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이사하고 어느덧 한 달

Lesley 2016. 6. 17. 00:01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여기로 이사온 게 벌써 한 달 정도 되었다.

  지금까지 이사는 몇 번이나 다녀봤지만 항상 인접한 몇몇 동네를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삶의 터전을 아예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대작업(?)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심란했고 이사와서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렸다.  이사하면서 벌어진 몇몇 소소한 사건(그러나 터졌을 당시에는 결코 소소하지 않고 엄청나게 귀찮고 짜증났던 사건... -.-;;)을 써보겠다.




  ◎ 짐 정리하기


  요즘 미니멀리즘이라는 게 유행하는 모양이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두고 살자는 건데, 그저 검소함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다.  물질에 얽매이는 삶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누리자는 심오한(!) 삶의 양식이라고 한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둘째치고라도 요즘 추세에 딱 맞는 삶의 양식이다.  아무래도 경제가 좋지 않아 너도 나도 모두 팍팍하게 살고 있고, 1~2인 가구가 늘면서 소규모 주택에서 사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불필요한 물건은 처음부터 구입하지 않는 게 현명한 것이며, 원래 갖고 있던 물건이라도 불필요하면 과감하게 처분하는 게 얼마 안 되는 공간을 넉넉히 쓰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이사를 계기로 제대로 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니멀리즘 근처라도 가보자 결심했다.

  우선, 원래 살던 집보다 더 작은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짐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 아니라도 쓸데없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짐을 한꺼번에 처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그 동안 별로 필요없으면서도 집 안에 두었던 물건을, 이사가는 것을 계기로 과감히 없애기로 했는데...  

 

  이번에 우리집에 쓸데없는 짐이 참 많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내가 갓난아이 시절에 쓰던 포대기가 나오지를 않나, 엄마가 결혼하며 혼수로 가져오신 다리미와 베개가 나오지를 않나... -.-;; 우유를 집으로 배달시켜 먹던 시절에 사은품으로 받은 컵도 각 우유회사별로 다 나왔다.  서울우유, 남양우유, 삼양우유, 건국우유, 연세우유 등등...  그 중에는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그림이 찍힌 컵도 있었다. (80년대 추억이 물씬 흐르는 우유컵~~ ^^;;)  이러니 커다란 가구는 몇 개 없어도 항상 집이 꽉 찼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게다가 '질량 보존의 법칙' 이라는 게 이삿짐에도 적용이 되는 건지 어떤 건지, 아무리 가져다 버려도 짐의 총량이 안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한바탕 버린 순간에는 집안의 물건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한두 주 지나서 다시 정리하면 또 무언가가 한 무더기씩 나왔다.  마치 우리집 물건들이 번식(!)을 하는 것만 같았다....! (번식하는 물건이라니, 이건 공포영화의 소재다...! -0-;;)

 

  그리고 책을 처분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집에 있던 책 종류 중 3분의 1 가량을 없앴다.  처분한 책 대부분이 나와 동생들이 학창 시절 썼던 각종 외국어 사전 및 전공 서적이다.  그런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지금은 전혀 필요없지만 그래도 한 때는 항상 옆에 두고 썼던 책들이다.  그런데 없애려니 괜히 누군가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책은 헌책방에서도 안 받아주는 것들이라 부모님이 다른 짐과 함께 근처 고물상에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그 뒷이야기를 들으니 책들에게 못 할 짓 했다는 죄책감이 더 들었다.  고물상에서 책을 폐휴지 업체에 넘길 때 돈을 더 받기 위해 무게를 늘일 심산이었는지, 어떤 책인지 한 번 들쳐보지도 않고 통째로 물 웅덩이에 빠뜨렸다고 한다. ㅠ.ㅠ  그 광경을 보는 엄마도 가슴이 찡하셨다고 하는데,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 내 기분도 참... ㅠ.ㅠ 


 


  ◎ 속터지는 인테리어 업체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가 낸 짜증의 70%(!)는 인테리어 업체 때문에 생긴 것이다...!


