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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판잣집 체험관 -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Lesley 2019. 2. 10. 00:01


  얼마 전에 서울 마장동(축산물시장으로 유명한 그 마장동)에 있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에 다녀왔다.

  청량리 쪽으로 나갈 일이 있었는데, 우리집에서 청량리까지 제법 멀기 때문에 볼일만 보고 돌아가려니 오가는 데 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스마트폰으로 청량리 근처에 가 볼 만한 곳을 찾아봤다.  그렇게 간택(?)된 곳이 바로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이다.

   


청계천 박물관 쪽에서 본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의 모습.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은 청계천 박물관과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어차피 두 곳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으니 모두 들렸다.  다만, 이 포스트에서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만 소개하려 한다.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이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인데 비해, 청계천 박물관은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봐야 하는 곳이다.  일단 규모만 봐도 청계천 박물관이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전시 내용도 많고, 청계천 박물관이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청계천만이 아닌 서울 전체의 역사를 짚어보게 되어 있는 곳이다. 

  이 날 얼떨결(?)에 청계천 박물관을 발견한 탓에, 시간 관계상 대충 분위기 파악 정도만 하고 나왔다.  조만간 다시 한 번 가서 제대로 보고서 따로 포스팅 할 계획이다.



네,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입니다요~~ ^^



  이름은 분명히 판찻집 체험관인데, 오두막집에 가깝게 보인다.

  어쩌면 예전에는 저런 식으로 지은 집을 판잣집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60년대 서울 문래동을 배경으로 한 추억의 드라마 '육남매' 속에서 저런 집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똑 사세요, 똑이요~~" ← 배우 장미희의 목소리 입혀서 들으세요... ^^)

  하지만 내 기억 속의 판잣집이라 함은, 보통 페인트칠을 안 한 시멘트 벽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식으로 되어 있는 집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판잣집도 변한 모양이다.



나무로 된 전봇대.

개천 위에 올라 선 판잣집 모습.



딱 추억의 교실이네요~~! ^^



  교실 한쪽에 있는 간판 문구 그대로 '추억의 교실' 이다.

  칠판을 중심으로 한 쪽은 80년대 중.후반의 초등학교(물론 그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지요~~ ^^) 삘인데, 오른편의 가방을 보면 70년대 고등학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어린 시절 TV에서 가끔 틀어준 '고교 얄개' 같은 영화 속에서 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가방이 저렇게 생겼더랬다.



초등학교 때 연말마다 그린 불조심 포스터.

추억의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요즘도 초등학교에서 불조심 포스터나 반공 포스터를 그리는지 모르겠다.

  일반 물감과는 격이 다른(즉, 가격이 비싼... ^^;;) 포스터 물감이라는 녀석으로 매년 6월이면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12월이면 불조심 포스터를 그렸다. 어린 학생들의 아이디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이기도 하고, 또 매년 반복해서 그리다 보니, 반마다 비슷한 포스터가 쏟아져나왔다.  


  오, 저 추억 속의 가방과 신발주머니...!

  요즘은 코찔찔이 초등학생 신입생들도 중.고등학생이 메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책가방을 이용한다.  그저 책가방 위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림이 있거나 색깔이 좀 더 알록달록하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다. (가끔은 여행용 캐리어 같은 책가방을 끌고 다니는 애들도 있음. ^^)

  하지만 80년대 국민학교의 저학년 아이들은 국민학교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팍팍 보여주는 저런 가방을 갖고 다녔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면 중학생 언니 오빠들이 메고 다니는 것과 같은 성숙한(!) 배낭형 가방으로 바꾸곤 했다.



추억 돋는 교과서와 공책.

달력이나 과자상자로 접은 딱지.



