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한밤중에 바퀴벌레와 마주치다!

Lesley 2024. 7. 1. 00:10

 

  이러다가 내 블로그 굷어죽겠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밥을 안 줬던 블로그에게 식량공급을 재개한 게 지난 4월이다.  하지만 그후 엄마가 입원하시는 일이 생기면서 블로그는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뼈말라(!) 모드로 돌입했다. (정작 살 빼야 하는 나는 나날이 찌고 있고 블로그만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라는... ㅠ.ㅠ)  엄마가 퇴원하신 후로도 소소한 일들이 있어서 '아, 블로그 굶어죽기 전에 밥을 줘야 하는데...' 라고 생각만 했을 뿐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난 주말 충격적인 일(적어도 나에게는 충격적이었음)을 겪은 김에 아사 직전의 블로그를 살려보려 한다.

 

 

 

  토요일 밤에 화장실에 가려다가 화장실과 마주한 싱크대 쪽을 별 생각없이 쳐다봤는데...

  거짓말 안 하고 내 집게손가락 길이의 오동통한 바퀴벌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ㅠ.ㅠ)

 

  내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벌레를 무서워한다.

  모기처럼 사람을 물어 가렵게 만드는 해충 싫은 게 아니라 벌레란 벌레는 다 혐오하고 무서워한다.  오죽하면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소설인 '변신' 을 안 읽은 이유가 소설 속 주인공이 거대한 벌레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주인공처럼 벌레로 변한다면?  아마 정신적인 충격으로 곧장 쓰러져 죽을 지도 모른다. 

 

  이 나이 되도록 바퀴벌레를 못 본 것은 아니다.

  대여섯 번은 본 것 같은데, 지금껏 본 바퀴벌레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살던 우리의 동포(?)라 할 수 있는 '집바퀴' 라는 녀석들이다.  우리 땅덩어리가 작아서 그런지 집바퀴란 녀석들도 작아서 그나마 덜 징그럽다. (made in Korea 바퀴벌레)

  그런데 이번에 본 것은 커다란 미국산 바퀴벌레다.  미국이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우리나라 바퀴벌레에 비해 10배는 크다. (made in USA 바퀴벌레)  미국에서 살던 바퀴벌레들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수출입 선박에 숨어들어 한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미국 바퀴벌레에 대해 고등학교 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같은 반 아이 왈, 사람 손바닥 절반만큼 커다란 크기라 너무 징그러운데 가끔은 날아다니기까지 한다고 했다. 

 

  여지껏 미국 바퀴벌레를 안 보고 살았으니 평생 안 보고 살게 되려나 보다 했는데... 결국 봤다...

  2년 전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 사망자까지 나왔기 때문에, 특히 피해가 심했던 관악구는 여름만 되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작년에는 반지하 주택 창문에 물막이판을 설치해준다며 신청하라고 여기저기 전단지를 붙이더니, 올해는 골목마다 폭우 쏟아져도 배수가 원할하도록 하수관 교체 공사를 한다.  내가 사는 골목도 1주일 넘게 공사를 했더랬다.  피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공사이니 좋은 목적에서 하는 공사가 맞기는 한데...

  문제는 땅을 파헤쳐놓았더니 그 밑에 살던 바퀴벌레들이 땅위로 우르르 올라왔다는 사실...!  나도 공사 무렵이나 그 후 해가 진 뒤에 길을 걷다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바퀴벌레를 여러 번 봤다. (그러고 보니 지난 토요일에 미국 바퀴벌레를 보기 전에도 그 녀석 친구들을 본 적이 있구나...  그랬구나...  끄덕끄덕...)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커뮤니티에도 하수도관 교체 공사로 땅을 파헤쳐놓은 뒤로 바퀴벌레가 길에 자주 보인다는 글이 올라왔더랬다.

 

  각설하고...

  토요일 밤에 뜻하지 않게 싱크대 위에 올라온 녀석과 마주쳤는데,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사람을 피해 후다닥 도망치는 모습도 아니고 밝은 전등 아래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놀라는 것도 실감이 날 때의 일이지, 집안에서 커다란 바퀴벌레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에 몇 초 동안 뇌가 멈춘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나만큼이나 그 녀석도 놀랐는지 그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사태를 깨달은 것처럼 기겁하며 몸을 휙 돌렸다.  바퀴벌레가 기겁한다는 표현이 좀 어이없기는 한데 정말 그 녀석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나란 사람은 바퀴벌레의 감정도 파악하는 사람...)  동시에 멈춰있던 내 두뇌가 최대 속도로 가동되었고, 마음 속으로 '저 녀석을 죽여야 돼...!' 하고 외치며 얼른 홈키파를 가져다가 정신없이 뿌렸다. (홈키파나 에프킬라는 모기나 파리 같은 것들이나 잡을 수 있을 뿐 바퀴벌레에게는 별 소용없다고 함.  그러나 우리집에는 홈키파만 있어서... ㅠ.ㅠ)   하지만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 이란 표현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 그 바퀴벌레는 홈키파 내용물을 뒤집어쓰고도 싱크대와 싱크대 밑에 빌트인으로 설치된 세탁기 사이의 틈으로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확실히 죽였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으니 그때부터 오만가지 상상이 들었다.

  녀석이 집밖으로 나갔다면야 더 바랄 게 없ㄱ지만 싱크대와 세탁기 사이의 틈 안쪽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으면 어쩌나...  한밤중에 내가 자고 있을 때 녀석이 기어나와 내 몸에서 등산하면 어쩌나...  나타난 곳이 싱크대였으니 내가 식사할 때 쓰는 그릇이나 숟가락 위에서 신나게 놀았던 것은 아닐까... 

 

  급하게 인터넷을 뒤져서 바퀴벌레 없애는 방법을 읽어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독한 락스를 바퀴벌레가 사라진 틈은 물론이고 싱크대 배수구나 세탁기 밑에도 뿌려대고, 치약 냄새를 바퀴벌레가 질색한다고 하기에 키친타올 길게 찢어서 그 위에 치약을 점점이 묻혀 바퀴벌레가 들어간 틈에 넣기도 하고, 효과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홈키파를 무지막지하게 뿌려댔다.

  장마가 시작되어 바깥에 비가 잔뜩 내리는 통에 창문을 열 수가 없으니 환기도 할 수 없었다.  방안에 락스 냄새, 치약 냄새, 홈키파 냄새가 범벅되어 머리가 띵할 정도였고 이러다가 폐병 걸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훗날의 폐병보다는 당장의 바퀴벌레가 더 겁이 났기 때문에 독한 냄새를 감수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 다음 날 바퀴벌레용 덫과 바퀴벌레용 살충제를 사와서, 덫을 여기저기 붙이고 살충제도 잔뜩 뿌렸다.  혹시 몰라서 살충제는 싱크대 배수구는 물론이고 현관문과 창문에까지 뿌렸다.

 

  이렇게 요란을 떨었으니 한동안 바퀴벌레는 물론이고 모기나 파리도 얼씬거리지 못할 것 같다.

  제발, 꼭, 반드시 그래야 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