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노원역 근처 성형외과 방문기

Lesley 2023. 1. 28. 00:04

  난생 처음 성형외과에 가다.

 

  지난 설연휴에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성형외과에 가봤다.

  그렇다고 내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것은 아니고...  엄마가 상안검 수술(+ 쌍꺼풀 수술)을 받게 되어 에스코트(?) 차원에서 따라간 것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성형 천국인 것처럼 소문날 정도로 성형 수술을 받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노선(!)을 걷는 사람들이라 남들이 쌍꺼풀을 만들거나 말거나 코를 높이거나 말거나 관심 없이 살았다.  가는 길에 엄마가 몇 번이나 "내가 성형외과를 다 가보네." 라고 하셨고, 나는 나대로 "엄마 덕에 성형외과 구경을 다 해보네." 라고 했다.

 

  노인이 되면 젊은 시절 멀쩡했던 눈꺼풀이 내려앉는 경우가 많다.

  쳐진 눈꺼풀 때문에 외모가 그 전만 못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야나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엄마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쳐진 눈꺼풀 아래에 땀이 고이면서 염증까지 생겨 고생한다.  그래서 쳐진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상안검 수술이니 상안검 리프팅 수술이니 하고 부른다.

 

  그런데 상안검 수술은 쌍꺼풀 수술과 같이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안검 수술이나 쌍꺼풀 수술이나 눈꺼풀 들어올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이중으로 하나 싶은데...  순전히 미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상안검 수술만 받아도 눈꺼풀이 올라가며 쌍꺼풀이 생기는 효과가 생기기는 하지만, 기능에 치중한 수술이라 예쁘게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차피 받는 수술, 이왕이면 예쁘게 되면 좋지 않나 하면서 쌍꺼풀 수술과 세트(!)로 묶어 받는다고 한다.

 

  설 연휴 중에도, 아니, 오히려 설 연휴를 이용해서 수술 받겠다고 온 이가 많았다.

  어르신들 상안검 수술 전문 병원으로 소문난 건지 어떤 건지 주로 중노년층이었고 가끔 젊은층도 있었다.  누구는 수술 받으러 왔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누구는 이미 수술받고서 소독을 하거나 실밥 풀러 왔는지 선글라스 끼고 앉아 있고...

  좀 의외였던 것은 성형수술은 여자가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야 엄마처럼 눈꺼풀이 쳐져서 불편하기 때문에 수술 받으러 왔다 치더라도,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들은 순전히 미용 목적이 아닐까...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왈, "야, 내 조카도 남자앤데 대학 들어가자마자 쌍꺼풀이랑 코 했어!"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의원도 그렇지만 특히 성형외과는 입소문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엄마도 이 성형외과에서 먼저 상안검 수술 받은 지인에게서 소개를 받고 갔는데, 접수하는 사람마다 거의 누군가의 소개로 왔다고 하니 말이다.  수술비가 저렴한데다가 주로 중노년층이 많이 찾다 보니 상안검 수술에 특화(!)된 곳으로 소문난 모양이다.

  수술이 끝난 후 노원역사 안에 있는 모자 가게에 들렸다.  집에서 가져온 모자가 좀 작은 듯해서 마침 모자 가게가 보이길래 하나 사려고 간 것인데...  가게 사장님이 선글라스를 낀 엄마를 보고  "000성형외과 다녀오셨나 봐요." 라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엄마와 둘이 빵 터졌다.  아래에 나오는 내용인데, 노원역 근처에는 성형외과가 꽤 많다.  그 많은 곳 중 우리가 다녀온 곳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것을 보니 어찌나 웃기던지...  어떻게 아셨느냐고 물었더니, 거기에서 수술 받고 그 가게에 들려 모자 사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가 수술 받은 곳이 나름 핫(!)한 성형외과였구나... 

 

  

 

  알고 보니 노원역 근처는 성형외과 천국이었다. 

 

  이번에 노원역을 다시 봤다.

  성형외과가 있는 노원역 근처는 전에도 여러 번 가봤다.  서울에 살 때 우리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데다가 롯데시네마도 있고 알라딘 중고서점도 있어서 가끔 갔더랬다.  그러니 새삼스레 호기심 가질 만한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같은 것을 보더라도 아는 만큼, 혹은 관심 있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엄마가 수술에 들어간 동안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 하나 먹고서 주위를 돌아다녀보니 노원역 근방이 새롭게 다가왔다.  전에는 신경 쓴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성형외과와 피부과 천지다...!  노원역 이쪽 출구를 봐도, 저쪽 출구를 봐도, 큰길에서 훤히 보이는 건물마다 성형외과가 한두 개씩은 있다.

 

  그리고 노원역 근처에 죽 파는 곳이 많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쌍꺼풀 수술 후 붓기 빼는데 호박죽이 좋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국소 마취를 한다지만 노인이라 마취가 금세 풀리지 않을까봐 요기를 하며 정신을 차릴 시간을 갖으려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죽 한 그릇씩 먹기로 했다.  그래서 노원역 근처를 돌아다니며 휴대폰 지도앱으로 죽 파는 음식점을 찾아봤더니 대여섯 곳이나 있다.

   노원역 근처에 살거나 노원역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이 유독 죽을 좋아할 리는 없고...  성형외과가 많아서 우리처럼 수술 후 죽을 많이 찾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관과 중고서점 들리느라 갔던 노원역은 알고 보니 성형외과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