐이지만, 월곡아파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살던 곳이라 몇 번이나 들어가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곡아파트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아파트의 대표격으로 굳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에 다른 아파트는 전혀 보지 못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다만, 버스 타고 지나가다 흘깃 본 다른 아파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상이 남지 않았다.   드라마에 비교해서 말하자면, 월곡아파트는 드라마 속에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다른 아파트는 '지나가는 사람 1' 정도라서 별 느낌이 없었다.  내 친구들이 사는 곳이며 내가 직접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져본 적 있는 곳인 월곡아파트만이 의미 있는 아파트였다.


  그런데 월곡아파트는 요즘 아파트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1970년대 지은 시민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시민아파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후속 포스트에서 따로 설명하겠음.)  그래서 정식 명칭은 월곡시민아파트인데, 동네 사람들 모두 간단하게 월곡아파트라고 불렀다. 


  지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월곡아파트의 인상은 황토빛 사막이다.

  아파트 겉면을 황토색 페인트로 칠했던 건지, 아니면 세월이 흐르며 원래의 색이 바래고 바래서 그런 황토빛으로 변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거나 아파트 단지 전체가 황토빛이어서, 마치 영화 '스타워즈' 에 나오는 사막투성이 타투인 행성 같았다.

  게다가, 분명히 여러 건축재료를 쌓거나 이어 붙여서 만들었을텐데, 어째서인지 어마어마하게 큰 돌덩어리 하나를 가져다가 통째로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욱 사막 비슷한 느낌이 났던 것 같다.  마치 사막 지대의 큰 바위산을 파거나 깎아서 만든 유목민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월곡아파트는 겉보습만 요즘 아파트와 다른 게 아니라 내부도 많이 달랐다. 

  우선 각 세대별로 화장실이 따로 없고 각 층 한쪽 끝에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요즘 아파트만 본 사람이라면 얼른 상상이 안 갈텐데, 학교를 생각하면 된다.  한 층에 교실이 대여섯 개 있고 그 층 끝편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 말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한쪽 벽면으로는 변기 있는 칸이 주르르 늘어서있고, 반대쪽 벽면에는 세면대(각각 독립된 세면대가 아니라 학교 운동장에 흔히 있는 쭉 이어진 세면대)가 있는 것까지 학교 화장실과 같았다.  그래서 월곡아파트에 있는 친구집에서 놀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일단 신발을 신고 그 집을 나와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야 했다. (아마 겁 많은 사람이라면 한밤중에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많이 난감했을 것임.) 

  그리고 각 세대 부엌에 연탄 아궁이가 있었다.  단독주택에서도 연탄을 별로 안 쓰는 요즘에는 정말 생각하기 힘든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월곡아파트가 몇 층짜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5, 6층이었을 것이다.  전에 중국에서 지낼 때 몇 개월 간 엘리베이터 없는 7층짜리 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월곡아파트 생각을 자주 했다.  초등학생 때는 어려서 에너지가 넘쳐 그랬는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어 7층을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ㅠ.ㅠ  



  자, 이러니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말을 듣고 내 기분이 어땠겠는가?


  당.연.히. 싫었다.

  지금이야 어지간한 경우라면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더 쾌적한 주택으로 취급받지만, '아파트 = 월곡아파트' 라고 생각했던 내 눈에 비친 아파트는 단독주택보다 훨씬 불편했다.  그러니 아파트로 이사갈 거라는 부모님 말씀에 기겁했다.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느냔 말이다...!  그 때까지 살던 집이 좋은 주택은 아니어도 최소한 별도의 화장실은 있지 않나...! ㅠ.ㅠ




  ◎ 선분양이라니,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렇잖아도 가기 싫은 이사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으니 이른바 선분양 제도라는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가는 게 싫었던 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삿날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처음 이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구체적인 날짜까지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곧 이사가게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렀어도 이사갈 기미가 없었다.

  나중에 궁금해서 언제 이사가느냐고 물어봤더니만, 놀랍게도 엄마조차 우리가 언제 이사가게 될 지 모르고 계셨다.  왜냐하면 아직 아파트 공사 첫삽도 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  어린 마음에도 너무 황당해서, 그러면 아파트로 이사 안 가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왜 아파트로 이사간다고 했느냐고 따졌더랬다.  엄마 왈, 언제 이사갈지는 몰라도 이미 아파트값을 냈기 때문에 아파트로 가기는 갈 거란다. 


  아파트는 아직 이 세상에 생기지도 않았는데 아파트값을 이미 냈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하긴, 이건 초등학생이었던 그 때 뿐 아니라 지금도 이상하다.  지금은 선분양 제도에 대해 언론이나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종종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다소 무뎌진 것 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여전히 이상하다.  아직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두고 돈부터 내다니, 사기당하기 딱 아닌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스마트폰 예약구매 같은 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물건을 아직 보지 못 한 상태에서 돈부터 미리 내놓는 건, 아파트나 스마트폰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지만 아파트 선분양과 스마트폰 예약구매는 경우도 다르고 위험도도 다르다...!

