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이번 달에 개봉한 '미나리' 와 지난 달에 개봉한 '페어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양쪽 모두 미국 영화이기는 한데 일반적인 미국 영화와는 다르다. 미나리는 한국계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영화이고, 페어웰은 중국계 감독이 중국계 미국인 가족을 등장시켜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양쪽 모두 이민자가 현지에서 뿌리내리려 애쓰며 겪는 애환, 이민간 나라의 문화와 고국의 문화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 나온다.
두 영화 모두 이민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영어보다는 고국의 언어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점 때문에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논란이 생겼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영어 대사가 50% 이상인 영화에 대해서만,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의 후보 자격을 준다. 영어 대사가 50% 미만인 영화는 외국어영화상 후보만 될 수 있다.
두 영화는 미국 영화 제작사에서 미국 국적의 감독과 미국 국적의 배우들(물론 영화 특성상 한국이나 중국 국적의 배우들도 나옴.)을 동원하여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도 영어 대사가 적게 나온다는 이유로, 미나리는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페어웰은 작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되었다.
규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이 규정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바벨' 이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같은 영화는 영어 대사가 50% 미만인데도 멀쩡히(!)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바벨 같은 경우에는 아예 작품상을 받기까지 했다. 똑같이 영어 대사가 50% 미만이지만, 백인들이 나오는 영화와 동양인들이 나오는 영화가 다른 대우를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영화 '기생충' 이 여러 나라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기생충과 함께 여러 영화제에서 경쟁했던 페어웰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작년에 페어웰이 영어 대사가 50%가 안 된다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가 되지 못 한 일로 말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 미나리까지 같은 일을 겪자, 작년에 이어 인종차별 논란이 생겨 동양계 유명인사들이 나서서 이 상황에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을 아는 상태에서 두 영화를 감상했는데...
여러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미나리가 진지하고 현실적이라면, 페어웰은 코믹하고 따뜻하다. 위에 이미 썼듯이, 두 영화 모두 이민자의 애환과 문화 차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가 하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미나리
미나리는 이민간 나라인 미국을 배경으로, 아직 자리 잡지 못 한 이민자 가족의 애환 쪽에 방점을 찍는다.
말도 풍습도 다른 외국에서 뿌리내리려고 분투하는 내용이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실적이고 진지하다.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손자의 투닥거림이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때로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만큼 건조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이다.
순자(윤여정) 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 6~7살로 보이는 외손자 데이빗(앨런 김) 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 가족은 1970년대 후반에 이민을 간 듯하다. 지금처럼 해외 생활에 관한 정보를 얻을 길이 많지 않아서, 미국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잘 살게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다. 제이콥(스티븐 연) 과 모니카(한예리) 부부도 결혼한 직후(혹은 첫 아이를 낳고서) 부푼 가슴으로 미국으로 건너 갔을 것이다.
그러나 타향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주인공 가족은 이미 캘리포니아와 시카고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아칸소로 이주해 농사를 시작한다. 농사라니, 우리가 재미교포에 대해 말할 때 금세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딱 봐도 제이콥은 원래 농사를 짓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은행 빚까지 내가면서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앞뒤 상황을 보면 한국계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일부러 한국인이 드문 지역으로 온 것 같은데, 정작 미국인에게는 낯설고 한국인에게만 익숙한 작물을 심는다. 그리고 작물을 구매하기로 약속했던 한국 식당 주인이 말을 바꾸자, 이래서 대도시에 사는 한국인은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옆에서 지켜보는 모니카는, 남편이 주먹구구식으로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
집도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 트레일러 주택(순자 말로는 '바퀴 달린 집')이라, 토네이토가 몰아치자 집이 날아갈 지도 모른다고 걱정해야 될 정도다. 게다가 어린 데이빗은 심장에 문제가 있는데, 아빠 제이콥의 고집으로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농장의 트레일러에서 살게 되었다. 이래저래 모니카는 속이 바짝바짝 탈 수 밖에 없다.
