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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젼(Contagion)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영화판

Lesley 2020. 4. 8. 01:20

 

  '망할 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벌써 두 달 넘게 온 나라가, 그리고 전 세계가 어수선하다.

  그런데 한 친구가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만든 것 같은 영화가 한 편 있다면서 추천해줬다.  거의 10년 전인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이다.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친구가 꼭 한 번 보라며 권하기도 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가 마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예언한 것 같다며 놀라워 하기에, 호기심 수치가 쭉 올라가던 중에...  이 영화를 볼 기회를 주신 이가 있어서 결국 봤다.  과연... 지금의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포스터 아래 오른쪽에 나오는 인물(기네스 펠트로)은

얼핏 보면 놀란 표정 짓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검대 위에 올라온 시신(!) 상태임...!

 

 

 

  위의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컨테이젼에서는 어지간한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을 만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즉, 일반적인 영화처럼 원 탑 또는 투 탑이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곧 다른 사람의 사연이 이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내용이 흘러가는 식이라, 보기에 따라서는 좀 어수선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등장함으로써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 에서 배가 침몰하게 되었을 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태도를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비슷한 부류의 영화에 비해 다소 건조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기존에는 없던 전염병이 창궐하며 세상이 혼란해지는 스토리를 담은 작품으로, 영국 영화 '28일 후' 와 한국 영화 '감기' 를 본 적이 있다.  이 두 영화는 컨테이젼에 비해 좀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면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에 비해 컨테이젼은 영화적 흥미를 어느 정도 죽일(!) 정도로 사실적이며 스토리 전개도 냉정하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전 세계에 신종 바이러스가 퍼져서 수많은 이가 사망하고, 생존자들도 이기적인 생존본능만 앞세우며 사회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상황 자체는 극단적이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내용을 카메라가 무미건조하고 담아내서 마치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놓은 것 같다.  만일 다른 시기에 이 영화를 봤더라면 '사실적이기는 한데 재미는 없는 편이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아우성인 때에 보니, 시나리오 작가가 신내림(!)이라도 받고 썼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영화 줄거리를 시간 순서대로 쭉 정리하는 게 아니라, 몇몇 등장인물 위주로 소개하겠다.

  영화는 시간 순서에 따라(정확히 말하자면 전염병이 발생한 후의 날짜 순서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위에 쓴 것처럼 등장인물이 많아서 내용의 흐름이 산만한 편이라, 시간 순서대로 영화 내용을 정리하는 게 곤란하기 때문이다.

 

 

 

  ◎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베스는 최초의 신종 전염병 사망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지 겨우 이틀 만에 베스는 물론이고 베스의 아들까지 사망한다...!  베스는 출장을 다녀온 후 좀 심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보였고, 베스의 아들은 엄마에게 옮았는지 열이 나서 학교에서 조퇴했다.  양쪽 모두 우리 현실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누구도 사망까지 예상하지는 못 했다.

  그런데 베스는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지고 얼마 안 되어 죽고, 베스의 아들은 아예 병원에도 가지 못 한 채 자기 침대에서 홀로 죽는다.  두 사람 모두 발병하고서 너무 빨리 사망해서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어처구니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베스는 홍콩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린 시카고에서 불륜을 저질렀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간 시카고에는, 마침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살고 있었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비는 몇 시간 동안에 전 애인을 만나서 불장난을 저지른 것이다.

  이 불륜 커플이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홍콩에서 감염된 상태로 돌아온 베스가 전 애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탓에 시카고에도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야, 신종 전염병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베스가 어쩌다가 감염되었는지 드러난다.

  베스가 다녔던 애임 앨더슨이라는 회사가 공장을 세우기 위해 산림(홍콩 근처에 있는, 중국 남부지역의 산림으로 보임.)을 파괴한다.  그러자 원래 그 지역에 살던 박쥐가 삶의 터전을 잃고 중국의 돼지농장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박쥐가 입에 물고 있던 먹이를 떨어뜨리자 돼지 한 마리가 그 먹이를 먹고, 하필이면 그 돼지가 홍콩의 호텔에 납품된다.