  원래 우리 식구가 미적 감각 쪽으로는 꽝인데다가 생활에 불편함 없으면 장땡이라는 마인드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몇 번이나 이사하면서 한 번도 인테리어 같은 것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자연히 우리집 내부는 바둑이(!) + 데칼코마니(!) 컨셉이었다.  검은색 높다란 책장 바로 옆에 주황색 자그마한 책장이 붙어있고, 원목 TV 받침대(흔히 'TV 다이' 라고 하는 것) 맞은 편에는 녹색 합성가죽 소파가 있는...  즉, 인테리어니 디자인이니 하는 것에 어느 정도 신경쓰는 이가 보면 기겁할만한 모양새로 살았다. -.-;;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버지가 인테리어 업체에게 새집의 인테리어를 맡겼다.

  만일 진작 알았더라면 분명히 말렸을텐데,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계약이 다 끝난 상태였다.  집 일부도 아니고 전체의 인테리어를 새로 하려면, 당연히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세심하게 비교한 후에 한 업체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대뜸 한 군데만 알아보고 덜컥 계약을 했으니...

  그리고 아무리 업체에 돈을 주고 맡긴다고 해도, 집주인이 자주 드나들며 이것저것 살펴보고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번 집과 이번에 이사온 집이 멀어서 자주 다닐 수 없었다.  또한 위에 쓴 것처럼 다들 인테리어 쪽으로는 도통 아는 게 없어서, 거리가 가깝다고 해도 곤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테리어 계약을 했으니...


  안 좋은 예감은 꼭 들어맞는 법이다.

  인테리어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그 인테리어 문제로 이사를 준비하면서나 이사를 한 후에나 계속해서 말썽이 생겼다.  인테리어 업체 때문에 겪은 일을 몽땅 쓰자면 포스트가 너무 길어져서 곤란하니, 세세한 것은 쳐내고 굵직한 것만 쓰겠다.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파란만장하니까... -.-;;) 


  이사오기 일주일 전 엄마가 새집에 들리셨는데, 그 때까지 내 방에 책장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 방에는 책장이 딸린 책상('h형 책상' 이라고 부르는 것)과 따로 책장 2개가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공사를 2월에 시작했건만 5월인 그 때까지도, 책상만 들어와있고 책장 2개가 놓여있어야 할 자리는 덩그러니 빈 공간으로 있었다.  인테리어 업체 말인즉슨, 주문은 했는데 공장에서 완성이 늦어지고 있다며 이사하는 날까지는 책장이 들어올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지 않겠느냐고 하셨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그 업체에 대한 나의 신뢰지수는 바닥을 치는 상태였다.  일단 석 달이란 시간 동안 책장을 못 짰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석 달 동안 못 만든 책장이라니, 무슨 금가루 바르고 진주알 박은 초호화판 책장인가? -.-;;)  그리고 석 달 동안에도 만들지 못 한 책장을 겨우 일주일만에 만들겠는가?  결국 이건 시간 문제가 아니라 성의와 의지의 문제다.  인테리어 업체어서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면, 책장이 일찌감치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엄마 생각이 틀렸고 내 생각이 맞았다.       

  이사와보니 여전히 텅 비어있는 책장 자리...  내가 그것 보라고, 그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엄마도 너무 황당해하시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잡다한 물건을 올려놓을 겸 이 신뢰 안 가는 인테리어 업체 때문에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에 대비할 겸 해서, 원래 살던 집에 있던 책장 2개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엄마는 다행히 다른 책장이 있으니 그 책장에 책을 꽂고 인테리어 업체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말자고 하셨다.  나도 이삿짐 다시 풀고 정리하는 문제로 골치 아팠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인테리어 업체에 신경을 쓰려하지 않아도, 인테리어 업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 업체에 신경을 쓰게 만들었으니... (아주 고객의 신경을 박박 긁네, 긁어... ㅠ.ㅠ)


  우선, 그나마 만들어놓은 h형 책상에 붙은 책장의 선반을 엉터리로 끼워놓았다.