  우리나라처럼 매년 새 교과서를 공급해주는 나라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

  가난한 나라는 물자가  워낙 귀하니 교과서를 물려가며 쓰고, 선진국은 교과서가 참고서 겸용으로 되어 있어 무척 두꺼운 나머지 단가가 비싸서 역시 물려쓴다고 한다.  '나만의 교과서' 를 갖을 수 있다는 면에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복 받은 셈이다. (물론 과열된 교육열 등을 생각하면 전혀 복 받은 게 아닌... -.-;;)

  국민학교 때 매년 새 학년 첫날에 새 교과서를 잔뜩 들고 집으로 걸어가노라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날 집에 가서 국어 교과서와 사회 교과서를 훑어보며 뿌듯해 하곤 했다. (물론 산수 교과서는 절대로 안 들쳐 봤다는... ^^;;)



애증(!)의 드럼통 난로.



  펑퍼짐하게 생긴 게 드럼통이랑 비슷해서 드럼통 난로라고 불렀던 것 같다.

  드럼통 난로는 학생들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드럼통 난로 주변 학생들은 강한 열기에 코트를 벗고서도 얼굴이 벌개진 채 앉아 있는데, 난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학생들은 추워서 코트를 껴입고도 덜덜 떨곤 했다.

  우리 세대는 중학교 정도까지만 드럼통 난로를 쓰고 고등학교부터는 거의 전열 난로 또는 히터를 썼다.  그러나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곳이었는지 어떤 건지, 내가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히터를 설치했다.  그나마 설치만 해놓고 졸업식 때까지 한 번도 틀어주지 않았다. ㅠ.ㅠ  결국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2년(!)이나 드럼통 난로만 쓴 것이다.  대학 때 이 얘기를 하자 친구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너 서울에서 학교 다녔다고 하지 않았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다닌 거야?" -.-;;


  그리고 드럼통 난로 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학생들은 난로 속 조개탄을 쑤시거나 난로 뚜껑을 여는 데 쓰는 꼬챙이를 난로에 살짝 달구워서, 물 묻힌 자기 머리카락을 꼬챙이 위에 둘둘 감아 즉석 웨이브 파마를 했다.  물론 쉬는시간 끝나기 전에 다시 머리카락에 물 묻혀 달군 꼬챙이로 다림질을 쫙쫙 해서 파마를 풀어놓아야 했다.  안 그러면 수업시간 때 선생님한테 혼나게 된다. ^^;;



옛날 어린이들의 백화점,

이름하여 동네 구멍가게...!



  엄마한테 100원만 달라고 해서 동네 구멍가게 가면 정말 좋았다.

  하지만 80년대에만 해도 이미 저런 식의 구멍가게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100원짜리 과자를 90원에 파는 슈퍼마켓이라고 하는 신통방통한 가게가 새롭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동네 슈퍼마켓이 대형 마트에 밀려나고 있으니, 역시 세상사는 돌고 도는 법인가 보다. 



전시품을 먹는 진상도 있나 보다... -.-;;



딱지, 종이인형, 그리고 남양분유...!



  남자 꼬맹이들의 로망인 종이 딱지와 여자 꼬맹이들의 로망인 종이인형...!

  쉬는 시간이면 남학생들이 교실 뒤편에서 종이로 된 딱지가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놀았다.  여학생들은 주로 집에서 종이인형을 갖고 놀았는데, 종종 패션 감각이 있는 아이들은 종이옷에 가위와 볼펜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곤 했다.  


  어려서 TV 광고에서 자주 봤던 남양분유...

  언젠가 누구네 집에 가서 우연히 저 분유를 한 숟가락 먹어본 적이 있는데, 뜻밖에도 달착지근해서 먹을만 했다.  오히려 물에 탄 분유는 밍밍한 맛만 나서 아기들이 왜 이런 걸 먹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아기에게 물 타지 않은 분유가루를 먹이면 목에 걸려서 사고날 수 있습니다... -.-;;)



성냥갑들의 계모임...! ^^



  성낭갑 하나 하나만 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인데, 모아놓으니 의외로 멋져 보인다...!

  복고풍 인테리어를 한 카페 같은 곳에 저런 성냥갑 모음을 걸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저런 성냥갑 모음의 자매품(?)인 담뱃갑 모음도 있었다.  어려서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담뱃갑을 일정한 모양으로 접어 이어끼워서 만든 방석(!)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고등학교 다니던 오빠가 만들었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물자가 귀하고 물건 디자인도 촌스러웠던 시절이지만, 예술적인 감각 있는 사람들은 일상 속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을 재료 삼아 멋진 물건을 만들어 냈다. ^^



옛날 생각 팍팍 나게 하는 방.

