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우리집 앞 나무가 벚나무였구나!

Lesley 2016. 4. 10. 00:01


  2층인 우리집(1층 아래에 로비층이 따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3층임.) 베란다 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지금까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몰랐고 또 굳이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뭇가지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만 꼿꼿이 자라는 것을 보고, 침엽수 종류인가 보다 하고 말았다. 


  올해는 3월 하순에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생겨나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집에서 몇 년이나 살았지만, 겨울에야 당연히 잎이 없는 앙상한 모습이었고, 봄에서 가을까지는 잎만 잔뜩 붙은 모습이었을 뿐 꽃이 피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신경을 안 써서 못 봤을 뿐이지, 엄마는 꽃이 피는 걸 보신 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꽃이 핀다고는 해도 매년 겨우 서너 개가 피어날 뿐이고, 그나마 모양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설프게 피었다가 금새 지는 통에, 그게 무슨 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니 내가 못 봤지~~~)

  그런데 올해는 특이하게도 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꽃망울이 생겨났다.  그리고 3월 말이 되자 그 꽃의 정체가 확실해졌다.  바로 벚꽃이다...!  우리집 앞 나무의 정체가 벚나무이었다...!



몇 년 간 숨죽이고 있다가 난데없이 피어난 벚꽃.



이렇게 꼿꼿한 벚나무는 처음 봄.

(하늘을 찌를 기세. ^^)



  집 앞 나무가 벚나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벚나무는 전부 옆으로 넓게 퍼지는 종류였다.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벚꽃 사진으로 예를 들자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있는 벚꽃처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벚꽃이 활짝 피었어요!(http://blog.daum.net/jha7791/15791203)




혹은 경주 형산강변에 늘어선 벚꽃처럼...

20시간 동안 경주 여행하기(4) - 영화 '경주' 속 찻집 '아리솔' /김유신 장군묘 / 벚꽃(http://blog.daum.net/jha7791/15791201)



하필이면 이사가는 해 벚꽃을 피워낸 것을 보니

벚나무가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음.



  그나저나 같은 아파트 단지 안의 다른 벚나무들은 위의 한국예술종합학교나 경주의 사진처럼 꽃을을 잔뜩 피워냈는데, 이 벚나무만 드문드문 꽃을 피워냈다.

  몇 년이나 무슨 나무인지 모를 정도로 꽃을 거의 안 피워내더니, 겨우 피워낸다는 게 저 모양이다.  저 벚나무 성질머리가 꽤나 까칠한 듯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남들이야 꽃을 잔뜩 피워내든지 말든지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하는 고고함(?)이나 자존심(!)인 것 같기도 하고... ^^




내내 꽃을 피어내는 듯 마는 듯했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꽃을 피워내다니,

아마도 좋은 징조겠지? ^^



  이사 날짜가 잡힌 뒤로 이사만 생각하면 싱숭생숭했다.

  지금껏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지만 인접한 동네 두세 곳을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홈그라운드(?)를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보통 고향이란 개념이 희박한 편이고, 이제껏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태어나서 자란 곳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허전한다.  서울이란 곳이 삭막하니 어쩌니 해도 역시 고향은 고향인가 보다. 


  그러던 차에 벚나무의 돌출행동(?)을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다.

  사실은 벚나무에 가끔 알록달록한 예쁜 새가 날아와 앉았던 일만으로도, 저 벚나무가 내 기억 속에 남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사가기 전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처음으로 제대로 꽃을 피웠다는 사실까지 더해져서,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뇌리 속에 박힐 듯하다.  아마 앞으로 아무리 화려하게 벚꽃을 피워낸 벚나무를 보더라도, 나에게는 까칠하게 위로만 솟아난 채 군데군데만 벚꽃을 피워냈던 저 벚나무만 못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