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사망 17주년을 기리는 뜻으로, 5월 1일에 영화 '패왕별희' 가 재개봉했다.
원래는 장국영의 사망일인 4월 1일에 맞추어 재개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영화계가 초토화(!) 되면서 이번 달로 연기되었다.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가치를 인정받는 법이다.
1993년도에 개봉했던 작품인데도 재개봉하고 5일 연속 예매율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관객수가 급감한 탓에, 요즘 극장가에 최신작이 거의 없는 덕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영화인데다가 23년이나 된 영화라서 볼 사람은 벌써 다 봤을 텐데도,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니 대단한 일이다.
사실은 오래 전에 패왕별희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두 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다.
☞ 장국영의 발견(1) - 패왕별희(覇王別姬) http://blog.daum.net/jha7791/14823020
☞ 색계(色戒) http://blog.daum.net/jha7791/14869876
그런데도 굳이 다시 쓰는 이유는, 당시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니 같은 사람이 같은 영화를 봐도 감상이 달라진다. 하긴, 어쩌면 '같은 영화' 는 맞아도 '같은 사람' 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1993년도의 나' 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2020년도의 나' 는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사람이지만, 사고방식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으니까. 좀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같은 사람이되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 이다. 그러니 같은 영화를 보고도 느낌과 생각이 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패왕별희의 주인공 데이는 정말 동성애자가 맞나?
패왕별희는 개봉 당시 동성애를 주요 소재로 한 영화, 즉 퀴어영화로 소개되었다.
이 영화를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고 그 후로도 비디오나 TV로 몇 번이나 봤지만, 그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데이(장국영) 가 사형인 샤오로우(장풍의) 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자가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내용이라니, 그게 바로 퀴어영화 아니던가...!
그런데 이 영화를 오래간만에 다시 보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동성애자는 말 그대로 같은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데이가 동성애자라면, 설사 샤오로우가 아닌 다른 이를 사랑했더라도 어쨌든 '같은 남자' 를 사랑해야 맞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만일 상황이 좀 달랐더라면 데이가 샤오로우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 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데이가 샤오로우를 사랑하게 된 여러 이유 중에 '샤오로우가 남자니까.' 라는 사실이 반.드.시. 들어가는지 의문이다.
샤오로우는, 어린 데이가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내버려졌을 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사람이다.
데이가 처음부터 샤오로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날을 세우며 샤오로우의 호의를 거부했다. 어머니와 헤어진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데이 입장에서는 결국 버림받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샤우로우가 자신을 도우려다가 매를 맞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겨울에 물이 가득 담긴 세숫대야를 올린 널빤지를 들고 눈 쌓인 마당에 꿇어 앉는 벌을 받는 것을 보고, 샤오로우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평범한 상황에서 평범하게 도와준 게 아니라, ‘자신이 지독하게 절망적인 상황’ 에 빠져있을 때 ‘가혹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도와줬기에, 샤오로우는 데이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데이는 샤오로우가 남자가 아니더라도 결국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데이에게 샤오로우는 단순한 '짝사랑 상대' 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절대적이고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샤오로우가 쥐셴(공리) 와 혼인했을 때 데이가 그토록 절망하며 몸부림쳤던 것은, 그저 실연했기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자기 인생의 소중한 모든 이(사형 + 어머니를 대신하는 사람 + 짝사랑 상대 + 경극에서 완벽한 호흡을 맞추던 파트너)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된 심정이 아니었을까...
만일 어린 데이를 도와주었던 이가 샤오로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데이는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자기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데이의 인생에서 샤오로우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는, 데이가 샤오로우로 인해 여자 역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여자만큼이나 예쁘장하고 성격도 섬세한 데이는 여자 주역으로 뽑혀서, 남자 주역인 샤오로우와 호흡을 맞추게 된다.
그런데 '나는 여자로 태어나 남자도 아닌데...' 라는 대사를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도 아닌데...' 라고 읊는다. 처음에는 실수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부에게 지적을 당하고도 계속해서 거꾸로 읊는다. 사부는 데이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분노해서, 데이의 손이 피투성이가 될 지경으로 때린다.
아마, 데이의 무의식적인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경극단에 들어온 것부터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여자 역을 맡게 되었다. 물론, 보통의 배우라면 ‘연기는 연기일 뿐이니 공연할 때만 여자 역을 충실히 해내면 된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데이는 다정다감하다 못 해 예민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평생 극복하지 못 한 채 방황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외골수이며 외로움을 타는 성격으로는 ‘경극은 경극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극중 자신의 연인 역을 맡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샤오로우다. 그렇기에 한 번 여자 역을 받아들이면 무대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평생 여자 역에서 헤어나오지 못 할 것이라고,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것 같다.
