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혼자서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오나요?

Lesley 2016. 1. 6. 00:01

 

  <사연 1>

 

  지난 달의 어느 저녁, 대학시절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하다가 패밀리 레스토랑 TGIF에 들려 혼.자.서. 프렌치프라이를 저녁 겸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마시는 중이라 했다.  원래는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날 점심을 부실히 먹어 배고프던 참에, 마침 전철역을 벗어나며 보니 역 바로 옆에 있는 TGIF에서 프렌치프라이를 할인한다고 써붙여 놓은 것을 봤다고 한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맥주도 당기고...  그래서 겸사겸사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나 : "우리는 뭐 하나 공통된 게 없는데도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 했는데, 역시 통하는 게 있기는 있구나.  우리 나이 되어서도 혼자서 밥 못 먹는 사람 꽤 많던데, 우리는 둘 다 혼자서도 잘 먹잖아."

친구 : "야, 그런 미친 것들은 다 죽어야 돼.  밥 먹는 것도 혼자 못 하면 뭐하러 사냐?" (아니, 혼자 밥 못 먹는다고 죽을 것까지야... ^^;;)

 

  여자 혼자 술 마시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 '실연한 여자' 로 보일 거라고 했더니, 이 친구 아주 쿨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도 역시 아주 신경이 안 쓰였던 것은 아닌지, TGIF의 남자 직원 한 명이 자기 옆을 지나갈 때마다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투덜댔다. (역시 내 말이 맞다니까~~  그 직원 생각에도, 저 여자가 남자한테 차이고 혼자서 술 홀짝거리고 있구나 싶었던 게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 혼자 맥주까지 마시고 있으니, 남들 눈에는 꼭 실연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밥 먹는 것도 혼자 못 하면 뭐하러 사냐?" 라고 큰소리 치는 이 친구도, 대학시절에는 혼자 밥 먹으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

  심지어 이미 집으로 돌아간 나를,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며 학교로 다시 불러낸 적도 있다.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내가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갔더니, 이 친구가 전화해서 "너 가버리면 나 혼자서 어떻게 밥 먹어~~" 하며 우는 소리 하는 통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함께 밥을 먹어야 했다. (지금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건만, 대학시절의 나는 참으로 물러터진 성격이었구나... -.-;;)

  그랬던 친구가 이제는 혼자서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술까지 마신다니, 역시 사람은 세월 따라 변하게 되어 있나 보다.  이 친구보다 일찌감치 '혼자서도 잘 놀아요' 세계에 눈을 뜬 나조차, 바깥에서 혼자 술을 마셔본 적은 없다.  그런데 친구는 나보다 한참 후에야 '혼자서도 잘 놀아요' 세계의 일원이 되었건만, 나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술까지 혼자 마신다니... (이런 상황에서도 청출어람이란 사자성어를 쓸 수 있나요? ^^;;)

 

 

 

  <사연 2>

 

  대학 시절에도 이미 아웃사이더 기질이 충만(!)했던 나는 종종 혼자 밥을 먹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먹을 사람이 있는데도 굳이 혼자서 먹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는다든지 혹은 수업이 없는 주말에 학교에 나갔을 때,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배가 고픈데도 일부러 굶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과자 봉지 부스럭대는 소리 싫어할까봐 눈치 봐가며 과자로 때운다거나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혼자 밥먹는 게 무슨 불법행위도 아니고 비도덕적인 행위도 아니지 않나? 

 

 

  다만, 혼자 밥을 먹으려면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감수해야 했다.

 

  우선, 학생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다가 아는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경악(!)의 눈초리 혹은 딱하다는(!) 눈길을 감수해야 했다.

  요즘 대학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져서 전보다는 혼자 먹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던데,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학생 혼자서 밥먹는 건 무척이나 특이하게 취급되었다.  물론 혼자 밥 먹는 남학생도 특이하다는 눈길 받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여학생보다는 특이한 취급을 덜 받았다. 