  호텔 요리사는 돼지고기를 손질하던 중에 동료의 부름(어떤 고객이 주방장과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받자, 돼지고기를 만졌던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앞치마에 대충 문지른 후에 나간다.  그리고 그 손으로 고객과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는다.  공교롭게도 그 고객이 바로 베스였다...!

 

  즉, 듣도 보도 못 한 전염병이 지구촌을 강타한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선진국의 대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자기 나라 뿐 아니라 후진국에까지 진출하여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했다는 점.  둘째, 원래는 인간 사회와 떨어져서 살던 야생동물이 환경파괴로 서식지를 잃고 인간이 사는 곳으로 옮겨가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동물(식용으로 쓰이는 가축)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점.  셋째, 인간이 음식을 다루면서 위생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 

 

  전문가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왜 터졌는가를 설명할 때 하는 이야기와 소름끼치게 겹친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뿐 아니라 과거의 사스나 메르스를 일으켰던 바이러스 역시, 원래는 야생동물(가장 유력한 동물이 박쥐라고 함.)에게만 존재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환경파괴로 야생동물이 인간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하자, 그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인간과 자주 접촉하는 돼지 같은 가축.)를 거쳐 결국에는 인간에게까지 옮게 된다.

  야생동물이야 오래 전부터 그 바이러스와 같이 지냈기에 그에 대한 면역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새로운 바이러스이기에 면역력이 없다시피 하여, 급속도로 전염이 되고 많은 이들이 사망하게 된다. 

 

 

 

  미치 엠호프(맷 데이먼)

 

  미치는 베스의 남편인데, 하루 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는 비극을 겪는다.

  충격이 얼마나 큰지 의사가 아내의 죽음을 알릴 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아내와 이야기 좀 해야겠어요." 라고 대꾸했을 정도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정체불명의 병으로 사망한 이들의 가족이라서 격리되어 검사를 받게 된다.  엎친 데 덮친다고, 역학조사를 나온 미어스 박사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치가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미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 피를 이용해서 치료제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기존의 전염병 관련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전염병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고전적(?)인 공식을 깨버린다.  미어스 박사는, 면역력을 가진 사람의 피로 치료제를 만들려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 후로 미치는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딸은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데 미치와 달리 면역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전염병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도시가 봉쇄되는가 하면 식량 사재기까지 일어난다.  불안과 분노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마트나 약국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까지 약탈하게 된다.

  이 장면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초기에 볼 때와 요즘 다시 볼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도시 봉쇄, 식량 사재기, 약탈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보였지만, 요즘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엘리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

 

  치버 박사는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고위급 간부다.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사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인물이기는 한데...  동시에,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적 계급 차이가 생존 가능성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불편한 사실' 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가 전염병이 퍼질대로 퍼진 시카고를 전격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비밀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봉쇄를 단행하기 전에, 감염된 채 시카고에 머물고 있던 상원의원을 도시 밖으로 빼내기로 한다.  이미 병에 걸려 타 지역으로 후송될 경우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상원의원이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 특별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채,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 안에 갇히게 되고...

 

  봉쇄령을 미리 알게 된 치버 박사는 곧 결혼할 여자친구에게 전화하여 그 사실을 알린다.

  마침 시카고에 있던 여자친구를 구하려 한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인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떠날 준비를 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받고는 봉쇄령을 귀뜀해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버 박사나 그 여자친구의 입장이라면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곧 봉쇄될 도시에 남겨져 온갖 고생을 하거나 심지어 사망하게 둘 수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그런 고급 정보를 알 수 있는 특권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봉쇄령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게 되고, 대중은 정부가 자신들을 버렸다며 분노하여 시위를 벌이거나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생했던 중국 우한의 봉쇄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우한을 봉쇄한 게 옳은 결정이었는가 여부는 둘째치고, 여러 보도에 따르면 우한이 봉쇄되기 하루 이틀 전에 제법 많은 우한 시민들이 우한을 떠났다고 한다.  눈치껏 탈출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 중 상당수는 상류층 사람이라 고위직에 있는 지인에게서 곧 도시가 봉쇄된다는 정보를 얻고 탈출했다고 한다.

