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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의 너(少年的你) -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Lesley 2020. 8. 3. 00:01

 

  최근에 '소년시절의 너' 라는 중국 영화를 봤다.

 

  황당하게도 이 영화를 착각(!) 때문에 봤다.

  전에 대만 영화 '안녕, 나의 소녀' 가 괜찮다는 평을 인터넷에서 봤는데, '소년시절의 너' 와 제목이 비슷해서 착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내 눈에는 비슷해 보였음.)

  마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관객이 대폭 줄어든 탓에, 요즘 많은 영화관에서 새 영화를 개봉하는 대신 예전에 반응이 좋았던 영화를 재개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개봉했고 평도 괜찮았던 '안녕, 나의 소녀' 를 재개봉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본 영화지만 의외로 수작이었다.

  물론 영화를 착각하고 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안녕, 나의 소녀' 가 풋풋했던 학창시절의 첫사랑에 얽힌 추억을 되새기는 따.뜻.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소년시절의 너' 에서는 초반부부터 한 학생의 투신 자살 사건이 터지는 통에 '이게 따뜻한 영화라고?' 하며 놀랐더랬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주재료로 삼고, 과열된 대학 입시와 의지할 곳 없는 소녀.소년의 사랑이라는 조미료를 적절히 뿌린, 우수한 작품이다.  주인공들의 연기력도 대단한 정도를 넘어서서 무서울 정도다.  게다가 한국영화와 대만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멋진 영상미와 연출까지...  덕분에 영화관을 나설 때는 영화를 착각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첸니엔 - 비록 시궁창에서 살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별을 볼 수 있다.

 

  첸니엔(주동우)은 명문대 입학을 지망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다.

  성적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 성적이 시궁창(!) 같은 환경 속에서 나왔다는 게 더욱 대단하다.  첸니엔이 공부하는 영어 수필 중에 '비록 시궁창에서 살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별을 볼 수 있다' 는 구절이 있는데, 마치 첸니엔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 같다.

  첸니엔의 상황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암담하기만 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요즘 말로 멘탈이 무너져내릴 만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꿋꿋이 대입 시험 준비에만 매진한다.  성격이 독해서가 아니라,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는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첸니엔에게 명문대 합격은,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 보다 나은 미래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는 별이라 할 수 있다.    

 

  첸니엔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딸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이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딸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모르는 듯하다.  불량(!) 화장품 판매를 하면서, 자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걸 피하느라 집에는 가끔만 들어온다.  수시로 빚쟁이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려대는 집에 딸을 홀로 방치한 셈이다.

  첸니엔도 자기 엄마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안부 전화를 하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입으로는 태연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학교에서는 못된 여학생들(여기에서는 편의상 '3인방' 이라고 하겠음.)에게 찍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대입시험이 60일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평소 3인방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여학생이 투신 자살을 했다.  다른 학생들이 폰카로 시신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내기에 바쁠 때, 첸니엔은 옷을 벗어 시신을 덮어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수사를 맡은 형사들과 담임 교사는 첸니엔이 무언가 알고 있을 거라 여기며, 첸니엔에게 자살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첸니엔은 죽은 학생과 친분이 없었다며 별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라, 3인방은 형사에게 불려간 첸니엔이 자기들에 대해 무언가 말했을 거라 의심한다.  어차피 그동안 괴롭히던 사람도 자살해서 없어졌겠다, 이제는 첸니엔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괴롭힌다.

 

  이 와중에 샤오베이(이양천새)라는 거리의 소년과 알게 된다.

  첸니엔은 샤오베이가 불량배들에게 폭행당하는 광경을 우연히 보고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불량배들에게 붙잡힌다.  불량배들은 첸니엔이 샤오베이에게 반한 모양이라고 빈정대며, 샤오베이에게 키스하라고 강요한다.  첸니엔은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불량배들이 키스하라며 샤오베이를 구타하자, 눈앞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키스한다.

