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당근마켓에 울고 웃고

Lesley 2023. 1. 20. 00:01

  몇 년 전부터 개인간 중고 물품 거래에서 '당근마켓' 이란 게 대세가 되었다.

 

  한때는 '중고나라' 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개인이 아닌 전문적인 업자들이 판을 치며 물을 흐려놓았다.  게다가 중고나라는 전국구(!) 거래를 기본으로 해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택배로 물건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물건 상태를 직접 확인 못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으로는 멀쩡해 보였는데 실물은 왜 이러냐고~~" 같은...), 아예 엉뚱한 물건을 보내는 사기도 가끔 터졌다. (휴대폰 대신 벽돌 하나를 보내는...)

  언론에 나오는 중고나라 관련한 사건 기사를 읽어보면 어찌나 기막히고 어이없는 내용인지 '세상에는 봉이 김선달의 후손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상님들의 나쁜 점은 내버리고 좋은 점만 본받읍시다, 좀...!)

 

  이런 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당근마켓이다.

  중고나라가 네이버 카페에서 시작해서 스마트폰 앱으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당근마켓은 스마트폰이 천하를 평정한 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마트폰 앱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중고나라에도 스마트폰 앱이 있고 또 먼저 시장을 점령(!)한 선발주자라는 이점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후발주자인 당근마켓이 불리했을 텐데...

  당근마켓이 확 치고 올라온 데에는 '주거지나 활동지를 기반으로 한 중고 거래' 라는 점이 한몫했다.  즉, 당근마켓은 집, 학교, 회사 등 어떤 사람이 장시간 머무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일정 거리 안에 올라온 물건을 사고 팔게 되어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비교적 가까운 곳에 머물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물건 상태를 보고 현금을 주고 받으며 거래할 수 있다.  그러니 '물건 상태가 설명했던 것과 다르네' , '판매자가 돈만 받고 물건을 안 보내네' 하며 분란 겪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물론 세상은 넓고 진상(!)은 많은 법이라 중고나라에 비해 분란이 적다 뿐이지, 당근마켓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벌어진다는...) 

 

 

  자, 이미 많이들 쓰는 당근마켓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나도 뒤늦게 당근마켓에 관심을 갖고 스마트폰에 앱을 깔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당근마켓을 쓰거나 말거나 나는 당근마켓 없이 사는 독자노선을 추구했더랬다.  그런 나도 자꾸 당근마켓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겼다.

 

  그렇잖아도 자주 연락하는 친구에게서 당근마켓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친구가 "당근마켓에서 00를 샀는데 어쩌구 저쩌구..." 혹은 "당근마켓에서 XX를 사기로 해서 지금 약속 장소 가는 중이야"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요즘 당근마켓을 많이 쓰기는 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골 미용실에서도 당근마켓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거의 그러하듯이 미용사의 어머니도 쓸만한 중고품을 보시면 지나치지 못하고 집에 가져가신다고 한다.  집에 쌓인 물건이 많아져서 물건을 처분하시도록 유도할 생각으로, 어머니께 당근마켓 사용법을 알려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당근마켓을 통해 물건을 파시기는 커녕 오히려 사들이셔서 집안의 물건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엄마와 안면있는 이웃은 당근마켓 중독(!)에 빠져서, 딱히 필요한 물건 아니더라도 상태 좋으면서 값은 저렴한 물건을 발견하기만 하면 사들인다고 한다.  막상 사놓고는 쓸 일이 없어서 다시 내다팔거나 나눔으로 처분한다고 한다.

 

  도대체 당근마켓이 뭐라고 이 야단들인가 해서 나도 당근마켓 앱을 깔았다.

  아직 사거나 팔거나 한 적은 없고 눈팅만 했을 뿐이지만 며칠 살펴보니 이거 진짜 신세계다...!  나처럼 쇼핑에 시큰둥한 사람조차 왜 사람들이 여기에 빠지는지 알겠다.

  온갖 물건이 올라와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계속 보게 된다.  전자제품에, 가구에, 그릇에, 화초에, 먹거리에...  심지어 한옥의 창호지 바른 문짝이라든지, 80년대에나 쓰던 나무로 된 빨래판이라든지, 60년대나 70년대 동전까지, 별의별 물건이 있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서 여러 개를 사도 낭비라는 느낌이 안 드니 충동구매하기 쉽다. 

 

 

  잘 쓰기만 한다면 괜찮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긴 한데...

 

  위에 쓴 것과 같이, 당근마켓에도 다양한 진상이 드나들며 이런저런 분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만나서 물건을 거래하기로 약속해놓고 일언반구도 없이 안 나타나고 연락도 끊어버리는 사람, 분명히 가격에 대해 합의를 보고 만났는데도 막상 만나서는 조금만 깎아달라고 졸라대는 사람, 물건 거래하기로 하고 만나서는 그 만남을 사이비(!) 종교 전도의 기회로 이용하는 사람, 신상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태연하게 중고품에 붙여 놓고 호구(!)를 기다리는 사람 등등.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이상한 인간은 넘쳐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 나온 친구는 흔히 '나눔' 이라고 하는 물건을 무료로 나눠주는 일에 나섰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 물건을 정말 쓰려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적인 중고업자가 접근해서 끈덕지게 달라붙기도 하고, 자기가 먼저 말 걸었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줬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고, 주기로 한 사람에게 사정 생겼다고 둘러대고 자기에게 돈 받고 팔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친구는 그 물건을 이제 쓸 일 없지만 상태가 좋아서 다른 사람이라도 썼으면 하는 좋은 마음에서 나눔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러 진상들에게 시달리고 나니 앞으로는 나눔을 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당근마켓도 결국 쓰기 나름이다.

  좋은 방향으로 쓴다면야, 요즘처럼 경제 어려운 시기에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 좋다.  환경문제를 생각해도, 중고품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돌려쓴다는 점에서 좋다.

  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진상들이 문제다.  한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이란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는데 이제는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 이란 말도 나올 것 같다.  오프라인 세상에도 여기저기에 출몰하는 진상들이 온라인 앱에서도 기웃거리며 말썽을 부리니, 참...

 

  제발 매너 좀 지켜가면서 거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