순자의 말로는 한국에서 지낼 때는 부부가 서로를 쳐다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에 치여서 서로에게 헤어지네 마네 하는 소리를 할 지경이 되었다.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들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 일도 한다. 농사라는 게 오랜 시간을 들여 작물을 키워 팔아야 수익이 나는 일이니, 당장의 생계를 위해 취직한 것이다. 이때 모니카는 옆자리 동료(이 사람도 한국에서 온 이민자임)에게, 그 지역에도 한국인들이 좀 있다면서 왜 한국인 교회는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동료는, 한국인이 많은 지역을 떠나 아칸소까지 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한국인 교회에서 안 좋은 일을 겪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에이, 당신도 미국에서 산 지 꽤 된 것 같은데 그것도 몰라?'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제이콥 농장의 유일한 직원인 나이든 백인 남자도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이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독실하다 못 해 광신적인 수준에 이른 기독교인이라는 점이 문제다. 제이콥이 농장일로 고민하자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면서 이상한 주문(방언?)을 외우지 않나, 일요일에는 예수님의 고행을 재현한다며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지 않나... 나중에 순자가 중풍에 걸리자, 자기 딴에는 이 가족을 돕겠다면서 악귀를 쫓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그래도 살인, 폭력, 방화 같은 일을 저지르는 막가파식 광신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보통 재미교포나 미국의 시골 마을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교회는 지역 공동체를 위해 소박하고 건전한 활동을 하는 단체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교회와 기독교의 어두운 단면(그러나 실제로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이 신선하다.
내내 암울했던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 분위기를 이어간다.
어린 데이빗의 심장이 자연 치유되어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되고, 제이콥은 드디어 농작물의 판로를 개척한다. 그렇게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나 싶었는데...
모니카는 데이빗이 진찰받는 동안, 제이콥이 더운 날씨에 농작물 샘플이 상할까봐 안절부절 못 했던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어떻게 아들보다 일이 먼저냐며 헤어지자고 한다. 이 일만으로도 가족이 깨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혼자 트레일러 주택에 남아있던 순자의 실수로 불이 난다. 쓰레기장이 있을 리 없는 외딴 곳이다 보니 제이콥은 평소 쓰레기를 빈 드럼통에 넣어 태워 없앴다. 그런데 중풍으로 몸을 제대로 못 쓰게 된 순자가 식구들 없는 동안 무언가 해보겠다고 쓰레기를 태우다가, 쓰레기 하나가 드럼통 바깥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 몸 한쪽을 못 쓰는 순자가 불길을 잡아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될 리가 없고, 주위가 온통 풀밭인 곳이니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는다. 제이콥은 아들보다 농작물 판매에 신경쓴다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판매처를 확보했는데, 팔아야 할 농작물이 없어져버렸으니...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큰 불행 속에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순자는 딸네 집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주변 강가에 뿌렸다. 한국과 미국은 풍토도 기후도 전혀 다른 땅이건만, 미나리는 그 강력한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린다. 나중에 순자는 데이빗에게 파릇파릇하게 피어나기 시작한 미나리를 보여주며 "미나리는 어디서든 자라난단다." 라고 했다.
화재로 모든 걸 잃은 제이콥이 무성하게 자라난 미나리를 보며, 장모와 비슷한 말을 한다. 당장은 절망스러워도, 결국 이 가족이 미나리처럼 낯선 땅에 굳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페어웰
반대로 페어웰은 이민자 가족의 고국인 중국을 배경으로, 문화 차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주인공이 이민간 곳에 완전히 자리잡지 못하여 소속감을 못 느끼고 외로워 한다는 점에서는 미나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떠나온 나라와 이주한 나라 사이의 문화 차이를 더 자세히 다룬다는 점에서, 미나리와 결이 달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이민간 나라에서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중국 문화(혹은 전통 문화)와 미국 문화(혹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의 갈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묘사한다.
주인공 빌리(아콰피나) 는 6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간 이민자 1.5세이다. (이름만 봐서는 남자같지만 여자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멀기만 하고 방세까지 밀려 곤란한 처지인데, 자신이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어 한다. 중국에 남은 할머니는 빌리의 가장 친한 벗이며 정신적 지주여서, 할머니와 전화를 하며 위로를 받곤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기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미국의 빌리 가족도, 일본의 큰아버지 가족도, 급히 중국으로 돌아가 20여 년만에 일가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집안 어른들 모두 할머니에게는 병세를 알려주지 않고, 빌리의 사촌 동생(큰아버지의 아들)이 결혼하게 되어서 모인 것으로 꾸민다.
