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2020년이 다가온다.

Lesley 2019. 12. 11. 00:01

 

  언젠가부터 그 해의 연도에 익숙해지지 못 한 상태로 다음 해를 맞게 된다.

  2019년이라는 올해 연도 역시 아직 낯설게 느껴지기만 하는데, 이제 3주일 정도 지나면 또 해가 바뀌어 2020년이 된다.  학창시절 선생님들 말씀대로 나이가 들수록 세월 가는 게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연도를 실감 못 하니 나이 계산도 안 된다.  언제부터인지 누군가가 내 나이를 물어보면 그냥 "00년 생이예요." 라고 대답하게 된다. (난 모르겠으니 댁이 알아서 계산하슈... ^^;;)  

 

  사실은 연도라는 게 역법에 따라 붙인 숫자일 뿐이다.

  같은 해라도 다른 역법을 쓰면 연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러니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 그 자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끝자리가 0으로 끝나거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괜히 이런저런 의미를 가져다 붙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2019년은 그냥 2019년일 뿐이지만 다음 해인 2020년은 끝자리가 0이라서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1999년과 2000년은 달랑 한 해 차이가 날 뿐이지만, 2000년에는 0이 3개나 붙는데다가 맨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기까지 하니 어마어마한 해처럼 느껴진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이야기지만, 숫자일 뿐인 연도에 집착한 나머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점이 다가오자 황당무계한 일들이 벌어졌다.

  특히 20세기의 마지막 시절인 1990년대에는 온갖 세기말적 현상이 들끓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라 곧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떠들어대는 정도는 차라리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일이었다.

  실제로 여러 피해자를 낳았던 휴거 소동은 기독교계의 흑역사요, 블랙 코미디의 결정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모월 모일에 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서울역 쪽에서 현금을 뿌린다고 했다.  정말로 휴거가 일어나면 이 세상에서 모은 재산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게 되니까 그냥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뉴스를 비롯한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 보도되어 돈 뿌리는 날짜가 널리 알려진 통에, 철없는 일부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고 서울역으로 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  우리 학교에서도 각 반 담임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이 돈 주으러 간다고 무단 결석하는 일 없도록 단속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999년의 마지막 며칠은 Y2K니 뭐니 하면서 전국의 은행 ATM을 사용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이 일은 위의 휴거 소동과는 다르게 실제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한참 전부터 1999년 연말에는 ATM 사용이 중지된다고 홍보했건만, 막상 연말이 되자 돈이 없는데 ATM에서 돈을 인출 못 한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사방에 널리는 일이 생겼다. ^^;;

 

  2020년이 다가온다고 하니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바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1989년에 방영한 국산 TV 애니메이라션이었는데 그 시대 기준으로는 괜찮은 수준의 작품이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애니메이션의 시대적 배경은 2020년이다.  제작진은 이 애니메이션 방영 시기에서 31년 후의 미래인 2020년에 대해 어마무시(!)한 상상력을 펼쳤다.  2020년에는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 여기저기를 탐험하고 다니는 게 가능할 정도의 우주 시대가 펼쳐진다.

  여담으로, 주인공 이름이 '아이캔' 이다.  영어 'I can' 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  아직 소년인데도 행방불명된 아빠를 찾아 우주에서 온갖 모험을 다 겪다가 마침내 악당들도 무찌르고 아빠도 구출하는, 한 마디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캐릭터라서,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치한 농담 주고받을 나이의 우리 시청자들은 아이캔을 '나는 할 수 있어' 가 아니라 '나는 깡통이다' 라고 해석하며 키득거렸다. ^^;; 

 

  미래의 과학 발전 수준을 지나치게 앞질러 상상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AI로 인한 암울한 미래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이 시리즈에서, 1997년에 스카이넷이라는 AI가 인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인류 상당수가 핵폭탄 공격으로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몇 년 전에 AI가 바둑 고수인 이세돌을 상대로 바둑 경기를 해서 이겼다고 해서 세상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시작한 1980년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AI의 발전 속도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AI 수준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AI가 반란을 일으키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 1997년으로부터 20년은 지난 몇 해 전에야, 현실 속 AI가 겨우(!)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일이 벌어졌을 뿐이니...  과연 AI가 언제 인류에게 반란을 일으킬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런지 요원하기만 하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건 절대 아님...! -.-;;)

 

  어찌되었거나 뭔가 있을 것만 같은 2020년...

  그저 우연히 마지막 자리에 0이 붙었을 뿐이고, 또 우연히 20이라는 숫자가 반복되는 것 뿐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괜스레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뭐 20이 두 개니까 20억짜리 로또에 두 번 당첨된다든지... ^^;

 

  부디 2020년에는 모든 이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