  짐 정리하다가 잠깐 바닥에 앉아 쉬면서 무심코 책상에 붙은 책장 쪽을 봤는데...  이상하게 책장 선반 하나가 기울어져 보였다.  정면에서 안 보고 옆에서 비스듬히 봐서 그렇게 보이나 하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로 비뚤어진 상태다.  선반을 받쳐주는 나사못이 4개인데, 그 중 3개는 같은 높이에 박아놓고 나머지 1개만 몇 센티미터 아래에 박아놓았다.  그래서 선반이 아래에 박힌 나사못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그 선반에 책 꽂아놓았다가는 책이 미끄럼을 탈 판국... -.-;;)



선반은 비뚜룸~~

나사못 하나는 위쪽에, 또 다른 하나는 중간에...

무슨 일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하는 걸까... -.-;;



  책장에 선반을 끼울 때 선반이 기우뚱 하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붙박이식 h형 책장을 조립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일했고, 그것을 관리.감독해야 할 인테리어 업체에서도 대강 넘어간 것이다.  혹은 그 동안 내가 보아온 인테리어 업체의 행태를 생각했을 때,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하며 아예 관리.감독을 안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이 일로 인테리어 업체에 연락을 했더니만...

  사장님 가라사대, 정말 미안하다면서도 그저 드라이버로 나사못만 풀어서 제대로 된 자리에 다시 돌려 박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니까 나보고 직접 하란다. -.-;;  아니, 그렇게 쉬운 일인데 왜 애초에 제대로 못 해놓고 나를 귀찮게 만드나...  책상 다 조립했을 때 관리.감독 책임 있는 자신들이 쓱 살펴보기만 했어도 금세 잡아내어 바로잡을 수 있는 실수 아닌가?

  짜증나는 마음으로, 알겠다고, 내가 직접 해보고서 그래도 안 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드라이버 가져다가 낑낑거리며 해결했다. (잘못 박아놓은 주제에 박아놓기는 어찌나 단단하게 박아놨는지, 나사못이 안 풀려서 고생했다는... -.-;;)


  그런데 산 넘어갔던 부아 다시 치솟게 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얼마 후 무언가를 수리하러 왔다며 아저씨 한 분이 오셨다.  우리는 이사오기 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신청해놓은 하자 보수 때문에 온 분인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인테리어 업체에서 책장 선반 수리하라고 보낸 분이다. -0-;;


  기가 막혀서 인테리어 업체에 문자를 보냈다.

  그 업체에서 보낸 분이 지금 왔다 돌아갔는데, 이미 책장 선반은 내가 다 고쳐놓은 후에 왔다고.  그러자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의 답장인즉슨, '다 고쳤으면 고쳤다고 문자라도 보내주지 그랬어요.' 다. ('적반하장' 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런 때 쓰라고 만든 것 맞죠? -.-;;)

  나의 어이를 태평양 건너편으로 날려보내는 그 답장을 읽고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이 나에게 직접 하라고 해서 내가 직접 해보고 안 되면 연락하겠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어차피 사람 보내줄 거라면 왜 나보고 직접 하라고 했던 거냐고. 


  그러자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시치미 뚝~~~ 작전으로 나왔다.

  자기가 생각해도 할 말이 없는지, 아니면 그냥 나의 추궁을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었는지, 새 아파트에 입주한 것 축하한다며 인테리어 해놓은 것에 다른 문제 생기면 연락하라는 엉뚱한 내용을 답장이라고 보냈다.  이게 무슨 국회 청문회도 아니고 웬 동문서답이냐... 

  다시 문제 생겨서 연락하면 또 '그건 쉬운 거니까 직접 고치세요' 하고서 나중에 수리기사 보내주며 약 올릴 거 아니냐고 문자를 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내 시간과 감정을 쓸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다, 그냥 무시하자, 하고...


  그러나 우리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게, 이사하고 일주일도 넘은 때에 또 인테리어 업체 때문에 뒷목 잡을 일이 생겼다.