  그 뒤로 샤오베이는 첸니엔 주위를 맴돌며 관심을 보인다.  고아 아닌 고아 신세로 살아왔던 샤오베이는, 첸니엔이 생판 모르는 자신을 도와주려 한 것에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첸니엔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명문대를 지망할 정도인 자신과 거리의 양아치인 샤오베이는 전혀 다른 세계 사람이다.  첸니엔이 대놓고 "너와 나는 달라." 라고 쏘아붙이자, 샤오베이는 모욕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짧게 끊나는 것 같았는데...

 

  첸니엔은 집까지 찾아온 3인방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고 샤오베이를 찾아간다.

  3인방이 집앞에 버티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도움을 청할만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나 경찰도 더는 믿을 수 없다.  겨우 얼굴과 이름 밖에 모르는 샤오베이지만, 첸니엔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샤오베이는 갑자기 나타난 첸니엔을 보고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지만, 엉망진창인 첸니엔의 모습을 보고 상황을 짐작했는지 첸니엔을 받아주고 지켜주기로 약속한다.  그 후로 샤오베이는 첸니엔을 따라다니며 지켜주고, 3인방의 우두머리인 웨이라이를 찾아가 첸니엔을 건드리지 말라며 살벌한 경고를 날리기도 한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우수한 학생이며 심지가 굳지만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첸니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불법적인 일로 먹고 사는 샤오베이.  얼핏 보면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하지만, 두 사람 모두 어린 나이인데도 세상에 의지할 데라고는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첸니엔은 아예 샤오베이의 집에서 먹고 자며, 막바지 대입 준비에 몰입한다.  그리고 샤오베이는 공부에 열중하는 첸니엔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두 사람의 소박한 행복은 뜻밖의 일로 깨지게 된다.

 

 

 

  샤오베이 - 너는 앞을 향해 걸어.  내가 반드시 너의 뒤에 있을게.

 

  샤오베이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한 채, 혼자서 거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샤오베이 앞에 첸니엔이라는 소녀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연약해 보이는 여자애가 겁도 없이 불량배들과 자신의 일에 끼여들었던 것에 호감과 호기심을 갖었던 듯한데...  몇 번 만나면서 첸니엔이 자기와는 다른 의미로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부모조차 해주지 않았던 "아프지 않아?" 라는 걱정어린 말을 첸니엔에게서 듣게 되자, 첸니엔에 대한 감정이 더욱 깊어진다. 

 

  샤오베이는 빼어난 재능을 지닌 첸니엔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기로 한다.

  처음에는 첸니엔에게서 "너와 나는 달라." 라는 말을 듣고 분노했다.  하지만 이제는 첸니엔에게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누릴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주려 애쓴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첸니엔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다니는데, 일부러 몇 미터 간격을 둔 채 따라다닌다.  거친 삶을 사는 자신과 엮인 게 드러나면, 첸니엔의 앞날에 좋을 게 없다.  그러니 첸니엔을 위해 뒤에 숨어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샤오베이가 잠시 첸니엔의 곁을 지키지 못 하게 되었을 때 일이 터진다.

  경찰이 강간사건을 수사하면서 범인과 비슷한 또래이며 불량해 보이는 소년들을 검거하는데, 그만 샤오베이도 걸려든다.  그래서 첸니엔에게 연락도 못 하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1박 2일을 보내게 된다.  하필이면 바로 그때 3인방을 이끄는 웨이라이가 남자 불량배들까지 동원해서 첸니엔에게 지독한 짓을 한다.  첸니엔의 옷을 잡아찢고 머리를 마구잡이로 자르면서, 그 광경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한다.

  뒤늦게 샤오베이가 집으로 돌아가보니, 첸니엔이 참담한 몰골을 한 채 웨이라이 일당이 갈갈이 찢어놓은 수험서를 이어붙이고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줄 놓을 상황인데도, 불과 이틀 후면 치러야 하는 대입 시험에 끝까지 매달리는 모습이 기막힐 따름이다.  또 한편으로는, 첸니엔 입장에서는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베이징에 있는 명문대에 합격해서 베이징으로 떠나는 것 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가 가고...

 

  분노한 샤오베이가 복수를 하려고 뛰쳐나가려는데, 첸니엔이 붙들고 말린다.