  우한이 봉쇄되고 난 후 벌어진 아비규환을 생각해 보면...  봉쇄 결정이라는 고급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인맥이 있는가 없는가,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가 낮은가에 따라 우한 시민들의 운명이 엇갈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치버 박사는 사리만 추구하는 악당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속죄를 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드디어 백신이 개발된다.  그러나 생산 초기라 물량이 부족해서, 제비뽑기 식으로 특정 생일에 태어난 사람부터 접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고위직 동료가 결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치버 박사에게 따로 백신을 구해준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ㅠ.ㅠ)

  그런데 치버 박사는 자기 몫의 백신을 CDC 청소부의 아들에게 양보한다.  그 청소부는 치버 박사가 여자친구에게 시카고 봉쇄 소식을 알려주는 것을 우연히 듣고 분노하며 "저에게도 가족이 있어요.  우리 모두가요." 라고 말했다.  즉,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위치에 있으면서 여자친구만을 구했던 치버 박사는, 청소부의 아들이 후순위로 밀려 백신 접종을 받지 못 하자 자기 백신을 양보하며 마음의 빚을 갚는다. 

 

 

 

  ◎ 에린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

 

  미어스 박사는 CDC 소속 직원으로, 상관인 치버 박사의 지시로 전염병 역학조사에 나선다.

  베스에 관해 조사하다가, 베스의 불륜 상대가 사는 시카고에 전염병이 퍼지자 그곳으로 가게 된다.  시카고에서 전염병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감염되고 만다.  실내 운동장에 만들어진 임시 격리소에 수용되는데(아이러니하게도 미어스 박사의 주장으로 만든 격리소임.), 치료약이 없으니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치버 박사는 어떻게든 미어스 박사를 시카고 밖으로 빼내려고 애쓰지만 봉쇄령 때문에 실패하고, 결국 미어스 박사는 사망하여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다른 사망자들과 집단으로 매장된다.

 

  미어스 박사는 등장인물 중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다.

  죽는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을 도우려 애썼다.  옆 침대의 환자가 오한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물자 부족으로 담요를 받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다 죽어가고 있는 처지인데 자신이 덮고 있던 코트를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기력이 다 해서 코트를 전해주지 못 하고 바닥에 떨어뜨린 후에 숨을 거두었다.

  이 영화에는 극한 상황 속에서 온갖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행태가 나오는데, 그 중 미어스 박사는 가장 인간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기적인 사람이 우글거리고 불합리한 일이 판치는 이 세상이 그래도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바로 이런 훌륭한 사람이 소수나마 있기 때문이다.' 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 레오노라 오랑테스(마리옹 꼬띠아르)

 

  오랑테스는 WHO(세계보건기구) 소속 직원인데, 역학조사를 위해 홍콩으로 파견되었다가 그만 납치된다.

  놀랍게도 납치범은 오랑테스와 같이 역학조사를 했던 중국인 직원이다.  중국인 직원의 고향에도 전염병이 발생해서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그런데 이제 막 미국 및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다는 백신을 구할 길이 없자, 고향의 생존자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나중에 오랑테스가 풀려난 후 동료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비슷한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백신이 나왔다고는 해도 생산 초기라 가격이 매우 비싸고 물량도 부족하니, 백신을 구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각국의 공직자, 과학자, 부자들을 납치하여 백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오랑테스는 납치 기간 동안 그럭저럭 지냈다.

  납치범 일당도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막된 사람들은 아니라서, 오랑테스는 납치범 고향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하며 괜찮은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랑테스 스스로도 납치범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는 듯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WHO 측에서 납치범들의 요구대로 백신을 넘겨줘서 풀려나게 되는데...

