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서론부터...
관악구는 법정동과 행정동을 놓고 보았을 때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특이한 곳이다.
다른 구는 법정동이 최소 대여섯 개는 되는데 관악구의 법정동은 신림동, 봉천동, 남현동 등 달랑 3개다. 관악구 면적이나 인구가 다른 구보다 적은 것도 아닌데 법정동은 3개밖에 없으니 전에는 행정동 수가 어마무시(!)했다. 봉천동이 봉천본동과 봉천1동에서 봉천11동까지 총 12개, 신림동이 신림본동과 신림1동에서 신림13동까지 총 14개였다...! -0-;;
따로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행정동 통폐합 이전에는 전국에서 행정동이 제일 많은 곳이 총 14개인 신림동이었을 듯하다. (가능성 99%...!) 이러니 택배기사나 집배원처럼 주소 보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볼일 있어서 이 지역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예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뭐가 뭔지 헷갈려 했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법정동과 행정동이 무엇인고 하니...
단순하고 원초적이며 맛있게 표현하자면, 법정동은 피자 한 판이고 행정동은 그 피자의 한 조각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법정동 은 말 그대로 '법으로 정한 동' 이다.
서울의 면적과 인구가 얼마 안 되던 시절에는 동이 거의 법정동을 뜻했다고 한다. 법으로 정한 것이니 만큼 법으로 규율해야 하는 중요한 일, 즉 부동산 관련한 사항(대표적인 게 부동산등기부등본 같은 공문서)에는 법정동을 쓴다. 그래서 나는 인헌동(행정동)에 살지만 내 임대차 계약서에는 주소가 인헌동 대신 봉천동(법정동)으로 되어 있다.
행정동 은 행정업무 편의성과 효율성을 위해 법정동(피자 한 판)을 여러 개로 나누어 설치한 동(피자 한 조각)이다.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시기에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어 한 법정동 안에 사는 사람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해당 법정동을 담당하던 관청이 감당을 못 할 지경이 되었다. 지금처럼 모든 게 전산화 된 시절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지방에서 끝없이 밀려들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지방에서 이사 온 사람들의 전입신고를 처리하고자 서울 각지의 동사무소(현 행정복지센터)를 24시간 풀가동했다고 한다. (전입신고하려고 차례 기다리는 사람이 넘쳐나서 새치기가 난무하고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전입신고 빨리 하겠다고 공무원에게 뇌물 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그렇다면 법정동을 나누어 새로운 법정동을 만들고 담당 관청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위에 썼듯이 법정동은 법으로 정한 것이라, 이 법정동 저 법정동을 분리할 때마다 법을 일일이 뜯어고쳐야 해서 번거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법정동은 그대로 두되(피자 한 판), 법정동을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나누어(피자 한 조각) 각 행정동마다 행정복지센터(옛날에는 동사무소 / 주민센터)를 하나씩 새로 설치했다. 즉, 어떤 동네에 있는 행정복지센터 이름이 00동행정복지센터라면 그 00동이 그 동네의 행정동 명칭이다.
행정동은 주민을 위한 행정업무를 원활히 하고자 만든 동이니만큼, 주민의 신변 관련한 업무는 행정동을 기준으로 처리한다. 즉, 사람이 태어나거나 죽었을 때 하는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이사할 때 하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아이들의 취학통지, 젊은이들의 입영통지 등을 관할 행정동의 행정복지센터에서 담당한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봉천0동과 신림0동이 넘쳐나서 생기는 혼란스러움을 없애고자 2010년대에 관악구가 행정구역 개편에 나섰다.
