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오징어 게임

Lesley 2022. 1. 21. 00:01

 

  이번 포스트는 드라마 리뷰라기보다는 드라마를 본 후의 단상 모음이다.

  작년에  '오징어 게임' 과 '지옥' 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어 한국 드라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전에 방영한 '스카이 캐슬' 을 본 후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두 드라마는 언론에서도 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터라 챙겨봤다.

  먼저 '오징어 게임' 에 대해서 쓸 생각인데,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만큼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으니 여기에서는 줄거리를 생략하겠다.  시청한 후의 느낌이나 생각, 몇몇 인상적인 장면 위주로 쓰겠다. 

 

 

 

  

  인생작이라기에는 조금 아쉬운...

 

  오징어 게임은 지옥보다 훨씬 인기를 끈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열풍이 조금 의아했다.

 

  일단, 단순하고 즐거운 소재를 진지하고 우울한 주제와 잘 버무렸다는 점은 참신하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놀이는 전부 우리 세대가 어렸을 적에 즐겼던 것들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재미삼아 했던 그 놀이를, 점점 심각해지는 빈부격차와 부에 대한 욕망 같은 어둡고 현실적인 주제와 합쳐 잘 풀어냈다.

 

  다만, 이 드라마가 왜 그렇게까지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 

  시나리오와 배우들 연기는 전부 좋았다.  1980년대 초등학교에서 안내 방송 때 썼던 유치한(?)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쓴 것이 오히려 잔혹한 내용을 돋보이게 해주어서 좋았다.  80년대에 많이 했던 놀이에, 80년대 초등학교 안내 방송에 나오던 음악이라니,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감탄이 들었다.

  그렇지만 두고 두고 남는 여운이 없었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이라 몇 번을 봐도 지겹지 않을 드라마는 아니었다.  즉, 인생작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얼떨떨했다.  뭐랄까...  반에서 1등 한 학생이 우등생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학생을 천재라고 했을 때 '응? 이게 뭐지?' 하며 당혹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오징어 게임?  아, 그 오징어...!

 

  오징어 게임이란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어린 시절의 놀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때는 모두 '오징어' 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게임이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부터 떠올라서, 운동장처럼 널찍한 곳에서 하던 그 오징어를 떠올리지 못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점심 시간이 되면 남학생들이 "야, 오징어 하자!" 하면서 운동장으로 몰려나갔다.  제법 거친 놀이라서 그런지 여학생 중에는 오징어를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또 나란 사람이 몸을 움직여 노는 쪽으로는 꽝이라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 규칙도 모른다.  하지만 한창 에너지 넘치는 남자 아이들에게는 인기 있는 놀이였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드라마라 우리나라 시장 뿐 해외 시장까지 노리느라 '오징어' 란 뒤에 '게임' 을 덧붙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지금의 10대나 20대는 오징어란 놀이를 잘 모른다. (아무래도 여가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며 자란 세대라서...)  그러니 외국인들에게는 더욱 생소할 수 밖에 없어서, 드라마 제목에 나오는 오징어가 바다에 사는 오징어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오징어 게임' 이란 제목을 쓴 것 같다.

 

 

 

  창작물 속 핫플레이스가 된 쌍문동

 

  우리나라 창작물에서 서울의 쌍문동이 서민들의 메카(?)로 자리잡은 것 같다.

 

  1980년대에 나온 만화 '아기공룡 둘리' 에서도 배경이 쌍문동이었다.

  둘리와 둘리 친구들이 더부살이 하는 고길동의 집이 쌍문동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나중에 아기공룡 둘리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고 관련 상품도 많이 나온 뒤에는, 쌍문동과 쌍문동이 속한 도봉구가 둘리를 열렬히 밀어줬다.  전철역인 쌍문역을 '쌍문(둘리)역' 으로 바꾸려다가 윗선에서 퇴짜맞고 무산된 적도 있다.

 

  '아, 옛날이여~~' 류의 드라마 중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88' 에서도 배경이 쌍문동이었다. (비록 나는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없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이 사는 동네로 나온다. 

  성기훈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쌍문동에 애정이 깊은 것 같다.  다른 게임 참가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할 때 "쌍문동에서 온 성기훈입니다." 식으로 동네 이름을 넣곤 한다.

  그리고 비중 높은 조역인 조상우(박해수) 도 어린 시절부터 적어도 대학 시절까지는 쌍문동에서 보냈다.  직장인이 된 드라마 속 현재 시점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조상우의 어머니가 여전히 쌍문동의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으니 여전히 쌍문동에 연고를 두고 있는 셈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해서 쌍문동이란 이름이 외국에도 알려졌으니...

  코로나 사태가 수그러들면 외국 관광객들이 오징어 게임 투어를 하겠다며 쌍문동으로 몰려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 가구 논란

 

  오징어 게임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VIP들(얼굴에 황금색 가면 쓴 변태 부자 아저씨들)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다.