  샤오베이는 눈물을 흘리며 엉망이 된 첸니엔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주고, 자기 머리까지 밀어버린다.  첸니엔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때 두 배우의 머리를 실제로 밀어버려서, 영화 첫 장면과 끝 장면의 성인기 모습에서 두 배우가 가발을 뒤집어 쓴 어색한 모습으로 등장함.)

  

  드디어 대입 시험이 시작된다.

  하필이면 폭우가 쏟아져 많은 수험생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장으로 향한다.  샤오베이는 항상 그러했듯이 첸니엔의 뒤쪽에 떨어진 채 서서 조용히 첸니엔을 바라본다.  첸니엔은 샤오베이의 시선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시험이 한창 진행되던 시간에, 폭우로 무너진 도로를 복구하는 현장에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바로 웨이라이의 시신이다...!  여기까지의 영화 흐름이나 연출을 보면, 샤오베이가 처음에는 첸니엔이 말려서 복수를 못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웨이라이를 죽여버린 것 같은데...

 

 

 

  담임 교사 - 너는 옳은 일을 했다.  하지만 이 일로 네 인생에 어둠이 드리워질 거다.

 

  첸니엔의 반 담임 교사는 영화 초반부에만 나온다.

  첸니엔 반 여학생의 자살 원인이 웨이라이 일당의 괴롭힘이었다는 게 드러나자, 담임으로서 책임을 지고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다.  초반부 몇 장면에만 나오지만 의외로 존재감이 강하다.  학교를 떠나면서 첸니엔에게 남긴 말 때문이다.

  담임 교사는 "너는 옳은 일을 했다.  하지만 이 일로 네 인생에 어둠이 드리워질 거다" 라는 말을 한다.  불행하게도 담임 교사의 말은 맞아떨어진다.  첸니엔이 죽은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들의 악행을 밝히는 일을 한 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가해자들에게 지옥 같은 일을 겪게 되었으니...

 

  자살사건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담임 교사는 첸니엔에게 "학교가 너를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라." 고 했다.

  하지만 첸니엔이 뒤늦게나마 사실을 털어놓아 웨이라이 등 3인방의 죄상이 드러났을 때, 학교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다.  3인방의 나이가 어리니 대입 시험을 볼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정학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부유한 웨이라이 집안에서 돈과 빽(!)을 동원해서 최대한 처분을 낮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명문대 합격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학교 입장에서도, 웨이라이가 인성은 개차반(!)이지만 성적은 최상위권이니, 퇴학시키지 않아야 명문대 합격생을 한 명 더 늘일 수 있을 테고...

 

  결과적으로 학교와 경찰은 첸니엔을 지켜주지 못했다.

  웨이라이 일당은 자기들의 죄상을 밝힌 첸니엔을 두고두고 괴롭히게 되었다.  첸니엔은 학교와 경찰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 자신이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학교나 경찰의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어른들이 가해자에게 적절한 벌을 내리지 않고 피해자에게는 신뢰를 잃은 결과, 영화 후반부에서 극단적인 일이 터지게 된다.  

 

 

 

  웨이라이 - 성적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

 

  3인방의 우두머리인 웨이라이는,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살의(!)를 느끼게 하는 캐릭터다.

  집은 부유하고, 성적은 첸니엔에 버금갈 정도로 최상위권이며, 얼굴도 예쁘장하다.  그렇게 모든 걸 누리고 있으면서 뭐가 불만인지, 같은 학교 학생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괴물이 되었다. 

  웨이라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묘하게 느껴지는데, 공교롭게도 중국어로 '미래' 를 웨이라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고 우연히 발음만 같은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남의 미래를 잔인하게 빼앗았으면서 그 이름이 미래와 같은 발음이라니,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자살한 학생 일로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 웨이라이의 인성이 잘 드러난다.

  처음에 웨이라이는 경찰의 약을 올리려는 것처럼, 태연하고 뻔뻔하게 범죄를 부인한다.  하지만 경찰이 이미 자기 부모에게 학교폭력 건에 대해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태도가 확 변한다.  자살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부모가 자기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만 겁을 먹으며 흥분한다. 

