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이승만 시 공모전 소동 - 세로드립의 해학

Lesley 2016. 5. 4. 00:01


  그 동안 블로그에 시에 관한 포스트를 여러 번 올렸지만 이번 포스트는 좀 특수한 경우다.  

  다른 시 관련 포스트에는 시의 내용, 시에 얽힌 사연, 시에 대한 내 느낌을 썼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에서는, 시를 이상하게 이용하려다던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누군가에게 당해서 발라당 나자빠진 사연이 나온다. 


  지난 3월에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시 공모전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제1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 - 잊혀졌던 거인의 발자취를 다시 그리다' 다.  공모전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행사다.  이 공모전을 주최한 단체는 '자유경제원' 이란 곳인데, 작년에 큰 이슈가 되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를 일으킨 뉴라이트 계열이다. (그러니 이런 공모전을 개최했겠지... -.-;;)

  어쨌거나 3월 초에 시를 공모해서, 같은 달 하순에 대상부터 입선까지 4등급으로 나누어 우수한(!) 작품을 뽑아서 상장에 상금까지 주었다.  그렇게 이 공모전은 그들만의 잔치로 마무리 될 뻔했는데...  


  아는 사람이나 알던 이 공모전이 4월 들어서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등 최우수상으로 뽑힌 'To the Promised Land' 와 4등 입선으로 뽑힌 '우남찬가' 라는 작품의 진면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시 모두 언뜻 보면 이승만을 찬양하는 내용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이승만을 비꼬는 시다.  소위 '세로드립(세로로 읽으면 겉으로 드러난 뜻과 전혀 다른 뜻이 드러나는 말장난을 가르키는 인터넷상의 은어)' 이라는 절묘한 방법으로 진짜 주제를 숨긴 것이다.  그런데 자유경제원이 그런 속뜻을 알아채지 못 하고 깜빡 넘어가서 두 시를 우수작품으로 뽑고, 두 시를 지은 사람들에게 상장과 상금을 준 것이다.



- 최우수상 수상작 -



To the Promised Land


Now you rest your burden
International leader, Seung Man Rhee
Greatness, you strived for;
A democratic state was your legacy
Grounded in your thoughts.
And yet, your name was tainted
Right voice was censored
Against all reason
However, your name lives on
And your people are flourish
Wiith and under ideals you founded
And so dearly defended
Indebted, we are,
In peace, you are.



  먼저 To the Promised Land를 보면...

  액면 그대로 해석해보면 '이제 당신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국제적인 지도자 이승만이여.' 라는 둥 '당신(이승만)이 세운 이상 아래 당신의 국민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라는 둥, 정말이지 21세기판 용비어천가가 따로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각 줄의 첫 번째 글자만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니가 가라 하와이)가 된다.  즉, 이승만이 4.19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쫓기다시피 미국 하와이로 간 사실을 비꼬는 내용이다.



- 입선 수상작 -


우남찬가



송이 푸른 꽃이 기지개를 켜고
대편 윗동네로 꽃가루를 날리네
중에 부는 바람은 남쪽에서 왔건만
란하게 회오리쳐 하늘길을 어지럽혀
사의 유산, 겨레의 의지를 모욕하는구나

족의 안녕은 작은 즐거움이요
국의 평화는 큰 즐거움이니
간된 도리가 무엇이겠느냐
사로운 꾀로는 내 배를 불리지만
매한 지략은 국민을 배불린다.
문에 오른 그분은 가슴에 오로지
족번영만을 품고 계셨으리라
함을 모르는 그의 열정은
대편 윗동네도 모르는 바 아니리
사가 가슴치며 통곡을 하는구나
유는 공짜로 얻을 수 없다고

줌 용기의 불꽃을 흩뿌려
산 사방의 애국심을 타오르게 했던
부진 음성과 부드러운 눈빛의 지도자
승만 대통령 우리의 국부여
력의 공산당의 붉은 마수를
란 기백으로 막아낸 당신

가의 아버지로서 국민을 보듬고
족의 지도자 역할을 하셨으며
려진 이땅의 마지막 희망으로
민군 압제에 당당히 맞서니
리어 두만강까지 밀고 들어가
국의 판세를 뒤엎고 솟아올라
유민주주의의 기틀을 잡으셨다.

국과 침탈의 원통함이여
운이 어지러워 한치앞을 모르던
세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고
군 황제의 묘 앞에서 맹세하길
실하고 찬란한 한민족의 나라
민이 자부심을 갖는 민주국가를 세우리라.

아라, 새싹들아. 그의 발자취를
와라, 청년들아. 그 가치의 보존을
습하라, 장년들아. 그 걸림없던 추진을
위롭게 솟구친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이자 독립열사였던 이승만 선생의 역사이니
아라, 그대여. 이 자랑스런 나라에



  그리고 제목부터 노골적인 이승만 찬양가로 보이는 우남찬가를 살펴보면...

  그냥 쭉 읽어보면 보는 이의 낯이 간지러울 지경으로 이승만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역시 각 줄의 첫 번째 글자를 세로로 쭉 이어 읽어보면 숨겨진 속뜻이 나온다.  즉, '한반도분열 친일인사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 이라는 6음보(?)로 이루어진 어구가 줄줄 나온다.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니, 이 우남찬가를 지은 사람은 입선 상금 10만원을 받아서 여자친구와 함께 고기(!)를 사먹는데 썼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자유경제원 사람들 머리에서 마치 밥 다 된 압력솥에서 나오는 것처럼 김이 푹푹 나왔을 게 뻔하다. (깨소금 맛이다~~)


  자유경제원에서는 이 두 시의 저자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두 사람의 행동이 과연 형사처벌 요건을 충족시키는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미 자유경제원 쪽에서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한 듯하다. (그러기에 애초에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공모전을 개최해서 개망신을 사서 겪나... -.-;;)


  그 동안 '해학' 이니 '골계미' 니 하는 단어에 대해서 그저 '풍자와 비슷한 뜻이지.'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해학 혹은 골계미란 말의 뜻을 제.대.로 느꼈다...!  그저 머리로 막연하게 아는 게 아니라 마음에 팍팍 와닿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학창시절에 판소리에 대해 '양반들의 위선을 웃음으로 파헤치는 해학적인 예술' 이니 뭐니하며 배웠다.  솔직히 그 때는 꿈보다 해몽이란 식으로 별 것 아닌 것에 엄청난 해석을 붙였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시 공모전 사건을 보고서야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것보다, 아예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에게 훨씬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 자유경제원이 무엇을 하더라도 이번 공모전에 관한 일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희화화 될 게 뻔하다.

  자유경제원이란 곳이 그래도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인 모양이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어째서 그런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 요상스러운 공모전이나 개최한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고... -.-;;)  그런 고상한 양반들 입장에서 보자면 차라리 이번 공모전에 대해 육두문자 난무하는 비난을 잔뜩 받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해서 바보 멍청이 취급 받는 쪽보다는 말이다.  이름 모를 두 시인이 초강력 펀치를 아주 제대로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