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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와 공포영화 - 부산행 / 나는 전설이다

Lesley 2020. 9. 21. 00:01

  지난 여름에 공포물을 몇 편 봤다.

  그 중 두 편만 간단히 포스팅하려고 한다.  하나는 몇 년 전 대히트를 치며 한국에서도 괜찮은 좀비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부산행' 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나는 전설이다' 다. 

 

 

 

 

  나는 원래 공포물을 보지 않는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겁이 많아서,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 도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많은 시절이었다면 무서워하면서까지 '전설의 고향' 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각적인 오락거리가 적었던 시대인지라 심장마비(!)에 걸릴 것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다양한 경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더는 공포물을 볼 일이 없게 되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볼 게 넘쳐나는데 굳이 무서운 것을 볼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내가 지난 두어 달 공포영화(또는 공포물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를 여러 편 봤다.

  언론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일상이 바뀌어버렸다고 하더니, 이제 내가 보는 영화 장르까지 변했다.  공포영화 중 일부 장르(좀비물 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가 이 시대와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좀비물은 감염 그 자체나 감염자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물(그 중에서도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문명이 멸망한 후의 세상을 그린 영화)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이 세상이 어찌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극단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 부산행

 

  몇 년 전 영화인데다가 흥행몰이에 성공해서 내용이 다 알려져 있으니, 이 자리에서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사실 부산행은 몇 년 전에 외장하드에 받아놓고 묵혀두기만 했다.

  워낙 화제가 된 작품이고, 이 영화 감독이 전에 만든 '사이비' 라는 애니메이션을 인상 깊게 보기도 해서, 호기심이 일어 거금(?)을 투자해 다운받기는 했는데...  위에 쓴 것처럼 공포물을 무서워하는 탓에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금의 코로나 사태를 맞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은 영화다.

  우리나라 영화가 공포물 쪽으로는 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좀비물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까딱하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재탕에 삼탕을 거듭한 좀비물의 소재를 적당히 짬뽕(!)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잘 만들어서 놀랐다. (하긴 일정 수준 이상이 아니라면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 리가...)

 

  일단, 사건의 장소적 배경을 기차로 잡은 것부터가 좋은 아이디어다.

  다른 좀비물은 복잡하면서 폐허가 된 도시 안에서, 혹은 널찍한 들판이나 숲속에서, 사람들과 좀비들이 쫓고 쫓기며 서로 죽고 죽인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장소적 배경은 '기차' 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 안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승객들이 감염되는데,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의 특성상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니 영화 속 인물들의 공포심과 절박감은 고조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잔뜩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반응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은 1990년대의 대히트작 '타이타닉' 과 비슷하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와중에, 누구는 공포심에 짓눌려 울부짖고, 누구는 뇌물을 써서라도 탈출하려 하고, 누구는 품위를 지키며 죽겠다고 하고, 누구는 어차피 탈출할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조용히 보낸다. 

  부산행의 주인공(공유)은 극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이 가장 흔히 보일 법한 태도를 취한다.  한 마디로 '내 코가 석 자인데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식이다.  비록 이기적인 태도이기는 하지만, 생존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모 운수회사의 임원이라는 사람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기적 태도를 보인다.  주인공은 자신과 딸의 안위부터 챙기느라 남을 돕지 않았을 뿐이지, 적어도 남을 해치는 짓은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임원은 자기만 살겠다고 남들을 좀비들에게 내던져주는 짓을 벌인다.

  터프가이(마동석. 극중 이름이 터프가이는 아닌데 딱 터프가이 스타일임.)와 그 아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선량하고 이타적인 캐릭터들이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기차 안에서 힘 닿는대로 다른 승객들을 도우려 애쓴다. 

 

  또한, 좀비들의 모습이 사실적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좀비들의 모습을 그려낼 때 가급적 CG의 사용을 자제했다고 한다.  인건비 측면에서는 불리했겠지만, 어설픈 CG로 범벅된 모습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리얼한 분장을 하고 직접 뛰어다니는 모습이 훨씬 실감난다.

  특히, 열차가 대전역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좀비로 변한 군인들이 한데 몰렸다가 대형 유리창이 깨져 한꺼번에 넘어지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 일행이 이미 출발한 기차를 쫓아갈 때 그 뒤편으로 좀비로 변한 승객들이 쫓아오다가 자기들끼리 뒤엉켜 넘어지며 산을 이루는 모습을 볼 때면, 보는 이가 긴장되어 머리에서 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질 정도다.

 

  좀비물은 사회적 계급 갈등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좀비 바이러스는 보통의 바이러스처럼 공기, 물, 음식물을 통해 감염되는 게 아니다.  남을 물어뜯는(!) 방식으로 감염된다.  그런 설정은 '배고픈 나머지 먹고 싶은 욕구 밖에 안 남은 상태' 를 뜻한다고 한다.  즉,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소외된 계층이 많아지고, 그 소외 계층이 폭주하여 마침내 세상이 엉망이 되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상류층 사람들은 어떻게든 안전지대로 피신할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위험지대에 남겨져 공포에 떨며 지내다가 차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질병 때문이든 전쟁 때문이든 세상이 혼란해졌을 때, 자신의 사회적 계급이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생존 가능성의 높고 낮음도 결정되는 것이다.

 

  부산행에서도 사회비판적인 장면이 몇 개 보인다.