  "00(자살한 학생 이름)의 엄마는 00가 죽어버려서 차라리 잘 된 거죠.  우리 엄마한테 50만 위안(500만 위안이었나? 액수는 기억 안 나는데 하여튼 큰 액수임.)은 받아낼 수 있을 텐데, 걔가 대학 나와서 평생 일해봤자 그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겠어요?" 라고 막말을 퍼붓는다.

 

  웨이라이는 대입 시험 첫날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때까지 영화의 흐름을 보면, 샤오베이가 첸니엔을 위해서 복수를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웨이라이를 죽인 사람은 첸니엔이었다...!  비록 고의로 살해한 건 아니었지만...

  다만 당시 웨이라이의 태도를 보면, 설사 첸니엔이 일부러 죽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워낙 뻔뻔스러운 성격이다 보니 시쳇말로 어그로(!)를 끈 것이다. 

 

  대입 시험 바로 전날, 웨이라이는 첸니엔을 찾아가 무릎까지 꿇고 사정을 했다.

  남자들을 시켜 첸니엔을 나체로 만들고 머리를 다 잘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더니, 겨우 하루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자기가 감당 못 할 일을 저질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먼저 번 일로 아빠에게 외면당하고 있는데, 첸니엔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이 일이 다시 부모에게 알려지면 계속 외면당할 수 있다.

  즉, 이 괴물 같은 아이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또 다른 누군가를 극도의 공포에 질리게 한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그 죄악 때문에 아빠에게 외면당하는 것만 걱정한다.

 

  첸니엔은 그런 웨이라이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자기를 때려도 좋고,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그저 경찰에 신고만 하지 말라며 싹싹 비는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졌을까...  첸니엔이 아무 말도 안 하자 웨이라이는 더욱 초조해하며, 뭐든지 원하는 조건을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첸니엔은 "두 번 다시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물론, 첸니엔의 말은 웨이라이를 진심으로 용서해서 신고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동안 웨이라이 때문에 겪은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고 손해배상금이고 다 필요 없고 두 번 다시 웨이라이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웨이라이의 소시오패스 같은 면모가 드러난다.

  하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타인을 자살할 지경으로 괴롭히는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첸니엔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냥 자기 갈 길 갔으면 좋았을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첸니엔을 따라가며 속을 긁는 말을 줄줄이 내뱉는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릎 꿇고 울먹이며 빌었는데...!!!)

  "네가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우리 다른 대학에 가야겠다.  너는 어느 대학에 갈 거니?  나는 북경대에 갈 건데."  첸니엔의 성적을 알고 있으니 첸니엔도 북경대를 지망하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 결국 '네가 내 꼴 보기 싫다고 했으니 넌 북경대 가지 말아라.' 는 소리다. (도대체 뭘 먹고 자라야 이렇게 뻔뻔스러운 인간이 될 수 있는 건지...!)  그런가 하면 "네가 나한테 돈을 받으면, 나도 덜 미안하고, 너희 엄마도 더는 사기(!) 치면서 도망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라는 소리까지 한다. (설마, 자신이 첸니엔 엄마가 사기꾼이라는 전단지를 촬영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단체메시지로 뿌려 첸니엔의 자존심을 팍팍 밟았던 일을 잊었단 말인가...!)  

 

  결국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첸니엔이 웨이라이를 확 떠밀어버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두 사람이 길고 가파른 계단 꼭대기에 서 있었다.  웨이라이는 계단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죽어버린다. 

  이 사연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샤오베이가 웨이라이를 죽이고 시신을 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첸니엔이 우발적으로 웨이라이를 죽였고, 그 후에 그 일을 알게 된 샤오베이가 시신을 버린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처음에 경찰은 샤오베이를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지만, 곧 첸니엔을 의심하게 된다.

  샤오베이에게는 굳이 웨이라이를 죽여야 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첸니엔은 웨이라이에게 원한을 품을만 하다는 게 드러난다.  웨이라이가 찍었던 첸니엔의 동영상을, 경찰이 발견한 것이다.