  스마트폰을 예약구매할 때는, 적어도 그 스마트폰이 이미 공장에서 다 만들어졌는데 아직 출시만 안 한 상태이거나, 혹은 공장에서 거의 완성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파트 같은 경우는, 공사를 다 끝내가거나 어느 정도라도 해놓은 단계에서 분양을 하는 게 아니다.  아예 공사를 시작조차 안 한 상태에서, 그저 설계도니 조감도니 하는 종이 쪼가리만 보고서 돈을 내놓는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가격은 스마트폰 가격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비싸다.  아무리 비싸도 100만원이 안 되는 스마트폰을 예약구매한다고 돈을 미리 냈다가 사기당해도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일 것이다.  그런데 몇 억이나 하는 아파트 대금을 미리 치렀다가 사기당하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분명히 선분양 제도라는 건 상식으로만 생각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제도다.

 '비싼 물건을 살 때는 반드시 직접 살펴보고 잘 알아본 후에 사야 한다.' 는 게 상식이건만,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는 그런 상식의 끄트머리도 찾아볼 수 없다.  선분양 제도에 상식의 잣대를 냉정히 들이대고 보자면 대충 이렇다.  시공사와 시행사 사람들은 아직 있지도 않은 아파트를 팔러다니는, 마치 대동강을 자기 소유라며 팔아치운 봉이 김선달의 후예 같은 음흉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파트 분양 신청한 사람들은 너무나 뻔한 그 사기극에 서로 참여하겠다고 뛰어들어 거금을 척척 내놓는, 그냥 호구도 아니고 왕호구(!)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 선분양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몇십 년 동안이나 잘 시행되고 있다.  물론 가끔 분양 사기 사건이 터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미스테리한 일이다.


 


  ◎ 1970년대 아파트와 너무 다른 1990년대 아파트

  

  각설하고, 내가 아파트라는 것에 선입견을 갖고 있든 말든, 선분양 제도라는 요상한 제도를 이해하든 말든, 아파트가 완성되어 이사를 갔다.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오고 3년이나 지나서,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이사간 곳은 돈암동에 있는 현대아파트였다.  돈암동이라고 하면 다들 성신여대 근처 번화가를 떠올리던데, 돈암동과 종암동의 경계선 쪽이라 사실상 종암동 생활권에 속하는 곳이었다.


  이 아파트의 위치를 설명하려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미아리 텍사스' 다.'  그렇다, 훗날 종암경찰서 김강자 서장 주도로 벌어진 '성매매와의 전쟁' 으로 유명한 바로 그 미아리 텍사스다.  공교롭게도 그 아파트가 미아리 텍사스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있었다. -.-;;


  고등학교 시절을 미아리 텍사스 근처 아파트에서 보내며 몇 가지 소소한 사건도 있었다.

  가끔 무슨 단속기간이라며 미아리 텍사스 주위로 의경들이 쫙 깔리곤 했는데, 하필이면 그런 날에 교복 치마 펄럭이며 뛰어가다가 수십 명의 의경들이 보는 가운데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는 치욕(?)를 겪은 적이 있다.  오빠뻘 되는 의경들이 "학생, 괜찮아요?" 하며 부축해 일으켜주는데, 그 순간에는 창피하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아픈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서 피가 철철 나는 무릎을 보고나니, 그 때부터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며 무릎이 굳어버려서 한동안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

  그리고 평범한 주부였던 우리 엄마가 난생 처음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와 부녀자 대표회의에서 미아리 텍사스 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준비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참여하라고 했더니 참여율이 너무 낮아서, 나중에는 한 가구당 한 명씩 시위 참여자를 반강제로 차출했다.  덕분에 우리 엄마가 9시 뉴스에 다 나왔다. (비록 알아볼 수 있게 나온 건 아니지만, 화면 가득 나온 무리 중 분명히 엄마도 계셨으니까... ^^;;)

  그런가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미아리 텍사스에서 윤락녀와 함께 히로뽕을 흡입했다가 붙잡혀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일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아리 텍사스 뿐 아니라 청량리나 영등포의 다른 유명한 대규모 유흥가에서도 히로뽕을 흡입했다고...)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대통령 아들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드라마를 보면 높은 사람들은 고급 룸살롱에 가던데 왜 저 사람은 그런 곳에 갔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


  어쨌거나 이 돈암동 현대아파트는 내가 아파트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을 다 무너뜨렸다...!

  1990년대 초반에 지은 아파트라, 21세기 들어서 지은 아파트에 비하면 생긴 것도 내부시설도 정말 단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 속에 아파트의 대명사처럼 박혀있던 월곡아파트와 비교하면 황송할 정도로 좋았다.  하긴, 월곡아파트가 1970년대 초에 지은 것이니 차이가 안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이 중학생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우리집이 3층이라 엘리베이터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하고 한동안은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아서 마냥 신났다. (이런, 유치한...! ^^;;)  그리고 그 때는 미처 생각 못 했고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 식구 중 아파트로 이사가서 가장 편해진 사람은 엄마였다.  혼하고 십수 년 동안 연탄불 꺼지지 않게 하는 일에 신경쓰며 사셨는데, 도시가스 보일러 덕분에 연탄 갈 일 없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식구는 아파트 생활의 편안함에 길들여졌고, 그 후로 중간에 몇 년을 빼고는 계속해서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이 곳에 이사와서 아파트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아낸 아파트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