  가령, 이 영화 속 최대 악역인 운수회사 임원이 주인공 딸에게 처음 건냈던 말이 "공부 열심히 해라.  안 그러면 저 사람(노숙자)처럼 된다." 였다.  어린 아이에게 성적지상주의가 뚝뚝 묻어나는 말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당사자(노숙자)를 눈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도 문제다.  나중에 열차 안이 혼란의 도가니가 되면서,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운수회사 임원은 혼자만 살겠다고 남들을 좀비에게 내던지는 짓을 벌인다.  그런데 정작 노숙자는 만난지 한두 시간 밖에 안 된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희생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인데, 터프가이가 그런 주인공을 두고 "펀드 매니저?  아, 개미핥기." 라며 뒷담화(!)를 한다.  그런 뒷담화를 들을만도 한 것이, 주인공은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위 작전을 펴서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짓을 벌였다.  그리고 휴대폰 전화번호목록 중에 대놓고 개미(!)라고 이름 붙인 항목이 있다.  열차 안에 좀비가 출몰하는 비상사태를 겪게 되자, 평소에는 자신의 밥(!)으로 여겼을 개미 한 사람(현역 장교)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란...

 

 

 

  ◎ 나는 전설이다

 

  이 영화 속 세상은 이미 망해버린 상태다.

  주인공(윌 스미스)의 회상을 통해서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나가던 상황이 잠시 나온다.  그 후 몇 년도 안 되었는데, 적어도 미국 뉴욕에서는 주인공 밖에 없다.  다른 이들은 죽었거나 혹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괴물이 되어 버렸다.  군대 소속 연구원이었던 주인공은 가족도 동료도 모두 잃고, 개 한 마리를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래며 지내고 있다.

 

  이 영화 속 괴물들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어두움 속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햇볕을 쬐면 살이 타는 것으로 보아, 드라큘라 같은 뱀파이어 종류 같기도 한데...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카락 같은 체모가 거의 없는 모습이고, 인간 시절에는 자유롭게 썼을 언어를 더는 구사하지 못 하고(다만 자기들끼리는 어떻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하는 것으로 보임.), 원숭이처럼 두 손 두 발을 모두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고 벽을 타는 것으로 보아, 좀비나 뱀파이어가 아닌 제3의 생명체 같기도 하다.  가령, 바이러스 때문에 인간이 수만 년 전 모습으로 퇴화해버렸다든지...

 

  어찌되었거나 주인공은 괴물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괴물을 생포해 생체실험을 한다.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하는 생체실험 대상은 한 명이지만, 생체실험 중에 사망한(혹은 실험 실패로 주인공이 일부러 죽였을) 괴물들의 사진이 수십 장이나 등장한다.  그 동안 괴물들을 정상화(!)하겠다는 선의(!)로 많은 괴물들을 죽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실험을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주인공의 시각에서 보자면, 생존본능과 공격본능만 남아있는 괴물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존재들이다.  그들을 원래의 인간다운(!) 모습을 되돌리는 것은 주인공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괴물들 스스로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결말부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잃은 줄로만 알았던 괴물들에게서, 사랑과 동료애를 보게 된다.  주인공이 생체실험에 쓰려고 잡아온 괴물 여자를 구해내기 위해, 다른 괴물들이 몰려온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자신을 노리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곧 그들이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여자를 구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주인공이 여자를 생포했을 때 우두머리는 여자를 구하려고 피부가 햇볕에 타는 걸 무릅쓰고 뛰쳐나가려 했는데, 동료 괴물들이 붙잡아 말렸다.  주인공은 의외란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지만, 괴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괴물에게는 이성이 없어 무모한 짓을 하려던 것으로 여기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여자와 우두머리는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고, 우두머리는 목숨을 걸고 연인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즉, 인간과 같은 수준은 아닐지언정 그들에게도 인간 같은 감정이 있고 이성이 있는데, 주인공은 그들을 정상화해주겠다며 생체실험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괴물을 죽인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중심의 기준을 어떤 경우에라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장면이다. 

 

 

 

  ◎ 기타

 

  나는 코로나 사태로 이 영화들을 봤는데, 대학시절 친구는 이미 몇 년 전에 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우리의 결론은 같았다.  만일 '부산행' 이나 '나는 전설이다'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힘들게 도망쳐다니지 않고 그냥 조용히(!), 얼른(!) 물려서 감염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일단 우리 둘 다 그런 끔찍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초기에 어떻게 살아남는다 한들, 매일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좀비들에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공포심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찌어찌 하여 좀비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살아남는다 해도 문제다.  이미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운이 좋아봤자 조선시대(!) 수준, 운이 나쁘면 아예 원시시대 수준으로 돌아가 살아야 한다.  문명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했던 입고 먹고 씻는 것들이 전부 필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꼴 저꼴 보지 않고 겪지 않도록, 사태 초반에 깨끗이 죽는 것이 낫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물론,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막상 닥쳐보면 다를 수도 있다.  뒷일이야 어찌되든 간에, 그 순간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를 쓰고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보도 듣도 못한 강적(!)과 생활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이런저런 변종이 나타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전망은 멀기만 하다. (그나마 이미 개발되었다는 것들은 도무지 신뢰가 안 가는...)  전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감염자 숫자만 3,0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나는 전설이다' 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지금 단기간에 집단적인 돌연변이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질 만큼 퍼져서 그를 이겨내지 못 한 일부가 사망하고 나면, 병을 이겨낸 대다수는 한꺼번에 변하는 게 아닐까...  '부산행' 에나오는 끔찍한 좀비나 '나는 전설이다' 에 나오는 퇴화한 듯한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변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이전의 인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혹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바이러스 항체를 선천적으로 지닌 아이와 그렇지 못 한 아이로 나뉘어, 전자는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하며 21세기판 귀족층으로 살아가고 후자는 빈민층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전무후무한 사태 속에서 살다 보니, 상상이 무럭무럭 자라나 아예 망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서 이 사태가 가라앉아 내 망상을 그냥 망상으로 머물게 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