미국에서 자란데다가 젊기까지 한 빌리는 이해가 안 간다.
할머니에게 병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얼마 안 남은 삶을 정리하고 친한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른들(부모, 큰아버지 부부, 이모 할머니, 이모 할머니의 딸인 고모)에게 사실대로 알려드리자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 생각은 다르다. "우리 편하자고 할머니께 심적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 "말기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암보다 오히려 공포심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너희 할아버지가 시한부 판정받았을 때 할머니도 그 사실을 최대한 숨겼다." 등의 이유를 들며 빌리를 훈계하고 말린다.
어쩔 수 없이 빌리도 어른들 장단에 맞춰 연극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문화 차이가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신랄하게 묘사된다.
일가가 할아버지 묘소에 참배하는 장면은 상당히 코믹하다.
중국인들은 장례 때나 성묘 때 무덤 앞에서 가짜 돈을 불태운다. 우리나라의 저승길 노잣돈 비슷한 풍습으로, 고인이 저승길(또는 저승 생활)에서 쓸 수 있도록 돈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 풍습도 변하는 법이다. 불길 속에 가짜 돈 뿐 아니라 가짜 아이폰(종이에 인쇄된 아이폰 그림)도 보인다. (최첨단 시대이니만큼 저승에서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 된다는...)
그런가 하면 묘소에 바칠 꽃을 가져갔는데, 그대로 묘소 앞에 두는 게 아니라 꽃잎을 다 뜯어내어 뿌린다. 남의 묘소에 놓인 꽃을 훔쳐다가 자기 가족 묘소에 바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훔쳐가지 못 하게 하려는 방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뜯어서 뿌린 꽃잎을 훔쳐가 자기 집안 묘소에 뿌린다면...?)
할머니는 결혼을 앞둔 손자를 축복해주고, 손녀의 앞날이 잘 풀릴 수 있도록 해주고, 자신의 동생도 잘 보살펴 주고, 조카딸도 잘 되게 해주고, 조카손주도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남편의 혼령에게 빈다. 한 가지를 빌 때마다 세 차례씩 허리를 숙여 절을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관객도 웃음이 나올 지경인데, 결국 늙은 동생이 한 마디 한다. "언니, 언제까지 해야 돼? 계속 절했더니 머리가 어지러워."
일가가 외식을 하는 장면에서는,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이중적인 시선(경쟁심+선망)이 묘사된다.
아버지의 이종 사촌인 고모가 빌리에게, 미국에서 100만 달러를 모으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다. 참 뜬금없고 막연한 질문이다. 사람마다 수입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무 자르듯 명확히 대답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후 대화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고모는 정말로 미국에서 100만 달러 모으는데 걸리는 기간이 궁금했던 게 아니다. 빌리는 일찌감치 고모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아주 오래 걸려요." 라고 성의없이 대답한다. 고모는 기다렸던 듯이 "중국에서는 금세 모을 수 있는데." 라고 말한다. 즉, 고모는 '지금이야 미국이 중국보다 잘 나가지만, 미국은 지는 해고 중국은 뜨는 해다. 너희 식구는 괜히 망해가는 미국에 가서 고생하는구나.' 라는 우월감과 자부심을 보이고 싶어서 100만 달러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러자 빌리의 엄마가 발끈하며 시쳇말로 '뼈 때리는'(!) 발언을 한다. "아가씨는 아들을 미국 대학에 보낼 거라면서요? 중국에서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데 뭐 하러 미국에 보내요?" 고모는 사촌 올케의 반격을 은근슬쩍 피하려 하면서 다시 부아를 돋운다.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미국이 기회는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애는 중국으로 돌아올 거예요." 결국 이 일은, 빌리 엄마가 이민 초기에 미국 교회에 갔다가 겪은 일(타인을 의심하는 중국인과는 달리 미국인은 타인을 믿는다는 내용)을 꺼내면서, 빌리 엄마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미나리처럼 페어웰도 고단한 현실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여주며 끝난다.
