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첫 투표 첫 참관인 / 블로그 알바 문자

Lesley 2020. 11. 15. 00:01

  첫 투표 첫 참관인의 추억

 

  요즘 미국 대선 때문에 한국까지 떠들썩하다.

  사실상 결과는 판가름 났지만, 현직 대통령이 선거 전부터 당.당.히. 불복하겠다고 이야기하더니 정말로 불복하고 나서면서 온갖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드라마를 따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 관련 기사만 읽어도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문제는 명품 드라마가 아니라 막장 드라마라는 점이지... -.-;;)

 

  그렇게 미국 대선 관련 뉴스들을 접하다 보니, 처음으로 투표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1997년 12월에 있었던 제15대 대통령 선거였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가 터진 탓에, 그 해 선거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그래도 나의 소중한 참정권을 국회의원선거도 아니고 지방선거도 아니고 무려(!) 대통령선거로 스타트를 끊었으니, 뭔가 대단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던 나... ^^;;)

  그 해 대통령선거가 나에게 특별했던 이유로는, 첫 투표라는 것 말고도 투표 참관인을 했다는 점도 있다.  성년이 되어 투표권이 생기고 처음 투표를 하는 선거였으니, 당연히 참관인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다시 참관인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참관인을 할 일은 없을 듯하다.  즉, 1997년 선거 때의 일이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참관인 경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어쩌다가 선거 참관인이 되었는고 하니...

  특정 정당을 너무나 열렬히 지지하여 참관인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알바 차원에서 나선 것이었다.  대학 선배가 국민승리21(이름만 보면 이게 뭔가 싶을 텐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전신임.) 쪽 참관인을 해보라고 권했다.  일당 5만원(혹은 4만원?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러기로 했다.  

  선거일에 투표 장소였던 동사무소로 가보니, 당선 가능성이 높은 기호 1번 이회창 후보와 기호 2번 김대중 후보 쪽 참관인들은 정치적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우리 쪽 후보에게 불공평한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 라고 온몸에서 오라(!)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기호 3번 이인제 후보 참관인으로 온 젊은 아저씨와 기호 4번 권영길 후보 참관인으로 온 나는 멀뚱멀뚱... (참고로 이인제 후보 참관인은 동네 통장 아저씨인지 아줌마인지의 권유로 알바 차원에서 오셨다고...)

  

  새벽 5시였나, 5시 반이었나, 하여튼 새벽 댓바람부터 동사무소로 나갔다.

  선거관리를 맡은 공무원들과 이 당 저 당 참관인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으로, 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아직 순수했던 학생 시절이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 뭔가 사명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

  그 후로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사람들이 동사무소로 와서 투표하는 것을 구경(!)했다.  차라리 뭔가 일거리가 있었더라면 나았을 텐데, 온종일 멍하니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피곤했다.

 

  그렇다고 모든 참관인이 나 같았던 것은 아니다.

  위에 쓴 것처럼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 측 참관인들은 나같은 허접한(!) 참관인이 아니라, 실제로 한나라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당원인 사람들이었다.  군소정당이 아니라 그런지, 참관인도 한 사람씩 온 게 아니라 서너 명씩 왔다.

  이들은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투표 과정을 지켜봤다.  하긴,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당선될 거라는 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으니, 양쪽 참관인들이 신경 곤두세우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상황인데도, 양쪽 참관인들은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선거관리를 담당한 공무원 중 가장 연세 많으신 분이 머리와 눈썹이 모두 하얀데다가 '허허허...' 하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추억의 드라마 '전설의 고향' 속 신선이었다.  그 날 이 신선의 임무는 선거관리 그 자체가 아니라, 기호 1번과 기호 2번 참관인들이 기싸움 벌일 때마다 말리는 것이었다.

  한 번은 양쪽 분위기가 꽤 험악해졌다.  그러자 신선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우유(그것도 흰우유, 딸기우유, 초코우유, 커피우유 등 골고루...)를 한아름 사들고 오셔서, 참관인들에게 두 개씩 나눠주며 "자, 자, 배고프면 별 거 아닌 걸로 화나고 그래요.  이거라도 먹고 좀 진정합시다." 라고 하셨다.  한바탕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던 양쪽 참관인들이 얼떨결에 우유를 받아들고 "아니, 우리가 애도 아닌데 무슨 우유를..." 이라며 당황해 했다.  우유의 등장으로 싸움은 흐지부지 되었다.

 

  하루짜리 참관인 일정은 바로 그 우유로 끝이 났다. 

  신선이 사오신 많은 우유가 전부 내 차지가 되었다.  서로에 대해서는 살벌하게 굴던 양쪽 참관인들이, 참관인 중 유일한 학생인 나에게는 친절했다.  어느 학교 다니는지 몇 학년인지 묻더니 "학생, 이거 먹고 열심히 공부해." 하며 자신들 몫의 우유를 건네줬다.  열댓 개는 받아왔던 듯한데, 식구들 모두 우유 킬러라서 만 하루도 안 되어서 그 많은 우유가 사라졌다. (그 날의 수입 = 일당 + 열댓 개의 우유) 

 

 

 

  블로그 알바 문자

 

  이번 달 들어서 요상한 문자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았다.

  블로그로 알바 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인데, 아마 상품 광고 포스트를 블로그에 올리는 알바인 듯하다.  처음에는 무작위로 뿌리는 문자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그런데 1주일 넘게 서로 다른 발신번호로 번갈아가며 오니 은근히 신경쓰인다.  

 

  

이상한 문자의 발신번호를 가려주는 배려심을 보여주는 나... -.-;;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을 많이 이용하고 블로그는 한물 간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런데 아직 블로그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저런 문자 메시지가 계속 오는 게 그냥 우연일까?  올해 다음블로그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는데, 그뒤로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다음블로그 사용자들의 불만이 많다.  혹시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게 아닌가, 그래서 블로그를 꾸준히 쓰는 이에게 저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요 몇 년은 뜸한 것 같은데, 한동안 우리 개인정보가 대대적으로 유출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은행에, 오픈마켓에, 온라인 채팅 계정까지 참 골고루도 터졌다.  누구 말처럼 우리는 한 번도 못 해 본 세계일주여행을, 우리들의 개인정보는 이미 다 했다.  인터넷을 타고...! (내 정보들아, 너희 지금 어느 나라 웹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있니...)  

  이번만큼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아니기를...  하긴, 이미 유출될 정보는 다 유출되어서, 다시 유출되어도 새삼스레 걱정할 일이 없다고 봐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