결국 데이는 샤오로우 때문에 그토록 거부했던 여자 역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날 경극 극장 사장인 나쿤이 경극단을 찾아온다. 데이가 속한 경극단이, 장 내관(과거 청나라 황실에서 태후를 모셨다는 부유한 환관이며 경극 애호가)의 저택에서 공연할만한 실력을 갖추었는지 알아보려 온 것이다. 나쿤이 데이를 눈여겨 보고 경극 한 대목을 선보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도 데이는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도 아닌데...’ 라고 읊는다.
데이와 사부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샤오로우의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된다. 데이의 잘못으로 경극단이 큰 기회를 잃게 된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 일로 데이가 심한 체벌을 받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경극단에서는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끔찍한 구타가 만연해 있다. 데이는 계속해서 대사를 틀리게 말한 일로 사부한테 찍혀 있는데, 중요한 고객 앞에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으니 아예 맞아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샤오로우는 사부가 데이를 처벌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담뱃대를 데이의 입안에 쑤셔넣으며 대사를 제대로 외울 것을 강요한다. 항상 아끼던 데이를 본의 아니게 괴롭히게 된 샤오로우의 눈에서는 눈물을 흐른다. 그리고 항상 좋아했던 샤오로우에게 폭력을 당하게 된 데이의 입에서는 피가 흐른다. 당장 떠나려던 나쿤이 뜻밖의 일에 놀라 지켜보는 사이, 데이는 처음으로 ‘나는 여자로 태어나 남자도 아닌데...’ 라고 제대로 대사를 읊는다. 결국, 샤오로우를 위해서 여자 역할을 받아들인 셈이다.
데이가 원래 동성애자가 아니라 '여자 역을 받아들여 여자로서 샤오로우를 사랑했던 것' 이라고 생각한다면, 데이가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도 달리 보인다.
10여 년만에 만난 두 사람은 텅 빈 무대 위에서 두 사람만의 패왕별희를 연기하다가 잠시 쉰다. 이때 샤오로우가 옛날 기억이 떠올랐는지, 소년 시절 데이가 반대로 읊었던 대사의 전 부분을 갑자기 던진다. 거기에 걸려든 데이가 무심코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아닌데..." 라고 다시 잘못 말한다. 그러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움찔한 후에, 깊은 눈빛으로 다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아닌데..." 라고 독백한다.
아마 그 순간 데이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실, 즉 자신이 원래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데이는 오직 무대 위에서만 여자로 존재했어야 한다. 하지만 남다른 사연과 샤오로우에 대한 특별한 마음 때문에, 연극과 현실을 구별 못 하고 현실에서도 여자의 마음으로 샤오로우를 바라보며 살았다. 드디어 연극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렇게 산 세월이 너무 길기에 이제와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 역시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패왕별희 속 우희가 그러했듯이, 데이도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데이와 샤오스
주로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경극단 아이들의 체벌 장면을 보면, 훈육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지독한 폭력이다.
그 시대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데이와 샤오로우가 사부에게 경극을 배우던 1920년대에서 1930년대는, 인권이란 말의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대니까...
더구나 경극단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에게 팔린 신세다. 사부와 그 조수들로서는 '우리가 아무리 심하게 때린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식이었을 것이다. 아마, 사부와 조수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질리도록 맞으며 경극을 익혔기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법은 알지도 못 했을 것이다.
전에는 막연하게 '애들을 너무 심하게 때린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니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데이의 제자 격인 샤오스 와 관련한 장면이다.
샤오스는 갓난아이 때 길거리에 버려졌는데, 데이가 경극단으로 데려왔다.
데이가 경극단에 들어간 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결정 때문이었듯이, 샤오스도 자기 뜻이 아닌 데이의 결정으로 경극단에 들어가게 된 셈이니, 시작부터 묘한 인연이다. 동시에, 데이에게 어머니가 애증의 대상이었듯이, 샤오스에게도 데이는 애증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복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샤오스를 데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는 샤오로우와 함께 독립했다. 그 후로 샤오스는 데이와 별 접점 없이 자란 것으로 보인다.
훗날 데이와 샤오로우의 사부가 갑자기 사망하고 경극단이 해체되면서, 데이가 샤오스를 거두게 된다.
