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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운(The Crown) 시즌 2 , 시즌 4

Lesley 2022. 9. 17. 00:01

  '더 크라운(The Crown)' 은 시즌 4까지 방영한 영국 드라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가 주인공이며, 다른 영국 왕족들과 정치인들도 비중있게 등장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특히 이 나라 저 나라의 왕정이 무너지는 와중에) 영국 왕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 전통과 변화 속에서 방황하는 왕족들의 모습, 영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묘사된다.  

 

  2016년부터 시작했다는 이 드라마를 올해 들어서야 시즌 2와 시즌 4만 봤다.

  처음에는 이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다.  방영하고 얼마 안 된 때부터 평이 좋고 시청률도 괜찮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인물들을 다룬 드라마라는 점에 거부감을 느꼈던 건지 어떤 건지, 딱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겨울에 시즌 4를 봤는데 소문대로 괜찮았다.  얼마전 추석 연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소식을 접한 김에 시즌 2도 봤다.  옴니버스 드라마도 아니고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여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시리즈이니 시즌 1부터 보는 게 정석이겠지만...  마음 내키는대로 중간 시즌을 골라 봐도 내용을 따라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특히 평소 국제 뉴스를 자주 접해서 영국 왕실의 막장(!) 스캔들에 익숙한 이라면 더욱 무리가 없다.

 

 

 

  더 크라운 시즌 2

 

  시즌 2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고 몇 년 후인 1956년에서 1964년까지를 다룬다.

 

  정치.외교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위상이 추락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비록 상징적인 존재라지만 영국의 국왕으로서, 나날이 약화되는 영국의 입지를 강화하려 애쓴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군주도 시대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다.  미국이 영국을 대신하여 국제사회의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는가 하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영국에 대한 반감으로 영연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가정적으로는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 과 불화를 겪는다. 

  필립은 그리스의 왕족이지만 어린 시절에 왕정이 폐지되어 그리스에서 추방당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아 요양원에서 지내고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내연녀와 동거했기 때문에,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되어 여러 나라의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불행한 어린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에,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했던 시대인데도 아내보다 한 단계 아래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까지 겹치자, 일탈을 즐기다 아내 엘리자베스 2세와 갈등을 겪는다.

 

 

아내의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 필립의 상황을 절묘하게 묘사한 포스터.

 

  시즌 2에서 제일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에드워드 8세(윈저 공작)' 의 친 나치 행보를 다룬 에피소드다.

 

  에드워드 8세는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다.

  지금까지도 세기의 사랑이라고 회자되는, 심프슨 부인과의 연애로 유명하다.  그 시절에는 드물게 40살이 넘어서도 미혼인 상태로 왕이 되었는데,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사귀던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파란을 일으켰다.  심프슨은 미국인인데다가 두 차례 이혼 경력이 있고, 그 밖에도 자유분방한 정도를 넘어서 난잡하다고 말할 수준으로 연애를 즐겼다.  그러니 보수적이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 왕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부와 왕실이 결혼 반대에 나서면서, 에드워드 8세는 왕위와 심프슨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즉위한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퇴위하고 심프슨과 결혼하여 프랑스로 떠나, 윈저 공작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대신 윈저 공작의 동생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새 국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원래대로라면 국왕의 조카딸이라는 평범한 왕족으로 살았을 텐데, 큰아버지 윈저 공작의 요란한 연애 때문에 공주가 되었다가 국왕까지 된 셈이다.

 

  문제는, 퇴위한 윈저 공작과 심프슨이 알콩달콩 사랑이나 나누며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나치의 당수이며 독일의 총통으로 승승장구하던 히틀러에게 호감을 보였다.  영국과 독일 사이에 곧 전쟁이 터질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부부 동반으로 독일을 방문하여 나치와 대놓고 친분을 나누어서 영국 정부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히틀러 입장에서도 영국의 전 국왕은 이용가치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이미 퇴위한 윈저 공작 부부에게 국왕 수준의 예우를 하는 등 각별히 대했다.

