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하이랜더(Highlander)

Lesley 2020. 1. 14. 00:01

 

  오늘 소개할 영화는 까마득한(!) 1986년도 작품인 '하이랜더' 다.

  작년에 '퀸' 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의 일대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를 봤는데, 이 영화에는 퀸의 여러 히트곡이 나온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이,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판정을 받고서 병원 복도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Who Wants To Live Forever' 이다.

  이 곡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퀸의 곡이다.  학창 시절에 TV에서 방영한 '하이랜더' 를 봤는데, 이 영화의 주제곡이 바로 'Who Wants To Live Forever' 다.  노래 제목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지닌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고뇌가 느껴지는데, 가사 내용도 그렇고 애절한 음성도 그렇고 영화 분위기 및 주제와 잘 어울렸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이 영화를 다시 구해 감상했다. (시작은 '보헤미안 랩소디' 인데 결론은 '하이랜더' 인 얄궂은 상황...^^;;)

 

 

 

 

 

  줄거리

 

  여기에서는 편의상 영화 줄거리를 시간 순서대로 쓰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현재(1985의 미국 뉴욕)과 과거(1500년대 중반의 스코틀래드)의 사건이 번갈아가며 나온.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크리스토퍼 램버트)는 16세기에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역에서 태어났다.

  맥클라우드 씨족과 프레이저 씨족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코너는 일족과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프레이저 씨족의 용병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하고 잔인한 커건(클랜시 브라운)과 맞닥뜨리게 된다.

  커건은 처음부터 코너만을 노리고 전투에 참가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더니 칼로 코너의 배를 찔러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코너의 목까지 베려고 한다.  코너의 사촌들이 기를 쓰고 달려들어 코너의 목이 잘리는 일은 겨우 막아낸다.  하지만 상처가 심했던 탓에 사촌들과 신부가 지켜보는 앞에서 결국 사망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망한 것처럼 보였음.)

 

  하지만 놀랍게도 얼마 안 가서 살아난다...!

  그렇잖아도 미신이 횡행하던 시대인데 분명히 죽었던 것 같은 사람이 되살아났으니, 마을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힌다.  코너는 악마로 몰려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고동락했던 일족에게 저주와 욕설을 듣고 돌팔매질을 당한다.  하마터면 화형을 당할 뻔했는데, 코너에게 정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 한 사촌 덕분에 마을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 후 헤더라는 여인과 부부가 되어 외딴 곳에 있는 낡은 성에서 살아간다.

  영화만 봐서는 헤더를 어떤 경위로 만나 결혼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외딴 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거나 부부 사이는 매우 좋아서 행복하게 지낸다.

 

  그런데 갑자기 라미레즈(숀 코너리)라는 나이 든 기사가 나타난다.

  무려 2,000년 넘게 살아왔다는 라미레즈 덕분에 코너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코너와 라미레즈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이 불사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 목이 잘리지 않는 한 죽지 않지만 대신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 불사의 존재들은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 최후로 살아남는 한 명은 엄청난 상을 받게 된다는 것 등이다.

  라미레즈는 코너를 공격했던 커건도 불사의 몸이라고 알려 준다.  만일 커건처럼 잔인무도한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면 인류의 운명이 암담해 질 것이라며, 코너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언제가 있을 커건과의 싸움에 대비시킨다.

 

  어느 날 밤, 커건이 코너를 노리고 기습을 한다.

  공교롭게도 코너는 집을 비웠고 라미레즈와 헤더만 있었다.  라미레즈는 열심히 싸우지만 커건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죽게 된다.  그리고 이 때의 일로, 불사의 존재끼리 싸우면 살아남은 쪽이 죽은 쪽의 힘을 흡수하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커건이 라미레즈의 목을 자르기 직전에 헤더를 가르키며 누구냐고 묻자, 라미레즈는 자기 여자라고 대답한다.  커건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자이기도 하고 코너를 노리고 왔기 때문에, 헤더가 코너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해칠 것이라 생각해서, 헤더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듯하다.  하지만 라미레즈가 죽어가면서까지 애쓴 보람도 없이, 커건은 라미레즈의 시신 앞에서 헤더를 강간한다. (다만, 강간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커건이 헤더의 목을 움켜쥐는 장면으로 암시됨.)

 

  유일한 친구였던 라미레즈를 잃은 후로 코너와 헤더는 다시 두 사람만의 생활을 이어간다.

  부부의 애정은 여전히 굳건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헤더는 늙어가고 코너는 젊은 모습 그대로 남는다. (이 장면에서 퀸의 'Who Wants To Live Forever' 가 나옴.)  마침내 헤더는 코너의 품에서 천수를 다 하게 된다.  자기 생일이 되면 초 하나를 밝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코너는 헤더의 무덤을 만든 후에 헤더와 수십 년을 같이 살았던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그 뒤로 코너는 다시는 가정을 이루는 일 없이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간다.