 

  혹은 캠퍼스의 무법자인 기독교 동아리 사람들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혼자 밥 먹는 이들을 A급 전도대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혹은 내 얼굴이 전도활동 잘 먹히게 생긴 얼굴인지도... -.-;;)  정말이지, UBF와 네비게이토(이 두 동아리가 그 당시 내 모교의 기독교 연합 동아리 중 가장 활발히 전도활동을 하는 동아리였음.) 사람들은 전생에 찰거머리였음이 분명하다.  기독교 동아리에 아무런 관심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고, 모르는 척 하고  묵묵히 밥만 먹어도 소용없고...  이쪽 의사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전도활동을 펼치곤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걸리는 날에는,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불편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먹어야 했다. (이보시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 모르는 거요? ㅠ.ㅠ)

 

 

 

  <사연 3>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때,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지만 당시에는 좀 황당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마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나, B양, M양(모두 한국 여인네들)이 함께 외출했다가 학교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끼니 때가 한참 지난 뒤라 다들 허기가 졌다.  그래서 학교 근처의 식당으로 나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막 움직이려던 차에 T군(한국 남학생)이 B양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B양이 교문 앞에 있다고 대답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뒤에 너무 자연스럽게 "너 점심 먹었어?  우리 나가서 먹을 건데, 너도 같이 먹을래?" 라고 물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헉~!' 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떨어진다.  '혼자서 밥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 중 1人이었던 T군은 점심식사 때가 한참 지난 그 때까지 밥을 안 먹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B양이 함께 먹겠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그러마 했다.  문제는, T군이 있는 기숙사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30분 정도 걸린다는 점이다. -.-;;

  당장 배고파 죽을 것 같았던 나와 M양이 B양을 타박했다.  T군이 멀리 기숙사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왜 함께 먹자는 소리를 했느냐고, 어떻게 30분이나 기다리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B양도 무척 당황스러워 하며 그저 인사치레로 물어봤을 뿐이라 했다. -.-;;  점심 때가 지났으니 T군이 이미 점심을 먹었을 거라 생각했고, 설사 안 먹었더라도 기숙사 바로 옆에 있는 학생식당을 두고 굳이 한참 걸어야 하는 교문 쪽에 있는 우리에게 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T군은 원래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사람인 걸 B양 너도 잘 알잖아! ㅠ.ㅠ)

 

  그런데 T군에게서 전화가 온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이번에는 J군(이쪽도 한국 남학생)이 B양에게 전화를 했다.

  이 날 아무래도 B양이 단기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렸던 것 같다.  바로 조금 전에 그 일을 겪고도 또 다시 "지금 H언니(나)랑 M이랑 밖에 나가서 점심 먹으려고 해.  아직 점심 안 먹었으면 너도 올래?" 라고 물었다...! -0-;;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나와 M양이 기겁하며 손짓과 표정으로 말렸고, B양도 그제서야 아차 하는 얼굴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J군도 우리 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J군은 T군보다 더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곳에 오려면 1시간은 걸린다는 것이다. ㅠ.ㅠ  전화를 끊은 B양은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는 말이 버릇이 되어 무심코 튀어나왔다고 했다.

  B양은 원래도 제 때 밥을 못 챙겨먹으면 평소의 낙천성과 느긋함을 잃고 헐크(!)처럼 사납게 변하곤 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어나자, 배고파 죽겠는데 T군과 J군은 왜 빨리 오지 않느냐며 짜증을 냈다. (여보셔, B양!  우리가 배고픔을 참으며 두 남정네를 기다리게 된 게 전부 자네 탓이거든? -.-;;)

 

  그 때는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진(^^;;) 여자 셋이서 왜 한국 남자들은 혼자서 밥도 못 먹느냐며 성토(?)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별 문제' 라기 보다는 '사회 경험 유무의 문제' 였던 듯하다.

  <사연 1>에 나온 대학시절 친구처럼 학생 때에는 죽어도 혼자서는 밥을 못 먹겠다던 사람들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 여자 삼총사는 모두 사회 경험이 있어서 뻔뻔함(?)과 용감함(?) 수치가 높았기 때문에, 혼자 밥 먹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우리끼리 시간이 안 맞으면, 각자 알아서 학생식당에 가서 바글거리는 중국학생들 틈에서 밥을 먹곤 했다.