  VIP들이 게임을 관람하는 장소에는 인간(!) 가구들을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알몸에 파란색 물감을 칠하고 의자나 발걸이 같은 가구 노릇을 하며 꼼짝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가구들이 여자인데다가 요즘 인터넷에서 남녀 간 갈등이 심하다 보니 문제가 터졌다.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써서 불쾌하다는 비난과, VIP들의 변태성과 비인간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박이 나온 것이다.

 

  이런 논란이 나왔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이유로 당황했다.

  인터넷에서 이 논란에 대한 글을 보기 전까지, 인간 가구들이 진짜 인간인 줄 몰랐다...!  그냥 '인간 모습을 한 가구' 라고만 생각했다. 

  VIP들이 인간을 장기판 말로 생각하며 남의 목숨 가지고 노는 미친(!) 것들이다 보니, 그런 요상한 것들의 요상한 취향을 인간 모양의 가구로 표현했다고 여겼다.  놀라서 다시 드라마를 보니 진짜 눈까지 깜빡거리는 인간이 맞다. (남들은 보자마자 아는 걸, 왜 나만 몰랐나... 내 눈은 해태눈인가...) 

 

 

 

  호우지시절 - 좋은 비는 때를 안다.

 

  역시 VIP들 관련한 것인데,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가 쓴 '춘야희우' 란 시의 한 구절이 언급된다.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다.  ☞ '호우시절'과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https://blog.daum.net/jha7791/15790609  시 자체도 봄비를 아름답고 희망차게 묘사한 수작이다.  게다가 두보가 이 시를 지은 중국 청두를 여행할 때의 추억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우리나라 영화 '호우시절' 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같은 구절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읊는지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VIP 중 한 사람이 중국인인지, 성기훈과 조상우가 최후의 종목인 오징어 게임을 하던 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춘야희우의 첫 번째 구절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을 중국어로 읊는다.  '좋은 비는 때(비가 내려야 하는 때)를 안다' 는 뜻이다.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며 호형호제 하던 두 참가자가 장대비를 맞으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 VIP는 어떤 의도로 그 구절을 말한 것일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게임을 비가 더욱 처절한 분위기로 만들어줬으니, 말 그대로 좋은 비는 자신이 내려야 하는 때를 안다는 잔인한 감탄이며 즐거움이었을까... 

 

 

 

  내가 예언(!)하는 시즌 2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두어 시즌 2도 제작할 거라고 많은 이가 예상하고 있다.

  시즌 2도 옛날 아이들의 놀이를 소재로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내가 예상하는 시즌 2에 등장할 놀이가 몇 가지 있으니...  

 

  먼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인다. 

  이 놀이는 여우 역을 맡은 아이가 무엇을 한다고 말을 하면, 다른 아이들이 그에 대해 받아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잠을 자네 세수를 하네 하는 평범한 말이 나오다가, 밥 먹는다는 부분에서 개구리 반찬이라는 '범상치 않은'(!) 말이 나오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1. 잠 잔다(여우) : 잠꾸러기(아이들)

  2. 세수 한다(여우) : 멋쟁이(아이들)

  3. 밥 먹는다(여우) : 무슨 반찬?(아이들) : 개구리 반찬(여우)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이 "죽었니?  살았니?" 하고 물으면, 여우가 잠깐 뜸을 들이며 긴장감 조성한 후에 '죽었다' 혹은 '살았다' 라고 갑작스럽고도 무섭게(!) 대답한다.  이때 여우가 죽었다고 말하면 다른 아이들은 얼음땡의 얼음 마냥 꼼짝 않고 있어야 하고, 움직인 아이가 새로운 여우가 된다.  여우가 살았다고 하면 다른 아이들은 냉큼 도망쳐야 하고, 여우에게 붙잡힌 아이가 새로운 여우가 된다.

  점점 스릴 있게 변해가는 분위기도 그렇고, 마지막에 죽었니 살았니 묻는 것도 그렇고,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의 소재로는 딱이라고 생각한다. (이 놀이가 시즌 2에 나온다는 쪽에 500원을 걸겠소...!) 

 

  그리고 '공기 놀이''고무줄 놀이' 도 나올 것 같다.

  시즌 1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에게 10명씩 모여 한 조를 만들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다음 종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과 같은 조가 되어야 유리할 지를 몰라 고민한다.  이때 조상우가 힘이 센 젊은 남자들을 모아 조를 짜자고 하자, 주인공 성기훈이 "그러다가 공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면 어떻게 해?  그런 건 여자들이 더 잘 하잖아?" 라고 걱정한다.

  결국 이때는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공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는 나오지 않지만, 성기훈의 말은 시즌 2를 염두에 둔 복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시즌 2에서 다시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한 성기훈이 시즌 1에서의 경험만 생각하고 건장한 남자들만 모아 조를 짰는데, 뜻밖에도 공기 놀이나 고무줄 놀이를 하게 되어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어찌어찌하여 살아남는다는 식의 에피소드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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