  당시 윈저 공작은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외교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실수로(과연 실수였을까?),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외교기밀을 독일 측에 누설했다.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하기 시작한 후에도 계속해서 친 독일 행보를 보이자, 분노한 영국 정부가 정보기관 요원들을 파견하여 붙잡아 미국 바로 아래에 있는 바하마의 총독으로 보냈다. (사실상 바하마로 귀양보냈다고 봐야 함.)  하지만 바하마에서도 미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은 나치를 지지한다며 히틀러를 칭찬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시즌 2의 6회는 땅속에 묻혀 있던 마르부르크 문서가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르부르크 문서는 윈저 공작의 친 나치 행보를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다.

  제2차 세계대전 끝무렵에 한 독일 군인이 기밀문서를 전부 소각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윈저 공작과 나치 사이에 은밀히 오간 연락에 관한 문서를 모아 땅속에 숨겼다.  독일의 패전이 확실해진 상태라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연합군에게 넘기려 한 것이다.  그 문서는 문서가 있던 지역의 이름을 따서 마르부르크 문서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의 영국 국왕 조지 6세(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와 총리 윈스턴 처칠은 마르부르크 문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는다.  윈저 공작은 독일이 전 유럽을 지배하는 것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독일은 윈저 공작을 영국 국왕으로 복위시켜준다는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영국 국왕이었던 인물이 적국인 독일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독일과의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왕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처칠과 조지 6세는 이 문서를 극비에 부쳤다.

 

  세월이 흘러 프랑스에 머물던 윈저 공작이 모처럼 영국으로 돌아간다.

  프랑스에서 허구한 날 파티에 참석하며 카드 게임이나 하는데 질린 나머지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 신분에 걸맞는 일거리를 찾을 생각을 한 것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그래도 국왕이었던 사람이라 정부에 영향력을 끼칠만한 인사들 중에 지지자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윈저 공작에게 외교관이니 군사고문이니 하는 그럴듯한 지위를 알아봐 주고, 조카인 엘리자베스 2세도 윈저 공작의 부탁을 긍정적으로 고려하여,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는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영국 및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마르부르크 문서를 찾아내어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다.  처음에 영국 정부는 자기들 선에서 문서 공개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측에서 마르부르크 문서의 사본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다.

  큰아버지에게 동정적이던 엘리자베스 2세도 태도를 바꾼다.  조지 6세의 측근에게서, 윈저 공작이 나치에게 '영국을 계속 폭격하면 영국인들의 항전 의지가 꺾여서 독일과 화친하기를 원할 것이다' 라고 말했음을 듣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왕이었던 사람이 적군에게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 나라 국민들을 죽이라고 말한 셈이니, 기가 막힐 수 밖에 없다.

  결국 윈저 공작은 다시 공직을 맡겠다는 희망을 이루지 못 하고 쫓기듯 프랑스로 돌아간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역죄로 처형당하고도 남았을 텐데 왕족이라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으니, 높은 지위와 권력이 있으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똑같은 것 같다. 

 

 

 

  더 크라운 시즌 4

 

  시즌 4는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취임한 1979년부터 실각하게 되는 1990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시즌 4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비중 있게 나온다.

  다만 이쪽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니 그냥 넘어가겠다. (찰스, 다이애나, 정말 미안해~~)

 

  원래 관심없던 드라마인데 왜 보게 되었는지, 그것도 시즌 4부터 보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시즌 4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며 '철의 여인' 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마거릿 대처' 총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예전에는 '마가렛' 대처라고 했는데 요즘은 전부 '마거릿' 대처로 바뀌었더구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 총리 중 가장 유명하며 호불호 및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대처가 비중있게 나온다니, 단박에 구미가 당겼다.

  더구나 그 대처 역을 맡은 배우가 예전에 즐겨봤던 미드 '엑스파일' 에서 여주인공 '스컬리' 역을 맡았던 '질리언 앤더슨' 이다.  질리언 앤더슨이 엑스파일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 마거릿 대처 역을 연기하여 두 번째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을 받았다. 

 

 

다이애나, 엘리자베스 2세, 마거릿 대처.