  프랑스 대혁명 전후로 보이는 시대에는 어떤 귀족과 시비가 붙어 결투를 하기도 하고(몇 번이나 칼에 찔리고도 안 죽어서 결투 상대방을 경악하게 만듦.),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기도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는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레이철이라는 여자 아이를 구조한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레이철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던 듯하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세월이 흘러 주위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 때가 되면, 서류를 조작하여 가공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자신은 사망한 것으로 꾸민 후 그 가공의 자식 신분으로 사는 것을 반복했다.  영화 속 현재인 1985년에는 뉴욕에서 골동품점 사장으로 지내는 중인데, 이미 50대 혹은 60대가 된 레이철이 코너의 비서가 되어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코너는 자기를 노렸던 다른 불사의 존재를 죽인 일로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도검류의 전문가이자 경찰 감식반원인 브렌다는 코너 사건을 맡아 조사하다가, 살인에 쓰인 무기가 기원전 6세기 경에 만들어진 정교한 일본도라는 사실에 놀란다. (이 일본도는 원래 라미레즈의 것인데 라미레즈 사후 코너가 갖게 된 것임.)

  브렌다는 의문투성이인 코너 사건에 몰입하다가 나중에는 코너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브렌다를 경계했던 코너도 차츰 브렌다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커건이 다시 등장해 불사의 존재들을 하나씩 죽이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코너를 노린다.

  헤더의 생일이 되자, 코너는 헤더와의 약속대로 성당에 가서 초를 밝히고 생일을 축하한다. (헤더와 사별하고 약 350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에 나타난 커건은 라미레즈를 죽였던 날의 일을 들먹인다.  그제서야 코너는 커건이 헤더를 강간했음을 알게 된다.  커건 역시 코너의 반응을 보고서야 헤더가 코너의 아내였음을 깨닫고 코너를 도발하려 이죽거린다.  코너는 마음 같아서는 커건을 당장 없애고 싶었겠지만, 서로를 죽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불사의 존재들이라도 성지(성당, 교회 등)에서는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철칙 때문에 일단 분노를 억누르고 자리를 뜬다. 

 

  최후의 결전을 앞둔 상태에서 코너는 브렌다와 연인이 된다.

  코너가 불사의 몸이라는 사실을 브렌다가 알아내고 찾아오자, 코너는 브렌다 손에 칼을 쥐어주고서 자신을 찌르게 한다.  깊숙히 찔리고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며, 브렌다의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 직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밤을 보낸다. (사실 이 장면은 상당히 뜬금없음.)

 

  얼마 후 코너는 커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커건은 코너를 미행하다가 브렌다가 코너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납치한다.  코너는 수백 년 간의 악연을 끝나고 연인을 구하기 위해 떠나면서, 전 재산을 레이철에게 남기고 작별을 고한다.

  이 때 레이철에게 "이건 마술 같은 거야." 라고 말하며 눈물 어린 눈으로 윙크를 하는데, 이 영화에 나온 대사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다.  어린 레이철과 코너가 처음 만났을 때, 코너가 나치의 총을 몇 발이나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죽지 않자 레이철은 깜짝 놀랐다.  그러자 코너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건 마술 같은 거야." 라고 말하며 윙크를 했다. (총을 맞고도 안 죽었으니 '이건 마술 같은 거야' 라는 말이 확실히 맞기는 함.) 

 

  코너는 커건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결국 승리한다.

  그 전에도 다른 불사의 존재와 싸워 죽이고 상대의 힘을 흡수한 적이 있지만, 커건을 죽임으로써 마지막으로 남은 불사의 존재가 되자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라미레즈가 생전에 말해줬던, 최후에 살아남게 되는 자가 얻게 되는 상은 바로 '모든 것' 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동시에 스스로가 모든 것이 된다.  또한 보통 사람처럼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다가 죽을 수 있는 축복(!)까지 얻게 된다.

   그 후에 그 모든 일이 시작했던 곳, 즉 자신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로 브렌다와 같이 간다.  그리고 브렌다와 사랑하며 살다가 함께 늙어가는 삶을 기대하며 행복해 한다.  

 

 

 

  매력적인 소재에 비해 허술한 구성과 전개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의 완성도는 높다고 말하기 힘들다.

  CG 등 각종 특수효과가 어설픈 것이야 영화 제작 시기가 1980년대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건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한 뒤에 나오는 바람과 번개 CG는 참 난감했다는... ㅠ.ㅠ)  하지만 영화라는 것도 일종의 '이야기' 인데, 바로 그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지 못 하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소재인 '불사의 존재' 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어쩌다가 이 세상에 불사의 존재가 생겨난 것인지, 어떤 조건에서 불사의 존재가 태어나는지, 불사의 존재들은 왜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소위 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불사의 존재 사이에 어떻게 알려진 것인지...  도대체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사의 존재에게 신비감을 더 해주려고 신비주의(!) 방식을 쓴 것 같지도 않다.  이것저것 따지고 이런저런 설정 맞추려면 복잡하기도 하고 상영 시간 문제도 있으니, '원래 그런 거야' 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분위기랄까... -.-;; 

 

  불사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다는 점 말고도, 설정상의 구멍이 몇 개 더 있다.

