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영화관 시대에서 넷플릭스 시대로

Lesley 2020. 12. 2. 00:01

  요즘 인기를 끄는 넷플릭스는 원래 10개월 단위로 무료 체험을 반복하는 게 가능했다.(과거형이라는 점에 주의...!)

  넷플릭스는 가입한 첫 번째 달에는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에는, 무료로 한 달만 이용하고 해지를 하면 10개월 후에 가입 정보가 사라져서, 다시 가입하고 또 무료로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허구한 날 영화와 드라마를 볼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10개월 단위로 해지와 재가입을 반복하면서 무료 이용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넷플릭스가 무슨 바보도 아닌데 괜히 그런 먹튀(!)를 묵인 또는 조장했을 리 없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많은 가정이 케이블TV 또는 IPTV를 이용하며 요금을 지불하고 있어서, 또 다시 넷플릭스 시청을 위해 돈을 낸다는 것에 거부감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당장에는 이익이 안 되더라도 무료 체험 기회를 여러 번 주면서 '우리 넷플릭스가 이렇게 재미있고 좋아요~~' 라고 홍보하면, 장기적으로는 무료 고객을 유료 고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심산이었다.

 

  마침내 넷플릭스의 중장기적 계획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넷플릭스 보는 맛에 재미를 들여 요금을 내며 계속 보는 고객들이 늘어나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결정적으로 넷플릭스의 은인께서 등장하셨으니, 다름 아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님이시다...! (BGM :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도입부 '두두두둥~~~')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대폭 줄었다.  그러자 외출을 못 해 심심해진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처음 한 달은 무료라니 그 기간만 볼까?' 하며 시험 삼아 가입했던 사람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사태에 주구장창(!) 넷플릭스를 보게 되었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올해 9월 기준 유료 가입자 수가 작년 9월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여러 차례 넷플릭스를 무료 체험할 수 있었던 제도(?)가 사라졌다.  이제는 제값 주고 보는 회원이 많아졌으니 굳이 공짜 선물을 여러 번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그나마 우리나라 등 많은 나라에서는 가입하고 처음 한 달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본진이며 넷플릭스가 이미 뿌리 내린 미국에서는 그런 기회조차 없어졌다고 한다.

 

  흔히 위기의 시대는 기회의 시대도 된다고 말한다.

  위기가 닥쳐 사회 전체가 요동을 치면, 기존 사회에 익숙해져서 갑작스런 변화에 대응 못 하는 다수는 힘들어 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상에 발빠르게 적응하는 소수는, 오히려 기존 사회에서라면 엄두도 못 냈을 성과를 내며 몇 단계나 뛰어오를 수 있다.  영화 업계에서는 전자가 영화관이고, 후자가 넷플릭스인 듯하다.

 

  올해 영화관을 4번 갔는데 그 중 2번이 나홀로 관람이었다.

  몇 달 전 포스팅 한 영화 '소년시절의 너' 도 텅 빈 상영관에서 혼자 봤다.  영화가 끝났을 때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오시다가 나 혼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기가 차다는 듯 웃으셨다.

  돈 주고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올해 같이 어수선한 시기에는 '혹시나...' 하면서 영화관에 안 갔을 것이다.  헌혈하며 받은 영화 관람권과 친구가 준 영화 관람권의 유효기한 때문에 갔다.  영화관에 관객이 대폭 줄어든 이유가 관객들을 띄어 앉게 하라는 정부 시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중국아, 너희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영화도 마음 편히 못 보고, 도대체 이게 뭐니? ㅠ.ㅠ)  

 

  헌혈하러 가면 주는 기념품 중 가장 인기있는 것이 영화 관람권이라, 가끔은 동이 나서 못 받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헌혈의 집에서도 영화 관람권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헌혈인이 줄어들자 수시로 영화 관람권을 두 장씩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이는데도, 영화 관람권이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적어도 내가 갈 때는 그러했음.)  그동안 영화 관람권을 선호했던 헌혈인들조차 영화 관람권을 기피(?)할 정도로, 사람들이 영화관에 안 가는 것이다. 

  나 역시 '아직 영화 관람권이 남아있기도 하고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또 받아가면 기한 안에 못 쓸지도 몰라.' 라는 걱정이 들어서, 영화 관람권 대신 편의점 상품권이나 맥도날드 상품권을 고른 적이 있다. (네, 전염병 창궐하는 시기에는 다이어트가 문제가 아니라 뭐든지 잘 먹어서 몸을 튼튼하게 해야지요... ^^;;)

 

  얼마 전에 CGV와 롯데시네마가 영화표 가격을 인상했다.

  코로나 사태로 관객수가 급감하여 적자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라는데, 이게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다.  뭐 양쪽 모두 대기업 산하 업체라, 마케팅 부서에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으니 가격을 인상했겠지만...

  마케킹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고객이 줄어들면 오히려 가격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가뜩이나 사람들이 전염병에 대한 불안감으로 영화관에 안 오고 있는데, 영화표 가격까지 올라가면 더 안 올 게 아닌가?

  관련 기사의 댓글들을 보니 '너희가 배불렀구나.  앞으로는 넷플릭스나 보겠다.' 식의 반감을 보이는 반응이 많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영화 보러가던 사람들도 넷플릭스 쪽으로 돌아서는 거 아닌지...  이런 분위기가 정착되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사람들이 영화관에 안 가고 넷플릭스만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했던 행동이라도 막상 익숙해지면 또 거기에 매달려 살게 되는 법이니까.

 

  코로나 사태가 끝나더라도 우리 생활은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고 한다.

  온라인 구매가 오프라인 구매를 대체하고,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키오스크 등 기계를 들이고, 직접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거나 근무를 하는 것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다만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요즘 이런 게 있는데 장차 이런 것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장차' 가 '이제' 가 되어 버렸다.

 

  넷플릭스가 영화 관람의 대세가 되는 것 역시 당장의 일이며 불가피한 일인가 보다.

  넷플릭스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앞으로는 영화관에 가지 않고 최신작조차 집에서 보게 될 것이다.' 라는 식의 기사가 나올 때만 해도,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영화관이 타격을 입기야 하겠지만, 결국 장르별로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 와 '집에서 봐도 되는 영화' 로 나뉘어서 영화관도 생존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가령 액션물이나 SF물처럼 스케일 큰 작품은 큰 화면과 빵빵한 음향이 있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니, 영화관은 영화관대로 그런 장르의 관람에 특화된 곳으로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영화관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전자사전과 MP3 플레이어를 갖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처럼, 영화관도 극소수의 매니아들이나 가는 곳이 될 지도 모르겠다.  만일 10년 후에도 블로그 활동을 계속 한다면, 영화관 멸종(!)에 대한 포스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씁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