 

  동료에게서 그 백신이 가짜라는 말을 듣게 된다...!

  백신을 목적으로 하는 납치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납치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게 뻔하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오랑테스의 납치범들에게 가짜 백신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오랑테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가방을 들고 급히 자리를 뜬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등장하지 않아서 그 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납치범들에게 제 발로 돌아갔을 것이다. (미어스 박사 다음으로 이타적인 인물임.)

   

 

 

  ◎ 앨런 크럼위드(주드 로)

 

  크럼위드는 프리랜서 기자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의외의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전쟁, 자연재해, 질병 때문에 혼란해진 세상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기자 역할은 '국민을 속이거나 국민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 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크럼위드 역시 처음에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정부 관계자나 제약회사의 연구진을 쫓아다니며 전염병 관련 정보를 캐내려는 모습을 보면, 비록 음모론에 빠져있기는 해도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진실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혼란함 속에서 한탕 해먹으려는 사기꾼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위기의 시대는 오히려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고...

  크럼위드는 자신이 감염되었다가 개나리액을 먹고 나았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려서, 유명인사가 되고 떼돈도 번다. (무려 450만 달러나 벌었다는...!)

  개나리액으로 신종 전염병을 고치다니, 보통 때라면 의학이나 약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백신도 치료약도 없고 각국 정부는 무력하기만 하니,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나리액을 구하려 혈안이 된다.  수요가 넘쳐 개나리액이 떨어지자 분노한 대중이 약국을 습격하기까지 한다.

  나중에 백신이 개발되어 사태가 진정된 후에 체포되는데, 이미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매우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수도 있다.

 

  크럼위드의 사기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민심이 흉흉해 진 뒤로 여러 나라에 가짜 뉴스가 퍼지며 일어난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서는 은행잎 성분으로 만든 영양제가 감염 예방에 효험이 있다는 가짜 뉴스가 돌아서, 너도 나도 그 영양제를 사들이는 통에 결국 바닥이 났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알콜이 감염을 예방한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이슬람 국가의 특성상 식용 알콜을 구하기 힘들자 사람들이 공업용 알콜을 마셔서 사망하거나 실명하는 사건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던,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화장지 사재기의 시작도 '마스크와 화장지의 원료가 같아서 마스크 생산이 늘면 화장지 생산이 줄어들 것이다' 라는 가짜 뉴스였다고 하니... 

 

 

 

 

  ◎ 기타

 

  1. 특이하게도 전염병 발생 '2일째' 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어떤 사태가 벌어진 후에 날짜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보통 '1일째' 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째서 '2일째' 에서 시작하는 걸까 의아했는데...  반전을 위한 장치였다.  영화 맨 끝에서야 전염병의 시작인 '1일째' 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박쥐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과정을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영상으로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소름끼친다.

 

  2. 전염병이 퍼지는 곳이 세계적인 대도시들이다.

  전염병이 퍼진 곳으로 나오는 곳이 홍콩, 런던, 도쿄, 시카고 등 인구가 많으면서 인구 밀도도 높은 대도시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사람들이 밀집되어 사는 것', 즉 도시화를 꼽는다.  많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니 전염의 기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3. 백신을 수돗물에 풀어 감염을 예방하자고?

  어렵게 백신이 개발된 후에 치버 박사가 한숨을 내쉬며 동료에게 말한다.  국토안보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충치 예방을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종 전염병 치료를 위해서 백신을 수돗물에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물론 황당한 이야기다.  백신을 수돗물에 풀어서 환자들에게 공급한다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백신은 '아직 병에 안 걸린 사람이 앞으로도 안 걸리게 해주는 약' 이지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해주는 약' 이 아니다...!  전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고위 공직자 중에서 문외한이 많아서 현장 실무진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듯하다.

 

  4. 이 영화에서는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부디 우리 현실에서는 희생자가 그보다 훨씬 적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야, 얼른 물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