  라미레즈는 커건이 최후의 승자가 되면 인류의 운명이 암담해 질 것이라면서, 코너를 커건의 대항마로 훈련시켰다.  하지만 다른 불사의 존재들을 전부 제쳐놓고 굳이 코너를 선택한 이유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코너가 전쟁 중에 구해내어 미국으로 데려간 레이철은, 아마 처음에는 코너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며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영화 속 현재 시점에서는 코너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애매모호하다.  수백 년 전에 죽은 아내를 여전히 못 잊고 사는 코너를 짝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자신의 은인이자 양아버지이기도 한 코너에게 인간적인 애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코너와 브렌다의 사랑은 무척 생뚱맞다. -.-;;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이 나올 때 "갑자기 이게 뭐냐?" 하는 기분만 느꼈다.  코너가 살인 사건 용의자이며(실제로 살인을 저질렀음.), 웬 괴물 같은 자와 살벌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두려운 특이한 존재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브렌다가 어떻게 코너에게 사랑을 느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코너 역시 무려 350년 동안 오매불망 죽은 아내만 생각하더니, 왜 갑자기 브렌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설정상의 문제 외에도 액션이 빈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21세기의 정교한 액션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 속 액션을 보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  물론, 요즘 액션영화 속 액션신이 근사해 보이는 것은, 배우들의 피땀 어린 연기에 화려한 카메라 기술과 특수효과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1986년도에 나온 영화라서 촬영 기법이나 기술상의 문제로 지금 같은 수준의 액션 장면을 뽑아내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액션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다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영화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 번 볼 가치가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불사의 존재가 겪는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불로초를 구하려고 생쇼(!)를 벌였던 진시황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인간은 불사니 영생이니 하는 것을 꿈꾸었다.  오죽하면 옛날 사람들이 윗사람에게 흔히 하는 인사 중에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가 있다.  영원히 죽지 말라는 말은 감히 못 하겠고 아쉬운 대로 '만 년 동안의 수명'(!)이라도 누리라는 뜻이다. (사실 만 년도 엄청나다는... ^^;;)  현대의 과학자들도 불로불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화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불멸의 삶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나 영원한 생명을 소재로 하는 다른 작품(그게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간에)을 보면 불사의 존재는 불행하게 묘사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다면야, 영생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끝없이 이어지는 삶을 남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지, 아니면 권태와 허무에 파묻혀 그야말로 '죽지 못 해 산다' 는 식으로 살 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세월 속에서 하나씩 죽어가는데 혼자만 계속 살아가게 되면, 끝없는 고독과 회의를 느끼고 오히려 평범한 사람처럼 유한한 생명을 간절히 바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는 그런 외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포스트 앞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주제곡 'Who Wants To Live Forever' 이 애절하면서도 근사하다.

  인터넷에서 읽은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퀸은 처음에 이 영화 주제곡을 부탁받았을 때만 해도 너무 바쁜 나머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작진이 보여준 약간의 촬영분에 반해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광활하고 아름다운 하이랜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이랜드는 그 이름값 하느라 높은 산악지역인데, 직접 가 본 것도 아니고 화면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과 겸허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절경이다.  특히, 웅장하고 깊은 절벽 앞에서 코너와 라미레즈가 검술 훈련을 하는 장면이 멋지다.  카메라가 두 사람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잡다가 점점 멀어지며 두 사람 주위의 하이랜드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장면은 이렇게 글로만 봐서는 실감할 수 없고 직접 영화를 봐야 한다.

  

 

 

  뱀발

 

  1. 주인공 코너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프랑스 배우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프랑스어로는 '크리스토퍼 랑베르' 라고 한다고 함.)

  크리스토퍼 램버트를 이 영화로 처음 알았고, 영화를 잔뜩 봤던 대학 시절에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나온 다른 영화도 두어 편 더 봤다.  그런데 그 영화들 모두 영어로 된 영화였고, 영화 속 크레딧에서나 영화 관련 자료에서도 크리스토퍼 램버트라고 나왔기 때문에, 으레 미국 배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니 뜻밖에도 프랑스와 미국의 이중 국적자라고 한다.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근무할 때 태어났기 때문에, 혈통에 따른 프랑스 국적과 출생지에 따른 미국 국적을 모두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위키피디아에 프랑스 배우로 소개되었을 정도로 주로 프랑스 영화계에서 활동했으니, 미국 국적이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2. 여주인공은 분명히 브렌다지만, 존재감 측면에서 조연인 헤더에게 밀린다.

  그렇다고 해서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가 소위 발연기(!)를 펼쳤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위에 이미 쓴 것처럼 브렌다와 코너가 연인이 되는 게 워낙 개연성이 없어서, 관객 입장에서는 공감도 안 되고 감정이입도 안 된다. (개연성이 2%가 아니라 20%도 넘게 부족함...!)

  그에 비해 헤더와 코너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깝게 묘사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 사람은 젊은 모습 그대로 남고 나머지 한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낭만적인 느낌보다는 애절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세월의 힘을 어찌하지 못 하고 결국 사별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