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서울 용산구 용산동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다녀왔다.
마침 현충일이 다가왔으니 현충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블로그에 올려보려 한다. 전쟁기념관은 전부터 한 번 다녀오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에야 겨우 다녀왔다. 바로 근처에 있는 중앙박물관은 몇 번이나 다녀왔으면서, 어째서 전쟁기념관에는 이제야 다녀왔는지 알 수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삼각지역의 12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삼각지역이 4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이라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전쟁기념관 앞에 있는 '형제의 상'.
남한(국군)과 북한(인민군)의 평화통일을 상징함.
그런데 전쟁기념관이란 이름이 좀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을 기념하다' 라니... '기념' 이란 단어가 기쁘고 즐거운 일에만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은 알지만, 그래도 어감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다.
전쟁기념관의 본관이라 할 수 있는 전시실에 있는 수많은 전시품(각종 무기 및 전쟁 관련 기록)에 초점을 맞추자면 '전쟁역사관' 이나 '전쟁박물관' 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그리고 전시실 옆으로 이어진 긴 복도에는 6.25 전쟁 전사자 등의 명패가 전시되어 있어서 전사자 추모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쪽에 초점을 맞추자면 '전몰용사추모관' 라는 이름이 맞을 것이다.
건물을 둘러싼 호수와 작은 분수.
의외였던 것은 외국인 관람객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한 두 명씩 개별적으로 찾아온 서양인 관람객이나 일본인 관람객부터 단체로 찾아온 중국인 관람객까지... 전쟁기념관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중앙박물관이라면 몰라도, 전쟁기념관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을 많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전쟁기념관이 동양에서는 최대 규모의 전쟁 관련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 코스에 자주 들어간다고 한다. (흐음... 나는 이번에야 찾아갔는데 나보다 먼저 여기에 다녀간 외국인이 많다니, 어쩐지 겸연쩍은 생각이 드는... ^^;;)
단체관람 온 학생들이 물 근처에서 노는...
어린 학생들이 학교 밖에 나와 잔뜩 들떠서 떠들어대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저 장소가 전사자 명패가 있는 긴 복도 밑이라는 게 좀 그랬다. 신나게 떠들고 장난을 치더라도 다른 곳에서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6.25 때 우리를 원조한 국가들의 국기가
전시실 주위를 감싸고 있음.
연평해전 때의 참수리 357호의 모형.
전시실을 마주한 상태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비행기, 탱크 등 대형무기들이 야외전시 중이다.
그런데 연평해전 때의 군함이라는 참수리 357호는 실물이 아니라 모형이다. 실제 참수리 4357호는 침몰했기 때문이다.
각종 탱크.
무기쪽으로 깜깜절벽인 나는 그냥 탱크로구나 하고 지나쳤지만,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것은 아니다.
내국인, 외국인을 막론하고 남자들은 대체로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지 설명판을 유심히 읽곤 했다. 그리고 탱크 표면을 만져보거나, 탱크 위로 올라가는 게 허용된 경우에는 직접 올라가보기도 했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장갑차.
장갑차를 보니 초등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다.
아람단에서 해병대 견학을 가서 짧은 시간이나마 장갑차를 타 본 적이 있다. 장갑차가 움직일 때 내부가 어찌나 심하게 요동을 치며 큰 소음이 나던지, 겨우 몇 분 탔을 뿐인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그것이 지금까지 장갑차에 타 본 유일한 경험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유일한 경험일 것이다.
탱크 위에 올라탄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임.
(탱크 너머 산 위에 남산타워가 보임.)
6.25 때 유엔군 측 참전국의 국기 가운데에
6.25 전쟁 기념물이 우뚝 서있음.
전시실 입구 벽면의 군대 휘장들.
(왼쪽으로는 전통 군대의 휘장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현대 군대의 휘장이 있음.)
거북선의 모형.
거북선을 제외하고는 내부 사진을 찍지 못 했다.
사실은 내부에서도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하지만 주로 6.25 전쟁 관련한 것들을 전시해 놓아서 분위기상 사진을 찍는 게 꺼려졌다. (불경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랄까...) 게다가 내부가 어두컴컴해서 사진을 찍으려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할 것 같은데, 박물관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건 착한(!) 관람객이 할 짓이 아니다.
이 날은 6.25 전쟁 관련 전시품만 관람했다.
사실 6.25 전쟁 관련 자료만으로도 넘쳐흐를 지경이다. 사진, 동영상, 문서, 무기 등등. 만일 이 날 하루 동안 전쟁기념관 안의 모든 것을 다 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다면, 내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터졌을 게 틀림없다. ^^;;
그리고 전쟁기념관이 우리나라 전쟁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다지만 결국 6.25 전쟁 위주로 되어 있어서, 6.25 관련된 것들만 관람해도 전쟁기념관의 엑기스(!)는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난 가장 최근의 전쟁이라 현재 관련 자료가 가장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 그 비극적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6.25 관련 전시물이 가장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위에 이미 썼듯이 전쟁기념관이 6.25 때의 전몰용사를 위한 추모시설의 성격도 지니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광개토대왕비의 모형.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다가 광개토대왕비의 축소모형을 봤다.
처음에는 이 모형이 중앙박물관도 아니고 왜 전쟁기념관에 있는 건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하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에 관한 것이니, 전쟁사 박물관의 성격을 띤 여기에 두는 것도 충분히 말이 된다.
다만, 설명을 보니 좀 심란한 기분이 들었다.
한글 설명에는 우리나라와 바로 옆 두 나라(중국 및 일본) 사이의 역사분쟁에 관한 것이 명확히 나와 있다. 즉,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고 한다는 점, 일본이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을 묘하게 해석하여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식민지 비슷한 것을 두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 있는 중국어 설명이나 일본어 설명에는 그런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안 나온다. 전쟁기념관을 찾는 중국 및 일본 관광객들과 매번 싸울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6.25 전쟁 기념 조형물.
(비파형 동검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땅에 전쟁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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