  샤오베이는 첸니엔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웨이라이를 강간하려다가 우발적으로 죽인 것으로 하겠다고 말한다.  첸니엔은 울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샤오베이는 자기가 미성년자라 감옥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며, "너 먼저 세상으로 나가.  나는 나중에 따라갈게." 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첸니엔의 옷을 찢고 얼굴을 때리며 마치 자신이 첸니엔을 강간하려 한 것처럼 꾸민다. (젊은 두 배우의 연기력 대폭발...! ㅠ.ㅠ)

 

  물론 경찰도 바보가 아닌데, 10대 후반의 소년과 소녀에게 간단히 속아넘어갈 리가 없다.

  형사들이 어떻게든 두 아이를 설득해 사건 진상과 진범을 밝히려 한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첸니엔을 보호하려는 샤오베이나, 그런 샤오베이의 뜻을 따르기로 한 첸니엔은, 요지부동이다.

 

  시간이 흘러 대입 시험 결과가 발표되던 날, 첸니엔은 엄청난 성적을 받는다.

  원했던대로 북경대로 진학하는 게 기정사실이 되자 첸니엔은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곧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강간살인 용의자로 구치소에 갇혀 있는 샤오베이를 떠올린 것이다.  형사가 했던 말처럼, 자기 혼자 천국에 가겠다고 남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형사가 찾아온다.

  형사는 샤오베이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일을 돌이킬 수 없겠기에, 샤오베이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형사가 의도했던대로, 형사들의 끈질긴 심문과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던 첸니엔이 무너져 내린다.

  결국, 첸니엔은 자수하기로 한다.  첸니엔이 구치소로 면회를 가서 샤오베이와 마주하는 장면도 명장면이다.  두 배우는 한 마디도 안 한 채 그저 울고 웃는 표정만으로, 한 사람은 자수하기로 결심한 걸 표현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을 마지막까지 보호하지 못 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다시 두 배우의 연기력 대폭발...! ㅠ.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이어진다.

  세월이 흘러 첸니엔은 사설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업 도중 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과거의 자신처럼 학교폭력의 희생자임을 직감한다. 

  수업이 끝난 후 첸니엔은 아이와 나란히 걸어가며 아이를 살핀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는, 그 옛날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샤오베이가 따라가고 있다.

  

 

 

  명대사

 

  1. 첸니엔,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샤오베이가 패싸움에 참가했다가 상처투성이로 돌아온다.  그동안 자기 침대를 첸니엔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소파에서 잤는데, 첸니엔은 다친 샤오베이를 배려해서 침대에서 자게 한다.  첸니엔이 아프지 않느냐고 묻자, 샤오베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버린 부모 이야기를 털어놓고 "첸니엔,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첸니엔과 샤오베이는 운명 공동체로 묶인다.  

 

  2. 너는 앞을 향해 걸어.  나는 반드시 너의 뒤에 있을테니까. 

  샤오베이가 첸니엔을 따라다니며 보호해주는데, 항상 일정 거리를 두고 걷는다.  첸니엔이 같이 걷자고 하자, "너는 앞을 향해 걸어.  나는 반드시 너의 뒤에 있을테니까." 라고 말한다.  자신과 같이 다니는 모습이 남들 눈에 띄면 첸니엔의 앞날에 좋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철저히 뒤에 숨어 지켜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3. 비록 시궁창에서 살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별을 볼 수 있다. 

  첸니엔이 샤오베이 집에서 지내며 공부할 때 보던 책에 나오는 영어 문구다.  첸니엔의 엄청난 실력이라면 이 정도 영어는 간단히 해석 가능할 텐데 굳이 이 문구만 중국어로 해석해서 써놓았던 것을 보면, 첸니엔이 앞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에 새긴 문구였던 듯하다.  

  4.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머리도 나쁘고, 돈도 없고, 미래도 없어.  그런데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  그 사람한테 제일 좋은 결말을 주고 싶어.
  첸니엔이 살인 용의선상에 오르자, 샤오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기로 한다.  그럴 수 없다며 우는 첸니엔에게, 자신과 다르게 밝은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첸니엔을 지켜주고 싶다는 뜻으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머리도 나쁘고, 돈도 없고, 미래도 없어.  그런데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  그 사람한테 제일 좋은 결말을 주고 싶어." 라고 말한다.
 