허름한 소반과 앉은뱅이 책상. 



오, 밍크이불...!



  오래간만에 보는 밍크이불이다.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 살던 사람이 많던 시절에는, 우풍이 센 단독주택 특성상 밍크이불이 큰 몫을 했다.  그런데 밍크이불이 예전에는 해외로 많이 수출되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블로그를 읽다가, 유럽의 어르신들이 저 이불을 '한국 이불' 이란 이름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단독주택에서 살 때 밍크이불을 많이 썼던 것처럼, 아파트가 별로 없는 유럽에서도 히트쳤었나 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저 이불 이름이 어째서 밍크이불일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저 이불에 달린 털은 절대로 밍크털이 아니다.  아니, 밍크털이고 뭐고를 떠나서 일단 동물털이 아니다, 그냥 합성섬유일 뿐이지...  그런데 누가, 어째서, 밍크이불이란 이름을 붙였나 모르겠다.   



만화방에서 교복 갈아입는 아주머니들.



  4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의 마지막 구역은 만화방이다.

  여기에는 60~70년대 교복이 비치되어 있어서(심지어 교련복도 있음!), 원하는 사람들은 교복으로 갈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마침 내가 저기로 갔을 때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무척 즐거워하며 교복을 골라 입고 계셨다.  살이 쪄서 여자 교복이 안 맞는 분은 남자 교복을 입고 교모를 삐뚜름하게 쓰셨는데, 그것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어서 괜찮아 보였다.  아주머니들의 부탁으로 사진을 열 장도 넘게 찍어드렸다. ^^



예스러운 영화 포스터와 LP 재킷.



  저 '별이 빛나는 밤에' 가 최수종과 하희라가 결혼 전에 찍었던 그 영화인가...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영화 포스터 속 배우 얼굴들이 실물과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나오기 일쑤였던 시절이라고 해도 그렇지, 최수종과 하희라가 저렇게 생겼을 리가...!  혹시 같은 이름의 영화가 있었나...



대본소 만화책 정말 오래간만이네~~! ^^



  중.고등학교 때 만화방에서 대본소용 만화책을 보다 보면 신경질 나는 때가 있었으니...

  나보다 먼저 만화책 본 사람이 일부 장면을 커터칼로 오려버린 경우이다. -.-;;  주로 그 만화에서 결정적인 장면, 또는 주인공이 화려하고 멋있게 그려진 장면이었다.  아니, 자기 책도 아닌데 왜 함부로 오리냐고요, 남들은 어쩌라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까지 찾아가는 길은 약간 불편하다. 

  2호선 용두역 에서 나가서 600미터 이상을 걸어야 한다.  600미터라면 산책하는 셈치고 느긋하게 걸을만 한 거리지만, 가는 길이 도로변인데다가 고가도로가 있는 교차로까지 있어서 산책길로는 꽝이다.  게다가 내가 가던 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가뜩이나 길치인 사람이 초행길 찾아가는 것도 곤란한테 심란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 용두역 5번 출구로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지도의 길찾기 기능을 써보면 용두역 3번 출구로 나가게 되어 있다.  3번 출구로 나가면 조금 더 돌아가게 되어 있고 찻길도 한 번 더 건너야 하는데...  혹시 지금 용두역 5번 출구가 공사중이라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나?  이 부분은 찾아가시는 분이 확인해 보셔야 할 듯하다.


  그리고 동절기인 2월까지는 청계천 판잣집 체험관을 상시 개방하지 않는다.

  미리 전화해서 방문 시간을 이야기 하면 그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갔는데도 운 좋게 다른 관람객들이 방문할 때 덤으로 끼어들어 구경했다.  2월 중에 방문하실 분은 꼭 전화 한 번 하고 가실 것...!  




청계천 박물관 -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역사 훑어보기(http://blog.daum.net/jha7791/15791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