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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4 - 'Arkangel(아크앤젤)'

Lesley 2022. 6. 13. 00:01

 

  몇 년 전에 '블랙 미러(BLACK MIRROR)' 라는 영국 드라마 중 몇몇 에피소드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블랙 미러 중 한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이어서 포스팅하려 한다. 

  ☞ 블랙 미러(BLACK MIRROR) - 독특한 영국 SF 드라마 http://blog.daum.net/jha7791/15791367

  ☞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3 - 'Shut Up and Dance(닥치고 춤 춰라)' https://blog.daum.net/jha7791/15791467

  ☞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3 - 'Hated In the Nation(범국민적 증오)' http://blog.daum.net/jha7791/15791469 

 

  오래간만에 이 드라마를 떠올린 것은 요즘 아이들 휴대폰에 깔린 위치추적 앱 때문이다.

  맞벌이 부모가 많은 세상이 되고 보니 예전처럼 자기 아이가 학교, 학원, 놀이터, 친구네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일일이 챙길 수 없다.  다행히(?) 스마트폰 하나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시대라서,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앱이 등장했다.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제 시간에 들어가고 나가는지를 엄마에게 알림 메시지로 알려주는 신통방통한 앱이다.

  아이의 안전 문제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유용한 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사생활을 생각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크앤젤(Arkangel) - 완벽한 보호, 혹은 완벽한 통제?

 

  블랙 미러 시즌 4에 나오는 에피소드 '아크앤젤(Arkangel)' 의 주인공은 '마리''세라' 모녀다.

  아빠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아빠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것으로 보아, 마리는 미혼모인 것 같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미혼모 가정이 많다고는 하지만, 굳이 두 주인공이 미혼모와 그 딸로 설정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남다른 모녀 관계(처음에는 끈끈한 애정, 나중에는 집착과 파국)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인 것 같다.

 

  마리는 어린 세라를 잃어버릴 뻔한 뒤, 아크앤젤(Arkangel)을 세라에게 이식하기로 결심한다.

  아크앤젤이란 아이의 뒷목에 이식하는 생체 칩이다.  아크앤젤은 아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전부 파악할 수 있고, 아이 보호자는 아크앤젤과 연결된 태블릿을 통해 아이 상태를 세세히 알 수 있다.  세라가 길을 가다가 무섭게 짖어대는 개를 보게 되면,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개의 모습은 물론이고 공포심으로 높아지는 아이의 호흡, 체온, 호르몬 수치까지 태블릿에 나타난다.  그러면 마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지금 우리 딸이 개를 보고 있고 무서워하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다.

  또한 보호자는 태블릿을 통해 아이가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개의 경우, 마리가 태블릿으로 보호 기능을 작동시키면 세라의 시야에서는 사납게 짖는 개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다.  또한 어린 아이가 듣기에 부적절한 욕설이나 야한 단어를 묵음으로 처리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크앤젤에는 문제점이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일단 이식하면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되며 금지되다가 결국에는 아크앤젤 업체에서도 판매를 중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세라는 이미 아크앤젤을 이식했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그대로 살아야 한다.

 

  또한 아크앤젤이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에 해롭다고는 해도, 어차피 사람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성장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겪어야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기계인 아크앤젤은 개별적인 상황의 미묘함을 구별하지 못 하기 때문에, 아이 신체의 각종 수치가 치솟기만 하면 아이를 스트레스에서 구하겠다는 목적으로 보호 모드로 들어간다.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어린 세라가 놀라 호흡과 맥박 등이 올라가자, 아크앤젤은 외할버지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해버렸다.  그래서 세라는 막연히 겁을 먹었을 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해서 엄마나 구급대에 연락하지 못 했고, 하마터면 외할아버지가 사망할 뻔했다.

 

  세라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일은 더 심각해진다.

  세라는 아크앤젤 때문에 분노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거의 겪지 못 하고 성장했다. (분노나 슬픔을 느낄 상황이 될 때마다 아크앤젤이 모자이크와 묵음 처리를 통해 세라의 눈과 귀를 막아버렸으니...)  그래서 또래 아이들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 해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게 된다.  결국 세라는 다른 아이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욕구와, 엄마에게 항상 감시당한다는 답답함에, 자해를 한다. 

 

  그제서야 마리는 아크앤젤이 딸을 보호해 줄 뿐 아니라 딸에게 해로울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이식한 칩을 제거할 방법이 없으니, 차선책으로 아크앤젤의 각종 보호 기능을 해제하고 태블릿도 치워버린다.  아이에게 사생활과 자율성을 보장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세라도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된다.

 

 

 

  다시 시작된 집착

 

  사춘기를 맞은 세라가 엇나가기 시작한다. 

  세라가 엄마 몰래 성인 남자와 사귀면서 허락 없이 외박까지 한다.  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마리는 걱정하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크앤젤을 떠올린다.  다시는 딸의 사생활을 감시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아크앤젤 태블릿을 작동시킨다.

  그런데 태블릿 화면에 처음 떠오르는 영상(즉, 바로 그 시간에 세라가 보고 있는 것)은 남자의 벗은 윗몸이다.  마리는 아직 어린 딸이 남자와 깊은 관계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 뒤로 태블릿을 통해 딸의 동태를 감시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나중에는 태블릿에 딸의 몸속 마약 성분이 나타난다.  세라의 남자친구가 질 나쁜 사람이라 미성년자를 꾀어 사귀는 것도 모자라 마약까지 권한 것이다.