  5. 넌 세상을 지켜.  나는 너를 지킬게.

  주옥 같은 대사가 워낙 많아서(여기에 쓴 것들 말고도 더 있음.  내가 기억을 못 할 뿐...), 이 대사가 어떤 장면에서 나온 건지 기억하지 못 한다.  아마 바로 위에 쓴, 샤오베이가 첸니엔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 쓰려는 장면에 같이 나왔던 듯... (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6. This is(was/used to be) our playground.

  영화 첫 장면과 끝 장면은 같은 장면이다.  세월이 흘러 첸니엔이 영어 강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이때 첸니엔은 영어 시제를 설명하며 This is our playground. /
This was our playground. / This used to be our playground. 등 세 문장을 예문으로 들고,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따라 읽게 한다.  첫 장면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화를 다 본 끝 장면에서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playground를 단순히 '운동장' 이 아닌 '아이들의 세상' 이라고  해석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문장이 된다.  아이들의 세상이 그 옛날 첸니엔이 겪었던 지옥 같은 세상 그대로인지(is), 그냥 예전에는 지옥 같은 세상이었다는 건지(was), 아니면 예전에는 지옥 같았지만 이제는 변했다는 건지(used to be), 아이들을 돌볼 의무가 있는 어른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기타

  

  1. 첸니엔 역을 맡은 주동우(周冬雨)가 우리나라 배우 문근영 수준의 동안이다.

  외모만 보면 영화 속 역할 그대로 재수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며, 남주인공 이양천새와도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그런데 서른살을 바라보는 1992년생으로, 이양천새보다 8살이나 많은 누나라고 한다...!  하지만 원래 동안인데다가 주근깨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화장을 옅게 하고 나와서, 영락없는 재수생 정도의 나이로 보인다.

 

  2. 샤오베이 역을 맡은 이양천새(易烊千玺)의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배우인 줄 알았다.

  일본 이름을 우리식 한자 독음으로 읽으면 네 글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풍신수길, 이등박문 등등)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토종(!) 중국 배우가 맞다.  성은 이(易)고 이름이 양천새(烊千玺)다.

  이런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인즉슨, 이양천새가 대망(?)의 2000년에 출생했기 때문이다.  양()은 이양천새의 고향 후베이성의 사투리로 '환영한다' 라는 뜻이고, 천새(千玺)는 천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태어난 걸 환영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3. 첸니엔이 다니는 학교의 정체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 첸니엔은 재수생이라고 나온다.  교사와 형사들의 대화 속에서, 첸니엔이 이전에는 수준 낮은 학교에 다녀 좋은 성과를 못 거뒀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첸니엔이 다니는 학교가 이름만 학교일 뿐, 사실은 재수학원인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첸니엔의 반이 '3학년 10반' 이라는 건 또 뭔가?  재수생이 웬 3학년?  자막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국어 해석을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서는 일반 학교에서 재수생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구 아시는 분?)

 

  4. 엔딩 크레딧이 짤막하게 나온 후에 보너스 영상과 자막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무척 아쉽다.

  보너스 영상 부분에서 오버(!)한 탓에 영화의 여운을 깎아먹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첸니엔은 과실치사로 4년을 복역했는데, 그래도 이 사건이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중국에서 학교폭력 관련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게 요점이다.  딱 여기까지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뒤에 사족 같은 자막이 주저리 주저리 달린다는 게 문제다.  이게 영화인지 중국정부의 정책 홍보 영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검찰청, 교육청, 중국공산당청년단 등등 학교폭력 법률 관련 기관 이름이 10개 정도 나온다. (자막의 시인성 때문인지, 다행히도(!) 한국어 자막에는 그런 기관들 이름이 안 나옴.)

  게다가 남주인공 역을 맡은 이양천새까지 나와서, 무슨 공익광고에 출연한 모양새로 학교폭력을 없애자는 말을 한다.  말 자체는 분명히 옳은 말이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감동을 막판에 갉아먹은 듯하여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