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더니... / 안녕, 파파이스~

Lesley 2021. 4. 1. 00:01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더니...

 

  나란 사람은 미적 감각이니 멋이니 하는 쪽으로는 꽝이라서, 봄꽃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벚꽃에 대해서도 무덤덤했다.

  벚꽃이란 것이 매해 봄이 되면 피는 거고, 뭐 피고나면 예뻐 보이기는 하고... 그 정도 느낌이 전부였다.  대학 시절 봄이 되면, 교정의 작은 동산에 있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학생들이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나도 똑같은 모습으로 사진 찍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없고... 

  당연히 벚꽃놀이 떠나는 사람의 기분 같은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 여기저기에도 벚꽃이 많이 피는데, 왜 돈 들이고 시간 들여가며 멀리까지 가는지...  게다가 그런 곳은 행락객이 와글와글하던데, 도대체 벚꽃 구경간 건지 사람 구경간 건지...

 

  그러다가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벚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머물렀던 하얼빈이란 도시가 서울에서 700킬로미터인지 800킬로미터인지 하여튼 한참 북쪽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겨울이 길어서 5월 초는 되어야 겨우 꽃 같은 꽃을 보게 된다.   그전까지는 벚꽃이고 뭐고 봄꽃에 관심이 없었건만, 4월이 다 지나도록 꽃 그림자도 제대로 못 보니 상사병(?)이 날 지경이 되었다.  활짝 핀 꽃도 아니고 겨우 움트기 시작한 꽃망울만 봐도 '와~~' 하며 신기해 했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벚꽃을 대하는 내 태도가 변했다.  매년 벚꽃철이 되면 길가다가 잠시 멈추고 구경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낭만(!)을 키우게 되었는데... 

 

 

동네에 핀 벚꽃.

 

 

  올해는 벚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또 달라졌다.

  지방 소재 대학들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는 이야기 때문이다.  출산율 감소로 학생수가 나날이 줄어들어서 지방에 있는 대학(특히 사립대)이 신입생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이야 전부터 있었다.  지방에서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아니면 문 닫을 대학이 많다는 것도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올해 대입 수험생이 처음으로 50만명을 밑돌았다고 하는데 전국의 4년제 대학 수가 200개 조금 못 미친다고 해서 놀랐다. 내가 대입시험을 치르던 때에 수험생이 80만명을 넘었는데 전국의 4년제 대학 수가 99개였다. (100개에서 딱 하나 부족한 숫자라 묘한 느낌을 받아서 기억함.)  수험생은 40%나 줄었는데 대학은 오히려 2배 넘게 늘었으니, 정원 못 채우는 대학이 줄줄이 나올 수 밖에...  경상권과 전라권의 대학들은 거짓말 좀 섞어 말하면 망하기 직전이고, 충청권 대학들은 안전지대와 위험지대에 두 다리를 하나씩 걸친 상황인 모양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표현이다.

  한두 주 지나면 벚꽃이 질텐데, 전에는 아쉽게 보였던 그 광경이 이제는 대학들이 지는 모습으로 보일 것 같다.    

 

 

 

  안녕, 파파이스~~

 

  우리 동네에 있던 파파이스 매장이 작년 11월에 없어졌다.

  맥도날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동네의 유일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보면 북적거리곤 했다.  그러나 맥도날드, 롯데리아(이쪽도 지금은 폐업했음.), 맘스터치가 차례로 생기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사가 잘 안 된 것이 문을 닫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파파이스란 사업체가 한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어 문을 닫은 것이다.

  별로 가지도 않았던 곳인데 막상 없어진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폐업 전에 두세 번 찾아가 햄버거도 먹고 치킨도 먹었다.  그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는지, 확실히 전보다 매장에 앉아있는 이들이 많았다.  매장 주인 입장에서는 '평소에나 자주 올 것이지 왜 이제 와서 오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처음 가봤던 파파이스가 서울 종각에 있던 2층짜리 파파이스였다.

  아마 대학 때 친구와 같이 갔던 것 같다.  감자튀김이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와는 전혀 달라서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이른바 케이준 프렌치프라이...!)  파파이스(popeyes)란 이름이 만화영화 뽀빠이(popeye)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서 '아, 뽀빠이의 미국 발음이 파파이구나.' 하며 문화충격(?)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우연히 철자가 비슷한 것 뿐이지 아무 상관없다는 이야기도 있음.  진실은 저 너머에...)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패스트푸드에 비해 맥을 못 추는 분위기였다.  매장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파파이스 음식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매장을 찾을 수 없어서 못 갈 정도였으니까.  전에 한 친구가 우리 동네에 놀러왔기에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친구가 고른 곳이 파파이스였다.  "여기까지 와서 웬 패스트푸드냐, 다른 것 먹어라." 라고 했지만 파파이스를 정말 오랜간만에 봐서 꼭 먹고 싶다고 했더랬다. 

 

  그렇게 파파이스가 사라지고 몇 달이 지난 3월에 뜬금없이 맘스터치 매장이 하나 더 생겼다.

  맘스터치와 파파이스는 메뉴가 비슷하다. (특히 케이준 프렌치프라이가...!)  이에 대해서는 맘스터치가 원래 파파이스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라는 둥, 맘스터치가 초기에 파파이스에게서 기술협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둥,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정작 근처에 파파이스 매장이 있을 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왜 사라지고 나니까 먹고 싶은 건지...  다행히 파파이스에서 항상 먹던 휠레버거가 맘스터치에도 있으니, 새로 생긴 맘스터치 매장을 가끔 이용해야겠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XX' 시리즈의 후속편으로 먼 훗날에 '응답하라 2020' 이 나온다면...

  주인공이 2020년 11월에 곧 사라지는 파파이스 매장 안에 혼자 가서, 휠레버거와 케이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면서 옛 추억을 곱씹는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가령, 첫사랑과 파파이스에서 서로 케이준  프렌치프라이 더 먹겠다고 투닥거리던 일이라든지...  친구 5명이 햄버거를 먹으러 함께 갔다가 너도 나도 돈을 안 가져와서 햄버거 세트 2개만 시켜서 불쌍하게 나눠먹던 일이라든지... (후자는 파파이스가 아닌 버거킹에서 내가 정말 겪었던 일이라는... -.-;;)  안녕, 파파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