 

  정치에 대해 털끝만큼도 알지 못 했던 어린 시절에도 대처 총리는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서구권 정상들의 회담을 보도하는 TV 뉴스를 보면, 시커먼 색깔의 정장을 입은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우글거리는 가운데 난데없이 빨간색 또는 파란색 옷을 입어 혼자 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대처 수상이었다. (지금도 대처 수상하면 원색의 치마 정장부터 떠오른다는...)

 

  고등학교 때 대처의 평전을 읽고서 대처가 20세기 영국 총리 중 호불호가 가장 갈리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중산층에게는 이른바 영국병으로 다 무너져가던 영국 경제를 살려낸 인물로 인정받으며, 10명의 남자 총리도 못 할 일을 혼자 해낸 여장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서민층에게는 많은 노동자를 빈민층으로 몰락시킨 마귀 할멈 같은 인물로 통하며, 사망하고 10년은 지난 지금까지도 증오를 받고 있다.

 

  시즌 4 내내 대처와 엘리자베스 2세는 여러모로 대비된다.

  두 사람은 대처가 엘리자베스 2세보다 겨우 1살 많은, 같은 세대에 속한 인물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출신 계급의 차이로 경험한 바가 다르기에 서로 다른 생각과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여왕과 총리의 접견 때는 묘한 긴장감이 깔리곤 한다.

  대처는 중산층 출신으로 옥스포드 대학 시절부터 열렬하게 토론 클럽 활동을 하며 보수주의적인 정치색을 드러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최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왕족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에 익숙해졌지만,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는 입헌주의 국가의 국왕이기에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치색을 나타내지 않는다.

  대처는 자신이 중산층이기에 중산층의 가치라 할 수 있는 근면과 성실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국가 경제가 엉망인데도 전통 보존이란 명목으로 온갖 행사와 놀이에 빠져있는 왕족과 귀족 같은 상류층을 경멸하고, 업무 효율성은 낮으면서 각종 복지를 요구하는 서민층을 못마땅해 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국민 통합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처의 경제정책으로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지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다.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영국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영연방 소속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에 엘리자베스 2세가 찬성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인종차별은 옳지 못한 일이며 자신이 영연방의 원수로서 영연방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처의 방해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제재 결의안은 유명무실한 내용이 되어 버린다.  결국 이 일로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하여, 영국의 상징적 국가 원수와 실질적 국가 원수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이 드라마에서는 여러 총리의 인간적인 면(보통 부정적인 면)이 묘사되는데, 대처의 캐릭터는 특히 입체적이다.

  대처가 정치적으로는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기는 해도 어쨌든 영국 현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거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 상당수가 그러하듯이, 개인적으로는 여러 약점을 지니고 있고 모순된 행동을 보인 '보통 사람' 이었다.

 

  여성 총리로서 여성의 권리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새 총리로 취임하여 엘리자베스 2세를 접견한 자리에서, '여성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위층에는 적합하지 않다' 라면서도 자신은 예외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2세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여성이 최고위층에 적합하지 않다면, 상징적인 존재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국왕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은 뭐가 된단 말인가...  그리고 여성이 최고위층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작 대처 스스로는 국가대사를 결정하는 총리가 되다니 이건 또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포클랜드 전쟁을 앞두고 총리 관저에서 회의를 열기에 앞서, 회의 참석자들이 시장할 거라면서 음식을 준비하기로 한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앞치마 두르고 나서면서 못마땅해 하는 딸까지 끌어들여 돕게 한다.  총리 관저에 가사 도우미가 없을 리 없는데도, 그리고 전쟁을 앞두고 있는 비상사태인데도, 굳이 자신이 나서서 요리를 한다. 

  지금보다 보수적이었고 여성 정치인이 드물었던 시절에 여성 총리가 되었으니, 지금의 여성 정치인보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일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성별에 따른 역할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고수했다는 점이 기묘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남성만의 리그로 통하던 정계에 투신할 생각을 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그런가 하면 쌍둥이 아들과 딸을 노골적으로 차별한다.

