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설날 변천사 - 설날, 구정, 민속의 날, 다시 설날

Lesley 2022. 1. 30. 00:01

  올해도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새삼스레 설날을 포스트 소재로 삼은 이유가 뭔고 하니...  우리집은 특이하게 신정을 쇠는데 이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는 국가 공인 설날이 구정이었던 것을 겪은 세대이며, 동시에 설날이 신정에서 구정으로 변신(?)하는 것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나름 격동(!)의 시대를 거친 셈이다. ^^;;

 

  최초로 우리나라 설날이 양력 1월 1일로 바뀐 것은 조선 후기 을미개혁 때였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기존의 음력(청나라 때 만든 시헌력으로, 지금 우리가 음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폐지되고 양력(지금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때 처음으로 설날이 양력 1월 1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을미개혁은 일본의 지원하에 추진된 개혁이었다.  조정에서나 재야에서나 큰 반발이 일어나 1년도 못 가 중단되었고, 양력을 사용하기로 했던 것도 흐지부지되었다.  자연스레 설날도 음력 설로 컴백(!)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며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설날로 굳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양력을 채택했기에 음력 설을 구시대의 잔재로 보고, 식민지 조선에서도 양력을 공식화 하며 양력 설을 쇨 것을 권장했다.  해방 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춘다는 이유로 양력 설만 공휴일로 삼았다.  그러면서 양력 1월 1일은 새 설이라는 뜻으로 신정이라 부르게 되었고, 음력 1월 1일은 옛 설이라는 뜻에서 구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온 풍습이 법령 좀 바꾼다고 뒤집어지는 게 아니라, 민간에서는 계속해서 구정에 떡국을 먹고 차례를 지냈다.  많은 기업이 공휴일에도 직원들을 출근시켜 일하게 하는 시절이었건만, 정작 공휴일이 아닌 구정 하루 만큼은 임의로 쉬게 해주었다.  그 만큼, 정부 방침과 상관없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구정을 진정한 설날로 보았다. 

 

  1985년, 구정이 어느 정도 신분상승(!)을 이루게 되었다.

  공식적인 설날이 신정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신 구정도 '민속의 날' 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받고 공휴일이 된 것이다.  우리 민속에서는 구정이야말로 진정한 설날이었다는 이유로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던 모양이다.  

  이때만 해도 신정을 쇠는 집이 제법 많았다.  새해가 다가올 무렵 같은 반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는 신정을 쇠고 누구네는 구정을 쇤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쪽 비율이 높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집집마다 각자의 사정과 취향(?)에 따라 설을 달리 쇠었다.  주로 정부 시책을 따라야 하는 공무원, 경찰, 군인 등의 집안에서 신정을 쇠는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1989년, 드디어 구정이 공식적인 설날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우리 전통 설은 음력 1월 1일이다' 라는 여론에,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고 우리 국격이 높아졌다는 민족적 자부심까지 겹쳐진 덕분이다.  낡고 고리타분한 느낌이 드는 구정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정식으로 설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신정을 쇠던 집안도 음력 설 쪽으로 돌아서게 되어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이 음력 설을 쇠게 되었다. 

 

  이때 우리 집안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 회의가 열렸다.

  우리집은 그동안 신정을 쇠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앞으로는 구정을 설로 삼는다고 하니, 큰아버지께서 친척을 모아 놓고 계속해서 신정파(!)로 남을지 아니면 구정파(!)로 전향(?)할 지 여론조사에 나서신 것이다. 

  남자 어른들은 '뭘 바꾸냐,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식의 귀차니즘(!)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아이들이야 신정과 구정 사이의 의미 차이를 딱히 느끼지 못 하니 별 의견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양쪽 모두 그냥 학교 안 가도 되는 빨간날이라는 게 중요할 뿐... ^^)

 

  그에 비해 여자 어른들은 적극적으로 신정파 잔류를 희망하셨다.

  명절 때 친정보다는 시댁을 우선시 해야 하는 우리나라 주부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시댁과 친정 모두 구정을 쇠면 골치 아프게 된다.  시댁에서 명절을 쇠다가 언제쯤 친정으로 가야 할 지를 놓고 눈치 작전을 벌이다가 부부싸움이 나고, 어떤 며느리는 먼저 일어서는데 어떤 며느리는 남아서 일해야 하니 동서 사이에도 갈등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정에는 시댁 쪽으로 올인~~ 구정에는 친정으로 올인~~ 식으로 교통정리를 하면 한결 편해진다.

  그리고 가정주부라면 명절 음식 장만에 들 비용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도 신정을 쇠는 게 낫다.  남들 다 쇠는 구정에는 수요가 폭발하여 음식 재료비가 상승한다.  하지만 신정 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음식을 장만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집안은 대한민국 국민 중 1%도 안 될 것 같은 신정파로 남았다.

  구정이 정식 설날 자리를 탈환하고 몇 년 지난 후부터는 우리집 말고 신정 쇠는 집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우리집이 신정을 쇤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혹시 집안 전체가 외국에서 살다 왔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한 친구네도 신정파에 합류했다.

  남동생이 결혼을 한 후로 신정을 쇠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친구는 설날 시댁에 먼저 갔다가 오후에나 친정에 가는데, 그때쯤 남동생 부부는 친구의 친정(올케 입장에서는 시댁)을 떠나 올케의 친정으로 가게 된다.  서로 시간이 안 맞아 명절에 남매끼리 얼굴 보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렇다고 올케를 친정 못 가게 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집안의 설날을 구정에서 신정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친구와 올케 모두 대만족이라고 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신정파가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옛날처럼 신정파가 구정파와 맞장(!) 뜰 만큼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친구 말로는 자기 주변에 신정파로 돌아서는 집이 몇 집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같은 날 이쪽저쪽 왔다갔다 하려면 시간도 빠듯하고 심신이 피곤하기도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 사람을 위한 명절이지, 명절을 위한 사람이 아닌데, 사람이 편한 게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