  그리고 우리의 일탈행위(?)가 잦았던 데에는 중국 대학의 학생식당 분위기도 한몫 했다.  중국학생들은 한국학생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혼자 먹더라도 한국에서처럼 타인의 눈길을 끌 일이 없어서, 우리는 더욱 아무렇지 않게 학생식당에 혼자 가서 밥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두 남학생은 당시 학생 신분이라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지냈다.  그래서 우리 여자들만큼 타인의 시선에 맞설 전투력(?)을 키우지 못 하고, 혼자 밥 먹는 것을 많이 어색해 했던 듯하다. (물론, 그 이유 말고도 개인의 성격과 기질 탓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결론 : 혼자서도 마음 편히 밥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먼저, 혼자 밥 먹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자꾸 흘깃거리며 쳐다보거나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문제다. 

  위에도 썼지만, 혼자 밥 먹는 건 불법행위도 비도덕적 행위도 아니다.  오히려,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저 밥 한 끼 먹는 일일 뿐인데, 그 정도도 혼자 해결 못 해서 반드시 누군가를 끌고가야 한다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하는 게 그 사람의 개성(?)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기 혼자 그 개성 지키며 살면 되는 거지, 왜 자기의 얼토당토 않는 기준을 남들에게까지 들이대며 '저 사람 좀 봐.  왜 혼자 먹냐?  왕따냐?' 하며 수군대거나 곁눈질로 쳐다보는 거냐... 

 

  그런데 혼자서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타인의 이상한 시선이야 기분이 나쁘더라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혼자 먹으러 온 손님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대놓고 문전박대하는 음식점이 많은 건 어찌할 수가 없다.  혼자 가도 서러움(!)을 겪지 않을 음식점이라고 해봤자 패스트푸드점, 분식점, 중국집 등 몇 군데 안 된다.

  음식점 주인들이 혼자 오는 손님을 꺼리는 것은 우리 음식 문화 특유의 반찬 때문인 것 같다.  손님이 여러 명이든 한 명이든 식탁 하나에 내가는 반찬 숫자는 똑같다.  즉, 기본으로 들어가는 투자금(?)은 같은데 손님 숫자에 따라 투자금 대비 수익에 차이가 생기니, 음식점 주인들이 혼자 오는 손님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분식점이나 중국집은 반찬이라고 해봤자 깍두기 또는 단무지를 제공하는 정도다.  패스트푸드점 같은 경우에는 아예 반찬이란 게 따로 없고 주문한 음식 전부에 대해 값을 치른다.  그러니 혼자 먹으러 온 손님이라고 해서 주인이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한 마디로, 한국인의 따뜻한 정이니 넉넉한 인심이니 하는 것을 설명할 때 꼭 예로 나오는 무료(!) 반찬이 1인 손님 박대의 원인이 되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손님 입장에서 좀 야박해 보이거나, 주인 입장에서 좀 귀찮더라도...  ① 주요리와 반찬을 분리해서 따로 음식값을 받거나 ② 사람 숫자별로 반찬 숫자를 달리하면(1인 손님에게는 2가지 반찬, 2~3인에게는 4가지 반찬, 4~5명에게는 6가지 반찬 식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식당에서 내놓는 반찬을 몽땅 다 먹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①번 방법대로 반찬 가격을 따로 받는다면, 자신이 안 좋아하는 반찬 혹은 반찬이 불필요한 경우에 음식값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비빔밥 종류 같은 경우는 굳이 따로 반찬을 먹을 필요가 없지 않나?  어차피 비빔밥이라는 게 몇 가지 나물에 고기에 계란 프라이 등 여러 반찬이 세트(?)로 묶인 음식이니 말이다. 

  그리고 ②번 방법대로 한다면, 식당 주인 입장에서도 1인 손님에게 3~4인분의 반찬을 내주지 않아도 되니 경비가 절감되어 좋을 것 같다.  또 손님 입장에서도 자기 돈 내고 음식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낄 일이 없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우리에게, 혼자서도 마음 편히 밥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