빌리는 사촌 동생의 가짜 결혼식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간다. 미국 생활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빌리는 지원했던 펠로우쉽에 떨어졌고 방세 걱정을 해야 하는, 앞날이 막막한 작가 지망생일 뿐이다.
영화 초반부에서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뭔가 답답해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할머니가 가르쳐준 기공의 기합을 외쳐 본다. 큰 소리 한 번 내질렀다고 빌리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뀔 리는 없다. 하지만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기합을 지르는 것으로, 26년째 살고 있지만 스스로가 이방인라고 느껴지는 땅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기타
미나리와 페어웰 모두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우수한 작품이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페어웰이 낫다.
다시 말하지만, 미나리는 매우 진지하고 사실적이라 다큐멘터리 느낌마저 난다. 오죽하면 캐나다로 이민간 이가 쓴 미나리 감상문을 보니, 자기도 그렇고 다른 이민자 친구들도 그렇고 미나리를 보다가 화가 났다고 한다. 영화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민 초기에 겪은 일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해놓아서 옛날 고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민에 대해서 환상을 품고 쉽게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그에 비해 페어웰은 미나리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볼 수 있다. 미나리가 전체적으로 진지하면서 재미있는 장면이 몇 개 나온다면, 페어웰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재미있으면서 간간이 진지하고 신랄한 장면이 나온다.
위에 쓴 것처럼, 페어웰은 미나리보다 1년 먼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페어웰도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 제작사가 만들었고, 미국 국적의 감독이 연출했으며, 다수의 미국 국적 배우들이 출연하고,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의 애환도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영어 대사가 50%가 안 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작품상 후보가 되지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인데...
기사로만 이런 논란을 접했을 때는 '말도 안 되지.' 라고 생각했지만, 두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미나리 같은 경우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계 이민자 가족이 어떻게든 자리 잡으려 애쓰는 내용이다. 하지만 페어웰은 주요 배경이 중국이고, 빌리네 가족 3명만 미국에서 살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살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 주제를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문화 차이' 보다는 '전통 관념을 중시하는 중노년층과 새로운 생각을 하는 청년층 사이의 세대 차이' 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감동과 재미 모두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라는 점은 차치하고, 미나리와는 다른 케이스인 듯하다.
미나리 중 재미있는 장면으로, 데이빗이 오줌 싼 것을 순자가 엉터리 영어로 놀리는 장면을 드는 경우가 많던데...
나는 데이빗이 아빠에게 혼나게 되었을 때의 장면이 가장 재미있었다. 데이빗이 외할머니에게 자기 오줌을 음료수로 속여 마시게 한 일로, 제이콥이 데이빗에게 매를 들려고 한다. 집안에 있는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하자, 데이빗은 회초리를 가져오다가 일부러 엎어져서(!) 회초리를 두 동강 낸다. 제이콥이 집밖으로 나가 새 회초리를 꺽어오라고 하자, 딱딱한 나뭇가지가 아닌 흐느적거리는(!) 기다란 풀을 골라 가져온다.
페어웰에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아콰피나(본명이 아니라 예명임.)는 공교롭게도 부계로는 중국계이며 모계로는 한국계이다.
그래서 졸지에 두 나라의 악플러들에게 공격대상이 되었다. 아콰피나는 페어웰로, 작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 때 아시아계 배우로는 처음으로 뮤지컬 및 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축하한다는 반응이 별로 없었다. 지난 몇 년 두 나라의 국민감정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오히려 상대 국가의 혈통이 섞였다는 이유로 아콰피나에 대해 인격모독적인 댓글을 다는 이들이 많았다.
아콰피나가 딱히 한국이나 중국에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는 점과, 막말로 범벅된 댓글을 다는 것이 옳지 못 하다는 점은, 일단 차치하더라고... 아콰피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다. 그런데도 중국과 한국의 일부 네티즌이 기를 쓰고 아콰피나를 상대 국가와 연결지어 악플 대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 못 해 우습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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