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운전면허시험(3) - 도로주행시험 폭망...!

Lesley 2023. 7. 3. 22:55

 

  장내기능시험 합격한 다음 날부터 도로주행 수업에 들어갔다.

  재수에 삼수를 거듭할 지도 모르다고 생각했던 장내기능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고 나니 자신감 뿜뿜...!!!  실력이 아닌 운으로 합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로주행도 잘 될 거라는 희망(혹은 망상... ^^;;)이 샘솟았다. (이 망상은 일주일만에 박살났다는...)

  도로주행교육은 6시간을 받아야  해서 하루에 2시간씩 3일 동안 받게 된다.  첫 번째 수업 때는 과천에서 도로주행의 기초를 배우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수업 때는 사당역 주변 도로를 돌며 본격적으로 도로주행시험을 준비한다. (교과서 살짝 맛만 본 사람이 대뜸 수능모의고사 문제집 푸는 격이니,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이 좀 이상하긴 함. -.-;;)

 

  

 

  도로주행 첫 번째 수업은 재미있었다.

 

  첫 번째 수업은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 근처 도로에서 했다.

  사당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도로주행 코스는 사당역 주변 도로지만, 사당역 근처가 교통 요지라 언제나 차가 바글거린다.  난생 처음 도로에서 운전하는데 그런 복잡한 곳은 곤란하니 차가 별로 없는 과천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운전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이 날 처음으로 했다.

  먼저 번 포스트에 썼듯이 내가 손재주도 없고 방향감각이나 반사신경도 둔해서 장내기능교육은 엉망진창이었다.  교육 받는 내내 '내가 미쳤지, 지금까지 운저면허 없이 잘 살았으면서 왜 이제와서 비싼 돈 내고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이 날 수업은 순조로운 정도를 넘어서 신이 날 정도였다.  좁아터진 운전학원에서는 좌회전과 우회전을 하며 끙끙거렸는데, 널찍하고 한가한 과천 도로에서 좌회전과 우회전을 하려니 어이없을 정도로 잘 된다.  난생 처음 해보는 유턴조차 잘 된다.  직진할 때도 뻥뻥 뚫린 도로를 달리려니 가슴까지 시원해지며, 사람들이 이런 맛에 면허 따서 드라이브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천 집값 비싼 이유 중 하나가 도로가 안 막혀서 운전하기 편해서인가 보다...)

 

  물론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지적사항은 또 나왔다.

  첫째, 차로유지를 잘 하지 못해서 자동차가 자꾸 오른쪽으로 쏠린다.  둘째, 브레이크 밟는 게 느려서 앞바퀴가 횡단보도나 교차로 앞 정지선을 지난 후에야 정차한다. 

 

  어쨌거나 이런 운전 수업이라면 매일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 들 정도로 즐거운 수업이었다. 

 

  

 

  도로주행 두 번째 수업은 정신없었다.

 

  두 번째 수업부터 사당역 근처 도로에서 운전했는데, 며칠 전 수업 받았던 과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ㅠ.ㅠ

  도로에 차가 적은 시간을 고른다고 출퇴근 시간 피해서 수업시간을 잡았건만 무슨 차가 그리 많던지...  서울의 자동차 절반은 사당으로 꾸역꾸역 몰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로주행 코스는 A, B, C, D 총 4개가 있는데 수험생이 태블릿으로 코스를 추첨해서 시험 본다.

  그러니 두 번째 수업과 세 번째 수업 총 4시간 동안 4개 코스를 익혀야 한다.  두 번째 수업을 받기 전에 첫 번째 수업 때 받은 4개 코스의 약도도 봤고 유튜브에 나오는 도로주행 영상도 봤건만...  내가 동서남북 구별 못 하는 방향치다 보니, 미리 봐 둔 약도나 동영상 속 풍경과 실제 내가 운전하는 도로 모습이 매치가 안 된다.  그렇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두 번째 수업을 마쳤다.

 

 

 

  도로주행 세 번째 수업은 조금 나았다.

 

  집에서 약도와 유튜브를 되풀이 해서 보고 갔더니 세 번째 수업은 좀 수월했다.

  물론 시험 코스 익히는 게 수월해졌다는 뜻이지, 운전실력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브레이크 밟는 타이밍이 좋아져서 신호에 걸릴 때 정지선을 넘는 일이 없어졌고, 차선유지 못 하던 것도 나아져서 뿌듯했다.  지난 번 장내기능시험 때처럼 운이 조금(사실은 조금이 아니고 많이... ^^;;) 따라준다면 이번에도 합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세 번째 수업을 마쳤다.