  누군가 책장 때문에 왔다고 해서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문을 열어줬다.  그 사람 왈, 원래 들여놓기로 했으나 이삿날까지 안 들어왔던, 문제의 그 책장을 들여놓으려고 왔단다. -0-;;  황당해진 우리가 이삿날까지 책장이 안 들어와서 이미 다른 책장 들여놓았다고 방을 보여주고, 이제와서 다시 책장 바꿀 생각없다고 했더니, 그 쪽도 좀 난감한 표정 짓다가 돌아갔다.

  아니, 이사하는 날까지 약속했던 책장 안 들여놓은 것도 어처구니 없는데, 그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한다든지 불편하더라도 일주일만 참고 기다리면 꼭 설치해주겠다든지 하는 설명도 없다가, 갑자기 웬 뒷북???


 


  ◎ 아날로그형 우리 식구에게는 너무 디지털적인 새집 


  이사하던 날 밤에는 전원 콘센트 때문에 생쇼를 벌였다.

  다만, 이 부분은 위에 쓴 책장 선반 문제와는 다른, 내가 최첨단기술(?)을 따라잡지 못 해 벌어진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날 책만 겨우 정리해놓고 다른 짐은 박스째로 방 구석에 쌓아둔 채 이부자리를 폈다.

  어차피 짐 정리라는 게 하루 이틀에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이사를 했더니 너무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잠부터 자기로 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아서, 자는 동안 충전이나 해놓자고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아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더니, 어두컴컴한 방 한쪽에 휴대폰 충전기가 어슴프레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충전기 램프에 빨간색 불이 안 들어와 있다.  이건 또 뭔가, 내가 헐겁게 꽂았나 하며, 충전기 플러그를 콘센트에 꽉 눌렀다.  하지만 충전기 램프는 여전히 그냥 그대로...


  무언가 잘못 되었구나 싶어서 방의 불을 켜고 일어나서 살펴보니...

  충전기는 휴대폰에도 콘센트에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데 충전이 안 된다.  처음에는 이사하는 중에 충전기가 고장났나 했지만, 컴퓨터와 선풍기를 콘센트에 연결해봤더니 전부 전기가 통하지 않았다.  즉, 충전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콘센트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하루를 보낸 뒤에 그런 일이 생기자 짜증이 확 밀려왔다.  낮에는 책상에 딸린 책장의 선반이 속터지게 만들더니, 밤에는 고장난 콘센트가 문제네...!  아니 새 아파트인데 어떻게 콘센트가 불량일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아주 낡은 집에 살 때도 콘센트 같은 기본 설비가 고장나는 황당한 일은 없었는데...  이거 아무래도 부실공사 아냐???


  혼자 그렇게 부글부글 속을 끓였지만, 그 밤에 무얼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잠자리 든 식구들을 깨워 말할 수도 없고(그리고 말해봤자 식구 중에 전기 시설을 수리할 수 있는 능력자도 없고... -.-;;), 관리사무소 사람들도 다 퇴근했으니 따질 데도 없고...

  어찌되었든 간에 휴대폰 충전은 해놓아야겠기에 옆방으로 가져가서 충전기를 꽂았는데, 아니, 이게 웬일?  거기서도 충전이 안 된다.   다시 거실의 콘센트에 꽂아봤더니 역시 안 된다...! 


  설마하니 새집의 콘센트 전체가 다 불량일리는 없고, 그제서야 '입주자 생활 가이드' 를 떠올렸다.

  시공사 측에서 입주자들에게 입주자 생활 가이드라는 안내책자를 나누어줬는데, 그걸 뒤져서 원인을 찾아냈다.  여기는 각 방마다 별도로 콘센트에 전기를 흐르게 하거나 끊어지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전기료 절감을 위해서라나...)  그래서 콘센트를 쓰려면 사용자가 전기가 흐르게 설정을 바꿔줘야 한다. -.-;; 



  ◎ 기타 


  그 외에도 이사하고 3주일 정도는 좌충우돌하며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우선 편의시설 부족 문제가 있다.