행정동을 요리조리 붙여 그 수를 줄이고, 봉천0동 식으로 딱딱하게 숫자를 가져다 붙인 이름 대신 별도의 이름을 부여했다. 그래서 14개였던 신림동은 대학동(서울대가 있어서), 신사동(은평구에도 강남구에도 신사동이 있는데 또 생겼다는) 등 11개가 되었다. 12개였던 봉천동은 인헌동(강감찬 장군의 시호에서), 은천동(강감찬 장군의 아명에서), 중앙동(봉천동 한 가운데라서), 행운동(주민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보라매동(바로 옆에 보라매병원과 보라매공원이 있어서) 등 9개로 줄었다. (행정동 숫자를 줄였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동네보다 많음. -.-;;)
여기에서부터 본론입니다...!!!
인헌동(구 봉천11동)의 유래
이 포스트의 주인공(!)인 인헌동 은 옛날 봉천11동에 해당한다.
봉천11동 이름을 바꾸면서 하고많은 이름 중 인헌동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강감찬 장군의 시호가 '인헌(仁憲)' 이기 때문이다.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가 고려 시대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낙성대는 봉천동의 행정동 중 하나인 낙성대동에 있음.)
그래서 봉천동 일대에는 강감찬 장군 관련한 지명이나 건물명이 많다.
인헌동에 있는 전철역 이름이 강감찬이 태어난 낙성대에서 유래한 낙성대역이며, 인헌동 바로 옆 동네가 낙성대동이다. (낙성대역이 낙성대동에 있지 않고 인헌동에 있는 아이러니...) 봉천동의 또 다른 행정동인 은천동은 강감찬 장군의 어린 시절 이름인 '은천' 을 따서 지었다. 인헌동에는 인헌초등학교, 인헌중학교, 인헌고등학교도 있고 은천아파트도 있다. (은천아파트는 은천동에 있지 않고 인헌동에 있네...) 낙성연립이 있는가 하면 장군주택(!)도 있다.
인헌동은 고지대다.
인헌동은 고지대라 오르막길투성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헌동 뿐 아니라 봉천동 일대, 더 나아가서 관악구가 전체적으로 고지대이기는 하다. 그런데 인헌동에 있는 낙성대역은 사당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에 솟아(!)있기까지 하다. 사당역에서 낙성대역으로 가든,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으로 가든, 양쪽 길 전부 오르막이다. 다만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 방향으로는 나지막한 오르막길이라 편히 걸을 수 있지만, 사당역에서 낙성대역으로 가는 길은 경사도가 높아서 노약자가 걷기에는 힘들 것 같다.
인헌동 자체도 양옆 동네보다 높은데, 그중에서 인헌동의 남쪽은 더욱 높다. (지도에 보이는 등고선을 보라...!)
인헌동 남쪽이 바로 관악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고지대의 단점은 당연히 걷기 힘들다는 점이다. 노인이나 몸 불편한 사람 아니라면 평소에는 다닐만하지만, 짐을 들고 걸어야 할 때는 중간에 멈추고 헉헉거리게 된다. ^^;;
그래도 장점도 있다. 먼저 본의 아니게 운동량이 많아진다. 인헌동에서 오래 살면 살이 빠지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살이 더 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서울에 큰 홍수가 나더라도 침수 위험이 없을 듯하다. 인헌동이 침수될 정도라면 서울의 어지간한 지역은 다 물난리 겪게 된다고 보면 된다. (같은 인헌동이라도 인헌시장이 있는 비교적 낮은 지대는 작년 여름 홍수 때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함.)
1인 가구가 넘쳐나는 인헌동
인헌동은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동네다.
요즘 어디에서나 1인 가구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인헌동은 그중에서도 특히 많다. 온통 고지대다 보니 그동안 아파트를 짓기 힘들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가구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취하는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많이 거주한다.
일단 대학생부터 보자면, 서울대생이 제일 많지만 숭실대생과 중앙대생도 제법 있다고 한다.
위의 지도를 보면 인헌동 남서쪽(지도의 아래편 왼쪽)에 서울대학교가 보인다. 인헌동이 서울대 후문에서 가까운데다가 대학 근처치고는 방값이 저렴해서 서울대 학생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리고 위의 지도에는 안 나왔지만 인헌동 북쪽에 있는 동작구에 숭실대학교와 중앙대학교도 있다. 인헌동이 두 대학에서 좀 떨어져있지만, 그래도 중앙대가 있는 흑석동이나 숭실대가 있는 상도동보다 방값이 저렴하면서 한결 조용한 편이라 두 대학 학생들도 많이 거주한다.
