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폭력 교사의 추억(?)

Lesley 2021. 3. 15. 00:01

  지난 주였는지, 그보다 한 주 전이었는지,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었다.

  중국에서 한 초등학생이 수학 문제를 제대로 못 풀었다는 이유로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교사에게 뺨을 맞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이런저런 일로 반중감정이 커졌기 때문에, 중국 관련 기사에는 '중국 소식 안 궁금하니 중국 기사 좀 그만 가져 와라' 같은 댓글이 붙곤 한다.

  그런데 이 기사는 예외였다.  많은 네티즌(정확히 말하자면 7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학창시절을 보낸 네티즌)이 자살한 학생에게 감정이입하며, 자신들의 경험에서 나온 '한풀이성 + 고발성' 댓글을 잔뜩 달았다.  아예 자신이 다녔던 학교 및 문제의 교사 실명을 드러내는 댓글도 몇 개 보일 정도였다.

 

  지난 설 연휴에 쌍둥이 배구선수 사건이 터진 후로, 지금까지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학폭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사의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학폭의 최고는 일진이 아니라 교사가 휘두른 폭력이었다' 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체벌이 금지된 요즘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 20세기에는 일상다반사로 벌어졌다.  교사고 학생이고 학부모고 간에 인권 의식이 희박하던 시절이다 보니, '폭력은 나쁜 것이다' 는 생각을 하는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교사 중에는 '애들은 그저 때려야 말을 듣는다' 는 마인드로 '훈육을 위한 체벌' 단계를 한참 넘어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많았다.

  일단 '교사의 체벌이 정당한가' 라는 문제는 제쳐놓고, 학생이 정말로 잘못을 해서 때리는 건 나은 경우였다.  아무 짓도 안 한 아이를 때리는 경우도 많았다.  내 친구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떠들지 않았는데도 지휘봉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잔뜩 맞아 피멍이 든 적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다른 아이의 잘못 때문에, 내가 속한 분단 또는 반 전체가 기합을 받거나 체벌을 받은 적이 많다. (연좌제도 아니고 왜 잘못 안 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때리냐고요~~!)

  혹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골라 체벌하더라도, 그 체벌 방식이나 체벌 정도가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특정 종교에 심취한 교사가 있었는데, 숙제를 안 한 아이들에게 종교를 물어봐서 자기와 같은 종교를 믿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절반만 때렸다. (체벌 50% 할인... -.-;;)  중학교 때는 OMR 답안지의 주관식 난에 볼펜이 아닌 샤프로 답을 썼다는 이유로, 나를 포함하여 10명 정도의 학생이 학생부로 불려가 하키채(마침 학교에 필드하키부가 있었음.)로 엉덩이를 10대씩 맞은 적도 있다. (볼펜 대신 샤프를 쓴 게 하키채로 두들겨 맞을 정도의 잘못인가요?)

  그래도 덜 맞았다는 여학생들마저 엎드려 뻗쳐 자세를 하고 지휘봉이나 하키채로 두들겨 맞을 정도였으니, 남학생들의 처지는 더 심했다.  비슷한 나이의 남자들 말을 들어보면, 학창시절 줄빠따(!)는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었고 아예 학생끼리 마주보고 서로의 뺨을 때리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마주보고 뺨때리기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기합 아니던가요...???)

 