  분노한 마리가 남자를 찾아가서 다시 세라를 만나면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겁을 먹은 남자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자 영문을 모르는 세라는 상심하지만, 마리는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 것에 안심한다.  그렇게 마리의 뜻대로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는데...

 

  어느날 마리가 태블릿을 보더니 경악한다.

  마리가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놀라워하는지, 카메라가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는 알 수 없다.  다음 장면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가는 마리를 보며 '엄청난 일이 벌어졌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음 날 세라는 수업 도중 기절해서 보건실로 실려간다.

  보건교사가 정신을 차린 세라에게, 사후 피임약의 부작용으로 기절한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세라는 피임약 같은 것을 먹은 적이 없기에 어리둥절해 한다.  보건교사는 어린 학생이 수치심 때문에 시치미 뗀다고 여겼는지, 비밀을 지켜줄테니 걱정말라고 위로한다.  정말 피임약을 먹은 적 없다고 반박하던 세라가 갑자기 입을 다문다.  세라 얼굴에 무언가 감을 잡은 것 같은 표정이 떠오른다.

  세라가 급히 집으로 돌아가 주방의 쓰레기통을 뒤지자 피임약 봉투가 나온다.  세라는 어렸을 때부터 아침마다 엄마가 과일을 믹서기로 갈아 만들어 준 주스를 먹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엄마가 주스 만드는 장면' 과 '딸이 주스 마시는 장면' 이 세라의 성장 과정에서 여러 번 나왔던 것은 복선이었다.  마리가 주스에 피임약을 타서 딸에게 먹인 것이다.

 

 

 

  파국

 

  이때부터 모든 일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세라는 자신이 임신할 뻔했다는 사실도 놀랍고,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사후 피임약을 먹였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일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임신을 엄마는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이다.  답은 하나다.  바로 아크앤젤...!

  세라는 엄마 방을 뒤져 문제의 태블릿을 찾아낸다.  그 안에 저장된 기록을 보다가, 자기와 애인의 성관계 장면까지 엄마가 봤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는다.  하필이면 이때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이미 이성을 잃은 세라는 태블릿으로 마리를 두들겨팬다.  엄마를 때리는 과정에서 태블릿의 화면이 터치되어 보호 기능이 설정되자, 세라에게 스트레스를 줄 만한 광경인 '엄마의 머리가 피범벅이 된 광경' 이 모자이크 처리된다.  엄마가 바닥에 쓰러진 뒤에야 다시 화면이 터치되어 보호 기능이 풀리고, 세라는 그제서야 엄마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놀란다.

 

  세라는 가출해버린다.

  쓰러진 엄마에게 응급처치를 하거나 구급대를 부르지도 않는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이 엄마에게 한 짓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옷가지를 되는대로 가방에 쑤셔넣어 들고는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마리는 자기 몸을 돌볼 새도 없이 허겁지겁 거리로 나간다.  피투성이 모습으로 애타게 딸의 이름을 부르지만 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아크앤젤은 딸을 영원히 지켜주는 물건이 아니라, 딸을 잃어버리는 시점을 십수 년 뒤로 미뤄주기만 하는 물건이었던가...

 

  이 드라마가 사회비판적인 성격의 드라마이다 보니 상황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 과 '자식의 사생활 보장'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게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옛날 사람들이 괜히 중용을 강조한 게 아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이란 것이, 눈에 확 보이는 게 아니다. 

  자식을 안전하게 키우겠다는 데에만 집중하면, 자칫 자식을 과잉보호하여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거나, 이 드라마에서처럼 부모 자식 간에 인연이 끊어질 지경으로 심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사생활을 보장해주려는 쿨(!)한 마음으로 지나친 자유를 허용한다면, 자식이 나쁜 길로 빠지거나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마리의 의도는 좋았다.

  처음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 자식을 보호할 방법을 찾자' 였다.  하나 밖에 없는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기에, 그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아크앤젤을 아이에게 이식했다.

  그리고 분명히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아크앤젤 덕분에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나쁜 남자에게 빠져서 하마터면 마약중독자나 어린 임산부가 될 뻔했을 때도, 아크앤젤의 도움으로 사전에 그 일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성애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딸을 영원히 잃게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겨우 두세 살 밖에 안 된 세라를 놀이터에서 잃어버렸다 겨우 찾아내고서, 두 번 다시 딸을 잃지 않겠노라며 아크앤젤을 딸에게 이식했다.  그런데 그 아크앤젤 때문에 딸을 영원히 잃었으니... 

 

  세라가 초등학교 때 자해를 했던 때가 아크앤젤 사용의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자기 손에 상처를 내고 눈까지 찔러 하마터면 실명할 뻔한 것은, 누가 봐도 매우 심각한 일이다.  세라가 더는 아크앤젤에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리 역시 아크앤젤을 계속해서 쓴다면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아크앤젤의 보호 기능을 해제하고 태블릿도 치워버렸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딸이 전처럼 엄마에게 자기 생활을 말해주지도 않고 반항을 하고 외박을 하자,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다시 아크앤젤에 손을 대고 만다.  딸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한 짓이지만 마지막으로 지켜야 하는 선을 넘어버린 셈이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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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3 - 'Hated In the Nation(범국민적 증오)'  http://blog.daum.net/jha7791/15791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