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에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항동철길 과 푸른수목원에 다녀왔다.
어차피 내가 기독교인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라고 마냥 즐거워 할 어린이도 아니다. 거기에 날씨까지 제법 추워서 따뜻한 집에서 영화나 보며 빈둥거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어디론가 한나절이라도 떠나고 싶다면서 번개 제의를 했다. 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보고 찜(!)해두었던 항동철길 이야기를 했더니, 이 친구가 어지간히 콧바람을 쐬고 싶었는지 냉큼 가자고 했다.
항동철길에 있는 안내판 내용을 위주로 이 철길에 대해 소개하자면...
항동철길은 총길이가 4.5킬로미터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까지 이어지는 단선철도라고 한다. 1954년에 옥길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료회사인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자, 원료 및 생산품의 운송을 위해 설치해서 195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옛날 분위기 나는 철길이고, 근처에 푸른수목원까지 있어서, 요즘에는 걷기 좋은 곳 또는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완전히 폐선된 곳이 아니라 부정기적으로 화물열차가 다니고 있다. 주로 야간에 군용화물을 운반하는 열차가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야심한 시각에 산책 또는 출사 나갈 사람이라면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일단, 야간에 돌아다닐만한 곳이 아님. ^^;;)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7호선 천왕역으로 가는 게 편리하다.
천왕역 2번 출구로 나가 롯데리아가 있는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철길과 마주치게 된다.
주택가 한복판에 짠~ 하고 나타난 철길.
아직 가끔씩 기차가 다닌다는 게 안 믿어지는...
기차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철길이 아니라서 유지, 보수를 안 했는지 많이 낡아 보인다.
폐가... 가 아니라 폐선 분위기가 흠씬 느껴진다. ^^;; 그런데도 아직도 기차가 다닌다니, 놀라움과 함께 철길 상태가 저 모양이라 혹시나 기차 운행 중에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좀 든다.
주택가를 지나는 철길이라니 낭만적이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구의 회기동과 이문동 쪽에서도 주택가를 통과하는 철길을 볼 수 있다.
소싯적(?)에 보던 풍경과 흡사해서 옛날 생각도 나고, 서울 밖 한가한 소도시로 나간 기분도 들었다. 또한 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찍기에 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철길 옆에 사는 사람들 기분은 어떨까?
나처럼 어쩌다가 온 구경꾼 눈에는 마냥 좋아 보이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 바로 옆에 있는 철길을 보며 낭만적인 기분을 만끽할까, 아니면 좀 무섭다고 생각할까? 낮에는 나름의 분위기가 있지만 한밤중에 여자 혼자 다닐 수 있는 길은 전혀 아닌 듯하다. 동네 불량배란 불량배는 다 모여들지 않을까... ^^;;
그리고 우리가 간 날은 추워서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날씨 좋은 휴일에는 구경하러 온 사람이나 사진 찍으로 온 사람이 몰려들어서 어수선할 것 같기도 하다.
좋은 풍경 보며 그 느낌을 그대로 만끽하지 못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속세의 때가 덕지덕지 붙었나 보다. (아, 점점 사라져가는 나의 감성이여...! ㅠ.ㅠ)
이 날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위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가 생각난다.
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행로를 상징하던, 대우주로 향하는 철길...! 이쪽에서는 제법 넓어 보이다가 저 멀리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철길을 보고 있자면, 우리 인생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에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고 또 그만큼 많은 꿈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치여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다.
항동철길에서 푸른수목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철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푸른수목원 입구가 보인다.
겨울이라 헐벗은 나무만 가득할 수목원은 별 기대하지 않고 갔다. 그런데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는지, 오히려 푸른수목원의 겨울풍경이 운치가 있어서 구경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겨울 햇살을 맞아 감성을 자극하는 갈대.
안전 문제로 겨울 동안 출입금지인 목판길.
푸른수목원 안에 있는 항동호수.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라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추위 때문에 그만 돌아가야 했다.
푸른수목원을 나가 다시 항동철길을 따라 천왕역 쪽으로 돌아가던 중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봤다. 완전한 아기는 아니고 청소년(?) 정도 되는 고양이인데 아마 어미 고양이에게서 막 독립한 듯했다. 어리고 경험이 없어 그런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아주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어린 녀석 혼자서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날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불쌍하면 집에 데려가 키우라고 농담을 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녀석의 처지가 딱하기도 해서 그러고 싶었지만, 집에 데려갔다가는 고양이는 물론이고 나까지 한 세트로 묶여 쫓겨날 판국이라 포기했다. ("그렇게 동물 키우고 싶으면 네가 집 사서 10마리고 100마리고 키워!" 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
육안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마치 숨은그림 찾기 같음.
(고양이에게도 보호색이 있던가요? ^^)
전철 중앙선 / 경기도 양평의 간이역 석불역(http://blog.daum.net/jha7791/15791141)
구 화랑대역 철도공원 - 서울 마지막 간이역의 변신(http://blog.daum.net/jha7791/1579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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