  체벌은 아니지만, 몇몇 교사들은 창의성(?)이 지나친 나머지 엽기적인 벌을 생각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교실에서 뛰어놀 때면 할머니(!) 담임 교사가 화를 내며 반 전체에 기합을 줬다.  학생들이 뛰어서 원래도 아픈 자기 목이 먼지를 들이키게 되어 더 아프니, 학생들도 똑같이 먼지를 마시고 목이 아파야 한다면서, 반 전체에게 10분 동안 입을 크게 벌린 채 목을 뒤로 젖히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모든 학생이 뛰며 먼지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설사 모두가 뛰었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무슨 짓인지...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담임 교사의 출산휴가 때문에 온 임시 교사가, 요즘 같으면 성추행(그것도 '동성 성추행 + 아동 성추행')이라고 난리 날만한 일을 저질렀다.  한 남학생이 무슨 잘못을 해서 걸렸는데, 그 아이를 앞으로 끌어내어 화를 내다가 바지를 벗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옷까지 벗기지는 않았음.)  반 전체가 지켜보는 앞에서 창피를 주는 것으로 벌을 줄 의도였던 것 같다.  성추행이란 개념도 몰랐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어린 아이였건만, 그 아이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자리에 앉아 있던 나머지 학생들도 뜻밖의 광경에 놀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젊은 남자 교사였는데, 어떻게 하는 짓이 수십 년 간 닳고 닳은 선배 교사들보다 더 했는지...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는, 반 아이들 중 일부가 잘못 했다는 이유로 반 전체가 기합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기합이란 게, 남학생 교실이 죽 늘어서 있는 긴 복도를 네 발로 기어갔다가 다시 기어서 돌아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즉, 교복 치마 입은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이 쳐다보는 중에 기어가는 모습을 보이라는 건데, 무슨 19금 동영상도 아니고...  친구는 창피한 정도를 넘어서서 치욕스럽기까지 했다며, 차라리 맞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고 말했다. 

 

  얄궂게도 학생은 피해자이면서도 폭력에 둔감했다.

  억울하게 맞고서 뒤에서 교사 욕을 한바탕 늘어놓거나 울기나 했지, 교사에게 직접 항의하거나 부모에게 하소연 할 생각은 못 했다.  그런 상황에 길들여진 나머지 '재수없게 걸렸다' 식으로만 생각했을 뿐,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다든지 혹은 바꿔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못 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폭력의 대물림이 가정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벌어졌다는 점이다.  선도부 학생들은 후배들보다 겨우 한두 살 많은 것을 대단한 권력처럼 생각하며, 지각을 하거나 복도에서 뛰는 후배들을 붙잡아 엎드려 뻗쳐나 오토바이 자세 취하기 등의 기합을 줬다.  경우에 따라서는 후배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아마 교사들도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며 폭력에 길들여진 상태로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똑같이 폭력을 휘둘렀을 것이다. (시집살이 호되게 한 며느리가 더 무서운 시어머니 된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학부모도 그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은근히 부채질(!)하기까지 했다.

  자기 아이가 교사에게 맞았다고 하면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 식으로 생각하며 넘어가곤 했다.  한 술 더 떠서 '무슨 잘못을 했기에 선생님한테 혼난 거냐!' 하고 화를 내며 이미 학교에서 맞고 온 아이를 또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가정 폭력이 잘못이라는 인식도 바닥을 치던 시절이라, 옳.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문제는 때리더라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 선을 넘는 경우가 비교적 흔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은 중간.기말고사를 볼 때면 전 과목에서 틀린 문제 개수대로 아빠에게 혁대(!)로 맞았다고 했다.  아마 그 아빠는 '내가 아들을 괜히 때리는 것도 아니고 공부 잘 하라고 때리는데 뭐가 문제냐?' 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학부모들부터 '아이 키우는데 매는 필수다' 는 생각을 해서, 교사들의 터무니없는 체벌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에 길들여져서 교사에게 억울하게 맞아도 부모에게 말을 할 수 없었고...

 

  요즘은 오히려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이 들린다.

  어린 학생이라고 다 순진한 게 아니라, 교사들이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나오지 못 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이 있다.  또 자기 자식이 잘못한 게 분명한데도 자식 편만 들며 목소리 높이는 부모도 있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무식하게(!) 때리던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격세지감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체벌을 부활(!)시키자는 말도 나오던데, 개인적으로 체벌은 반대한다.

  학생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기준(어떤 경우에 체벌이 가능하고, 체벌을 하더라도 어떤 도구로 몇 대까지만 때릴 수 있고...)을 세운다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식의 사고방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실제로 예전에 그런 식으로 생각한 학생이 제법 있었음)  또한 교사들도 사람인데, 흥분한 상태에서 매를 드는 게 허용되면 우발적으로라도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체벌 금지와는 별도로, 일부 영악한(이라고 쓰고 '사악한' 이라고 읽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필요하다.  가령,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학생간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학폭의 처벌 수준을 높이고 처벌 범위를 넓히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교사의 폭력이든, 학생의 폭력이든, 결국 폭력은 똑같이 나쁜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