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2023년을 떠나보내며

Lesley 2024. 1. 1. 00:10

 

  블로그에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포스트는 여러 번 올려봤지만...

  떠나가는 해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포스트를 올리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어느 해가 안 그랬겠느냐만은 올해는 유독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사건의 중요성이나 파급력과 상관없이, 내 경험 위주로 올해 있었던 일들에 내 생각을 두서없이 얹어 써보자면... 

  

  날씨부터 유별났다.

  11월 초까지도 에어컨 바람이 필요할 만큼 늦더위가 기승을 떨더니, 12월 하순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서 1981년 이후 서울에 눈이 가장 많이 쏟아졌다고 했다.  지구가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단단히 골병 든 모양이다. 

  내가 사는 곳이 언덕받이라 집을 구하고서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고생 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르막길이 많은 동네라 오히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데 능숙한 것 같다.  주민센터 직원들인지 동네 주민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눈 내린다는 예보만 나오면 누군가 길에 염화칼슘을 미리 잔뜩 뿌려놓은 덕에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생긴 칼부림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신림역은 내가 사는 곳에서 전철로 3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사람들은 이 동네와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괜찮냐, 위험하지 않냐 등의 걱정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보통 범죄라고 하면 한밤중 으슥한 골목길에서 벌어진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대낮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전철역 근처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 도대체 거리를 활보하는 정신이상자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하는 걱정과 함께, 누구도 안전할 수 없구나 하는 답답함까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청조 사건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으잉?  이게 뭐지?' 하며 어안이 벙벙해졌고, 그 다음에는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수준의 전개에 흥미가 당기더니, 나중에는 '왜 매일 이 인간 기사만 나오는 거야!' 하며 짜증이 났더랬다.  사건이 여러 면에서 사람들 이목을 끌만하기는 했지만, 정작 언론이 주목하여 해결에 도움이 되어야 할 사건들이 넘쳐나건만 여기서도 저기서도 전청조만 부르짖고 있으니...  세상은 넓고 이상한 인간은 넘쳐나고 언론은 정신줄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얼마 전 '문화의 날' 에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을 봤다.

  내가 보러 갔을 때 이미 관객수 1,000만명을 넘어선 흥행작이었다.  그리고 나의 기여(?)로 관객수 1,100만명을 돌파했다.

  현대사를 소재로 한 이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에 의아했다.  이순신 장군이 적군을 물리쳤다는 식의 시원시원한 역사도 아니고 답답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 말고는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직접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인기를 끄는지 알겠다.  연기, 연출, 조명, 음악 등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우리 역사 중에서도 답답하고 암울한 부분을 소재로 삼았건만, 몰입감이 엄청나서 지루하거나 짜증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생각도 했지만, 영화가 수작이고 내가 감동받은 것과 별개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포기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올리게 되려나...

 

  지난 여름 운전면허를 딴 뒤로 지나가는 차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전에는 건널목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서 있을 때 아무 생각없이 있었는데, 요즘은 내 앞을 지나가는 차들이 방향지시등을 제대로 켜는지 바라보게 된다.  나부터가 운전면허 시험 보면서 방향지시등으로 실수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보니...

  그런데 10대가 좌회전을 한다고 치면... 그 중 7대는 제대로 좌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가지만, 2대는 방향지시등을 안 켜고 쌩하니 지나가버리고, 1대는 아예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고서 당당히 좌회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에는 방향지시등 같은 것 신경 안 썼는데 면허를 따고 나니 운전자들이 방향지시등 켜는 데 얼마나 소홀한 지 알겠다. 

 

  12월 들어 추운 날도 많았고 눈 오는 날도 여러 날이라 안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한동안 손 놓았던 책에 다시 눈이 간다.

  그런데 한 권씩 눈에 들어오면 좋을텐데 여러 녀석(?)이 동시에 '나 좀 읽어보시오~~' 하고 달려든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책을 읽었다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구미가 당겼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갑자기 '명심보감' 에도 꽂혀서, 두 권 모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다.  두 권을 같이 읽는데, 전에 사놓고 책꽂이에 얌전히 모셔두기만 한 '하루 3분 꺼내 먹는 자본주의' 도 뒤적이게 된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두 권은 몰라도 세 권 동시 진행은 좀...  그래도 한동안 멀리 했던 책과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는 될 것 같다.  연말에 시작한 책과의 재결합이 새해 들어서도 계속 되기를...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내 주위 사람들도 이팔청춘이 아니니 슬슬 여기저기 고장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