  카레이서였던 아들 마크가 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되자, 여왕과 접견하는 자리에서 평소와 다르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까지는 어머니로서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고, 엘리자베스 2세도 같은 어머니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데...  마크를 '가장 사랑하는 자식' 이라고 말해서 엘리자베스 2세를 놀라게 만든다.  여왕은 나중에 자기 남편에게, 자식이 둘 뿐인데다가 쌍둥이이기까지 한데 어떻게 한 명을 편애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마크가 국제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돌아와서는 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의 비난 어린 관심을 즐기는 모습을 보일 때도, 철부지 아들을 꾸짖지는 않고 유치원생 대하듯이 응석을 받아준다.  아들과 달리 성실하게 사는 딸 캐롤이 왜 편애를 하느냐고 화를 내자, '나는 편애하는 게 아니다, 마크가 너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라는 황당한 말로 자기 태도를 정당화한다. 

 

  후일담이라 이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지만, 대처의 편애는 아들 인생에 독으로 작용했다.

  마크는 어머니 생전에도, 어머니 사후에도, 평범함이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이름을 팔아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사기를 치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아예 무기 밀매에 나서기도 했다.

  나중에는 하다하다 외국의 쿠데타에 개입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인터폴에 지명수배되었다가 체포되었다.  어머니의 이름값 덕분에 유전무죄라는 비난 속에서도 감옥행을 면하기는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입국금지명단에 올랐으니, 국제적인 기피인물이 된 셈이다.  대처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대처가 마크를 오냐오냐 키워서 망나니로 만들었다는 점만은 부인하지 못 한다니... 

 

 

 

  기타

 

  1. 내용도 흥미롭지만 시각적으로도 즐겁다.

  아무래도 왕실을 다룬 드라마다 보니 근사한 파티장,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 고전적인 기마병에 둘러싸인 왕실 마차 행렬 등 볼거리가 많다.

  또 시즌 2의 시간적 배경이 20세기 중반이라 사람들의 평소 옷차림도 지금과 이질적이다.  남자들이 정장 재킷 속에 거의 조끼를 받쳐 입고 아직 중절모를 정장의 필수품처럼 쓰고 다닌다. 

 

  2.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는 타고난 선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2의 9회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의 어린 시절이 회상씬으로 나온다.  필립이 10대였을 때 필립의 누나 가족 모두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누나는 독일의 유력한 귀족 가문으로 시집갔기 때문에 독일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고, 필립도 독일로 가서 누나 가족의 장례 행렬에 참가한다.

  히틀러가 집권한 시절이다 보니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곳 여기저기에는 하켄크로이츠 휘장이 내걸려 있고, 행렬에 참가한 조문객 중에도 나치 군복을 입은 사람이 많다.  경호와 예우 차원에서 길에 늘어선 군인들이나, 행렬이 지나가는 곳의 주민들이나, 자기들 앞을 지나치는 행렬을 향해 나치식 경례를 한다.  심지어 필립보다 어린 10대 초반의 소녀들마저 줄지어 서서 나치식 경례를 한다.

 

 

나치식 경례를 하는 건물 2층의 민간인들.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장례 행렬 경호 군인들.

 

  나치가 온갖 악행 저지른 것과는 별도로, 나치의 군복과 경례 방식을 보면 나치 수뇌부는 매우 영리했던 것 같다.

  나처럼 패션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것에 관심 없는 사람 눈에도, 나치의 군복은 다른 나라 군복들과 달라 보인다.  각이 확실히 잡혔다고 할까... 그리고 경례 방식도 다른 나라 군대의 비슷비슷한 경례 방식과는 다르게, 무척 절도있고 멋진 느낌을 준다.

 

  나치 특유의 군복 디자인과 경례 방식은 그런 '각 잡히고 절도 있는 느낌' 을 위해 발명(?)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느낌 때문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저런 군복을 입고 저런 경례를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나치가 단시간 안에 독일 국민들 마음을 휘어잡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군복 디자인과 경례 방식만으로 큰 선동 효과를 본 셈이니, 지금은 모든 정부, 모든 대기업, 모든 유명 연예인이 당연히 하는 '홍보 활동' 또는 '이미지 메이킹' 의 원조였던 셈이다. (젠장, 역시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해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