사부의 장례를 치르던 데이의 눈에 샤오스가 들어온다. 다른 아이들이 각자 짐을 챙겨 떠나는 와중에, 샤오스 혼자 물이 가득 담긴 대야가 올라간 널빤지를 머리에 이고 무릎 꿇는 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오로우가 경극단이 해체되었으니 벌을 더는 안 받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샤오스는 사부에 명령에 따라 벌을 받는 거라며 계속 벌을 받겠다고 한다. 데이는 샤오스가 그 옛날 자신이 데려온 갓난아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한동안은 스승과 제자 관계로 그럭저럭 지냈지만, 격동의 역사가 두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샤오스는, 구시대의 모든 폐단을 없애고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공산당의 주장에 매료된다. 그래서 경극은 인민을 깨우치고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인 데이는 경극의 예술성을 강조하지만, 제자인 샤오스는 구시대 유한계급의 신선놀음식 경극에만 집착하는 스승에게 불만을 드러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동서고금의 예술계에 항상 있었던 세대간의 갈등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데이가 옛날 식으로 샤오스를 처벌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난다.
샤오스는 옛날 스승(데이의 스승)이 물이 담긴 대야를 얹은 널빤지를 이고 무릎 꿇는 벌을 내렸을 때는, 그런 처벌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 스승이 이미 세상을 떴는데도 계속해서 벌을 받겠노라 우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데이가 같은 벌을 내리자, 이미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런 부당한 처벌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하며 데이의 곁을 떠난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홍위병이 되어 문화대혁명에 앞장서면서 데이와 샤오로우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흔히, 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사람이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 똑같이 폭력을 휘두른다고 한다. 데이도 사부의 심한 체벌에 길들여져서, 제자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법 밖에 알지 못 했다. 하지만 구시대의 폐습을 타파하자는 공산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샤오스 입장에서는, 토론과 설득 대신 권위와 체벌로 제자의 의견을 눌러버리려는 데이에게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점은, 결국 샤오스도 옛날 스승과 데이처럼 폭력을 내세우는 짓을 답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예 한 술 더 떠서, 데이가 한 짓은 폭력이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지독한 짓을 한다. 데이가 스승으로서의 권위 및 체벌을 앞세우는 것을 비난하며 떠났으면서, 정작 자기는 그보다 더 한 권위(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이 누렸던 막강한 힘)와 체벌보다 더 한 폭력(자아비판 및 조리돌림)을 이용하여, 스승인 데이와 샤오로우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것이다. 한 마디로, 폭력의 대물림이다.
기타
1.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은 '패왕별희' 의 재개봉판이며 확장판이기도 하다.
1993년의 첫 개봉판에 비해 약 15분을 추가했다고 한다. 문제는... 나로서는 도대체 어디에 뭐가 추가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2.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은 올해 들어 내가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다.
작년 12월에 영화관에 간 뒤로 내내 영화관에 가지 못 했다. 처음에는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안 갔던 것 뿐인데, 나중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영화관에 가는 게 꺼려졌다. 아무래도 불특정 다수가 한정된 공간에 모여 앉는 곳이니... 모두 비슷한 마음인지, 지난 4월 전국 영화관의 관객수가 작년 4월에 비해 무려 92%(!)가 줄었다는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어린이날에 영화관에 가서 이 영화를 봤다. 전에 헌혈을 하고 받은 영화관람권의 기한이 다 되어가기도 하고, 마침 어린이날이기도 하니 뭔가 즐거운 것 좀 해보자는 생각에(물론 나는 어린이가 아니지만... ^^;;), 모처럼 영화관에 갔건만... 휴일인 어린이날인데도 영화관이 텅텅 비다시피 했다. 좌석이 350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8명...! 평일 조조에 맞춰서 가도 그보다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코로나가 무섭기도 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관객수가 대폭 감소해서 신작을 개봉하지 않고 온통 재개봉작이라 그나마 올 관객도 안 오고...
그런데 어린이날이 낀 연휴가 끝나고 이른바 클럽발 확진자가 줄줄이 생기는 걸 보니, 다시 영화관에 발걸음 끊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이 영화가 올해 영화관에서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 여기저기에 다 영향을 끼치더니, 이제는 영화 관람에까지 마수(!)를 뻗친다. (코로나야, 어서 물렀거라~~~)
장국영의 발견(1) - 패왕별희(覇王別姬) http://blog.daum.net/jha7791/14823020 색계(色戒) http://blog.daum.net/jha7791/14869876 장국영(张国荣)의 당애이성왕사(当爱已成往事) - 영화 '패왕별희' 의 주제곡 http://blog.daum.net/jha7791/1579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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