  이사온 곳이 새로 생긴 거주지역이라 각종 편의시설이 너무 없다. 처음에는 장보는 것조차 큰일이었다.  당장은 편의점 GS25에서 장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이 모든 게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먹는 데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상황이라니...! ㅠ.ㅠ)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는 길바닥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롯데리아조차 없어서, 이사하고 얼마 후 버스 타고 가다가 롯데리아를 봤을 때는 마치 롯데리아를 난생 처음 본 사람마냥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서 '우와~~' 하며 보기도 했다. -.-;; 

  다행히 그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편의시설을 하나씩 발견하고, 또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편의시설도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특히 다이소가 하나 들어오니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  편의시설이 부족한 곳이라서 다이소도 백화점급으로 대우받는다. ^^;;


  그리고 이 동네의 특이한 점 하나가 주민들의 유별난 견공 사랑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개가 그냥 개가 아니라 개님(!)이시다.  중.대형견이야 목줄 메어 끌고다니지만, 소형견은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태워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 품에 곱게 안겨서 혹은 우아하게(?) 유모차 타고 가는 개를 보면 귀족처럼 보이고, 두 다리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는 평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개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러는지, 처음에는 사람 병원보다 동물 병원이 많았다.  그래도 지난 한 달 동안 내과니 이비인후과니 치과니 하고 골고루 생기긴 했다.  하지만 처음 이사왔을 때만 해도 사람 병원이라고는 소아청소년과 달랑 하나 밖에 없었고, 대신 동물병원은 세 군데나 있었다. (사람보다 동물의 의료환경이 더 좋은 이 상황은 뭔가요? -.-;;)


  또한 정말 특이해 보이는 것 하나...

  우리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 두 곳에서 아파트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  무슨 위원회까지 만들어 플래카드까지 내거는 통에, 저녁마다 운동 삼아 이 아파트 저 아파트 돌아다니던 나까지 그 일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이름을 바꾸려는 이유는, 지금의 이름이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 장차 아파트 가격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내가 부동산을 구입해 본 적이 없어서 부동산 세계의 오묘함(!)을 잘 몰라 그러는지 몰라도, 솔직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차라리 시간이 한참 흘러 입주자들이 대폭 물갈이 된 후라면야 '우리 아파트 이름이 요즘 추세에는 안 맞는 이름 같으니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입주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온 사람들, 즉 '최초의 입주자' 다.  아파트 이름이 원래 그렇다는 걸 뻔히 알고서 분양 신청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이름을 바꿔달라고 하는 걸까?  그렇게 아파트 이름이 싫다면 처음부터 그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누가 목에 칼 들이대며 '이 아파트 안 사면 죽여버리겠어!' 하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참... -.-;; 


  마지막으로 아파트촌 한복판에 뜬금없이 자리 잡고 있는 보리밭 풍경...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에 보리밭이 있다.  한동안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놨더니, 보는 친구마다 '너희 아파트 환경 끝내준다~~' 식의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아, 저 아파트는 우리집이 아니란다... ^^;;)

  설마 아파트촌에서 보리농사를 전문적으로 지을 생각으로 보리를 심어두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도시 개발 혹은 부동산세 관련해서 어떤 꼼수(!)가 숨겨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놀려두는 땅이 아니라고, 혹은 관청에 신고한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구입한 게 아니라고, 어필(!)하기 위해 보리를 열심히 심어놓은 듯하다.

  그렇게 발칙한(!) 사정이 숨겨진 것 같은 보리밭이지만, 지나가며 볼 때마다 눈이 즐겁기는 한다.  여기저기 공사판을 벌여놓아 살풍경한데 이런 목가적(?)인 풍경을 보니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느낌이다.  



이사하고 며칠 후에 봤을 때의 풍경.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정자도 있음.



이사하고 2주일 쯤 후의 모습.

보리밭 여기저기에 다양한 허수아비가 있음.

(밝을 때 보면 재미있지만 어두울 때 보면 좀 무서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