 

 

 

  도로주행시험 망했다... ㅠ.ㅠ

 

  도로주행시험 때는 3명이 한 팀이 되어 자동차에 함께 탄다.

  장내기능시험은 100% 기계 채점이라 수험생 혼자 자동차에 타는데, 도로주행시험은 채점을 기계와 감독관이 같이 하기 때문에 감독관이 타야 한다.  그리고 수험생 2명이 함께 타서 한 사람이 앞자리에서 시험 보는 동안 다른 사람은 뒷자리에 앉아 참관인 역할을 한다.

  요즘은 수험용 자동차에도 블랙박스가 있어서 불미스러운 일이 거의 없을 듯한데...  블랙박스도 없고 운전시험 난이도도 높았던 2010년 이전에는 수험생이 뇌물을 주면 감독관이 감점을 제대로 안 하고 수험생을 합격시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참관인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나와 한 팀이 된 수험생이 먼저 시험을 봤는데 유턴 구간에서 큰 실수를 해서 불합격했다.

  B코스의 유턴 구간인 방배래미안아파트 삼거리에서 좀 헷갈렸는지 유턴 신호(좌회전,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정차 상태로 있다가, 감독관에게 신호 들어왔는데 왜 안 갔냐고 지적당했다.  그러자 당황했는지 다음 유턴 신호 때 기어를 중립에서 드라이브로 바꾸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유턴 하나 잘못하자 이것저것 다 걸려 29점이나 깎였다.  70점이 커트라인이라 감점이 30점을 넘으면 안 되는데, 시험 후반부도 아니고 초반부에서 29점이 날아갔으니 사실상 이때 불합격한 것이다.

  참관인으로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던 나도 같은 수험생이다 보니 '여기 유턴 구간은 다른 유턴 구간보다 쉬운 편인데 어쩌다 실수했을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 유턴 구간이 곧 나에게도 지뢰밭이 될 줄은 전혀 모른 채...!!! -.-;;)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조금 전 다른 수험생이 시험 본 B코스에 당첨되었다.

  '방금 전에 돌았던 코스에 걸리다니 운이 좋구나' 하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다른 수험생의 합격을 날려버린 유턴 구간이 내 합격도 날려버렸다...! ㅠ.ㅠ

  다른 수험생이 유턴 신호 들어왔는데도 정차하다가 망한 걸 봤기 때문에, 그 유턴 구간에 도착하자마자 좌회전 신호 들어온 것을 보고 냉큼 핸들을 돌렸다.  문제는 신호등에만 신경쓰느라 감속하지 않고 유턴해버렸다는 점...!

  자동차가 놀이동산의 기구처럼 순식간에 돌아가는데 나도 이게 뭔가 했다.  유턴 끝냈을 때 자동차가 반대쪽 도로 3차선에 들어가야 하는데, 유턴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원심력으로 멀리 돌며 4차선으로 들어가버렸다. (나중에 이 일을 들은 친구 왈 "미치겠다, 유턴하는데 원심력 이야기까지 나와야 되는 거냐..." -.-;;)  유턴하는 순간 옆자리의 감독관과 뒷자리의 다른 수험생 얼굴을 보지는 못했는데 아마 두 사람 모두 '오늘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인가 보다' 하고 기겁하는 표정 지었을 것이다. (정말 죄송하다는... ㅠ.ㅠ)

 

  시험 끝나고서 감독관이 채점용 태블릿을 보여주는데 유턴 망친 일로 과속에, 핸들조작미숙에, 기타 등등 하여 24점은 깎인 듯했다.

  물론 다른 걸 완벽히 해냈더라면 24점만 감점되어 76점으로 합격했겠지만, 다른 것이라고 완벽하게 했을 리가...  차선 바꾸고 왼쪽 깜빡이 끄려다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지를 않나, 당황해서 오른쪽 깜빡이 끄려다가 또 왼쪽 깜빡이를 켜지를 않나...  도로주행교육 때는 급브레이크 밟는 일이 없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급브레이크 밟기도 했고...  교육 때 지적받았던 차로유지 때문에도 감점되었고...

  그래서 커트라인에 한참 못 미치는 점수로 불합격했다.  학원으로 돌아와 55,000원을 내고 다음 도로주행시험을 신청했다. (피 같은 내 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