대학생 만큼이나 많은 이가 혼자 사는 직장인이다.
낙성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면 갈아타는 일 없이 짧은 시간에 서초역, 교대역, 강남역, 역삼역, 선릉역 등 회사가 많은 서초구 및 강남구 일대로 갈 수 있다. 물론 제일 편한 것은 아예 회사 근처에서 사는 것이지만, 모두 알다시피 서초구와 강남구의 방값은 사악한(!) 수준이다. 그래서 방값 저렴하며 회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헌동이나 인헌동 근처 동네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단, 방값 저렴하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서초구, 강남구나 신촌 대학가에 비해 저렴할 뿐이다. 요즘 모든 물가가 오르다 보니 인헌동 방값도 오르는 추세다.
1인 가구가 많기 때문에 인헌동 자체가 1인 가구에 특화되어 있다.
1인 가구 사람에게 유용한 편의점, 카페, 빨래방이 많다.
이 동네 지리에 빨리 익숙해질 생각으로 이사와서 1주일 정도 시간 날 때마다 돌아다녔는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편의점, 카페, 빨래방이 많다.
편의점은 GS25, CU, 세븐일레븐 등 종류별로 몇 개씩 있다. 거짓말 좀 보태면 편의점이 100미터당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카페는 낙성대역 근처 대로변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등)가 있고, 대로에서 벗어난 주택가 여기저기에는 아기자기한 개인 카페가 있다. 널찍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물론이고 소규모 개인 카페에도 책 읽거나 노트북 이용하며 커피 마시는 사람이 항상 넘쳐난다.
빨래방도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프랜차이즈 세탁소인 크린토피아만 몇 개 있더니, 인헌동은 크린토피아뿐 아니라 이런저런 무인 빨래방이 많다. 무인 빨래방 중에는 무인 카페를 겸한 곳도 있어서,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다릴 수 있다. 심지어 무인 카페에 무인 노래방(!) 기계까지 들여 놓은 곳도 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반주 삼아 노래 한 곡 뽑기...? ^^)
1인 가구가 많으니 혼밥이 일상화 된 분위기다.
요즘 개인주의가 많이 퍼지면서 혼밥에 거부감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지만, 시내나 여러 명으로 구성된 가구가 많은 동네에서는 여전히 혼밥하기 곤란할 때가 있다. 인헌동은 식당에 1인용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경우도 많고, 굳이 1인용 자리 아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혼밥하는 사람이 자주 보인다. 하긴 1인 가구가 넘쳐흐르는 동네라서 1인 손님을 거부하면 장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재래시장조차 1인 가구형이다.
재래시장이 젊은층에게 외면받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재래시장은 '제대로 살림하는 사람이 장 보는 곳' 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나가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 경우가 많고, 요리를 하더라도 간단하게 하기 때문에 요리 재료를 이것저것 살 일이 없다. 그리고 집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반찬을 직접 만들지 않고 조리한 반찬을 사다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음식은 마트에서 더 다양하고 깔끔하게 팔기마련이다.
그런데 인헌동에 있는 '인헌시장' 은 다른 재래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1인 또는 2인 가구가 먹을만한 것들이 많다. (인헌시장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하리라...!) TV 방송을 타서 유명해졌다는데, 덕분에 인헌동 주민뿐 아니라 타지 사람들도 먹거리도 즐기고 구경도 할 겸 놀러오는 모양이다.
요약
1. 인헌동은 봉천동의 9개나 되는 행정동 중 하나다.
2. 인헌동이란 명칭은 강감찬 장군의 시호에서 따왔다.
3. 인헌동은 고지대라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오르막길이다.
4. 인헌동은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동네라 1인 가구 위주로 상권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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